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1년 01월 2011-01-01   1711

김용민이 만난 사람-완전한 봄을 기다리는 자작나무처럼 평화의 봄을 씨뿌리는 사람

완전한 봄을 기다리는 자작나무처럼
평화의 봄을 씨뿌리는 사람

이시우
  사진작가

김용민 시사평론가  사진 김은진 작가

“반갑습니다. 목소리를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습니다.”

평화운동가이며 사진작가인 이시우 씨. 2010년 12월 22일 인천 강화군 양도면 건평리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첫 대면을 했다. ‘목소리를 들었다’ 함은 내가 출연한 라디오 방송을 청취했다는 이야기이다.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익히’라는 말에 놀랐다. 정주(定住)하기보다 전국을 돌아다니는 활동가가 하루 10분 넘지 않는 내 방송을 고정적으로 들었다는 뜻 아니겠나. 특별한 취미가 있었던 것일까.

  “구치소에서 구내방송으로 틀어줬거든요.”

  그랬다. ‘본의 아닌 정주’였다. 그렇다면 서울구치소에 몸이 묶인 이들 대부분이 내 목소리를 익히 들었다는 이야기이다. 감격할 일은 아니나 갑자기 무거운 책임감이 엄습한다. 왜 구속됐을까. 2004년이었다. 이시우 씨는 미군 초청으로 판문점 기지를 방문했다. 그리고 탄약고에 있는 생화학전 무기 표식을 발견했다. 남들은 영문도 모르고 지나갔으니 결과적으로는 아는 게 힘이 아니라 병인 셈이 됐다. 잽싸게 사진기에 담았다. 큰 파장을 예상하며. 왜냐. 그 당시 미국은 ‘이라크에 대량 살상무기가 있다’며 이라크 지도자 후세인을 잡으려고 혈안이었거든. 나는 되고 남은 안 되는 이런 미국의 이중성이 상징적으로 담겨있었던 것이다. 그도 그렇지만 유사시 이 화학 무기는 민족 구성원 모두를 파멸로 몰고 갈 흉기가 될 것임에 분명했다.

  이시우 씨는 유엔사 공보관에게, 또 미국 대사관에 물었다. “내가 판문점에서 여러 장면을 촬영했다. 이거 공개해도 되겠는가”라고. “뭐 어떤가, 하라”는 답을 들었다. 세상에 알려지는 순간, 어마어마한 파장이 일 줄을 몰랐던 것이다. 난리가 나고 미군은 길길이 날뛰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미군 용산기지 대테러 담당관 또 그 위에 미군 사령관이 “이시우를 잡아넣어라”는 의견서를 정부에 냈다고 한다. 이에 ‘속지주의 원칙에 따라 우리 국민에 대한 처벌 수위는 우리가 결정한다’라고 나올 우리 정부인가. 이시우 씨는 구속됐다. 죄목은 군사기밀을 탐지해서 누설했다는 점.

  터무니없는 시비지만 군 특히 미군의 노여움을 샀다면 평범한 국민으로서는 겁부터 먹기 십상. 하지만 이시우 씨는 이정희 변호사(현 민주노동당 대표) 등과 함께 촬영한 것이 군사기밀일 수 없고 탐지도 아니며 당연히 누설도 아니라는 주장을 폈다. 그리고 이겼다. 승리의 의미는 일개 사건에 국한되지 않았다.

  “우리 헌법에 보장된 평화적 생존권을 법원이 인정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그 권리를 누리기 위해 감시의 권한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 재판부가 수긍했거든요. 일본에서 온 활동가도 ‘획기적인 사례’라며 감탄하더군요.”

  이 순간, 나는 정말 대단한 사람과 인터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민통선 아픔, ‘유엔사 해체 걷기 명상’의 화두

그의 전공은 사진이다. 그러나 졸업장을 받지 못했다. 이른바 ‘486’세대라는 정황이면 설명이 쉬워질까. 시대가 그를 학교 현장에서 거리로 차출한 것이다. 1992년 겨울 대통령 선거. 야당은 단일후보 김대중을 냈고, 여당이 도리어 정주영과 표를 나누게 돼 그 어느 때보다도 대권을 거머쥘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당선은 김영삼의 몫이었다. 실망이 하늘을 찔렀다. 비운은 겹쳐 속했던 단체(전국노동자문화운동단체협의회)도 해산했다. 이러다보니 할 게 없어 혼자 할 일을 찾다가 다시 카메라를 잡게 됐다.

  “강원도 철원, 눈 내린 벌판에서 새가 날아가는 장면을 찍었지요. 이게 인연이 됐던 것입니다. 그래서 민통선을 돌아다녔어요. 사실 통일 문제에 대해 문외한은 아니었어요. 단체에서 활동하며 쌓은 견문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서울시내에서 데모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이때에 알게 됐어요. 민통선 권역 내에 사는 분들의 고통을 외면했다는 맹성(猛省)을 하게 됐거든요.”

  민통선 주민의 애환,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1959년을 거슬러 올라가자. 당시 사망·실종 849명, 이재민 37만 3,459명을 비롯해 총 1,900여 억 원의 재산피해를 남긴 사라호 태풍으로 피해를 입은 경북 울진군 기성면, 온정면, 평해면, 근남면 일원에서 피해를 입은 수재민 70세대가 당시 강원도지사 주선으로 이곳으로 옮겨오게 됐다. 그러나 조건이 있었다. 일구어야 할 밭에 지뢰가 있으니 알아서 개간하는 것이었다. 되돌아갈 수 없는 법. 목숨 걸고 땅을 일궜다. 그랬더니 원래 땅 주인이었던 사람들은 토지대장을 들고 와 자기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고생을 고생대로 하고는 소작인이 된다. 정부와 도, 군은 팔짱만 끼었다. 또 하나. ‘고통이 있어도 있는 척 하지 말라’ 이건 민통선 안에 불문법이다. 이는 지뢰 사고가 나도 당한 사람 아는 사람 모두 입을 다물게 되는 근거이다. 만약에 사실이 알려지면 군사지대에 들어가 일하고 (날품팔이가 불가능해진다) 하나 더. 고엽제 실험의 탓도 있다. 베트남 전쟁 참전을 앞두고 고엽제의 성능을 실험하기 위해 비무장지대에다 고엽제를 살포했던 것이다.

  이것이 이시우 씨로 하여금 1,500km 휴전선 걷기 일주를 가능케 한 동력이었다. 성찰의 힘, 가공할 만하다. 강화에서 고성까지. 이시우 씨는 이를 ‘유엔사 해체 걷기 명상’이라고 했다. 그냥 ‘걷기 명상’이 아니었다. 그 장거長去 속에 장고長考가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 민통선 현실을 돌파할 해법, 그는 찾아냈다.

  “유엔사 해체가 시급합니다.”

  유엔사 해체라. 이것은 또 웬 화두인가. 모르는 사람은 통 모를 의제이다. 이 이야기에 앞서 짚을 것이 있다. 1975년 유엔총회는 유엔사 해체를 결의했다. 유엔군 사령관이며 한미연합 사령관인 주한미군 사령관은 그러나 이걸 이행하지 않고 있다. 총회 결의로는 안 되고 안보리 결의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미군은 유엔총회 결의에 의해 38선 북쪽지역에 대한 점령주체가 유엔사라는 1950년 10월 7일 결의는 절대 존중한다. 이런 이중성에는 마수가 있다.

  “이런 원칙대로라면 미국은 언제든 유엔 총회 결의라는 명목으로 안보리 결의 없이도 유엔사를 앞세워 북한을 침공할 수 있습니다. 주한 미군 단독으로는 할 수 없느냐. 없어요. 그렇게 되면 침략하는 것이 되고, 허울뿐입니다만 미군이 안보리에 회부될 문제입니다. 따라서 유엔사 해체는 곧, 북한이 느끼는 ‘공격당할 것에 대한 우려’를 지울 수 있다는 점에서 협상 카드가 될 수 있습니다.”

한강 하구 평화지대화 남북 화해의 시금석

강화도로 가는 길에 ‘애기봉’ 표지판 여러 개를 지나쳤다. 그렇지 않아도 전날 밤 대북심리전 차원에서 군이 성탄 점등을 허용했다. 점등식에는 민간인들이 상당수였다. 만에 하나 비극적 상황이 발생하기라도 했다면 “북한에 대해 온 국민과 함께 분노 한다”라며 립 서비스 몇 마디로 끝낼 요량이었을까. 북한의 군사적 대응을 유도하는 의도가 역력했다.

  “점등 자체는 ‘상대로 하여금 적대행위라 느끼게 만드는 것’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이를 정전협정은 금지하고 있어요. 남북관계, 크게 뒷걸음질 치고 있는 것입니다.”

  강화도 또 애기봉이 있는 김포와 북한 땅 사이로 한강이 흐른다. 이시우 씨는 평소 이 한강하구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이곳이 남북화해의 시금석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펴왔다.

  “군사 분계선이 있던 현장에 항상 분쟁이 있었습니다. 연평도 사건도 보세요. 쟁점은 서해 북방 한계선이었습니다. 이거 아십니까? 한강하구에는 군사 분계선이 없습니다. 한강하구를 정전협정대로 배가 다닐 수 있는 평화지대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공하면 서해도 그런 공간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한강하구부터 해야 합니다.”

  반추해보니 이곳에서 ‘평화의 소’ 구출작전이 있었다. 1996년 홍수 때 북한에서 떠내려 왔던 그 소, 다른 동물을 해치지 않는 초식동물 소가 군사적 긴장지대에서 인도적 발상으로 구출된 점,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런 감(感)을 이명박 대통령도 모르는 바가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있으면서 10대 치적을 자랑했지요. 그 세 번째가 한강하구 관련한 것이었어요. 경남 통영에서 출발한 거북선을 남해 서해를 거쳐 한강하구를 통해 마포에 도달하게 한 것입니다. 당시 유엔사와 북한군이 양해했었고요. 한강에 대한 꿈이 그때부터 있었던 것입니다. 대통령 후보가 돼서는 한강하구 갯벌을 나들섬으로 만들어 남북교류 캠프로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대단히 얕은 발상이다. 국제해양법에서 물이 빠지고 또 들어오는 섬을 간출지라고 한다. 한강갯벌이 그러하다. 이곳은 땅인가 아닌가. 땅이라고 할 경우 누구의 소유냐 하는 점에서 분쟁의 소지가 생긴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에서는 이를 준설해 없애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아예 유인도를 만들자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런 구상의 이면에는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대운하의 종착점으로 나들섬을 터미널로 만들려는 의도가 숨어있었다. 평화 공존지대로서의 한강하구에 대한 관심은 뭐라 할 수 없으나 이것이 개발 욕구에 기초해 있음은 ‘MB 다움’이라 아니할 수 없다.

남북문제, 우리 민족이 평화협정 당사자 돼야

화제는 자연스럽게 MB의 대북정책으로 이어졌다. 평화운동가로서 연평도 사건 그 이후에도 이어지는 대결 국면을 바라보는 시각을 물었다.

  “북한은 대단히 전략적입니다.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 실험도 두 차례나 했습니다. 미국의 우려가 커지게 됩니다. 반사적으로 일본이 핵 무장을 요구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동북아시아의 핵 확산을 결코 바랄 리 없는, 나아가 그랬다가는 스스로 모순에 빠지고 마는 미국으로서는 결국 북한의 핵을 무력화하는 수로 북미 간 협상에 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북미 사이에 대화가 급속 기류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우리 기대와는 달리 북미 간 평화협정, 생각보다 빨리 진척될 수 있습니다. 협정이 이뤄지는 날에는 남한은 이만저만 난처해지는 게 아니게 됩니다. 대비해야 합니다. 평화체제 만들어갈 때 남한이 빠진다면 큰 문제가 됩니다. 군사분계선 설정을 비롯한 모든 영토 협상을 북미 간 협상에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남한은 어떻게든 평화협정의 당사자가 돼야 합니다.”

  연평도 포격에 대한 반격 성격의 훈련을 하던 날, 북한은 미국 뉴멕시코 주지사에게 “핵 사찰단 재 입북을 허용 한다”고 약속했다. 남한이 군사적 응징의 목소리를 높이던 날, 북한은 외교를 했던 것이다.

  전략적 대응을 주문하는 이시우 씨의 이런 주장은 여전히 ‘종북의 꼼수’로 매도되는 형국이다.

  “얼마 전 동명이인의 이시우 씨가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 의해 사찰당한 일이 있었지요. 많은 언론은 저인 줄 알고 문의 전화를 걸어오더군요. ‘그러거나 말거나’라고 답했어요. 그 이시우가 제가 아니라고 판정 나도, 또 국가보안법 위반 재판에서 무죄로 결론 나도 이미 ‘반정부 인사’로 낙인 찍혔다고 말이지요. 재판을 겪고서 알았는데요, 검찰이 저를 4년 동안 사찰했더라고요. 지금은 사찰 안 당하느냐, 확답 못하겠습니다. 중요하지도 않고요.”

  그의 시계는 남들보다 앞서 있다. 이미 재 도래할 평화 시대를 대비해 한강하구 사진전 또 유엔사 관련 책 출판 준비에 부산하다. 애써 과거로 시침을 돌리려는 이들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는다. 시민단체에 대한 ‘한마디’도 시국에 얽매이지 않는다.

  “겨울에 나무는 몸에 있는 물을 뿌리로 내립니다. 봄이 되면 다시 물을 몸으로 끌어올리고요. 이러다보니 봄에 꽃샘추위라도 올라치면 동사하는 나무가 많습니다. 자작나무는 다릅니다. 완전한 봄이 될 때까지 기다립니다. 지난 10년 정부 동안 시민단체 중에는 좀 더 많이 쬐려고  햇볕에 몸을 맡겼지요. 갑자기 겨울이 오다보니 시련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햇볕이 있건 없건 자생할 수 있는 나무, 그런 나무가 된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어쨌든 닭의 목을 비틀어도 봄은 온다. 그 봄이 왔을 때 이런 일이 오리라는 상상은 여전히 무엄한가. ‘내 목소리를 익히 들었다’한 이시우 씨. 이 분의 뒤를 이어 몇 년 뒤 ‘그 분’도 그곳에서 내 목소리를 익히 들어 잘 알게 될 가능성 말이다. 그 분의 지은 죄가 너무나 주홍 같아 하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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