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9년 11월 2019-10-30   1391

[특집] 검찰개혁과 민주주의

검찰개혁과 민주주의

글. 이국운 한동대학교 법학부 교수

 

 

최근 검찰개혁과 관련하여 법무부와 대검찰청 사이에서 벌어진 여러 가지 논란 과정에 한국 사회가 얻은 한 가지 구체적인 소득은 검찰개혁의 주요 의제들이 실제로 시행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지난 10월 14일 오전 조국 전 법무부장관은 법무부-대검찰청 협의와 고위 당·정·청 협의를 거쳐 법률개정사항을 제외한 개혁 방안들을 발표했다. 크게는 특별수사부의 명칭 폐지와 부서 축소가 한 축이고, 인권보호수사규칙(법무부령)의 제정이 다른 한 축이다. 그밖에 검찰에 대한 법무부 감찰의 실질화, 국민 중심의 검찰 조직 문화 정립도 중요한 꼭지로 추가되었다. 이 가운데 생각할수록 기가 막힌 것은 두 번째, 즉, 인권보호수사규칙의 내용이다.

 

① 1회 조사는 총 12시간(열람·휴식 제외한 실제 조사 시간은 8시간)을 초과할 수 없고, 조사 후 8시간 이상 연속 휴식을 보장

② 심야 조사를 ‘21시부터 06시 이전 조사(열람시간 제외)’로 명시하고, 자발적 신청이 없는 이상 심야 조사를 제한

③ 부당한 별건수사를 제한하는 규정을 신설하고, 부당한 별건수사 및 수사 장기화에 대한 실효적 통제 방안을 마련

④ 부패 범죄 등 직접 수사의 개시, 처리 등 주요 수사 상황을 관할 고등검사장에게 보고하고 사무 감사로 적법절차 위반 여부 등을 점검

⑤ 전화·이메일 조사 활용 등 출석 조사 최소화, 출석 후 불필요한 대기 금지, 수용자 등 사건 관계인에 대한 지나친 반복적 출석요구 제한, 출석요구 과정을 기록하도록 규정을 신설

⑥ 사건 관계인을 친절, 경청, 배려하는 자세로 대하고, 모멸감을 주는 언행을 금지

 

수사의 대상이 대부분 헌법의 주어이자 대한민국의 주권자인 국민임을 감안하면, 이 내용은 그야말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문제는 이처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내용을 법무부장관이 대검찰청과 고위 당·정·청 협의를 거쳐, 이제야, 검찰개혁 방안으로 국민 앞에 내놓았다는 사실 그 자체이다. 단언컨대, 이 인권보호수사규칙의 내용은 결코 개혁이 아니며, 그저 지독한 비정상이 늦게나마 정상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뒤늦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법무부장관이나 검찰총장의 결단에 따른 업적으로 칭송하는 것은, 그래서 솔직히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그처럼 그저 법무부장관이나 검찰총장이 결단만 하면, 고위 당·정·청 협의만 거치면 정상화시킬 수 있었던 것을 지금까지는 짐짓 모른 체하며 뭉개왔다는 말인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 수십 명의 법률가가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의 자리를 차지하는 동안 단 한 명도 그와 같은 결단과 협의와 정상화를 시도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그들에게는 혹시 국민 중심의 검찰 조직 문화를 반대하고, 절제된 검찰권 행사와 피조사자의 인권 보호를 미루어야 할 만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던 것일까?

 

헌법이 말하는 대로, 검찰의 수사 대상이 헌법의 주어이자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닌 주권자 국민이라는 사실을 단 한번이라도 떠올려보기만 했더라면, 어떠했을까? 만약 그랬다면,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은 이와 같은 뒤늦은 개혁 방안을 발표하기에 앞서서 먼저 그동안 주권자 국민 앞에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보였음을 자인하고 깊이 머리를 조아리며 용서를 구했어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도 검찰개혁은 이제 출발점에 섰을 뿐임이 분명하다.

 

공수처를 넘어서는 권력개혁 방향 

현 시점에서 검찰개혁의 화두는 단연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의 설치에 관한 법안의 국회통과 여부이다. 이미 민주당과 세 야당(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이 합의한 두 개의 법안(백혜련 의원안, 권은희 의원안)이 패스트트랙에 올라가 있어, 절차가 요구하는 시한이 채워지는 대로 본회의에 상정되면 곧 투표가 가능하다. 물론 자유한국당은 모든 논리를 총동원하여 공수처법안의 통과를 무산시키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지금껏 수많은 지면에서 다루었고, 지금도 여러 미디어의 각종 토론 프로그램에서 지겹도록 계속되고 있는 찬반의 입씨름을 여기서 재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는 단지 공수처의 설치여부를 주권자인 국민의 입장에서 어떻게 판단해야 할 것인지에 관해, 기본적인 시각을 공유하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 그래야만 공수처를 설치한 뒤에도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공수처를 넘어서는 검찰개혁의 방향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금 생경한 느낌이 들지도 모르지만, 잠시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오래 권좌를 유지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권력운용술을 생각해 보자. 잘 알려져 있듯이, 박정희 전 대통령은 18년에 이르는 집권 기관 동안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하여 이른바 2인자를 두지 않는 특유의 용인술을 썼다. 김종필, 김재춘, 정일권, 김형욱, 이후락, 박종규, 윤필용, 강창성, 김재규, 차지철 등 한 때나마 2인자 소리를 듣던 인물들은 그래서 서로를 끊임없이 견제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에게 충성할 수밖에 없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러한 용인술은 정보 및 수사기구의 활용에 관해서도 유사한 모습으로 관철되었다. 집권 초기에는 중앙정보부가 압도적인 우위를 구가했지만, 중반기부터는 국군 보안사령부가 위세를 떨쳤고, 후반기에 이르러서는 청와대 경호실이 권력을 휘둘렀다. 세 기관들은 독재 권력의 신임을 얻기 위하여 서로 견제하면서 치열하게 경쟁했다.

 

이제 나는 한 가지 사유 실험을 독자들에게 제안하고 싶다. 지금까지 언급한 이야기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자리에 헌법의 주어인 주권자 국민을 놓아보자. 그리고 2인자의 자리에 민정수석이나 법무부장관이나 검찰총장으로 놓아보자. 그리고 중앙정보부, 국군 보안사령부, 청와대 경호실의 자리에 법무부, 검찰, 공수처를 놓아보자. 어떠한 그림이 펼쳐지는가?

 

물론 독자들 중 누군가는 민주화된 사회는 독재 정권의 용인술이나 권력운용의 노하우를 참고할 이유가 없다고 강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권력에 대하여 공부를 계속할수록 나는 그와 같은 주장에 동의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민주화된 사회에서도 권력은 어디까지나 권력이기 때문이다. 민주화된 사회든 아니든, 모든 권력은 스스로를 확대하고 그래서 부패하려는 속성을 벗어버릴 수 없다. 그나마 권력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은 권력을 분립시켜, 권력들끼리 견제하고 균형하게 만들 때뿐이다. 그것도 주권자 국민이 조금만 방심하면 권력의 확대와 부패는 또 다시 벌어지고 만다.

 

이러한 관점에서 나는 민주화된 사회에서 주권자 국민은, 필요하다면 독재 권력이 활용했던 용인술이나 권력운용의 노하우까지도 참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국민이 부여한 수사권, 영장청구권, 기소권, 공소유지권 등이 너무 한 기관에만 집중되어 그 기관 자체가 도무지 권력 남용과 인권 침해를 피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른 상황이라면, 주권자인 국민이 개입하여 권력의 견제와 균형을 회복시켜 주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지 않은가? 그렇게 해야만 여러 권력이 주권자 국민의 신임을 얻기 위하여 서로 견제하면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지지 않겠는가? 독재 권력도 자신의 권력을 보전하기 위하여 과대한 권력을 나누고 권력들 사이의 견제와 균형을 도모한다. 그렇다면 민주화된 한국 사회에서 주권자 국민이 앞장서서 형사 사법 권력 체계의 견제와 균형 시스템을 회복시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표

 

 

주권자의 검찰권력 통제 방안, 검사장직선제

현재 패스트트랙에 올라있는 공수처법안에 대해서는 무엇보다 그동안 수사의 대상에서 사실상 빠져 있었던 판검사 등의 고위 공직자를 전담하는 점에 관하여 국민의 지지가 높다. 일각에서는 국회의원을 수사대상에 포함해 공수처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을 뺀다면, 그것대로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국회의원들이나 공수처의 구성원들의 부패 문제에 대해서는 기존 검찰의 특수부, 아니 반부패수사부가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존 검찰에게 맡기기 부적절한 상황이라면, 그동안 여러 차례 경험했듯이 상설 특검법을 활용하여 특별검사를 임명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공수처법안의 통과가 검찰개혁의 모든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공수처는 그저 검찰개혁의 알파, 즉 ‘시작’일 뿐이다. 형사사법체계의 개혁 전반으로 시야를 넓히면, 비정상의 정상화, 그것도 매우 뒤늦은 정상화로 불러야 할 여러 의제들이 법제화를 기다리고 있다. 이 가운데 검·경수사권 조정과 자치경찰제의 실시는 사실 개혁이라고 말하기가 부끄러운 측면을 가지고 있다. 수사권의 조정을 통해서 검찰과 경찰 사이에 견제와 균형의 체계를 회복시키는 것이나, 치안 유지를 각 지방자치단체의 소관 사무로 삼는 것은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동시에 이루어졌어야 할 과제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두 의제는 일단 정상화의 방향을 굳건하게 잡고, 난마와 같은 관할 문제를 하나씩 하나씩 풀어가면서, 적어도 20년 정도의 과도기를 거친다고 생각하면서 매우 실무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옳다.

 

그렇다면, 형사사법체계의 개혁에 있어서 그 주도권이 주권자 국민에게 있다는 점을 어떻게 확인하고 또 각인시킬 수 있을까? 오래도록 이 점을 깊이 고민하면서, 나는 형사사법절차의 모든 권한을 틀어쥐고 있는 검찰의 조직과정에 주권자 국민이 직접 개입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것은 바로 각 지방검찰청 검사장을 4년 임기로 해당 지역의 주민이 직접 선출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현재의 검찰청법과 공직선거법의 일부 조항을 손보기만 하면, 당장 2022년의 지방선거에서부터 지방검사장의 주민직선제를 실시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검찰 조직을 중앙의 정치권력이 합의에 의하여 구성하는 대검-고검과 공수처, 그리고 각 지역의 주민이 실질적으로 구성하는 지검들로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이며, 대검-고검과 공수처는 국민이 선출하는 대통령과 국회를 통하여, 각 지검은 각 지역의 주민이 직접 선거를 통하여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대검-고검과 공수처가, 또한 각 지역의 지검들이 국민의 신임을 얻기 위하여 개혁 경쟁을 벌이는 모습도 벌어질 수 있을 것이다.  

 

 

[특집] 검찰개혁의 시간 

1. 검찰은 어떻게 무소불위 권한을 가지게 되었나 한상희

2. 검찰의 불법적·반인권적 수사 민경한 

3. 검찰개혁, 어디까지 왔나 박근용

4. 검찰개혁과 민주주의 이국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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