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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년 01월
  • 2019.12.30
  • 813

특집_혐오의 시대에서 공존의 시대로

혐오와 싸울 권리를 허하라

 

글.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혐오표현의 해악은 전 사회적이다. 그것은 개인에 대한 개인의 공격이 아니다. 자신의 편견과 고정관념에 따라 사회의 한 부분을 도려내어 낙인찍고 죄악시하거나 위험요소로 단정해버린다. 동시에 사람들을 모아 그 타깃들을 적대하고 공격할 것을 선동하는 한편, 많은 사람에게 이 불의不義한 언행들에 대하여 침묵할 것을 강요한다. 혐오표현은 겉으로는 개인적인 호불호의 의사표현처럼 보이지만, 실체는 철저히 공적인 폭력이자 강력한 수행성을 가지는 정치적 해악이다.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고 민주적 가치를 훼손하며 사회통합과 인간의 존엄과 가치라고 하는 인류 공동의 이념과 가치마저 오염시켜 버리는, 우리 사회에 대한 심각한 도발이다. 그래서 미국식의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에 경도되어 혐오표현을 ‘표현하는 자유’라는 측면에서만 접근하는 것은 사물의 본질을 외면하는 셈이 된다. 

 

전 사회적으로 혹은 구조적으로 구성되는 혐오의 문제를, 철저하게 개인과 개인의 관계로만 환원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전제로 하는 ‘사상의 자유시장론’은,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시장가격이 자연스럽게 결정되듯이 사상과 표현의 경우도 내버려 두면 자연스럽게 “진리를 향한 최선의 심사”가 이루어져 “진리가 마침내 오류를 이기게” 된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상품시장이 허구의 전설이듯, 사상의 자유시장 또한 제대로 존재하거나 작동한 적이 없다. 오히려 힘 있는 자들이 내뱉는 ‘혐오할 자유’를 위하여, 힘없는 자들의 ‘혐오 받지 아니할 권리’ 혹은 ‘혐오에 저항할 권리’가 약육강식의 밀림 법칙에 처단된다. 또는 아이히만처럼 ‘생각하지 않은 죄’를 저지르는 대중들만 양산한다. 

 

실제, 이들은 혐오표현과 맞서 싸우고 마침내 그들을 이기는 강력한 대항언론을 말한다. 하지만,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시장은 이런 대항언론의 존재감 자체를 지워버린다. 1964년 미국에서 ‘깜둥이’와 ‘유대인’을 응징할 것을 선동한 KKKKu Klux Klan의 행진과 그에 대한 오하이오주의 강력대응에서 야기된 법정다툼Brandenburg v. Ohio사건은 이 점에서 매우 시사적이다. 이 사건에서 미국 최대의 인권단체인 전미시민자유연합ACLU은 표현의 자유라는 명분을 위하여 이 인종차별주의자의 편에 서서 싸웠다. 혐오표현의 해악이 다른 대항표현으로 치유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이 확립한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험’ 원칙은 반세기가 지난 현재까지 KKK 등의 인종주의적 언행을 감싸며 미국의 극우주의와 포퓰리즘의 명줄만 이어주는 부대효과 또한 자아냈다. 혐오표현에 대한 대응을 사적인 영역에 방치함으로써, 사회구조적 병리 현상인 혐오표현의 맞은 편에 대항언론이라는 낭만적 환상만 던져둔 것이다. 

 

참여사회 2020년 1-2월 합본호 (통권 272호)

2018년 7월 14일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석한 사람들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모습 출처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혐오표현 규제와 대항 가능한 법률의 제정

혐오표현에 대한 전 사회적 규율과 통제가 요청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혐오표현이 공적인 성격을 가지듯 그에 대한 대응 또한 공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시민사회는 그 첫 번째 대응주체이다. 혐오대상이 되는 사람들과 연대하여 혐오와 그 해악에 맞서 싸우는 공간이 바로 시민사회라는 것이다. 물론 혐오에 대한 최선의 대안은 교육과 홍보를 통해 혐오대상을 향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해소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교육과 홍보가 저절로 구성되고 실천되는 것은 아니다. 혐오표현에 맞서 싸우는 대항언론 또한 마찬가지다. 누군가가 조직하고 기획·집행하며 그때그때 조정·관리하는 공식·비공식의 주체가 있어야 한다. 혐오에 대한 교정과 치유의 힘과 역량을 확보하며 혐오대상자들과 연대하고 함께 대항하는 기회를 찾아 나서는 주체도 필요하다. 시민사회는 그 몫을 감당해야 한다. 혐오현상에 대한 인식과 의지를 공유하는 한편, 보다 체계적이고 폭넓은 연대의 틀을 마련해야 한다. 

 

국가(지방정부 포함)에는 이 시민사회가 움직이도록 하는 마중물의 역할이 요구된다. 무엇이 혐오표현인가에서부터 그 대응을 위한 규제의 기준과 방법을 마련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와 협의의 기회를 조성하고 그에 필요한 여러 가지의 물적·인적 토대를 지원하고 제공해야 한다. 성 소수자나 무슬림 난민을 목전에 두고도 선거를 의식하며 여론을 핑계로 사회적 합의 운운할 것이 아니라, 일부 종교집단의 오류에서부터 그것을 은연중에 이용하며 편승하는 정치집단과 기업들의 존재에 눌려 기계적인 중립을 지킬 것이 아니라, 그런 행태들이 우리의 인권과 사회를, 그리고 그 결과로서 우리의 삶을 어떻게 핍박하며 황폐화시키는지를 시민사회에 제대로 설명하고 그 대응에 대한 민주적 합의를 끌어내도록 노력해야 한다. 

 

최근 발간된 국가인권위원회의 『혐오표현 리포트』는 시동 걸기로, 혐오표현과 그 사회적 대항의 필요성에 관한 공론화 작업을 촉구한다. 혐오표현이 사회적인 악이기에 그에 합당한 규율이 필요하다는 선언과 함께 그를 위한 행동을 시민사회에 공식적으로 요청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차별금지법의 제정은 또 다른 전기를 마련할 것이다. 애당초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다는 이유로 경제권력이 반발하면서 주춤했던 이 법안은 어느 순간 종교적 편견의 타깃이 되어 고착상태에 빠져 있다. 실제 이 법안은 차별금지라는 법 규율을 통해 혐오표현 자체를 규제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무엇이 법으로 금지되는 혐오표현이자 차별행위인지를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한편, 이를 바탕으로 소수자집단들이 스스로 자신의 싸울 권리를 마련해 나가는 교두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것은 규제법이자 동시에 조성법, 지원법이 되는 것이다. 

 

참여사회 2020년 1-2월 합본호 (통권 272호)

정부에서 진행하는 ‘[혐오표현추방캠페인]나는 혐오표현이 싫어요’ 동영상 갈무리 출처 대한민국 정부 유튜브

 

혐오대항을 위한 교육과 정책수단 마련해야 

물론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다. 예컨대 혐오대항 교육이나 실천 등 인권경영이나 윤리경영을 하는 기업에 대하여 정부 계약상의 가산점을 부여한다든지, 공용시설이나 국가적 지원 등에서 우선권을 주는 등의 조치는 혐오에 대항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가장 뚜렷한 효과를 야기한다.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이 혐오세력에 개입하거나 지원하는 것을 통제하는 것이나, 공공시설·광장 등 공적 포럼이 혐오표현의 수단으로 악용되지 못하도록 조치하는 방식은 또 다른 방안이 될 수 있다. 특히, 곧 실시될 총선에서 혐오표현은 주요한 선거운동 수단이 될 위험이 큰 만큼, 공직선거법상의 허위사실유포금지조항 등을 근거로 선관위가 각 후보자에게 특별한 주의를 촉구하고 그런 표현을 하지 않겠다는 합의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국가의 역할은 대항표현의 기회와 역량을 강화하는 데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시민사회가 혐오대상자들과 연대하여 그들이 처한 현실을 인식하고 그에 맞서서 저항할 수 있는 역량과 실질적인 발언권을 확보할 수 있게끔 지원하여야 한다. 그래서 국가와 기업, 시민사회가 혐오표현의 예방과 대응의 필요성을 확인하고 그에 대항하여 나갈 것을 선언하는 일은 무엇보다 시급하다. 이러한 공식적인 선언을 통해 생각하지 않던 대중들을 생각하게 만들고, 그 대항정책을 향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혐오표현에 대한 자율규제의 기반을 마련하고 확산해야 한다. 특히 공공기관이나 학교, 언론, 온라인 플랫폼 등과 같이 사회적 영향력이 큰 부분부터 자율규제체제를 마련하고 시행하는 등의 정책수단은 이런 합의를 근거로 할때 비로소 힘을 가진다. 

 

요컨대 반목과 분열과 폭력의 징후로 나아가고 있는 혐오현상을 극복하는 것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현시대가 당면한 과제다. 물론 혐오현상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책은 경제적·사회적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소하며 사회정의의 틀을 제대로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 선행하여 인권을 훼손하며 민주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차별과 혐오의 언행들 자체에 대한 장·단기적인 대책이 하루바삐 마련되어야 한다는 요청 또한 절실하다. 이제는 “기다려 달라”라며 눈치 볼 때가 아니라, 혐오와 싸울 권리를 향하여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인 것이다. 

 

❶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에서 인용

❷ 미국의 비합법적 백인우월주의 비밀결사단체

 

 

 

특집 혐오의 시대에서 공존의 시대로

1. 왜 혐오의 시대가 되었나?  이승현

2. 혐오표현의 자유? 홍성수

3. 혐오에 맞서는 대항표현 유민석

4. 혐오와 싸울 권리를 허하라  한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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