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9년 11월 2019-10-30   1127

[여는글] 자백과 고백 사이

여는글

자백과 고백 사이

 

 

“사회 구조적 모순을 개혁해야 한다.”, “아니다. 개개인의 의식이 깨어나지 않으면 아무리 법과 제도를 바꿔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토론회장이나 사적인 모임에서 흔히 대립하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적절한 답을 내기 위해서는 문제의 적확한 진단이 우선일 것이다. 하나의 결과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주요 원인과 부차적인 원인이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문화로 형성되고 관행으로 굳어진 반칙과 불공정, 부패와 부정의는 거의 법과 제도가 주요 원인이다. 그리고 그런 법을 만들고 누리는 자들은 선출된 권력자들이다. 그릇된 법과 제도의 외피를 입고 칼을 휘두르는 자들은 과잉된 자긍심으로 안주하고 누리는 선출되지 않은 공권력이다. 우리는 이들을 기득권이라고 부른다. 기득권에 있는 자들은 변화를 싫어한다. 그들은 괴벨스를 능가하는 온갖 논리와 변칙을 동원하여 저항하고 공격한다. 지금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검찰이 그렇다. 그 곁에 기생하고 공생하는 보수 정당과 보수 언론이 함께하고 있다.

 

그릇된 권력과 문화를 바로 잡지 못하는 주요 원인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자.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주요 원인은 대중이 ‘남 탓’을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더 정확하게 진단하자면 ‘남 탓’과 ‘내 탓’을 잘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예를 들어 우리 사회 빈부의 양극화, 청년 실업과 비정규직의 문제, 분배의 쏠림 등 우리를 힘들게 하는 원인은 과연 개인의 무능력과 게으름이라는 ‘내 탓’이 주요 원인일까. 이미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는 불가능해졌는데도, 당신 삶의 힘겨움이 그릇된 철학과 법과 제도의 ‘남 탓’임을 읽어내지 못하고 ‘내 탓’이라고 한다면, 당신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런 당신은 아마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선거 때  투표하지 않거나, 당신의 행복한 삶을 배반하는 집단에 표를 찍을 것이다. 

 

다시 한번 상기해보자. 분명 어떤 결과의 주요 원인이 나의 무지와 불성실에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명토 박아 두거니, 견고하게 굳어진 그릇된 문화와 관행은 주요 원인이 ‘남 탓’에 있다. 이제, 이미, 촛불 시민은 ‘남 탓’을 정확하게 읽어내고 있다.

 

두드리지 않으면 문은 열리지 않는다. 흔들지 않으면 잠에 취한 자는 깨어나지 않는다. 권력이라는 유전자가 그렇다. 기득권자들은 결코 자신들의 잘못을 고백하지 않는다. 여기에 인간군상의 비애가 서려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허물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혹은 타인들이, 자신들이 전횡하고 있는 권력을 부러워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자들의, 민주시민들이 ‘검찰공화국’이라고 명명한 ‘오명’을 자긍심으로 여기며 ‘오만’에 취한 자들의 비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의 수준이 겨우 이런 것인가.

 

민주사회! ‘민’이 삶을 상상하고 개혁하는 주인으로 사는 사회를 말한다면, ‘민’의 대리자이고 ‘민’을 향한 봉사자인 ‘권’에게 묻는다. ‘권’이 결코 ‘민’과 다르지 않은 ‘민’이라면, ‘권’은 스스로 깨어날 수는 없는가. 스스로 깨어난다고 하는 것은 ‘고백’이 먼저일 것이다. 자신들의 허물을 정직하고 겸허하게 스스로 드러내는 일이다. 지금 민주시민은 자백이 아닌 고백을 검찰에 원한다. 온갖 거짓을 행한 증거가 드러나 ‘불리하니까’ 내뱉는 자백이 아닌, 독점과 과잉으로 전횡한 과거와 현재가 ‘부끄러워서’ 하는 진심 어린 고백을 시민은 원한다. 지금 검찰이 내놓은 개혁안이라고 하는 것이 여론의 압박으로 불리하니까 언발에 오줌 누는 그런 속셈이 아니길 바란다. 

 

“부끄러워 고백하는 자는 시민과 함께 살 것이요, 불리해서 자백하는 자는 시민의 광장에서 

쓸쓸히 퇴장할 것이로다.” – <대한민국 민주시민복음> 제1장 1절

 


글. 법인스님 참여연대 전 공동대표,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16세인 중학교 3학년 때 광주 향림사에서 천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대흥사 수련원장을 맡아 ‘새벽숲길’이라는 주말 수련회를 시작하면서 오늘날 템플스테이의 기반을 마련했다. 실상사 화엄학림 학장과 <불교신문> 주필, 조계종 교육부장을 지냈으며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지리산 실상사에서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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