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11월 2006-11-01   943

대학 보편화 시대에 누가 대학 못 가나

<이야기 하나>

고등학교 졸업 후 2~3년은 반창회가 열린다. 서울 강남의 인문계고등학교에서 담임을 했기에 학급회장으로부터 지난 5월 반창회에 초대받았다. 서울대를 비롯한 인(IN)서울 대학교, 수도권 대학교, 지방 대학교, 전문대 입학생까지, 학과도 법대부터, 상경대, 어문학, 예체능계 진학생까지 망라해 참석했다.

대개, 반창회의 분위기는 정해진 코스요리를 먹는 것과 비슷하다. 1차는 학창시절 공동의 에피소드로 모두가 화기애애하게 웃고 떠든다. 2차는 자연스럽게 세포분열이 된다(상위권 대학교, 중위권 대학교, 전문대학, 예체능 등으로 끼리끼리). 3차는 한탄과 후회, 자격지심, 열등감, 불안감 등 내면의 고민들이 표출된다. 속이야기들의 종착역은 어디일까?

* 서울대 입학생: “저 법대나 경영대에 가고 싶어요.”

* 상위권 대학 입학생: “서울대에 갔어야 되는데…….”

* 수도권 대학 입학생: “저 편입시험 쳐서 꼭 IN서울 할 거예요.”

* 지방대나 전문대 입학생: “일단 휴학하고 군대 간 다음 다시 공부할 거예요.”

<이야기 둘>

실업계 고등학교인 현재의 학교에서 “졸업 후 대학 진학할거니?, 취직할거니?”라고 물으면.

* 학년: “취직이요? 아녜요. 저 대학교 가려고 왔어요. 실업계특별전형으로요.” (거의 100%)

* 2학년: “대학교 접었어요. 형편 되면 전문대나 가야죠.” (약 50%)

* 3학년: “대학교 가서 뭐 하나요? 적당히 취직해야죠.” (70%)

실업계 고교 중 상위권에 속하는 우리 학교에서 학생들이 대학교를 바라보는 눈은 이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달라진다. 철이 들면서 자기 실력보다는 가정의 경제적 조건을 헤아릴 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하나>

·전국의 고등학교 학생 수 : 약 57만 명(인문계 약 40만, 실업계 약17만 명)

·전국의 대학생 수(한 개 학년) : 약 61만 명( 4년제 대학교 약 36만 명, 전문대 약 25만 명)

·상위권 대학교 학생 수(한 개 학년) : 서울대를 비롯한 서울의 4년제 8개 대 약 2만 4,000명

<이야기 하나>와 <이야기 둘>, 그리고 <사실 하나>에서 추론할 수 있는 몇 가지 진실이 있다.

<진실 하나>

산술적으로 고교를 졸업하는 학생은 원하면 모두 대학에 갈 수 있다. 대학진학이 자신과 가족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을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하던 것은 옛날이다. 이렇듯 통과의례처럼 된 대학 입학인데, 이상하게 수요에서도 공급에서도 경쟁이 치열해지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진실 둘>

학생들과 부모들에게 관심 있는 것은 대학교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떤 대학교이냐이다.

전문대⇒ 지방대 ⇒수도권대 ⇒인서울대 ⇒ 상위권대⇒최상위권대(서울대)

사슬의 오른쪽을 향한 노력은 반수, 재수, 3수, 휴학 등의 형식을 빌려 약 2만 명의 상위권대를 거쳐 서울대라는 오른쪽 정점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된다. 또한, 사슬구조에서 왼쪽은 오른쪽에 대해서 정신적 강박관념과 좌절감을 갖고 있으며, 현재는 왼쪽이라도 여러 가지 방법(대학원 진학, 배우자 선택, 심지어 자식을 통해서라도)으로 오른쪽으로 이동을 하려고 한다.

아무리 왼쪽이 대학 자체의 특성화 계획으로 교수·학습시설과 프로그램에 대한 넉넉한 투자, 잘 갖춘 인프라를 갖고 선전하고 홍보해도 3, 4학년 강의실은 텅 비어 있다. 반면 오른쪽은 간판만 있어도 저절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진실 셋>

대학교 안에서 적성과 흥미에 따라 학과선택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기초학문(자연과학, 인문학)⇒실용학문(공대 등), 사회과학 ⇒ 의·치·약대, 법학, 경영학

학과 사슬구조의 양태는 <진실 둘>과 비슷하다.

“법을 통해 사회정의 구현”, “인술을 펼치기 위해”가 최고의 ‘인기가요’이다. “역사와 철학과 학문의 보편적 가치를 위해”, “자연과학적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는 지나도 한참 지난 유행가이다. 왼쪽에서 오른쪽을 향한 욕구는 무한대이기 때문에 요즘 대학에서는 부전공, 복수전공, 자유전공 등으로 고객들의 희망에 조응해주는 시스템으로 전환하고 있다.

<진실 넷>

‘고교를 졸업하는 학생은 모두가 원하면 대학교에 갈 수 있다’에 예외가 있다(이 예외의 경우가 상당수이기에 진실이 된다). 원해도 갈 수 없는 학생들이 있다.

이들은 비싼 대학교 등록금을 감당할 수 없다. 아니 고교 때부터 경제적 뒷받침이 되지 못하기에 학업은 뒷전이고 당장 아르바이트로 푼돈 벌어 쓰기에 급급하다. 이들은 지역적으로 농어촌과 대도시의 낙후지역에 살고 있고, 계급적으로는 대개가 비정규직의 자녀들이다. 이들은 사회양극화의 한쪽을 점유하고 있으며 경제적 빈곤의 대물림으로 실업계 고교를 졸업 하고 비정규직으로 사회에 진출한다.

대학에 다니고 있지만 안 다니는 것과 다름없는 학생은 대학 서열화와 물신숭배적 사회풍조의 희생자이다. 대학에 다니고 싶어도 못 다니는 학생은 교육을 개인의 투자와 산출에 맡기는 공공성이 한참 결여된 국가정책의 희생자라고 할 수 있다. 대학서열구조의 최정점인 서울대 폐지를 통한 국공립대의 통폐합과 이들 대학의 무상교육체계 전환을 통한 공공성의 회복이 희생자를 줄이는 길 아닐까.

권재호 덕수상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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