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1년 11월 2021-11-01   1410

[특집] ‘선진국’이라는 욕망 혹은 콤플렉스

월간참여사회 2021년 11월호 (통권 290호)

 

‘선진국’이라는 욕망 혹은 콤플렉스

 

글. 한민 문화심리학자

 

 

 “난 한국 영화 안 봐”, “난 한국 가요 안 들어”

 

19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흔히 들을 수 있었던 얘기다. 한국 영화 안 보고 한국 노래 안 듣는다는 선언은 조금이나마 문화적 소양이 있다는 이들의 자부심 같은 것이었다. 오랫동안 한국은 그랬다. 수준 낮고 천박해서 뭐 하나 도저히 내세울 게 없는 나라였다. 한국 영화가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고 한국 드라마가 세계 1위를 달리며 한국 가수가 빌보드 1위에 이름을 올리는 날이 오리라고는 그때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런 한국인들에게 소위 선진국들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외국에 나갈 수 있는 이들이 거의 없었던 80년대 이전,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에 다녀온 유학생과 주재원 등으로부터 듣는 선진국의 화려하고 세련된 문물은 초라한 후진국의 현실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 뿐이었다. 한국인들은 후진국에서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지만 한편으로 오랫동안 선진국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려야 했다. 

 

이러한 태도는 ‘콤플렉스’라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콤플렉스란 정신역동이론의 용어로서, 어떤 대상에 대한 여러 감정과 동기가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힘을 말한다.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대표적인 예인데, 남자아이가 어머니에게 갖는 성적性的인 욕망 정도로 단순히 알려져 있는 이 개념은 사실 남자아이의 어머니에 대한 욕망, 아버지에 대한 적대감과 질투, 자신의 욕망을 눈치 챈 아버지가 나를 해칠지 모른다는 두려움, 이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욕구 등이 뒤얽혀 있는, 말 그대로 수많은 관계와 행동, 욕구가 뒤섞인 복합complex이다.

 

월간참여사회 2021년 11월호 (통권 290호)

유엔무역개발회의가 한국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한 것과 관련해, 지난 7월 6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통해 “선진국으로의 지위 변경은 유엔무역개발회의가 설립된 1964년 이래 최초의 일로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밝혔다. Ⓒ청와대

 

 

한국인들의 ‘선진국 콤플렉스’

역사 속 새겨진 서구 열강에 대한 열등감

 

콤플렉스를 이해하는 키워드는 욕망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는 어머니를 사랑하고 싶다는 욕망이, 피터팬 콤플렉스에는 늙지 않는 어린아이고 싶다는 욕망이,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는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욕망이 숨겨져 있다. 그러한 욕망이 여러 가지 이유로 이루어질 수 없거나 이루어지기 어려울 때 일어나는 마음의 다양한 변화들이 콤플렉스인 것이다.

 

무의식에는 개인의 무의식이 있고 집단의 무의식이 있듯이 콤플렉스에도 집단적 수준의 콤플렉스가 있을 수 있는데, 앞서 이야기한 한국의 문화적 현상은 ‘선진국 콤플렉스’라고 이름 붙일 만하다. 선진국 콤플렉스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산업화시대를 거치며 한국인의 마음속에 새겨진 서구 열강에 대한 열등감에서 비롯된다. 근대 이후 한국인들이 기억하는 한국은 잘 나가는 선진국들에 비해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초라한 후진국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진국 콤플렉스에서 읽을 수 있는 한국인의 욕망은 ‘선진국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현대사는 선진국이 되기 위한 노력으로 요약된다. 스스로를 후진국, 변방이라 규정한 한국인들은 선진국이 되기 위해 발버둥 쳤다. 인구 5만이 채 안 되는 지방의 작은 소도시에조차 ‘선진문화 창달’ 운운하는 입간판을 흔히 볼 수 있었으니 한국인들의 선진국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 한국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지만 정작 한국인들에게 이 나라는 여전히 후진국일 뿐이었다. 1980년대 이미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서고서도, 한국인들은 한국의 문화 수준이 그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후진국이라고 생각했고, 90년대 들어 한류 붐이 여기저기서 불기 시작했을 때도 그것이 유럽이나 미국에서 인정받지 못한 반쪽짜리 유행이었기 때문에 한류는 거품이라 믿었다. 

 

2000년대 K-pop이며 한국 영화가 유럽과 미국에서도 인기를 끌기 시작했지만 한국인들은 정치 수준과 시민의식 등을 들며 우리는 여전히 선진국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현재 한국은 시민들이 앞장서 국정농단 세력을 몰아내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코로나 방역으로 세계의 모범이라는 말을 듣고 있지만 한국인들의 눈에 아직도 ‘선진국’은 머나먼 목표인 듯하다.

 

물론 현재의 한국이 세계에서 제일 잘난 나라는 아니다. 한국은 여전히 세계 최장 수준의 노동시간, 세계 최저의 출산율과 세계에서 가장 빠른 추세의 고령화 속도, 초등학교 아니 유치원부터 내몰리는 무한 경쟁, 분단의 역사, 빈부격차와 세대 갈등 등 수많은 골칫거리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습관적으로 ‘우린 아직 멀었다’는 말이 나온다. 그런데 생각해 볼 것이 있다. 과연 어디를 기준으로 멀었다는 것일까? 정치, 경제, 군사, 사법, 복지, 문화, 스포츠 등 모든 면에서 다른 나라를 압도하고,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을 돌보며 누구에게나 균등한 기회가 주어지는, 땅도 넓고 지하자원도 풍부하고 국민 통합도 잘 되는 그런 나라는 세상에 존재했던 적이 없으며 지금도 존재하지 않는다.

 

월간참여사회 2021년 11월호 (통권 290호)

선진국 콤플렉스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산업화시대를 거치며 한국인의 마음속에 새겨진 서구 열강에 대한 열등감에서 비롯된다

 

 

선진국이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말 그대로 유토피아일 뿐이다

 

한국인들에게 선진국이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말 그대로 유토피아다. 유토피아에 비하면 세상 어느 나라건 후진국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선진국 콤플렉스’의 실체다. 한국인들은 존재하지 않는 이상을 좇아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선진국이란 고래로 한국인들이 지향해왔던 ‘요순시대’와 통하는 바가 있다. 과거 선비들 또한 문헌으로만 전해져 오는 이상적인 시대를 기준으로 현재를 비판하고 더 나은 나라를 만들려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한편, 그 때문에 우리가 여기까지 온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결핍은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선진국’이 되겠다는 열망이 한국의 현재를 만든 것은 분명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이제까지처럼 열등감이 바탕이 되어서는 안 된다. 주지하다시피 열등감은 건전한 자존감에 해가 되기 때문이다. 열등감은 자신의 모습을 왜곡할 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콤플렉스의 극복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있는 그대로 자신들을 보고, 괜찮은 면에는 자부심을 가지고 부족한 점은 개선해 나가되 스스로를 지나치게 비하하지도, 남들보다 잘났다고 지나치게 우쭐거리지도 않는 것이다. 작금의 코로나 사태는 여러모로 우리에게 자기객관화의 기회를 제공해 주는 듯하다. 당장 그동안 ‘선진국’이라고 맹목적으로 좇아왔던 여러 나라들의 실체를 어느 정도는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한국은 이미 경제 규모, 국방력, 문화산업의 영향력 등 여러 국제적 기준에서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섰다. 올해 7월 유엔이 한국을 개도국 그룹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격상함으로써 더 이상의 논의도 무의미해졌다. 어디 가서 한국이 후진국이라고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정도다. 이제는 새로운 정체성에 걸맞는 새로운 자기상과 자존감의 정립이 필요한 때다. 

 

물론 지나친 우월감도 자기객관화와는 거리가 멀다. 한국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데에는 운을 비롯한 여러 조건과 상황이 작용했으며, 지금 우리가 잘 나간다고 앞으로도 잘 나가리라는 보장도 없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중요한 점은 우리가 끊임없이 나아져 왔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말이다. 그 짧은 시간에 한국처럼 많은 것을 이룬 나라는 없다. 거시적 관점에서 우리가 잘해 나가고 있음은 충분히 자부심은 가질 만하다. 객관적인 지표마저 무시하고 스스로 이뤄낸 성과를 폄하하며 주위를 돌아볼 여력도 없이 ‘존재하지 않는’ 목표를 향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일은 이제 벗어날 때가 되었다. 

 

 


특집 지금 선진국에 살고 있습니까?

1. 선진국이라는 욕망 혹은 콤플렉스 한민

2. 한국의 성장주의 이데올로기, 그 내면화의 역사 지주형

3. GDP 성장률이 말해주지 않는 것들 홍기빈

4. 청년이 생각하는 #선진국의_조건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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