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7년 09월 2017-08-28   863

[역사] 장애인 노점상, 최정환

장애인 노점상, 
최정환

 

글. 권경원 다큐멘터리 감독 
독립장편 다큐멘터리 <강기훈 말고 강기타>를 만들고 있다. 

지난 7월 28일, 놓치기 싫었던 또 한 사람이 하늘로 불려갔다. 죽기 한 달 전까지도 세월호가 누워있는 목포 신항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었고, 노숙자와 장애인 삶의 한복판에서, 아무도 남아 있지 않던 자리에 카메라를 세우고 그 자리를 지켰던 박종필 감독이었다. 나는 그의 영화 <장애인 이동권 투쟁보고서 : 버스를 타자>를 다시 꺼내보며 그를 기렸다. 

첫 시퀀스는 장애인들이 1호선 철로 위에서 지하철을 멈춰 세우는 것으로 시작한다. 장애인 시위대는 지하철을 타고 이내 그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비장애인과 대면한다. 

“시민들을 볼모로 한 거지 뭐야? 당신들 때문에 피해 입잖아!” 

이에 시위대는 주저함 없이 맞선다. 

“당신은 30분 늦었을 뿐이잖아. 평생을 이렇게 산 사람은 뭔데?” 

 

버스를타자

故 박종필 감독의 영화 <장애인 이동권 투쟁보고서 : 버스를 타자>의 한 장면 

 

그저 사람 옮겨 다니는 곳에 그렇게 깊은 차별과 소외의 골이 파여 있던가? 자신의 몸에 쇠사슬을 두르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불편한 장애인들이라니, 이렇게 나쁜 장애인이 있나? 영화 내내 등장인물에게 이름 자막 하나 새겨주지 않았던 박종필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에서 또 다른 ‘나쁜 장애인’을 콕 집어 호명했다. 
노들장애인야학을 통해 장애인 당사자 운동을 설파했던 정태수, 그리고 생계 급여를 반납하고 명동성당 앞에서 텐트 농성을 했던 최옥란의 이름이 그곳에 있었다. 그들은 영화가 완성되던 2002년 숨을 거둔 장애인이었고, 비장애인의 동정과 시혜를 따르는 ‘착한 장애인’이 되길 거부했던 사람들이었다. 

 

장애인 노점상 최정환의 삶과 죽음
그리고 여기 또 한 사람, 최정환은 척수 장애로 휠체어에서 삶의 대부분을 보내야 했던 1급 중증장애인이었다. 보육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껌과 수세미를 팔아 삶을 버텼다. 기록으로만 존재했던 아버지로 인해,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되면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복지조차 그에게는 닿지 않았다. 

 

1994년, 그는 양재역 주변에서 개조한 삼륜 오토바이 위에 좌판을 차려놓고 카세트테이프를 파는 노점을 시작했다. 노점을 시작하자마자 단속반과 충돌하여 왼쪽 발에 전치 8주의 골절상을 입었다. 그는 단속반원을 경찰에 고발했고, 이후 단속은 훨씬 잦아졌다. 단속반원과의 계속되는 숨바꼭질에도 그는 월세 10만 원을 낼 유일한 생계수단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가 그의 노점에서 자주 들리던 곡이었다. 

해를 넘겨 1995년 3월 8일 늦은 밤, 최정환은 서초구청에 있었다. 그는 늦은 저녁 들이닥친 단속반원들에게 뺏긴 행상 스피커와 배터리를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구청은 그의 요구를 거절했다. 그는 구청 당직실에서 시너 1리터를 몸에 붓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13일을 투병한 끝에, 서른여섯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문민정부는 그의 영결식과 노제(路祭)를 허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영결식장인 연세대로 향하던 그의 시신을 빼돌리기까지 했다. 장례대책위가 영결식장을 들르지 않고 곧바로 장지(葬地)인 용인천주교공원묘원으로 가겠다고 했음에도, 공권력은 경찰 오토바이와 차량으로 그의 운구차를 포위한 채 동행했다. 

김영삼 정부는 5년 동안 35,039개의 노점을 철거했고 5,662개의 손수레를 부쉈다. 300인 이상의 사업장은 「장애인고용 촉진 등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장애인을 의무적으로 2% 이상 고용해야 했으나, 기업 대부분은 장애인 고용보다는 벌금 납부를 선택하고 있었다. 그의 죽음으로 연대한 전국장애인한가족협회와 전국노점상연합회는 중증장애인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장애인자립추진위원회’를 결성했고, 장애인 생존권 문제를 한국사회에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최정환

장애인 노점상, 최정환(1959~1995) ©장애해방열사단

 

‘복수해 달라’던 그의 유언
90년대 초반 민주화도 통일도 아닌 생존을 요구하며 반복되었던 노점상, 철거민, 장애인의 죽음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한 죽음을 기리는 것조차 금지한 80년대를 관통하며 저항적 자살의 유형과 추이를 분석한 노작勞作 임미리의 『열사, 분노와 슬픔의 정치학』이 최근 출간되었다. 병상에서 최정환이 남긴 유언, ‘복수해 달라’는 그 처절한 절규에 우리 사회가 어떻게 답할 것인가는 이 책이 지니는 핵심 질문이기도 하다. 책은 주변화된 존재가 죽음 뒤에야 알려질 수밖에 없는 비루한 현실이 그 뒤로도 바뀌지 않고 반복되어왔음을 묵묵히 증명하고 있다. 

더 이상 죽지 않고, 어떻게 주변화된 존재의 불협과 무력감을 이겨낼 수 있을까? 이것은 우리 모두에 해당하는 질문일 것이다. 오늘 내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려 있는 2~3초를 견디지 못해 닫힘 버튼을 누르는 사람이 될지, 반대편에서 열림 버튼을 눌러주길 기대하며 엘리베이터를 향해 질주하는 사람이 될지 알 수 없듯이,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 중심과 주변의 경계가 개인의 의지만으로 구획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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