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인뉴스] 이제 통일보다 평화를 먼저 말할 때

 

이제 통일보다 평화를 먼저 말할 때

『안보개발국가를 넘어 평화복지국가로 – 독일의 경험과 한국의 과제』

 

 

 

글. 이기찬 참여사회연구소 간사

 

 

 

“통일은 대박이다.” 
2014년 1월 6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있었던 <박근혜 대통령 신년 구상 발표 및 기자회견> 질의응답에서 나온 말이다. 신년 구상 발표를 마치고 시작된 질의응답에서 두 번째 질문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통한 평화통일 기반 구축에 대한 것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 국민들 중에는 ‘이 통일비용이 너무 많이 들지 않겠느냐?’ 그래서 ‘굳이 통일을 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고 생각하는 그런 분들도 계시는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저는 한마디로 ‘통일은 대박이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 공공부문 개혁, 창조경제, 규제완화, 내수 활성화 등 워낙 굵직한 사안들이 많았기에 해당 발언(표현)이 생각보다 큰 논란이 되지는 않았지만 대통령 연설에서 나오기에 ‘대박’이라는 단어는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사전에 기자들의 질문 순서를 정하고 예상답안까지 준비한 청와대 참모들도 이 표현을 듣고 놀랐다. 자신들이 작성하거나 조언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단어의 출처를 찾을 수 없었던 참모들은 대통령이 즉석에서 한 발언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언론에도 그렇게 밝혔다. 당시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한반도 통일을 대박에 비유한 것이 가져올 정치적, 경제적, 외교적 의미에 대한 언급대신 이 단어가 국어사전에 나오는 말로 비속어가 아니라는 엉뚱한 이야기를 했다. 최근 검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통일대박’이라는 표현과 아이디어의 출처는 최순실이다. 허탈하지만, 이제 이해가 된다.

이 표현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쓰였다. ‘통일대박론’의 기조를 이어간 2014년 3월 28일 드레스덴 한반도평화통일구상 연설에서도 대통령은 남북한 공동번영과 통일을 강조하며 남북교류협력사무소 설치를 북측에 제안했고,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서 7월에는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성과는 전혀 없었다. 

 

어설픈 통일대박론으로 대박친 것은
무기중개상과 록히드마틴

사태는 오히려 악화됐다. 2015년 8월초 DMZ 목함지뢰 폭발사고 이후 우리 군은 11년 만에 대북심리전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북한은 확성기 방송 열흘 만에 고사총, 직사포를 동원해 포격도발을 감행했고 우리 군도 응사했다. 그리고 2016년 1월 6일 북한의 4차 핵실험, 2월 10일 우리 정부의 개성공단 중단 성명 발표, 바로 다음 날 북한의 개성공단 군사통제구역 선포와 남측인원 추방, 자산동결 조치로 박근혜 정부의 남북관계는 완전히 끝이 났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1개 포대 배치 비용이 1~2조에 달한다는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도입이 여전히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후 사드배치가 어려워질 것이라 판단해 6개월 안(2017년 5월)에 끝내겠다며 서두르는 모양새다. 대박을 친 것은 무기중개상, 소수의 정치·군사엘리트, 록히드마틴사를 위시한 미국 군수산업체들이고 한국의 평범한 시민들은 그야말로 쪽박을 차게 생겼다. 

지난 2~3년 간의 현 정부 대북정책의 파산을 언급한 것은 우리 사회의 통일에 대한 인식, 여론, 담론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를 짚어보기 위해서다. 지난 보수정권 9년 동안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정착이라는 과제는 말만 무성했지 진전된 것이 거의 없다. 박근혜 정부와 마찬가지로 북측과 어떠한 교류나 협의도 없이 이명박 정부가 일방적으로 발표했던 ‘비핵·개방·3000’ 구상, 즉 북한이 먼저 핵을 포기하고 전향적 자세를 취하면 경제지원을 통해 1인당 국민소득을 3000달러로 높여주겠다는 대북정책은 얼마나 오만한 것이었나.

 

참여사회연구소가 발간한 ‘평화복지국가’ 시리즈

 

안보개발국가를넘어평화복지국가로평화복지국가평화와 복지, 경계를 넘어

 

평화복지국가는 성장·안보제일주의와
북한 흡수통일론에 대한 대항담론

이번에 연구소에서 펴낸 『안보개발국가를 넘어 평화복지국가로 – 독일의 경험과 한국의 과제』는 ‘통일대박론’같이 막연한 장밋빛 전망이 아니라 독일의 아주 구체적인 경험을 통해 한국의 과제를 전망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연설이 1989년 12월 당시 헬무트 콜 서독 총리가 아직 동독 지역이었던 드레스덴을 방문했을 때 시민들의 열화와 같은 환영에 힘입어 이루어진 것을 무리하게 따라한 것이라면, 이 책은 지난날의 어두운 구체제와 단절하고 평화복지 공진국가로 나아갔던 독일의 선진적 경험에 주목한다. 구체적으로는 통일 이후 독일이 이루어낸 사회복지국가의 성과, 즉 옛 동독의 성공적인 체제전환과 옛 서독의 불완전한 복지인프라까지도 한 단계 발전시킨 성과 등을 살피는 동시에 동서독 간의 격차를 줄이는 데 실패했다는 평가, 통일에 대한 일국적 차원이 아닌 유럽연합 및 전후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관점에서의 조망 등도 폭넓게 담고 있다.

이 책에서 ‘평화복지국가 담론’은 성장 제일주의 및 통일 우선 민족주의에 대한 대항담론이자 북한 흡수통일론에 대한 대항담론으로, 통일보다 남북 간 평화체제 수립과 각 분단국가의 체제 개혁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때문에 기존의 ‘평화통일 담론’보다 현실적이다. 통일보다 평화에 대한 욕구 또는 선호는 이미 구체적인 데이터로도 확인되고 있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서 매년 실시, 발표하는 통일의식조사(2016)에 따르면, 통일이 필요하다는 인식에는 큰 변화가 없지만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은 2009년부터 조금씩이나마 계속해서 증가하여 24.7%에 달하고 있다. 통일의 이유에 대해서도 ‘같은 민족’이기 때문이라는 응답은 점차 감소하여 2007년 50.7%에서 38.6%까지 떨어졌지만 ‘남북 간의 전쟁위협 해소를 위해서’라는 답변은 2007년 19.2%에서 29.8%로 증가했다. 그리고 통일추진방식에 있어서도 가능한 빠른 시일에 통일하는 것이 좋다는 인식은 10% 내외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지만, 점진적 통일을 선호하는 국민들의 비율은 2007년 70.6%에서 54.1%로 줄어든 반면 남북공존을 선호하는 비율은 2007년 11.8%에서 2016년 23.2%로 증가했다.

구체적 선언은 없지만 시민들은 어느새 막연한 통일보다는 구체적인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하고 있다. 통일을 고민하고 원하는 시민들에게 아직 부족함이 많지만 이번 『안보개발국가를 넘어 평화복지국가로』를 포함한 참여사회연구소의 ‘평화복지국가’ 시리즈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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