월간참여사회 2011년 07월 2011-07-06   2246

안건모의 사는 이야기-“군대는 어떻게 할래?”

“군대는 어떻게 할래?”

 

안건모 <작은책> 발행인

 

지난해 12월, ‘세상의 중심에서 십대가 외친다’라는 꼭지에 실어달라고 어느 고등학생이 글을 보내 왔다. 글을 읽던 편집부에서 웃음이 빵 터진다. 궁금해서 읽어 보니 자신의 꿈이 언론노조 위원장이란다. 본래 라디오 PD의 꿈을 지니고 언론노조 홈페이지에 자주 들락거리다가 〈작은책〉을 알게 됐고, 그 책을 읽다가 만연한 사회 부조리를 깨달았고 언론노조 위원장으로 꿈이 바뀌었단다. 나도 웃음이 터졌다. 꿈도 야무지고 맹랑하다.

  이 학생이 그런 꿈을 가지게 한 건 중학교 2학년 때의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이 수행평가로 ‘사회적 문제나 부조리를 조사해 오라’는 과제를 내주었고, 이 학생은 인터넷 동호회에서 본 신성교통 비정규직 노동자 얘기를 썼다. 회사가 1년 단위로 계약을 하고 퇴직금도 안 주고 맘에 안 들면 해고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숙제를 검사한 선생님이 “이런 건 어떻게 알았니?” 라면서 칭찬하더란다. 그 학생은 그 뒤에 언론노조 위원장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고 등록금 반값 집회에도 나가는 등, 사회에 적극 참여하는 삶을 살게 됐다.

  그 학생이 올해 대학에 입학하여 〈작은책〉 글쓰기 모임에 나타났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말이 빨랐는데, 전자과 출신인지라 마음에 들지도 않는 공대에 들어갔고, 이런 학교엘 억지로 다니는 중이라는데,  써온 글에는 웬만한 실력이 묻어났다.

  글쓰기 모임 뒤풀이를 중에 내가 그 학생에게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야, 그깟 대학교 다녀서 뭐 할래? 학교 때려치우고 〈작은책〉에서 일이나 해라.”

  그랬더니 그 학생 반색을 하면서 “정말요? 저를 〈작은책〉에서 일하게 해주면 당장이라도 학교 때려치울 거예요.” 하는 거였다. 헉, 우스갯소리 한건데, 큰일 나겠다. 사실 〈작은책〉일꾼이 두 사람이나 퇴직해 일할 사람은 필요했지만 이제 대학 1학년 학생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리고 얼마 뒤에 〈작은책〉일꾼을 뽑는다는 공고를 냈다. 총무와 영업을 겸하는 자리인데 알음알음으로 구하려니 쉽지가 않았다. 거의 마감 때에야 세 장의 이력서가 들어왔다. 정치외교학과 출신의 1983년생 한 명, 사회복지학과 출신의 1984년생이었고 나머지 한 명이 언론노조 위원장이 꿈인 바로 그 대학생이었다. 아니, 얘가 정말 장난이 아니네.

  이력서가 진지했다. 학력난에는 어느 대학인지를 밝히는 대신에 ‘참여연대 회원 가입’, ‘〈작은책〉에 글 4회 투고’, ‘대학생 진보정치경제연구회 안산지역 운영진’, ‘청년유니온 조합원 가입’이라는 경력을 언급했고, ‘주요 사항 및 기타’ 난에는 ‘2010년 7월 KBS파업 문화제, 2011년 4월 반값등록금 집회 등 참여’라는 내용과 더불어, 더 재미있게도 〈작은책〉 강연 2회 참여, 〈작은책〉 글쓰기 모임 서울 회원이라는 내용을 더했다. 가슴이 짠했다.

  자기 소개서 내용이다.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온 20살. 어쩌면… 그저 라디오 PD가 꿈인 평범한 20살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힘든 학교 생활을 묵묵히 버티는 건지도 모릅니다. 근데 이젠 그걸 놓으렵니다. 2011년 6월,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면서, 오래전의 머릿속 깊은 곳의 생각이 꿈틀댑니다. ‘때려 치우자.’ 대학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 적어도 지금은.”

 

  집안 형편이 어려운 학생이었다. 아버지가 오랫동안 실직 상태였다. 학비가 무료이고 생활비도 나온다기에 ‘공군항공과학고등학교’에 입학하려 했지만 시력이 나쁘고 성적도 원했던 바가 안 되어 포기하고 말았다. 결국 실업고등학생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공고 전자과로 갔다.

  그 학교에서 가슴에 와닿는 선생님을 만났다. 그 선생님은 가끔 시국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이 학생의 관심을 유난히 끈 내용은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이었다. 산재 자체를 인정 안 할뿐더러, 산재를 인정 받으려는 시도만으로도 온갖 협박에 시달려야 하는,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다가 전문계 고교 출신인 한 선배가 백혈병으로 저세상으로 가는 걸 보게 됐다. 단순히 전문계 출신이라는 그 동질감에서 이 학생은 ‘난 지금 뭘 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됐다고 한다.

 
  이 학생은 집안 형편상 대학엘 편안히 다니지 못하는 게 분명해 보였다. 등록금이 2.9퍼센트나 인상돼 학자금 대출까지 받았으나 학교가 마음에 든 것도 아니었다. 한국대학생연합회에도 가입하지 않은 총학생회는 투쟁 전단지만 뿌리고 현수막만 걸면서 투쟁은 하지 않았다. 게다가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은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좋은 점수가 나오려면 자기 생각을 포기하는 리포트를 써야 했다.

  이 학생이 〈작은책〉에 입사원서를 낸 계기는 지난 6월 10일의 등록금 반값 촛불집회였단다. 〈작은책〉에 입사 지원서를 내게 된 마지막 이유는 이랬다.

 

“지금 좋아하는 건 결국 ‘〈작은책〉이다’라는 결론이 났습니다. 〈작은책〉에서 일하면 그 ‘부조리’와 한 5~6년쯤 일찍 싸울 수도 있고, 무엇보다 그걸 널리 알릴 수도 있으니까요. 간단한 회계 일이나 영업 일은 제가 어리다고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부모님이 가게를 하시어 간단한 돈 계산, 관리도 해 봤고 물건도 받아 봤습니다. 학교에서는 ‘언정대 선배’들과 등록금 관련 서명 전단지 100장을 7분 만에 돌려 봤습니다. 학교나 집회 현장이나 동아리에서도 틈만 나면 〈작은책〉 소개를 해온 전, 자신 있습니다.”

 

  스무 살 나이가 어리다는 생각은 아니다. 나는 12살 때부터 공장에서 일했고 스무 살 때는 건축 현장에서 살아 왔다. 4·19때는 초등학생들도 집회에 참가해 독재 정권을 규탄했다. 해방공간에는 열댓 살 먹은 빨치산도 많았다. 스무 살이면 앞가림을 할 수 있는, 〈작은책〉에서 충분히 일할 수 있는 나이다. 아, 그런데 대학을 그만두면 바로 군입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병역 기피하면 작은책에서 일할 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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