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7년 09월 2017-08-28   415

[듣자] 옛 사운드에 취하다 

옛 사운드에 
취하다 

 

 

글.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과 네이버 온스테이지 기획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민중의소리’와 ‘재즈피플’을 비롯한 온오프라인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공연과 페스티벌 기획, 연출뿐만 아니라 정책연구 등 음악과 관련해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을 다양하게 하고 있기도 하다. 『대중음악의 이해』, 『대중음악 히치하이킹 하기』 등의 책을 함께 썼는데, 감동받은 음악만큼 감동을 주는 글을 쓰려고 궁리 중이다. 취미는 맛있는 ‘빵 먹기’.

 

얼마 전 턴테이블과 카세트 데크를 함께 구입했다. 음악계에서 일한 지 17년 만이고, 대중음악의견가로 글을 쓰기 시작한 지 12년 만의 일이다. 요즘에는 다들 온라인 음악 서비스로 음악을 듣는데 웬 턴테이블이냐고? 바이닐(vinyl) 시장이 다시 주목받은 지는 꽤 되었다. 마구 버려졌던 엘피(LP)의 가격은 뛰었고, 바이닐 음반을 사고파는 레코드페어에는 매년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 주변에서도 소중하게 모아온 옛 음반을 소셜미디어에 자랑하는 이들이 꽤 있다. 그러다 보니 하나둘 턴테이블을 사고 엘피를 모은다. 그래도 나는 턴테이블 대열에 동참하지 않았다. 새 음악을 따라가기도 벅차기 때문이었다. 국내외에서 날마다 쏟아지는 신곡들을 체크하기도 바쁜데 굳이 옛 음악까지 다시 들어야 하나 싶었다. 게다가 엘피는 비싸고 보관하기도 번거로워 더더욱 관심이 없었다. 남들이 다 하면 되려 하기 싫어하는 성격도 거들었다. 그래서 턴테이블과 엘피 찬양 행렬을 무심하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들국화 1집의 날카로운 추억
그런데 살다보니 이런저런 경로로 엘피들이 생겼다. 누군가 버린 귀한 엘피를 장모님이 챙겨주셨고, 동네 재활용매장에서 호기심으로 엘피를 사기도 했다. 선물로 엘피를 받기도 했다. 이렇게 엘피가 계속 생기니 뭔가 변화를 주고 싶은 마음이 뒤늦게 부추겼다. 음향기기 전문가 형의 도움으로 턴테이블을 사고, 앰프를 샀다. 친절한 형은 집에 와서 턴테이블과 카세트 데크를 직접 설치해주기까지 했다. 대충 설치가 끝났을 때 내가 가장 먼저 올린 음반은 들국화의 1집이었다. 내게 처음 음악의 감동을 알려준 음반은 아니었지만, 정규음반 중에서 가장 처음 접했고, 가장 많이 들었던 음반이었다. 중학교 2학년 즈음이었을 게다. 그 전까지 들어왔던 소리와는 다른 질감으로 충격을 주었고, 음악의 감동으로 쩔쩔매게 했던 음반. 그때는 카세트테이프로 들었지만 음악에 빠져들게 만드는 길잡이가 되었고, 내가 음악 일을 하게 만든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을 들국화의 1집 말고 다른 음반을 나의 턴테이블에 처음 올리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먼지 묻은 음반은 지직거리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첫 곡 <행진>. 허성욱의 피아노가 울려 퍼지고 전인권이 행진, 이라고 나른한 목소리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이미 기천 번은 들은 노래. 그러나 엘피의 소리는 달랐다. 바로 곁에서 노래하고 연주하는 듯 드럼 소리는 묵직했고, 목소리는 바짝 날이 서 있었다. 쌩쌩하고 쨍쨍한 소리가 거실에 가득 찼다. 처음 <행진>을 들었던 바로 그 느낌이었다. 이어서 <그것만이 내 세상>까지 듣는데 자꾸 웃음이 나왔다. 좋아서, 좋아서 자꾸 웃음이 나왔다. 처음 그 노래를 듣고, 처음 이 음반을 들었던 날들이 생각나 자꾸 웃음이 나오다 결국 눈물이 찔끔 나왔다. 세월이 35년이나 흘렀는데 왜 이렇게 노래는 똑같은지. 왜 이렇게 들국화의 노래는 한결같이 감동인지. 대체 엘피가 뭐길래 이렇게 쨍쨍하고 쌩쌩한 소리를 내는지. 나는 어쩌자고 또 들국화의 노래를 듣고 그새 35년의 시간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허물어진 옛집에서 이 노래를 처음 듣고 감동에 떨었던 스포츠머리 중학생은 중년의 사내가 되었는데 왜 이렇게 들국화의 노래는 여전히 사무치는지 싶어 눈물이 찔끔찔끔 나왔다.

 

들국화1집

1985년 발매된 들국화 1집은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1위에 선정된 바 있다. 

디지털 시대, 우리가 LP를 듣는 이유 
알고 있다. 이건 나만의 느낌일 뿐이다. 턴테이블을 산 이들이 모두 들국화의 노래를 들을 리 없고, 엘피로 들국화의 노래를 듣는 이들이 다 옛 생각에 잠기지도 않을 것이다. 물론 들국화의 엘피는 시디CD와는 다른 질감을 담고 있긴 하다. 턴테이블을 세팅해준 형도 말했다. 1990년대 이전에 만들어진 엘피 소리가 더 좋은 측면이 있다고. 아날로그 방식으로 녹음한 소리를 디지털로 전환하면서 음질이 떨어진 측면이 있다고. 바로 그 소리의 차이가 들국화 음반을 시디로 들을 때는 느끼지 못했다가 엘피로 비로소 느낀 차이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엘피를 듣고 옛 노래를 듣는 이유는 좀 더 좋은 소리를 듣고 싶기 때문만은 아니다. 들국화의 1집을 듣는 순간 깨달았다. 그건 추억 때문이었다. 무언가 다른 엘피의 소리가 추억을 소환하기 때문이었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켜켜이 쌓인 옛 시간을 단숨에 불러들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가슴 뭉클해진 이유 역시 사운드의 차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음악은 추억과 무관할 수 없다. 어떤 음악은 인생의 주제곡이 된다. 특히 청소년기에 가슴에 박힌 노래는 어떤 노래와도 바꿀 수 없다. 내게는 들국화의 노래, 전인권의 노래가 바로 그런 노래였다. 들국화의 1집과 2집, 라이브 음반, 추억 들국화 음반, 전인권 1집을 하나씩 턴테이블에 올리며 나는 충만해졌고 하염없어졌다. ‘아재’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누가 가장 예민할 때 듣고 평생을 함께해온 옛 노래 앞에서 넋을 놓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옛 노래에 감사하고, 옛 사운드에 감사하고, 엘피에 감사하고, 변하지 않은 음악에 감사할 뿐이다. 음악은 대단하다. 정말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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