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그만 죽여라 v.2021

이야기3. 돌고래 × 해양보호 활동가

그만 죽여라 v.2021

 

글. 박현선 해양환경단체 시셰퍼드코리아 활동가 

 

 

월간참여사회 2021년 7-8월호 (통권 287호)

2017년 오프라인 활동을 시작한 이후, 시셰퍼드코리아Sea Shepherd Korea는 끊임없이 같은 피켓을 들고 기자회견에 나섰다. ‘그만 죽여라’. 그것은 해가 바뀌고 장소가 바뀌어도 계속해서 똑같이 작용하는 문구였다. 계속 죽었다. 수족관 돌고래들이. 전국 곳곳에서. 한 명의 돌고래를 추모하고 남은 돌고래를 방류하기 위한 기자회견이 끝나기가 무섭게 또 한 명이 죽었다. 

 

서울에서 울산으로, 울산에서 제주도로, 제주에서 거제도로, 우리는 계속 움직였고, 가둬둔 고래를 풀어달라고 했다. 그런데 풀려나지 않았다. 수족관장은 시민단체들과의 면담을 거부하고 소통의 문을 걸어 잠갔다. 가장 최근 다녀온 수족관 고래류 관련 기자회견은 제주 마린파크에 마지막 남은 개체 ‘화순이’를 ­죽기 전에- 방류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화순이는 오늘도 쇼에 동원되었다. 하루에 여섯 번. 묘기를 부리고 만져지고 추행 당했다. 화순이는 죽어가고 있다. 

우리의 마음은 더없이 초조하다. 

 

월간참여사회 2021년 7-8월호 (통권 287호)

출처 시셰퍼드코리아 페이스북

 

고통을 느끼는 자, 그 누구도억압받지 않을 권리

 

2013년 7월, ‘제돌이’가 바다로 돌아간 뒤 우리는 세상이 ‘바뀔’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세상은 바뀌었는가? 피터 싱어가 『동물 해방』을 통해 ‘고통을 느끼는 존재들에게 행해지는 폭력이 편견에 근거한 부당한 행위’, 즉 ‘종차별주의’임을 정의하고 이것이 윤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음을 논증한 지 50년이 가까워졌다. 하지만 여전히 비인간동물(편의상 이하 ‘동물’로 표기)에 대한 감금과 학대는 현재진행형이다. 

 

야생 고래류의 행동반경은 약 100,000m²다. 그러나 세계 수족관의 고래류 사육 평균 수조 수면적은 약 444m²에 불과하고 한국의 경우 최소 240m²에서 최대 525m²로 세계 평균 면적보다도 협소하다. 초음파를 쏘아 돌아온 메아리를 통해 먹이의 위치나 지형 등을 파악하는 돌고래에게 사방이 벽으로 막힌 수족관 환경은 고문 수준의 소음을 끊임없이 일으킨다. 돌고래 만지기, 키스와 허그, 조련사 체험, 돌고래 태교 등의 체험 프로그램은 돌고래가 움직이지 못하게 붙잡힌 채 진행된다. 여러 개의 낯선 손이 돌고래의 등과 배, 지느러미를 쓰다듬는다. 돌고래는 이 행위가 끝날 때까지 버티고 있어야 비로소 죽은 물살이를 먹을 수 있다. 

 

이러한 행위들이 고래류에게 스트레스를 준다는 사실은 여러 증거를 통해 확인되었다. 납치 감금된 돌고래는 추행당하고 굶주리면서 강한 정신적 고통을 받고 이로 인해 ‘정형행동’을 보인다. 수조 벽에 일부러 몸을 부딪히고 긁는 행위, 수조 안을 느리게 원형으로 도는 행위, 수조 벽만 바라보며 미동도 않는 무기력증, 일정한 방향으로 반복적인 유영하기 등은 모두 자연에서는 보이지 않는 비정상적인 행동 패턴이다. 이들은 뚜렷하게 고통 받고 있다. 그래도 이 행위를 지속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월간참여사회 2021년 7-8월호 (통권 287호)

 

공리주의 창시자인 제러미 벤담은 어떤 존재의 이익을 고려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넘을 수 없는 선’을 ‘고통을 느낄 수 있는지의 여부’로 보았다. 어떤 행위로 인해 영향을 받는 모든 개별 존재들의 이익은 다른 존재들의 이익과 다를 바 없이 고려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또한 동일한 비중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존재가 고통을 느낀다면, 그와 같은 고통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이때 평등의 원리는 그 존재가 어떤 특성을 갖는지에 관계없이 그 존재의 고통을 다른 존재의 고통과 동등하게 취급할 것을 요구한다. 즉 동물이든 인간이든, 고통을 느낀다면 고통을 느끼지 않을 때 ‘이익’이 발생하므로, 고통을 최소화 하고 이익을 최대화 하는 사회가 더 정의로운 사회인 것이다. 

 

나는 환경운동가로서 이러한 생각에 완전히 동의하며, 고통을 느끼는 모든 존재가 억압받지 않을 권리를 동등하게 갖는다고 믿는다. 그런데 지금 인간이 만든 사회는 평등의 원리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동물은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높은 강도로 착취당하고 학대당하고 있다. 더 ‘잘’ 학대할 수 있도록 기술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동물을 착취하는 사회는 그대로 인간 사회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우리는 동물을 대하는 방식에서 감정이 있고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내가 아닌 존재’를 대하는 방식을 본다. 

 

동물을 착취하는 사회는 인간을 착취하는 사회의 자화상

 

동물을 대하는 태도는 과거 노예를 대하는 행동이었고, 여성을 대하는 행동이었으며, 오늘날 난민 혐오, 강대국이 약소국을 착취하는 행위와 맥이 맞닿아 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내가 아닌 존재를 받아들이는 능력이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부정한 사회보다는 정의로운 사회에서 살고 싶은 욕구를 가진다. 보다 정의로운 사회를 실현하려면 어떤 방식으로도 고통과 폭력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동물해방주의자들은 동물에게 정의로운 사회가 인간에게도 정의로운 사회임을 선언한다. 동물의 권익을 옹호하는 것이 곧 인간의 권익을 옹호하는 길이며, 동물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인간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일이라 확신한다.

 

그러나 나는 인간에게 이롭기 때문에 동물을 해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지 않다. 동물은 생명을 가지고 고통을 느끼는 존재로서 그 자체로 윤리적으로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따라서 화순이가 마린파크에 있지 않고 바다에 있어야 하는 이유는 화순이가 ‘인간의 관점에서 보호해야 할 대상’이라서가 아니라 ‘주체적으로 원하는 것을 표현하는, 의식을 가진 도덕적 주체’이기 때문이다. 도덕적 주체는 도덕적으로 존중받을 권리가 있으며 이 권리는 필연적으로 법에 의해 지켜져야 한다. 이는 매우 중요한 단서다. 개인의 감정에 호소하는 것만으로는 구조적으로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의로운 사회에서 살기를 희망하는 당신은 지금 당장 행동해야 한다. 화순이가 바다에 있기 위한 행동을 취해야 한다. 화순이는 한 명의 돌고래가 아니라 내가 아닌 모든 존재를 온몸으로 대변한다. 우리는 우선 수족관에 가지 말아야 하고, 자신이 감금되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정형행동 등 비정상 반응을 보이는 생물부터, 나아가 그 정도 지능이 없는 생물까지도 자신의 의지에 반해서 갇혀 있지 않도록 법을 제정해야 한다. 이런 법이 생길 수 있도록 정책 입안자를 압박하고 동물해방을 위한 정책을 내세우는 정치인에 투표해야 한다. 

 

지금 과거의 노예제를 떠올리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지?’ 하고 기함하게 되는 것처럼, 가까운 미래에 수족관을 떠올리며 ‘어떻게 그런 시설이 있을 수 있었지?’ 라고 진심으로 인간의 도덕성을 돌아볼 시대가 반드시 올 것이다. 그때가 돼서 뒤늦게 설득당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지금 변화를 선도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어차피 다가올 미래 앞에 당신의 선택지는 더없이 명료하다. ‘그만 죽여라’ 피켓의 202n년 버전이 없어지는 날, 우리는 인간 해방의 새로운 한 장막을 열 수 있을 것이다. 

 

➊ 종차별주의적 언어를 바꿔나가고자 동물해방 운동가들은 ‘마리’ 대신 ‘명’을 사용하는 움직임을 펼치고 있다

➋ 피터 싱어, 『동물 해방』, 연암서가, 2007

➌ 코린 펠뤼숑, 『동물주의 선언』, 책공장더불어, 2019

 

 

 

특집종을 넘어서는 연대 

1. 채식하다가 양돈업자가 된 어느 부부 이야기 김성만·송유하

2. 공존을 위한 동물원 김정호

3. 그만 죽여라 v.2021  박현선

4. 장애인-동물 동맹은 우생학-자본 동맹을 넘을 수 있을까? 정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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