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장애인-동물 동맹은 우생학-자본 동맹을 넘을 수 있을까?

이야기4. 동물권 × 장애인인권 

장애인-동물 동맹은 우생학-자본 동맹을 넘을 수 있을까? 

 

글. 정창조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간사

 

 

태어나지 않았어도 되는 존재

 

어느 날 집에 들어가 보니 낯선 강아지 한 마리가 뛰어놀고 있었다. 누나가 지인에게 받아온 선물이라고 했다. 정성의 크기란 쉬이 가격으로 증명되기 때문일까? 누나는 이 강아지가 엄청 귀한 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결코 값싼 녀석만도 아님을 강조했다. 잘 돌볼 자신이 없어 내키진 않았지만, 이 녀석의 작은 몸이 내뿜는 귀여움 만큼은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곧 이 녀석에게는 ‘인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그 후로 15년간의 긴 동거가 시작됐다. 

 

하루는 지친 맘을 달래며 인이와 씨름(?)을 하며 놀던 중, 문득 기묘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 녀석은 왜 이렇게 귀여운 것일까? 귀여움은 그것의 강렬함 만큼이나, 그 정동情動에 스며든 피의 흔적들을 효과적으로 감춰낸다. 내가 인이의 귀여움을 평온히 누려온 그 일상에도 실은 지난한 피의 역사가 배어 있는 건 아닐까? 

 

인이의 ‘생산 목적’은 애초부터 ‘주인에게 귀여움을 받기 위함’이다. 상당수의 ‘애완동물’은 주인의 과한 돌봄 없이는 최소한의 생존조차 불가능한, 문자 그대로 ‘장애화 된=불능한dis-abled’ 특징을 귀여움으로 포장한 채 ‘생산’된다. 심지어 인이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품종 상 가질 수밖에 없는 병’을 오래 앓기도 했다. 어쩌면 19세기 영국 귀족들이 시도한 애완동물 생산의 우생학적 메커니즘은 ‘반려동물은 상품이 아니다’란 구호가 심심찮게 들려오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장 이 ‘귀여운 상품’만 하더라도, 이윤 창출을 향한 자본의 체계적인 기획-제조-홍보-유통 과정이, 그리고 그 과정에 조용히 스며든 우생학의 그림자가 암묵적으로 반영되어 있지 않은가.

 

이제 와 생각해보면 참 잔인하지만, 당시엔 분명 이런 생각이 뇌리를 스쳤던 것 같다. ‘이 녀석은 태어나지 않았어도 되는 존재가 아닐까?’ 역설적으로 자본이 인이를 태어날 자격이 있다고 여겨 탄생시켜 놓았기 때문에 말이다. 그러나 인이의 ‘불능한/장애화 된 귀여움’이란 생물학적 존재의 고정된 속성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반려인의 존재, 더 나아가 이 사회와 인이가 어떠한 관계를 맺어가느냐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것임을 깨달은 것은 내가 장애인운동을 만나고서도 한참이 흐른 뒤였다. 

 

월간참여사회 2021년 7-8월호 (통권 287호)

상당수의 ‘애완동물’은 주인의 과한 돌봄 없이는 최소한의 생존조차 불가능한, 문자 그대로 ‘장애화 된=불능한’ 특징을 귀여움으로 포장한 채 ‘생산’된다 

 

 

우생학, 그리고 ‘이미 태어난’ 존재들

 

장애인은 오랫동안 태어날 자격 자체가 문제시 되어왔다. 그리고 우생학은 그러한 자격의 유무를 결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 왔다. 우생학과 쉽게 등치되는 나치의 인종 정화 기획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실은 지금까지) 전 세계를 휩쓴 우생학 열풍의 한 흐름이었을 뿐이다. 지역과 시대마다 구체적 모습은 각기 다르긴 했지만, 어쨌거나 우생학을 인구 관리의 핵심 기조로 삼은 여러 국가들은 모두 ‘비정상인들’을 태어나지 않게 하고, 건강한 인구를 태어나게 하는 데 집중했다. 근대에 ‘노동할 수 없는 이’를 분류하기 위하여 새로이 범주화된 이들, 즉 장애를 가진 몸dis-abled-body이 이 보편적 자연법칙(?)에 따라 ‘태어나지 않아야 하는 존재’의 범주로 가장 먼저 묶이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의 태어날 자격 기준을 누가 감히 정할 수 있단 말인가? 장애란 결코 생물학적 특성만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 장애는 어떠한 사회적 관계가 형성되는가에 따라서 그 개념이 끊임없이 변화한다. “흑인은 흑인이다. 특정한 관계에서만이 흑인은 노예가 된다”는 마르크스의 말처럼, 장애인 역시 어떠한 사회적 관계가 형성되느냐에 따라 상이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장애인은 ‘태어날 자격 없이 태어난 존재’로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라, 여느 존재가 그러하듯 그 개별 존재 자체로 다양한 존재의 가능성이고, 더 나아가 다양한 세계의 가능성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더 확장하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들의 존재 자격과 등급에 대한 ‘과학적(?)’ 판정이 아니라, 타자들과 어떠한 관계를 만들어 갈 것인가라는 실존적 문제에 대한 서로 다른 타자들 간의 끈질긴 고민과 실천이다.

 

반려동물과의 관계에서도 이러한 문제의식은 매우 중요할 수 있다. 물론 어떤 차원에서 반려동물에게 우생학은 ‘인간답지 않은 인간’과 다른 방식으로 작동해 왔다. 장애인은 ‘인간 이하의 인간’으로서 태어나지 않아야 할 존재로 규정되지만, 반려동물은 대개의 경우 순혈성 보존, 귀여움, 멋짐의 발현 등의 이유로 ‘장애화’ 될 때 더 태어날 가치가 있는 탓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장애화’에는 곧 특정 종에 대한 인위적인 개량 작업이 포함된다.

 

그러나 ‘종의 생산 과정’이 갖는 폭력을 지적하기 위하여 그 종에 속하는 개별 존재자의 ‘태어날 자격’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각 개별자들은 그 종에 속했다고 간주되지만, 실은 그 종의 특성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갖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이미 태어난 자들’이 자본과 우생학이 설정한 ‘생산 목적’을 넘어선, 심지어 그 생산 목적에 대립하는 다양한 가능성들을 타자들과의 관계 사이에서 새로이 발현해 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현 상품 생산의 메커니즘에 대한 저항의 단초가 될 수 있진 않을까?

 

동물운동과 장애인운동, 새로운 연대를 위하여

 

최근 동물운동과 장애인운동 간 만남이 미약한 수준에서나마 종종 논의된다. 그러나 양 운동진영이 만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주류 동물권 운동은 ‘비장애중심주의’를 바탕으로 한 중산층 소비자 운동으로 발전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고, 장애인 운동 진영은 비장애중심주의적 사회에 의한 자신의 ‘동물화’에 저항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동물 폄하 표현들을 구호로 활용해 오기도 했다. 비인간-동물에 대한 억압이 결국 ‘정상적 인간 이하의 존재’에 대한 차별 내지 착취 양상과 맞닿아 있기에, 비장애중심주의ableism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고, 그래서 장애인 운동과의 만남이 절실하다는 주장도 이제는 꽤 나오고 있지만, 아직은 그 내용도 추상적이고 사회적 영향력도 미미한 수준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연대의 가능성이 이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탄생의 자격 기준’을 정하는 기존 권력 작동에 대한 저항에서부터 비로소 마련될 수 있고, 마련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모든 존재는 자본의 쓸모에 따라 존재의 자격 기준을 평가받고 등급화된다. ‘우생학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는 섣부른 낙관에도 불구하고, ‘태어남/태어나지 않았어야 함’의 기준은 여전히 장애인/비-인간 동물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관통한다. 굳건한 우생학-자본 동맹을 깨뜨리지 않는다면, 모든 존재를 등급화하고 상품 가치로 환원하는 이 동맹의 ‘모든 존재들의 생산과정’에 대한 지배권을 우리 손으로 탈취해 오지 않는다면, ‘비정상적 존재로 낙인찍힌 자’들과 ‘한낱 완구가 된 생명체’의 동시적 해방은 결코 도래할 수 없을 것이다.

 

2년 전 인이는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그리고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인이만 나에게 의존한 것은 아니었다. 나 역시 인이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인이는 그것의 생산 목적으로 가정된 ‘(장난감으로서) 귀엽다’는 술어에 가둬지지 않을 정도로 나와의 관계 속에서 다양한 존재의 가능성을 열어갔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둘 간의 관계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매 순간 다르게 성립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인이의 ‘생산목적’을 넘어선 다양한 가능성들을 함께 꾸려왔으면서도, 왜 단 한 번도 그가, 그리고 비-인간 동물들이 진정으로 해방된 세상을 상상해 보지 못했을까? 

 

월간참여사회 2021년 7-8월호 (통권 287호)

 

 

 

특집종을 넘어서는 연대 

1. 채식하다가 양돈업자가 된 어느 부부 이야기 김성만·송유하

2. 공존을 위한 동물원 김정호

3. 그만 죽여라 v.2021  박현선

4. 장애인-동물 동맹은 우생학-자본 동맹을 넘을 수 있을까? 정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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