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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년 01월
  • 2019.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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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사회 2020년 1-2월 합본호 (통권 272호)

 

오늘날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인 ‘혐오’. ‘혐오’에 대한 논의는 오래됐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삶에 불쑥 다가온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아마도 혐오와 차별이 더 이상 일부 소수자가 겪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내국인-외국인, 남성-여성, 이성애자-동성애자, 성인-아이, 정규직-비정규직 등 한국 사회를 편 가르는 기준이 되어버린 혐오는 이제 우리 모두를 겨냥하고 있다. ‘혐오’와 ‘혐오표현’이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만 방치될 수 없는 이유다. 2020년, 혐오와 차별을 넘어 상생과 공존의 시대로 가기 위한 실질적인 방법을 고민해본다.

 

 

특집_혐오의 시대에서 공존의 시대로

왜 혐오의 시대가 되었나? 

 

글. 이승현 연세대학교 강사  

 

 

 

‘혐오’의 발생과 확산 

인간은 때로는 감정을 가지고 이를 표현하고, 때로는 경험이나 사고를 통해 자신의 견해를 표현하면서 타인과 사회 속에서 상호작용을 하며 살아간다. 개인의 감정이든 의견이든 자신을 드러내고 소통하는 요소로서, 타인에 의해 재단되거나 폐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하지만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가지는 감정이나 의견은 순수하게 독립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 원류와 배경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게다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 속의 타인에 대한 공격과 좌절을 안겨주는 일련의 현상으로 등장하고 있다면 이는 더욱 중요하다. 

 

지금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혐오’는 주로 인간이나 사회 전체에 대한 ‘혐오’가 아니라 특정 집단을 향한 ‘혐오’이다. 이러한 특정 집단에 대해 ‘혐오’의 감정을 표출하거나, ‘혐오’를 동력으로 하는 표현과 행동들이 왜 지금 한국에서 문제로 등장하였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법철학자인 마사 누스바움 교수는 배설물같이 자신을 위협할 수 있는 전염이나 오염을 꺼리는 원초적 감정으로서의 혐오 감정은 인간 누구나 가지고 있는데, 문제는 실제로 위험하지 않는데도 자신이 열등하다고 믿는 ‘사람’을 오염물의 일부로 확장하고 투사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분노나 고통의 원인을 자신 스스로나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타인이라고 생각할 때 이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인권조약과 독일을 비롯한 서구사회에서 ‘혐오표현’을 금지하고 처벌하는 법을 만든 계기인 유대인 집단학살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패전과 대공황으로 독일 사회가 불안과 빈곤에 휩싸여 있는 가운데 유대인이 열등하고 더럽고 악랄하며 독일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는 수많은 서적, 영화, 포스터, 잡지 기사를 비롯하여 정치학, 생물학 등의 연구자료가 독일 사회에 만연하게 된다. 즉, 독일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의 하나로 유대인 말살이 필요하다는 이해가 확산되고, 이를 나치가 강화하고 현실화시킨 결과가 집단학살이라고 할 수 있다. 나치의 수용소에는 유대인 외에도 동성애자, 로마인, 흑인, 장애인 등도 포함되어 있었다. 유대인이 대표적인 공격대상이었지만, ‘건강한 사회’, ‘강력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 악영향을 끼친다고 믿는 존재들, 혹은 ‘우리들’이 아닌 ‘그들’이 배제의 대상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혐오’현상이 등장하는 배경을 찾아볼 수 있다. 사회경제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기존에 편견이 있는 집단인 ‘사람’을 그 원인으로 믿는 생각이 확대되고 공론장에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선량한 나와는 다른 ‘그들’을 집단으로 묶을 수 있는 전형화stereotype가 부정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소위 사회적 소수자가 주요한 ‘혐오’의 대상으로 부상되는 것이다. 부상된다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미 그 대상 집단은 사회에서 편견과 차별의 대상이 되어왔으나, 차별의식이 사회적으로 증폭되는 것을 통해 사회적 현상으로 주목받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정당의 등장을 비롯하여 정치적 주장, 법 정책의 도입과 같이 국가의 강제력을 동원할 것을 요청하는 현상으로도 드러난다. 때로는 국가권력이 주도적으로 이를 이용하여 국민과 여론을 통제하는 모습으로도 나타난다. 

 

참여사회 2020년 1-2월 합본호 (통권 272호)

장애등급제 폐지를 촉구하는 시위. 군사정권의 통제아래 가려진 한국 사회의 혐오와 차별은 199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성 소수자나 장애인 인권 운동을 통해 가시화되었다 출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한국 사회의 ‘혐오’ 현상 

국가가 주도한 ‘혐오’의 확산은 과거에 군사정권의 사회 통제 과정에서 지역과 사상을 중심으로 작동하였다. 국가안보와 미풍양속을 보호하기 위하여 ‘누구를’ 배제할 것인지와, ‘어떻게’ 배제하는가를 경험하게 한 과정이기도 하였다. 지역주의와 ‘빨갱이’가 여전히 사회적 문제로 ‘혐오’ 현상에서 함께 논의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민주화 이후 형식적으로나마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확보되면서 과거에는 적극적으로 드러나지 못하였던 소수자인권 운동이 활성화되기 시작하였다. 1990년 중반부터 시작된 동성애자 운동이 등장하면서 명명되지 못했던 성 소수자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였고, 2000년 초 장애 운동은 이동권 투쟁을 통해 사회에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2000년 전후 외국인 노동자와 결혼이주민이 증가하여 한국 사회의 인종, 민족, 종교의 다양성이 확대되었다. 2005년에는 여성 운동의 숙원이었던 호주제가 폐지되기도 하였다.  

 

한편, 1997년 IMF 사태 이후 한국 사회의 경제적·사회적 양극화와 불안이 확대되어 가는 가운데, 사회에 모습을 드러내거나 소수자·약자의 위치로부터 탈출하려는 ‘그들’에 대한 공격으로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1999년 군 가산점 폐지 때의 여성단체에 대한 공격은 온라인 혐오표현의 등장을 알리는 것이었으며, 2008년 차별금지법안에 성적지향이 포함된 것을 반대하는 단체들의 등장은 현재에 이르러서 조직화·극단화되고 있다. 언제든 ‘혐오’ 현상으로 발전될 수 있는 편견과 차별의식은 잠복한 위험으로 이미 존재해왔으며, ‘혐오’ 현상의 등장은 이미 10여 년을 거쳐왔다. 결국 한국 사회의 ‘혐오’ 현상은 흔히 이야기하는 2014년 일베의 폭식투쟁 때부터 나타난 것이 아니라 그 이후로 가속화되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2016년 강남역의 여성혐오 범죄를 통해 촉발된 여성혐오 문제의 적극적인 대응, 2018년 예멘 출신 난민의 난민 신청으로 촉발된 인종차별과 외국인혐오의 실상이 사회적 이슈로서 ‘혐오’ 현상을 널리 알린 계기가 되었지만, 이것은 한국 사회의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 짧게는 10여 년 넘게 묵혀오면서 힘을 얻은 ‘혐오’ 현상의 일부인 것이다. 

 

가속화되어 가는 ‘혐오’ 현상

지금 ‘혐오’ 현상이 심각한가를 묻는다면, 그것이 얼마나 사회와 시민들의 의식으로 확산되었는가, ‘혐오’ 단체에 의한 폭력이 얼마나 정교화 혹은 강력해졌는가, ‘혐오’를 통한 특정 집단의 배제가 제도나 정책을 통해 국가나 공공영역으로 들어왔는가를 보는 것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동성애’, ‘이슬람’에 대항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당의 지지율이 높아지는 현상, 지자체나 정부가 ‘혐오’에 의한 배제를 주장하는 조직의 의견을 수렴하여 각종 인권 관련 조례 제정이 좌절되거나 폐지되는 현상,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성 소수자 프라이드 퍼레이드 때마다 욕설과 폭행이 이어지거나 무산되는 경우가 지속하고 있는 현상은 한국 사회의 ‘혐오’ 현상이 다음 단계로 악화해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저널리스트 카롤린 엠케는 “혐오와 증오는 느닷없이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훈련되고 양성된다.”고 저서 『혐오사회』에서 언급하였다. 그렇기에 ‘혐오’를 확산시키는 이들은 스스로가 ‘혐오’하는 자가 아니라 ‘사회와 국가와 선량하고 도덕적인 타인들’을 ‘그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이를 방관하는 정부와 시민들이 변화 없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면 ‘혐오’의 가속화는 막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래서 혹시 스스로 누군가에 ‘혐오’의 감정이 든다면, 혹은 어떠한 특정 집단을 사회에서 숨죽이게 하거나 퇴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듣게 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수 세기 동안이든 수십 년 동안이든 사회에서 어떻게 일부의 인간을 배제하는 사상들이 만들어지고 또 힘을 가져왔는가, 그것이 어떠한 결과로 이어졌는가를 떠올려보아야 한다. 그 안에서 인종주의, 성차별주의와 같은 차별 사상을 발견해내고, 그것이 한 명 한 명 존엄성을 가진 개인들을 어떻게 파괴하였는가를 들여다보는 용기가 필요하다. 마음으로든 머리로든. 

 

참여사회 2020년 1-2월 합본호 (통권 272호)

 

 

 

특집 혐오의 시대에서 공존의 시대로

1. 왜 혐오의 시대가 되었나?  이승현

2. 혐오표현의 자유? 홍성수

3. 혐오에 맞서는 대항표현 유민석

4. 혐오와 싸울 권리를 허하라  한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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