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12월 2004-12-01   1371

모두에게 골고루 햇볕 나누는 사회를 만듭시다

11월에 찾은 충주는 고즈넉했다. 산과 나무 빛깔은 단풍이 한창일 때처럼 혼자 도드라지지 않는다. 주변과 함께 은은히 스며들 줄 아는 자연의 ‘조화로움’이란 또 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자연만큼이나 시간에 정직한 존재가 있을까. 가을나무는 헛된 욕심으로 자유롭지 못한 나를 돌아보게 한다.

상념에 젖게 하는 깊은 가을에 만나는 충주의 최남석 회원. 그를 만나기 전부터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회원으로 활동한 지난 5년 동안 참여연대가 매달 회원들에게 보내는 잡지는 물론, 참여연대로부터 어떤 연락도 받지 못한 채 그는 꼬박꼬박 회비만 내 왔던 것이다. 인터뷰 약속 차 전화통화를 했을 때에야 비로소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소 변경 사실을 본인이 알려 주지 않았다곤 하지만, 긴 시간 동안 사실 확인조차 하지 못한 참여연대의 무심함과 소홀함에 차마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꼭 최남석 회원을 만나 보기로 했다. 직접 만나 용서를 구하리라. 그렇게 추진된 인터뷰였다.

“밑바닥이라도 바꾼다면…”

건국대학교 충주 교정 우체국에서 근무하는 최남석 회원을 만난 건 볕이 좋은 오후였다. 휴일이라 가을 햇빛과 낙엽을 즐기러 온 가족들 사이에 섞여 학교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최남석 회원이 처음 참여연대와 인연을 맺을 땐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마음이었다고 한다. 참여연대가 과연 말처럼 시민들의 권리를 도모할 수 있을지, 우롱하는 건 아닐지, 약간은 의구심어린 시선으로 바라 봤던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회원으로 힘을 보태겠다고 마음을 먹은 후엔, 단기적인 변화와 성과에 조바심 내지 않고 지속적으로 후원했다.

“어느 순간 참여연대의 활동이 좋아 보였어요. 믿음이 가더라고요. 문제 많은 사회를 개혁하려면 시민의 권리를 올바르게 주장하는 단체가 사회에 굳건히 뿌리내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나라가 부패하고 책임지지 않으려는 사람들 투성이어도, 사회의 밑바닥이 바뀌고 투명해지면 나라 전체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참여연대에 가입하는 것이 사회 밑바닥을 바꾸는 길에 동참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참여연대와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면서도 거르지 않고 매달 후원을 해온 그다. 송구스럽기 그지없어 하는데, 괜찮다며 할 바를 했을 뿐이라고 손사래를 친다.

“어차피 제가 참여연대에 가입한 것은 일시적인 지원을 위해서가 아니었어요. 지속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 측면에서 참여연대 후원은 내게 의미가 있었죠. 언론을 통해 접하는 걸로도 부족함은 없었고요”

그는 최근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으로 행정수도 이전이 좌절된 것을 무척 안타까워했다.

“국가경제의 발전을 위해서도 행정수도이전은 반드시 관철되었어야 했어요. 서울과 인천 규모로 경제수익을 올릴 수 있는 도시가 전국에 20여 개는 늘어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잖아요. 그렇게 되면 예산규모도 커지고 현재의 취업난 해소에도 보탬이 되고, 분배원리도 실현될 수 있는 건데 실패해서 너무 아쉽습니다.”

이번 헌재의 판결로 가장 큰 좌절감을 맛 본 충청도 민심을 반영하듯 그도 철저하게 준비하지 못한 정부 뿐 아니라 수도권 사람들에 대해서도 섭섭한 마음이 컸다.

“수도권 사람들이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거부감을 가질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득권 상실을 우려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차치하더라도 대다수의 사람들에겐 아주 현실적인 문제였을 테니까요. 그래도 서울은 어려워도 먹고살기가 그나마 낫잖아요. 팔고 사는 거래가 이루어 지니까요. 하지만, 지방은 훨씬 더 심각하단 생각도 같이 해 줬으면 좋겠어요. 충주 시민이 23만 명인데, 대형쇼핑센터는 고작 4개입니다. 더 이상 상가가 들어올 엄두를 못 내요. 지방에는 사람이 없어요. 백화점 하나 개점하려 해도 살 사람이 있어야 문을 열 수 있잖아요. 사람이 있고, 산업시설이 있어야 지역경제도 활발해지는 법인데 그게 없으니까 도시가 황폐해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지금 못 하면 나중에도 못 해요”

우체국 근무 경력 13년째인 그는 올해 대학원에 입학해 경영학 공부를 시작했다. 새로운 삶을 위한 시도이다. 계기는 IMF 구제금융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기업경영 문제로 사회가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기업인의 사회적 책임과 도덕적 윤리의식이 실종된 사회에 대한 회의가 들었어요. 그러면서 직접 경영을 공부해 보자는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정당한 부의 창출과 배분이 가능한 길을 찾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 우선 직접 배워 보기로 맘먹은 거예요.”

낮엔 우체국에서 근무하고 밤엔 학업을 병행하는 것이 만만치 않을 텐데, 슈퍼맨이 될 수 있는 나름의 ‘비법’이 있다고 한다.

“글쎄요, 다들 지금이 어렵다고 하지만, 좋아질 때를 기다리고만 있으면 때를 놓치고 말아요. 나를 바꾸려면 지금 바로 시작해야죠. 지금 하지 못한다면 나중에도 바뀌는 건 없을 겁니다. 그래서 지금 어렵지만 참고 견디자고 나를 독려하는 게 비법이라면 비법이죠.”

최남석 회원은 공무원 경력 13년차답게 공무원조직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았다. 공무원이 변해야 사회가 변한다며, 먼저 공무원 조직의 제도나 시스템이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법 위에서 잠자는 자는 보호할 수 없다’는 격언이 있어요. 스스로 권리를 찾아야 한다는 의미이지만, 동시에 법을 잘 알지도 이용하지도 못하는 대다수의 시민들에겐 너무 가혹한 말이에요. 무지와 무관심을 탓하기 전에 국가가 안내하고, 지원하는 것이 선행돼야 합니다. 우는 아이가 젖 달라기 전에 먼저 챙겨주고, 그 외 다른 요구까지도 책임지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단적으로 말해 우는 아이에게 젖 주는 것이 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현재 공무원 사회의 시스템이거든요. 이제는 공무원을 정예화 시키고 부정부패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조직적인 시스템이 갖춰져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전국공무원노조의 움직임은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오히려 너무 늦은 감이 있죠. 많은 희생이 있겠지만, 조직이 발전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해요.”

대학 시절을 서울에서 보낸 것 외에 그는 충주 인근을 떠나본 적이 없다. 직장 생활도 제천, 충주, 단양 등 충청도를 벗어나지 않았다는 그는 앞으로도 계속 충주에 남아 고향인 충주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했다. 모든 것이 준비 없이 갑자기 바뀔 수 없다는 걸 잘 아는 그는 충주의 변화와 발전을 위해 뭔가 기여하기 위해 조금씩 준비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그리고 그 시작은 자신을 변화시키는 데서부터라며 수줍게 말한다.

그는 햇볕은 모두가 골고루 쬐라고 있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다른 이의 몫을 가로채는 사람들이 없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고도 했다. 11월 충주의 산과 나무도 그런 맘이 아닐까 생각했다.

정지인 참여연대 시민참여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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