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0년 08월 2010-08-01   1335

그 사람 그 후- 18년 수요시위, 온몸으로 토하는 작은 소망

18년 수요시위, 할머니들의
온몸으로 토하는 작은 소망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길원옥 할머니

강지나 참여사회 편집위원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수요시위가 올해로 18년, 900회가 훨씬 넘었다. 18년간 매주 같은 요일에, 같은 주제로, 같은 장소에서 시위가 있어왔다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전무후무한 일이다. 그럼에도 일본정부의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문제는 여전히 한 걸음도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일본정부는 그저 시간 끌기로 버티고 있고, 한국인들은 다급하다는 수많은 다른 사안들에 파묻혀 잊어버리고, 한국의 대통령은 “성숙한 한일관계”를 위해 과거는 묻어두기로 했단다. 그 과정에서 할머니들은 건강 악화와 외로움 속에 한분 두분 저세상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다른 사람들처럼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잊어왔던 우리도, 다시 반성하는 마음에서 길원옥 할머니를 찾아뵈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에서 마련한 쉼터는 복잡한 도심 속, 고즈넉한 마당이 있는 주택에 자리하고 있었다. 현재 쉼터에서 기거하시는 분은 세 분으로 모두 80세, 90세를 훌쩍 넘긴 고령이다. 세 분 중 그나마 거동이 자유로워서 수요시위며, 국제연대 활동까지 이곳저곳 다니시는 분은 길원옥 할머니(83세) 한 분이셨다. 할머님도 3년 전에는 팔에 마비가 와서 움직이지 못하셨다고 한다. 자원봉사로 오시는 의사 선생님의 치료로 지금은 거동이 가능하지만 지병인 당뇨가 있어서 음식도 조심해야 하고 입이 자꾸 말라서 인터뷰 내내 말씀도 힘들게 하셨다. 그래도 할머님은 불편한 당신이라도 다니면서 이 문제를 얘기해야 한다고 아프다는 내색도 잘 안하시면서 인터뷰며, 학교 강연이며, 해외 단체방문이며 다니고 계셨다.

  “일본군 위안부였다고 정대협에 자진으로 신고한 사람이 234명이다. 그 중 현재 83명이 생존해있고 매년 10여 분씩 돌아가신다. 일본정부는 우리들이 한 명씩 죽어 나가기만을 기다리면서 버티고 있고, 한국인들은 외면하고 있는데, 나라도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어찌 안 들겠는가? 현재 이 쉼터에 계시는 93세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하시고, 85세 할머니는 눈이 안 좋으시다. 지방에 사는 많은 할머니들이 이제 대부분 요양원에 들어가실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고 있다. 하지만 일본정부가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 우리 모두가 다 죽는다 해도 역사에서 그들이 한 수치스러운 일이 묻혀지진 않을 것이다.”

“반복되어선 안 될 치욕적 역사이기에 외친다”

길원옥 할머니가 정대협과 인연을 맺은 것은 불과 5~6년 전 이다. 그전에는 정대협의 활동을 알고 있었어도 별로 당신의 과거사를 나서서 밝히고 싶지 않으셨다. 그러다가 몇 번 우연히 수요집회에 참석하게 되셨고 그 과정에서 생각한 바가 있어서 결국 쉼터에 들어오셨다.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로 전쟁터에 징집당한 것은 1940년, 당시 13살이었다. 광복을 맞고 돌아와 보니 이미 남북으로 조국은 분단되어 있어서 고향인 평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때부터 갖은 고생을 하며 살아왔고 직접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아드님 한 분은 잘 가르쳐서 세상에 보란 듯이 내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노점을 하면서 뒷바라지를 하셨다. 젊은 시절 봄놀이 한번, 나들이 한번 제대로 다니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고 고단한 삶을 사셨다.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로서 당한 고통 중 가장 아파했던 부분은 그들이 여성으로서의 삶을 파괴한 것이었다.

  “우리가 일본군의 패전으로 1945년에 해방됐다고 하지만 나의 악몽은 그 후 70년간 계속 되었다. 세상사는 낙이라는 게 가족을 이루고 사는 건데 아이를 갖지 못하게 만들어 놨기 때문에 그 고통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나는 65년 동안 사람들이 좋은 일이 있어서 밖에서 ‘대한민국 만세’를 외칠 때 혼자 골방에서 운적도 많다. 나한테는 만세가 불러지는 세상이 아니었다.”

  해방 후 65년, 대한민국이 과거를 잊고 앞으로 앞으로만 나아가고 있을 때 할머니는 여전히 그 전쟁의 연장선 속에서 살아오고 계셨던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로 징집 당했던 할머니들이 대부분 고통스런 삶을 살아왔던 것은 전쟁의 상흔이 몸속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결혼해서 일가를 꾸리기도 어려웠고, 갖가지 병을 얻어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어렵고, 전쟁터에서 받은 정신적인 상처 때문에 가슴앓이를 했던 인생의 굴곡들을 할머니들은 다 가지고 있다.

  “할머니라고 해도 여자는 여자다. 일본군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 아무리 피해자였다 해도 부끄러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우리는 과거가 자랑스러워 밝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부끄럽고 아픈 기억이라도 역사 속에 다시 반복되지 말아야 할 치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아픔이 있는데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그때의 경험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저들이 일본열도를 준다 해도 내 상처는 안 없어질 거다.”


살아있는 역사의 상징 수요시위에 지지와 냉담

정대협의 대표적인 활동 중 하나는 바로 수요시위다. 정대협의 수요시위는 1992년 1월 8일, 일본정부의 종군위안부 강제징집에 대한 인정과 사죄, 배상을 요구하며 처음 시작됐고 2010년 1월 13일 900회를 넘겼다. 수요시위는 비단 한국 땅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미국 LA, 베를린 등 세계 각지에서도 연대의 의미를 담아 열리고 있다.

  매주 수요일 12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시위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역사의 상징이자 이 문제의 해결을 바라는 수많은 주체들이 국경을 넘어서 소통하고 공감하는 장이 된 것이다. 2008년에는 그 운동의 생명력과 저력을 인정받아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수여하는 여성운동상을 받기도 했었다. 현재는 사회단체들이 돌아가면서 연대의 성명서들을 작성해서 발표하고 있고 개인자격으로 학생들도 많이 참석하고 있으며 필리핀, 일본, 인도네시아 등의 해외 단체들이나 개별 외국인들이 함께 참석하는 등 국제연대의 장으로도 활성화되어 있다. 자녀가 있는 참여연대 회원의 가정이라면 살아있는 역사교육도 될 겸 자녀들이 온라인상으로 직접 신청하게 하고 참석해 보는 것도 뜻 깊은 방학 생활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수요시위가 이렇게 18년간 지속되어 온 것에 대한 의견을 묻자, 할머니는 오히려 반문하셨다.

  “많은 단체들이 참석하고 있긴 하지만, 양국 정부로부터 별로 관심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18년간 수요시위가 계속 열려왔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수요시위하고 돌아오는 길에 일본대사관의 견고한 담벼락을 보면서 느껴지는 그 서운함과 허전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요즘은 할머니들도 거동이 불편해서 잘 나오시지 못한다. 오히려 지난번 수요시위에서 학생들이 와서 힘내라고 외쳐줘서 너무 고맙고 힘이 되었다. 어린 학생들도 그렇게 할 줄 아는데 왜 어른들이, 그 많은 단체들이 그렇게 무관심하게 있는지, 정부는 어떻게 남의 일처럼 그렇게 외면하고 있는지 정말 묻고 싶다.”


“과거 묻어두자며 역사적 사죄도 외면하는 것은 굴욕이야…”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정부의 공식인정과 사죄, 배상요구는 더 이상 한국만의 외침이 아니다. 필리핀과 중국의 위안부 피해자들과의 연대활동도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으며, 유엔 인권위를 비롯해서 유럽연합, 캐나다, 미국, 호주, 대만 등 각국의 의회에서 할머니들의 발언이 이어지고 일본정부를 압박하는 성명서들을 채택하고 발표해 왔다. 일본 내에서도 정부를 압박하는 흐름은 계속 이어져 왔다. 특히 민주당의 하토야마 정권이 집권한 이후 각 지역 29개의 지방의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결의안이 채택되었고 많은 진보적인 시민단체들의 움직임도 활발한데, 최근에는 문제해결을 위한 입법지지서명을 받기로 결의해 일본국민의 1%에 해당하는 120만 명 서명을 목표로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 운동은 정대협에서도 한국민의 1%인 50만 명을 목표로 입법지지 서명을 받고 있다. 

  국제사회가 이렇게 할머니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자신의 문제로서 받아 안아 연대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은 일본군 위안부의 문제가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약자인 여성이 당할 수밖에 없는 인권유린에 대해 세계가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지금도 전쟁 중에 있는 많은 나라들이, 혹은 가난에 허덕이고 있는 저개발 국가들에서도 여전히 반복되는 문제이며, 인류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인 것이다. 이런 공감대는 음악으로도 승화되었다. 2008년 영국의 음악가인 줄리 맷튜스와 크리스 와일은 국제엠네스티를 통해 접한 길원옥 할머니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Take these bones(이 뼈들을 가져가요)”라는 곡을 쓰고 음악 활동을 했다.  

  그러나 한국과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적인 연대의 목소리를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은 비단 일본정부만이 아니다. 2008년 2월 당시 이명박 당선인은 “성숙한 한일관계를 위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죄하라고 요구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같은 해 4월 권철현 한국대사가 “경제 관계를 고려해 위안부 문제에 매달릴 수만은 없다”고 말하는 등 한국정부의 태도는 할머니들과 이 문제의 해결을 바라는 세계인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 한국의 정치인들도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일본 지방의회가 적극적으로 결의안을 채택하고 있는데 반해 한국의 지방의회에서 그런 흐름은 별로 활발하지 않다.         

  “대통령이 과거를 묻어두자고 했는데, 그런다고 과거가 없어지나? 수 백, 수 천 명이 국가에 의해 강제적으로 희생을 당한 사실이 명백한데… 어린 여자들은 위안부로, 좀 나이 있는 사람들은 전쟁의 총알받이로, 전수품 공장으로, 조선 땅에 남은 사람들은 수확한 곡식부터 숟가락 하나까지 각종 공출로 다 수많은 고생을 했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사죄는 전쟁으로 고생한 전 한국인들에 대한 역사적 사죄와 같다. 대통령이 할 말은 당당히 해야지 일본이 잘 산다고 굽신거리고 눈치보고 그렇게 하면 과연 나중에는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겠나? 일본군 위안부가 부끄러운 존재인 것이 아니라 우리를 지켜주지 못한 한국정부와 일본정부가 부끄러운 존재이다.”

  길원옥 할머니는 올해도 독일, 호주 등등을 돌며 국제여론을 환기시킬 국제연대활동에 참여할 계획이다. 할머님은 어디서 마이크를 잡아도 거침없이 당당하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요구를 하시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만큼 아직 정정하시고 열정적이며, 말씀도 청산유수로 잘 하신다.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미온적인 태도를 호되게 질타하며 오열하셔서 많은 사람의 마음을 울리기도 하셨다. 지난 4월에는 박선영 국회의원과 함께 일본 오사카 아마가사키 시를 방문한 자리에서 일본 지방의회 의원들에게 조선학교 학생들의 차별문제 해결을 당당하게 요구해서 박 의원을 놀라게 한 적도 있었다.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건립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다시 역사 속에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 할머니는 후세들에게 교육을 철저히 시켜야 한다는 것을 여러 번 강조하셨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우리의 아픔을, 그게 전쟁의 참상이라는 것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 젊은이뿐이 아니다. 일본, 중국 등 아시아의 젊은이들이 알아야 하고 전 세계가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박물관은 꼭 필요하다.”

  박물관 건립에 대한 계획은 1999년 교육관의 형태로 전시를 먼저 시작하였고 2003년 후세들을 위한 역사교육관의 형태로 박물관건립에 대한 본격적인 착수에 들어가게 되었다. 현재는 서대문 독립공원 내 부지를 정하고 모금활동을 벌이고 있다. 계획대로 하면 2008년 정도에는 완공되었어야 할 것이지만 정부의 예산 책정이 무산되고 기업 등의 사회적 참여 부족으로 건립기금 마련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선진국들은 전쟁에서 가해자의 역사든, 피해자의 역사든 간에 그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서 곳곳에 역사적인 사료로 전쟁의 상흔들과 박물관을 마련하고 있다. 그것들은 역사적 기념물일 뿐 아니라 예술적인 가치도 높이 평가받으면서 관광명소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한 나라의 박물관에 가보면 그들이 무엇을 기억하고자 하고, 후세에 물려주고자 하는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가 가진 박물관들을 생각해보면, ‘전쟁’의 공격성, 파괴성만을 우리의 아이들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오히려 위정자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발발한 전쟁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고 그 상처가 얼마나 오래도록 남는지 알려줘야 하는 것은 아닐지 곰곰이 반문해 본다.

“전쟁과 여성인원 박물관 1만인 건립위원이 되어주세요”

박물관 기부자의 벽에 새겨진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통해 후세대들이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 낸 박물관이라는 의미를 느낄 수 있도록 참여해 주세요. 건립후원금 10만 원은 한 번에 내셔도 되고, 여러 번으로 나누어 내셔도 됩니다. 가족끼리 모아서 가족의 이름으로 친구끼리 모아서 친구들의 이름으로 해보는 건 또 어떨까요? 내 생애 가장 의미있는 10만원 쓰기 캠페인! 지금 주위 분들과 함께해 주세요.

국민은행 011201-04-008524 예금주 :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02- 365-4016 http://www.womenandwar.net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