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3년 12월 2013-12-05   3207

[여는글] 또 다른 상상력의 나라, 코스타리카

또 다른 상상력의 나라, 코스타리카

 

 

지난 10월 20~28일 사이에 중남미의 코스타리카를 다녀왔다. 항공편 때문에 크게 고생을 했다. 코스타리카에서 보내온 항공권을 가지고 공항에 나갔던 나는 미국을 경유하기 위해서는 미국 비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한국과 미국이 무비자 협정을 맺었다는 등등의 뉴스를 통해 얻어들은 엉성한 지식이 들통 난 셈이었다. 기념 강연을 맡은 나의 부재는 대학 총장과 한국 대사 등 많은 인사들이 참석하는 최초의 한국학 교수 취임 기념행사를 엉망으로 만들 것이었다. 결국 나는 인천공항 지하의 여행사에서 출발 1시간 반 전에 간신히 항공권을 구입하여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스페인 마드리드를 경유하여 코스타리카에 갈 수 있게 되었고, 시간이 잘 맞지 않아 마드리드에서 왕복 모두 1박을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다시 확인한 것은 항공편이 중심부와 주변부로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중남미 국가 내에서의 항공 연결을 신뢰할 수 없었던 그쪽 대학이나 나는 미국이 아닌 또 다른 중심부인 유럽을 통해 코스타리카로 직항하는 항공편을 구하고야 안심하였다. 내가 독일로 날아가는 사이에, 코스타리카에서는 마드리드에서 코스타리카의 수도 산 호세로 가는 항공권과 마드리드 호텔 예약을 마쳤으니, 온라인망은 유용하면서도 무서운 도구였다.

 

경이로운 나라 코스타리카

 

코스타리카는 인구 458만의 작은 나라로, 주로 독일계와 스페인계 국민이 주종을 이룬다. 커피와 파인애플 수출이 주 생업이지만, 최근에는 관광산업, 특히 에코관광산업이 활성화되고 있고, 다국적기업의 하이테크산업이 진출하고 있다. 국민소득은 우리의 절반에 불과한 12,606불이었다. 코스타리카에서는 한국과 같은 높은 호화 빌딩과 화려한 번화가의 풍경은 볼 수 없었다. 내가 방문했던 외무성 건물은 기껏해야 4층의, 식민지 시대에 지은 것 같은 서유럽식 옛날 건물이었다. 한국에 비한다면 초라한 거리라고 할까……. 

 

그러나 나는 이 작은 나라에서 새로운 상상력의 세계를 발견하고 경이로웠다. 이미 가기 전부터 몇몇 지기들로부터 우연하게 코스타리카는 매력적인 나라라는 언급을 듣긴 하였지만,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군대가 없는 나라

 

코스타리카는 남미에서 드물게 1950년 이전부터 민주주의를 달성한 나라였다. 가장 놀라운 것은 1949년에 개헌을 통해 군대를 영구히 폐지하였다는 점이다. 또한 1984년에는 중립화를 선언하고, 모든 국제분쟁에의 개입을 거부하기로 하였다. 대신에 코스타리카 정부는 국제적 차원에서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여러 회의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이를 위한 재정을 지원하고 있다는 자랑을 외무성의 정책국장은 빠뜨리지 않았다. 지금도 여론조사를 하면 코스타리카인의 90%는 군대가 필요 없다고 응답하고 있다. 물론 군대 폐지 이후 위기를 겪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인근 국가인 니카라과에서 소모사 독재정부에 저항하는 내란 중에 코스타리카의 일부 지역이 그 군대에 의해 점령되거나, 엘살바도르 내전에 개입될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지만, 코스타리카 정부는 범아메리카기구에 군사원조를 요청하는 것을 통해서 상황을 돌파하였다고 한다. 

 

생태와 복지의 나라

 

신경제재단New Economics Foundation은 코스타리카를 세계 최고의 녹색국가이자,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국가로 선정하였다. 물론 해발 1000미터 높이 고원 위에 있고 열대우림이 있기도 하지만, 이런 생태국가가 국가나 사회의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유엔개발계획UNDP도 환경적 지속가능성과 행복지수에서 가장 훌륭한 이행자로 코스타리카를 꼽았다.  

 

코스타리카는 높은 교육 수준을 자랑하고 있는데, 문자해독률은 94.9%이다. 헌법이 보편적 공공교육을 보장하고 있고, 고등학교까지 학비가 무료이다. 국립 코스타리카 대학의 경우, 학생은 연간 300~400불의 학비를 내지만, 그들의 절반이 장학금을 받는다. 국공립대학이 우수한 대학으로 간주되고, 국공립대학 예산의 많은 부분이 가난한 학생들에 대한 지원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최근에는 사립대학들이 도처에서 생겨나고 있다. 의료 서비스나 평균수명(79.3세)은 아메리카에서 두 번째로, 미국보다 높다. 2000년 통계에 따르면 국민의 82%가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고 있다. 놀라운 것은 GDP의 7%를 보건 분야에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군대를 폐지한 대신 그 비용으로 교육과 보건을 국가가 제대로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공공의료가 지니는 비효율성에 대한 불만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런 코스타리카의 모델을 한국에서 일시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군대를 폐지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경제성장도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참여연대가 표방하는 평화복지국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리 시민들의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비록 번쩍이는 고층 건물은 없었지만, 나는 산 호세의 대학이나 거리에서 품격 있게 살아가는 여러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즐거웠다.  

 

 

정현백 참여연대 공동대표,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참여연대가 국제연대와 개발원조 분야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할 여력이 되지 않음을 안타까워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내가 얻은 국제사회에서의 작은 경험들을 소개하고 싶다. 이 글은 GDP 수치로 환원되는 성장주의에 담긴 우리의 끈질긴 욕망을 돌아보고, 우리나라 혹은 다른 제3세계 국가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함께 고민하고 싶은 소망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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