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1년 12월 2021-11-30   1002

[이달의참여연대] 법조일원화가 뭐라고, 그들은 그렇게 목숨을 걸었나

법조일원화가 뭐라고,
그들은 그렇게 목숨을 걸었나

 

글. 김태일 사법감시센터 간사

 

 

법원은 왜 ‘법원조직법’을 개정하려 했나?

 

지난 8월 말, 국회 본회의에서 법안 하나가 부결됐습니다. 본회의에서 법안이 부결되는 건 이례적인 일입니다. 문제의 법안은 법원조직법 개정안, 이른바 ‘법조일원화 완화’ 법안입니다. 법조일원화란 법관을 법조 경력자 중에서 뽑는 제도입니다. 과거 사법고시 합격만 해도 바로 법관이 될 수 있었다면 지금은 변호사 시험 합격 후 변호사, 검사 등의 경력을 일정 정도 갖춰야 법관으로 임용될 수 있습니다. 

 

법적으로 올해까지는 최소 5년 이상 법조경력이 있어야 법관에 지원할 수 있고, 내년부터는 최소 7년 이상의 법조경력이 있어야 법관 지원이 가능해집니다. 하지만 법원은 내년 이후로도 법조경력 5년만 돼도 법관으로 뽑을 수 있게 법을 바꾸려다 실패한 것입니다. 그게 대체 뭐라고 법원은 그렇게나 법을 바꾸려고 한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법조일원화는 사법개혁의 관점에서는 ‘신의 한수’였고, 개혁을 원하지 않는 관점에서는 ‘악마의 한수’였기 때문입니다.  

 

법원이 키운 법관에서, 사회가 키운 법관으로

 

과거에는 판검사를 성적순으로 뽑았습니다. 그 어렵다는 사법고시를 통과한 사람들은 모두 사법연수원에서 2년간 교육받는데, 이후 수료성적으로 또 성적 등수가 매겨집니다. 등수가 높을수록 판사, 검사 순으로 지원하고, 나머지가 변호사로 개업했습니다. 

 

이렇게 시험 엘리트로 구성된 법원, 검찰은 우리 사회에 신뢰를 받았을까요? 주지하다시피 그러지 못합니다. 사법고시 합격자는 부모가 고시 준비를 도와줄 수 있는 부유층 중심으로 편중되어 갔고, 공부에 몰두하느라 사회경험이 부족했던 엘리트 판검사들은 시민 눈높이에서 멀어져갔습니다. 

 

게다가 그렇게 임명된 99%의 법관, 검사들은 모두 중도에 공직을 그만두고, 고액 전관변호사의 길을 걸었습니다. 전관변호사가 되면 퇴직할 때의 직책에 따라 수임료가 천정부지로 높아지지요. 이쯤 되면 ‘판검사를 뽑는다’는 말이 무색해집니다. 오히려 ‘예비 전관 대량생산’에 가깝습니다.

 

법조일원화는 이런 현실을 천천히, 그러나 근본적으로 바꾸는 ‘신의 한수’입니다. 법원이라는 조직이 성적순으로 뽑아 관성대로 육성하는 대신, 사회에서 시민들과 부대끼며 경력을 쌓아 인정받은 법조인들을 판사로 뽑기 때문입니다. 법원이 키운 법관이 아닌, 사회가 키운 법관인 셈이죠. 이는 사회적 특수계급을 부정하며, 국민이 관료조직에 의해 지배받아선 안 된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와도 부합합니다. 그리고 그런 법조인들을 검증하기엔 적어도 10년의 경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사회적 합의였습니다. 

 

법원이 사법개혁에 저항하는 방법?

 

지난 10년간 법원의 법관 임용 행태는 한 마디로 ‘최대한 경력 없는, 최대한 법원 내부에 가까운 엘리트 출신’으로 요약됩니다. 법조일원화가 목표했던 방향과 정확히 반대되는 방향으로 뽑아온 것입니다. 최소 3년 이상 규정이 적용될 때는, 절반 이상을 3년 경력자들로 뽑았습니다. 5년 이상 규정일 때는 정확히 5년 경력자들로 대부분 뽑았습니다. 심지어 최저연차 법관의 비중이 늘어났습니다. ‘최소 5년’이지 ‘최대 5년’이 아닌데도, 사실상 5년이 상한선인 것처럼 뽑았습니다. 법원이 제도의 취지에 완강히 저항한 것입니다. 

 

직역도 대부분 군 법무관이나 국선변호사, 재판연구원로클럭, law clerk에서 뽑았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법원 순혈’이라는 점입니다. 법무관은 군 법원에 속해 기껏해야 1년에 10여 건의 재판 경험을 합니다. 로클럭과 국선변호사는 법원 안에서 법원에 고용 혹은 채용되어, 법원이 시키는 일을 합니다. 심지어 2018년부터는 법원이 현역 법무관들에게 로클럭 지원 기회를 주면서, ‘법무관 3년-로클럭 2년-바로 법관 임용’이라는 신종 법관 지원 공식까지 만들어졌습니다. 법을 어긴 것은 아니지만, 법원 밖 시민사회 경험을 쌓은 법조인을 등용한다는 제도 취지와는 거리가 멉니다. 사실상 법관 내 순혈주의와 기수 문화를 유지하려는 의도가 아니고서야, 법원의 이런 행태를 설명하기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법원도 이제 한계에 봉착했습니다. 2022년 부로 법관 임용시 요구되는 최소 경력이 5년에서 7년으로 상향되면, 더 이상 법원 내부에서만 경력을 쌓은 사람을 법관으로 뽑을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병역에 해당하는 군 법무관 3년 임기를 더 늘리긴 어렵습니다. 2년에서 3년으로 늘어난 로클럭 임기를 추가로 늘리기도 어렵습니다. 결국 내년부터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경력 법조인’을 법관으로 뽑을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래서 법원은 아예 국회에 로비를 해서, 법 자체를 바꾸려 한 것입니다.

 

월간참여사회 2021년 12월호 (통권 291호)

 

 

법원개혁, 법관에게만 맡길 수 없는 이유

 

최소 요구 경력을 5년으로 고정하는 내용의 법 개정을 요구하면서 법원은 이것이 법조일원화를 무력화시키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법을 바꿔주면 위원회를 만들어 경험 많은 법조인을 뽑을 방법을 논의하겠다고 합니다. 그게 법원의 진심이라면, 왜 지난 10년 동안 그렇게 하지 않았던 걸까요? 중견 법조인들이 법관직에 매력을 느끼지 못해 지원하지 않는다면, 왜 그동안 법원은 법관 증원이나 예산 증액을 요구하거나, 법관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을까요? 법원의 해명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법원의 행적 그 자체가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법개혁은 거대하고 장기적인 프로젝트입니다. 사회에서 존경받는 법조인들이 법관이 되고, 이들이 법원 주류를 교체하려면 아무리 짧아도 20년은 걸립니다. 어려운 길이지만, 그 시간이 흐르고 나면 법원의 체질은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시험 엘리트 법관들이 대법원장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관료 조직이 아니라, 시민들과 소통해본 경험과 자부심을 바탕으로 어떤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율적이고 독립된 법관들의 총합으로 거듭납니다. 이것이 바로 10여 년 전 사법개혁 논의가 목표했던 길이며, 시민들이 신뢰할만한 사법부가 생기는 길입니다. 그 시점이 올 때까지, 시민사회가 법원개혁을 함께 감시해야 합니다. 민주사회에서 법관 임명이란, 법원 손에만 맡기기엔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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