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0년 07월 2010-07-01   957

6.2지방선거 그 후-새로운 정치실험, ‘지방공동정부’



새로운 정치실험, ‘지방공동정부’


지해용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 연구원


6·2지방선거의 결과로 현재 각지에서는 소위 ‘공동지방정부’ 논의가 분분하다. 집권세력의 일방주의적 국정운영과 민주주의 후퇴라는 위기 속에서 야권 후보들은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현 정부에게 혹독하고 매서운 민심의 현 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아직 개별 야권의 힘은 무르익지 못했다. 집권세력이 이념구도, 지역구도, 계층구도를 이용해 편 가르기를 충실히 해온 탓도 있지만 여러 정당으로 나누어진 야권세력은 그 누구도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환경을 파괴하는 4대강 사업을 중단시키고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충실히 지켜내며 소모적 갈등과 지역 갈등을 야기하는 세종시 수정안을 막아내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결국 야권세력들은 정치세력 간 권력다툼의 이전투구가 아니라 이러한 국민의 명령에 순응한 결과로 야권승리, 집권세력 심판의 성적표를 손에 쥘 수 있었다. 사실 야권 후보들이 단일화의 길에 합의할 수 있었던 것은 국민들의 정권심판 의지가 확고했고 야권세력들의 대의복무 이탈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점에서 지방선거 결과는 ‘국민의 승리’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중앙은 힘 겨루기, 지역은 야권연대 시작

지방선거 분위기가 서서히 고조되고 있던 지난 3월, 소위 ‘5+4회의’라고 불리는 협상테이블이 마련됐다. 야5당(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과 4개 시민사회단체(2010유권자희망연대, 시민주권 소통과 연대, 민주통합시민행동, 희망과 대안)는 전국적 수준의 선거연합을 실현하기 위해 중앙 차원의 정치협상을 개시한 것이다. 이들은 “현 정부와 거대 여당의 일방적 국정운영을 저지하고 공동의 승리”를 선거연합의 목표로 설정하고 각 당이 합의하는 공동정책을 기반으로 한 ‘가치 중심’의 연합 원칙을 밝히는 등 구체적 방안과 일정 등을 담은 합의안을 발표하였다. 순조롭게만 보이던 초기의 논의는 회를 거듭할수록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는데 우선 진보신당이 협상장을 공식 이탈하여 이후 논의는 야4당의 참여로 진행하게 되었으며, 수차례, 수일에 걸친 지난한 협상의 결과로 마련한 야권연대 합의문 역시 민주당 최고위원회가 수용하지 않음으로써 협상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일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권연대의 불씨를 살리기 위한 시민사회단체와 사회 각계의 노력은 협상 재개를 이끌어냈고 협상 과정 중 야권연대의 정신이라고 표현할 만한 정책합의문이 발표되는 성과를 낳기도 했다. 하지만 전국적 수준의 전면적 선거연합 논의는 결국 지방선거 후보자 등록 시기가 임박한 4월 20일 공식적으로 최종 결렬되는 것으로 종료하게 된다. 경기도 지사 후보 경선 방식을 둘러싼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의 힘 겨루기가 끝내 풀리지 않은 족쇄가 된 것이다.

그러나 중앙 차원의 야권연대 흐름과는 달리 지역 차원에서는 그 정신을 잇는 야권의 선거연합이 성과를 내놓고 있었다. 경기도 고양시의 경우 처음의 야5당은 물론 지역 시민사회단체가 전면 결합하는 야권연대를 실현했고 광역자치단체에서는 대전시가 시장 후보를 비롯해 기초단체장, 광역 및 기초의원에 이르기까지 단일후보 연합공천에 합의한 것이다. 이러한 지역 차원의 자율적 야권연대 움직임은 본격적 선거운동기간이 개시되고 박빙의 승부가 연출된 조건에서 더욱 확대되어 마침내 다수 지역에서는 ‘한나라당 대 야권단일후보’라는 후보구도가 조성됐고 이제 유권자들은 오만한 집권세력과의 진검승부의 주인공으로 선거에 적극 참여하게 되었다.


‘후보 단일화’로 완성시킨 ‘연립정부’

엄밀히 말해 공동정부에 대한 개념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다만 선거를 통해 집권세력으로 선택받는 경우 단독으로 행정권을 행사하는 게 일반적이라는 점에서 공동정부는 그 표현이 말해주는 대로 정치권력을 둘러싸고 경쟁하는 둘 이상의 동등한 정치세력이 공동으로 행정권을 공유하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공동정부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비슷한 개념으로 쓰이고 있는 ‘연립정부’라는 개념을 잠시 살펴보자. 연립정부는 복수의 정치세력이 행정권을 공유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식으로 보통 유럽식 내각책임제 하에서 많이 발견된다. 유럽식 내각책임제는 비례대표제라는 선거방식 때문에 특정 정당이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차지하기가 무척 어렵다. 그래서 선거 이후 국정안정을 이유로 복수 정당 간 연립정부 구성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며 이밖에도 국민통합을 목적으로 한 연립정부가 구성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처럼 단일민족이 단일언어를 사용하는 경우와 달리 다양한 민족, 언어, 종교, 문화 등이 혼재된 사회의 경우 상이함을 극복하고 국민통합을 달성하기 위해 각각의 대표자들을 정부구성에 참여시키게 되는 것이다.

한편 연립정부는 ‘연합’의 방식과 목적, 형태 등에 따라 여러 형태의 연립모델을 가져오는데 이 가운데 우리나라의 공동지방정부는 공동정책에 기반을 둔 ‘가치 중심’의 연합이라는 점에서 ‘정책연합’으로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연립정부 중에서도 정책연합 모델은 정책에 기초한 연합이라는 점에서 내각책임제든 대통령중심제든 어디에서도 쉽게 출현이 가능하며, 참여 정치세력이 추진과제 및 정책을 선정하고 결정하는 과정 속에서 형성되는 모델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공동지방정부’는 제 정치세력이 일방주의적 독재의 길에 들어선 현 집권세력을 심판해 선거에서 승리하고, 지방자치와 주민복지를 획기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정책의 구체적 실행을 위해 ‘후보 단일화’라는 방법으로 완성시킨 지방 차원의 ‘연립정부’라고 설명할 수 있다.


공동 정책과 시(구)정운영방안 마련, 두 축의 야권연대

지방선거 이후 여러 언론에서는 야권세력의 선거승리를 비중 있게 보도하는 한편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공동지방정부’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방식이라는 점에서 그 자체가 뉴스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다양한 세력이 참여하는 공동의 지방정부가 운영될 것인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현재 시점에서 파악하고 있는 ‘공동지방정부’는 광역자치단체의 경우 강원, 경남, 인천 등 3곳이며 기초자치단체의 경우 서울 7곳(노원, 동대문, 성동, 구로, 서대문, 강서, 성북), 경기 10곳(성남, 고양, 안산, 광명, 수원, 하남, 화성, 안양, 용인, 부천), 인천 8곳(중구, 동구, 남구, 연수구, 남동구, 부평구, 계양구, 서구), 그리고 경남 김해 등 모두 29곳에 이르고 있으며, 공통적으로 야권연대를 통한 단일후보 전략으로 선거에서 승리한 곳들이다.

이 지역들은 대부분 내용면에서 두 축으로 야권연대를 성사시켰는데 공동의 정책과 함께 공동의 시(구)정운영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공동의 정책은 공동목표, 정책기조, 합의과제 등의 표현으로 제시되기도 하는데 교육, 복지, 환경, 노동, 의료, 주민참여 등 주민이 체감할 수 있는 생활의제 중심으로 구성되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공동의 시(구)정운영방안은 인수위원회 공동구성과 함께 일상적 협의 소통기구로 시(구)정운영위원회, 정책협의회, 민관공동위원회, 공동정책추진단 등을 구성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7월 1일 5기 민선자치의 공식 개막을 앞둔 현재까지 각 지역은 공동인수위원회 활동을 통해 시정 현안을 파악하는 한편 향후 공동지방정부의 중심으로 기능할 운영기구의 구성, 역할, 권한, 책임, 운영방식 등을 다각도로 모색하고 있다.


성남시, ‘공동지방정부’ 모범 사례

얼마 전 성남의 호화청사가 시민의 품으로 환원된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3천 2백억 원이 넘는 막대한 시 예산을 투입해 지하 2층, 지상 9층의 매머드급 건물을 짓고 ‘펜트하우스’라 할 만한 최상위 층을 시장실로 정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시청사가 뒤늦게 시장이 바뀌고서야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살펴볼 구체적 지역 사례가 바로 성남시다. 성남시는 성남참여연대집행위원장 출신인 민주당 소속 이재명 변호사가 시장으로 당선된 곳으로 공동지방정부 추진에서 중요한 성공요건의 하나인 ‘단체장 의지’도 호의적인 지역이다.

지방선거에서 민주당-민주노동당은 성남시장후보 단일화에 합의하면서 후보단일화 및 선거연합, 공동선거대책위원회 구성, 정책연합 등 3가지 사항을 핵심 내용으로 한 합의문을 발표했다. 지방선거가 끝난 직후인 6월 4일부터 이들 양당은 인수위원회 준비팀 회의를 개최하는 등 발 빠르게 인수위 구성과 운영에 대비해 나갔으며 통상 1주일에 그치는 인수위 활동 기간도 연장해 시정 전반에 대한 점검을 꼼꼼하게 하고 향후 시정 운영 방안의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함께 병행해 나갔다.

이렇게 논의된 시정 운영 방안에 따르면 성남시는 크게 네 가지 영역에서 공동지방정부 구축을 모색하고 있다. 첫째는 ‘분야별 직접 집행시스템 참여’이다. 즉 시민사회단체, 정당 관계자, 일반 주민 그리고 전문가 등이 직접 참여 가능한 행정영역에 책임성을 갖고 임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전면적 직접 참여방안’으로 자치단체의 정책기획능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한다는 전략으로, 단체장의 정책의지를 반영하는 한편 분야별로 정책과제를 발굴하기 위해 다양한 세력의 참여가 보장된 정책기획팀을 운영하는 것이다. 셋째는 ‘부분적 참여시스템’으로 성남시의 각종 위원회 등을 내실화하고 모두에게 참여기회가 보장된 민주적 형태로 운영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네 번째는 ‘지원 및 검증시스템’으로서 지역발전 연구소를 설립해 공동 운영하며 시민 의견 수렴, 정책 제안 입안, 매니페스토 실천 검증 등 공동지방정부의 성과적 결과물 도출을 위한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다.

현재 성남시는 일상적 공동운영기구로 ‘시정발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으며, 민주노동당 소속의 김미희 현 인수위원장이 위원장직을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당선자는 시정발전위원회가 주요 집행기구 같은 수준의 중요성을 갖는 기구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며 조례 제정을 통해 행정적·재정적 지원과 법적 안정성을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적극적 시민참여가 ‘공동지방정부’ 성패 규정

사실 공동지방정부가 안착하는 데는 많은 장애물이 버티고 있다. 이미 합의한 사항들을 지키지 않을 시 도덕적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을지는 몰라도 법적 이행의무를 갖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나 후진적 정치문화 속에서 정치인들이 그동안 보여 온 잦은 말 바꾸기, 거짓말 등은 우리 국민에게 이미 만성적 피로를 가져다줄 만큼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한편 앞서 언급한 모든 지역이 동일한 수준의 합의안과 이행의지, 실천력을 보여주고 있지 않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이렇다 보니 지역별로 공동지방정부의 기본적 상조차 다시 잡아야 하는 지역이 있는가 하면 아예 모르쇠, 버티기로 일관하는 단체장이 관측되기도 한다.

따라서 공동지방정부가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요건이 제대로 충족돼야 한다. 첫 번째, 참여구성원들이 가치와 철학을 함께 공유하는 행위다. 시(구)정 발전방향에 대해 공동의 인식에 기초할 때만이 추진 정책과 사업은 갈등을 최소화하고 힘을 받을 수 있다. 두 번째는 참여 구성원들의 이행의지다. 당선자 입장에서 공동지방정부는 자신의 권한을 제약하는 방해물로 인식될 수 있으며 다른 참여 구성원의 경우 뚜렷한 지향과 선호를 갖는 정당 및 시민단체 등의 소속원이라는 점에서 공익적 사항과는 별개로 시정 과제, 경험, 성과 등을 둘러싼 조직적 갈등의 발생소지도 있다. 공동의 이행의지를 모으고 발생 가능한 갈등요소를 적절히 관리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세 번째는 중추적 역할을 담당할 기구를 제대로 구성하고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문제다. 이것은 임의의 형태가 아니라 법률적 근거를 마련해 지속성을 보장하고 각종 지원책 등을 통해 핵심기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토록 해야 한다. 네 번째는 성과적 결과물을 도출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동기구 활동에 대한 평가는 최종적으로 시민의 시선에 맞춰지게 된다. 성공사례든 실패사례든 구성원의 내부평가나 자체 의지와는 별개로 외부의 시민평가는 공동지방정부의 성패를 규정하게 될 것이다.

공동지방정부는 진보적 정책을 중심으로 한 지역혁신 프로그램이며 지역 내 주요 행위자인 행정부, 정당, 시민사회단체, 주민 등이 직접 참여해 의사를 결집하고 이해갈등을 조정하는 새로운 로컬 거버넌스 구축 프로젝트다. 동시에 과거 제한적 허용에 머물렀던 주민참여를 전면적으로 개방해 지방자치를 튼튼히 세우고, 민주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정치실험이다. 한 번의 이벤트로 기록되지 않도록 보다 많은 이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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