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1년 09월 2021-09-01   477

[읽자] 무슨 일 하세요?

무슨 일 하세요?

 

 

굳이 새삼 다시금 새롭게 말씀드리자면…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대로 답하면 될 텐데,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왠지 직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기분이 든다. 무슨 일을 하는지 충분히 설명할 자리가 마련된다 해도 아무리 설명해도 충분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도 적지 않다. 그래서일지 그럼에도 일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자신의 직업과 일을 말하는 글과 책이 꾸준하다. 

 

과거에는 몇몇 직업군, 특히 해당 직업군에서 특출한 성취를 이룬 이들의 성공담이 대다수였는데, 최근에는 그간 주목받지 못했거나 드러나지 않은 직업군에다 각 직업군의 초심자부터 숙련자까지, 그야말로 직업과 일의 온갖 풍경이 쏟아지고 있어 혹자는 이런 책들을 ‘업세이(직업 에세이의 준말)’라 일컫기도 한다. 직업을 택하고 일을 하는 이유가 경제 활동을 통한 생계와 생활에만 한정되지 않듯, 직업과 일을 말하는 이유 또한 한두 가지로 정리하기는 어렵겠으나, 이미 도착한 몇몇 시도를 바탕으로 수천수만 갈래로 펼쳐질 가능성을 찾아보고자 한다.

 

일에 묻히고 닳아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나를 잊지 않기 위해서

직업 선택에는 자유가 있지만 필요한 일과 가능한 일을 거치며 모두가 원하는 일의 자리에 닿지는 못한다. 그렇게 일을 하다 보면 자신을 덜어내거나 지우고 그 자리를 일로 가득 채워 실현하지 못한 자유의 아쉬움을 달래게 된다. 일의 필요가 훨씬 강조되던 과거에는 그렇게 수십 년 일을 하고 나서 온데간데없는 나를 찾지 못해 허망해하는 모습이 잦았다. 일을 하는 와중에 일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이유는, 그 허망함을 미연에 방지하고 오늘의 나를 꾸준히 살피며 살아가기 위한 노력 아닐까.

 

콜센터상담원이 자신과 주변의 이야기를 전하는 책 《믿을 수 없게 시끄럽고 참을 수 없게 억지스러운》은 문제가 생겨 즐겁지 않은 상황의 상대를 쉬지 않고 마주하며 때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까지 함께 고민해야 하는 일의 처지를 전하는데, 나의 삶과 일 건너편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이들의 목소리가 비로소 나에 부딪혀 메아리로 퍼지게 한다. 일에 묻히고 닳아 흐려지는 자신을 되찾는 과정이자 읽는 이들의 자신까지 발견하게 하는 이야기다.

 

월간참여사회 2021년 9월호 (통권 288호)

 

 

믿을 수 없게 시끄럽고 참을 수 없게 억지스러운 | 글 콜센터상담원 | 코난북스

상담사들은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스크립트대로, 언제나 고객 중심으로 대화하는 법을 익힌다. 그래서 갈수록 자신을 주어로 삼은 문장을 만드는 걸 힘들어하게 된다. 나는 무엇을 원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어떤 기분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갈수록 힘들어진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깊은 우울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리고 무슨 일에서건 자책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내가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일의 모습과 방향을 나누기 위해서

선입견은 놀랍다. 직업만 들었을 뿐인데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느 지역에 거주하며 어느 정도의 생활을 누리고 있는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만든다. 사회의 주목을 받기보다는 소외를 받아왔던 직업, 그래서 스스로 드러내고 이야기를 전할 기회가 적었던 직업일수록 선입견은 강하고 또 강화되기 십상이다. 이보다 더한 경우는, 직업인데 직업으로 이해되지 않는 경우다. 그렇다. 그런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무당. 무당은 상대의 고민이나 상황을 듣고 나름의 방법으로 그가 마주하고 열어가야 할 운명을 전하고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는다. 이게 직업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사회와 분리된 직업은 존재할 수 없으니 이 직업 역시 숱한 사람들과 엮이고 변화하는 사회와 맞닿는다. 한복 대신 청바지를 입고 재택에서 메신저로 상담을 하는 모습도 눈길을 끌지만, 모두는 변화할 수 있는 존재이며 그와 나의 만남 자체가 변화의 가능성이라 말하며 하향식 불변 운명 결정론이 아니라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하는 무한 운명 가능론을 전하는 ‘요즘 무당’의 일 태도와 해석이 신기하면서도 반갑고 즐거우면서도 놀랍다.

 

월간참여사회 2021년 9월호 (통권 288호)

 

 

신령님이 보고 계셔 | 글 홍칼리 | 위즈덤하우스

무당도 공부를 한다. 예상하는 것처럼, 신에 관한 공부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요즘 기후위기, 페미니즘, 장애학 등을 공부하고 있다. 지난 5월부터 매주 목요일마다 줌으로 온라인 공부 모임에 참여해왔다. 매주 근황을 나누고, 감사하는 시간을 갖고, 새로운 공부를 한다.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들의 사진을 보며 함께 묵상하기도 하고, 기후위기에 대한 나의 마음을 작품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무당 역시 이 사회의 구성원이다. 계속 내 주변 환경과의 접점을 공부하고 보려는 노력은 무당에게도 하나의 책임이자 권리라고 느낀다.

 

 

 

함께 일하는,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더 많은 연결을 위해서

요즘에는 직무 교육과 역량 개발이 주를 이루지만, 전수는 여전히 일의 과정과 내용을 습득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자는 세상의 변화와 발전에 따라 한껏 멋을 낸 표현과 세련된 방식으로 변화하는데, 후자는 그와는 무관하게 같은 내용과 방법을 유지하는 답습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데 일을 다루고 대하는 태도와 자세는 어쩐지 전자보다 후자에 어울리는 듯하다. 전자는 교육을 주고받는 각자의 상황과 관계보다 교육의 내용과 적용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듯한데, 후자는 그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과 사람의 연결과 신뢰와 기대가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전자가 워낙 강조되고 힘을 발휘하니 후자에 대한 아쉬움이 커진 탓도 있겠다.

 

이 책에서 다루는 직업 도배사는 전자보다 후자의 영향이 큰 직업이다. 이제 막 전수를 받으며 자기 일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저자의 이야기는 전수가 숙련자에서 초심자 방향으로만 이어지는 게 아니라 역방향 그리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새로운 초심자에게까지 향한다는 연결의 가능성을 전한다. 일뿐 아니라 삶과 사회에서도 되새겨야 할 이야기의 방향과 방식 아닐까 싶다. . 

 

월간참여사회 2021년 9월호 (통권 288호)

청년 도배사 이야기 | 글 배윤슬 | 궁리 

당연히 선배님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존중하고 또 존경한다. 그분들의 힘들었던 그 경험들을 바탕으로 보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편한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분들도 그렇게 생각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너희는 지금 운 좋게 아주 편하게 일하는 거야’가 아니라 ‘우리가 노력한 덕에 나아진 거야. 우리가 효율적인 방법들을 고안해온 것이니 너희도 후배들을 위해 노력해’가 서로를 존중하는 생각일 것이다. 또한 선배 기술자들과 새로 유입된 초보자들 모두 내가 속해 있는 이 도배 현장, 건설 현장이 발전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노가다는 30년째 발전이 없어’라는 시선보다는 ‘요즘 노가다는 예전과 다르대, 많이 변화하고 있다던데?’라는 시선이 더 좋을 테니 말이다.

 

 

 


글. 박태근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온라인서점 알라딘에서 인문MD로 일했습니다.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 연구원으로 출판계에 필요한 이야기를 나누며, 여러 매체에서 책을 소개하는 목소리를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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