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참여연대] 과로사 주범 야간노동, 이제는 없애자!

과로사 주범 야간노동, 이제는 없애자

코로나 기간 택배과로사 21명, 야간노동은 2급 발암물질 

 

글. 이조은 노동사회위원회 간사

 

 

“주무시는데 죄송합니다. 저 16번지 안 받으면 

안 될까 해서요. 집에 가면 새벽 5시. 밥 먹고 씻고 

바로 터미널 가면, 한숨도 못 자고 나와서 터미널에서 

또 분류작업 해야 해요. 어제도 집에 새벽 2시에 도착. 

오늘은 새벽 5시 도착. 저 너무 힘들어요.”

 

지난해 10월 8일, 어느 택배노동자가 동료에게 보낸 메시지입니다. 문자가 발송된 시간은 새벽 4시 30분. 오전 7시부터 업무를 시작한 그는 다음날 새벽 4시 30분까지 21시간 이상 일했고, 나흘 뒤 과로로 숨졌습니다. 택배노동자가 목숨을 달리한 그 날, 쿠팡 물류센터에서 야간노동을 하던 27세 노동자 장덕준 씨도 과로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1년 5개월 동안 일용직 신분으로 일했던 그는 밤샘근무를 마치고 새벽 6시쯤 귀가한 뒤 욕조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200kg 무게에 달하는 상자 더미를 레일 위에 싣는 고강도 업무를 맡았던 장덕준 씨가 숨진 당일, 그의 만보계에는 5만 보가 찍혀 있었습니다.

 

이렇게 작년부터 지금까지 21명의 택배노동자가 과로로 사망했습니다. 배송하다가 쓰러지고, 물류센터에서 분류 작업을 하다가 쓰러지고, 업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도 쓰러졌습니다. 과로사한 택배노동자들의 대부분은 심각한 수준의 장시간 노동, 야간노동에 시달렸습니다. 장시간 노동이 과로사를 야기하지만, 특히 장시간 노동에 수반되는 야간노동은 택배노동자 과로사의 핵심 원인으로 지적됩니다. 밤 10시부터 오전 6시 사이의 야간노동은 24시간 생체주기 리듬을 파괴하여 뇌심혈관계 질환, 수면장애, 소화기계 질환 발생률을 높이고 노동자의 건강을 악화시킨다고 알려집니다. 때문에 야간노동은 국제노동기구ILO와 국제암연구소IARC가 지정한 2급 발암물질이기도 합니다. 

 

월간참여사회 2021년 7-8월호 (통권 287호)

로켓배송, 새벽배송이 확대될수록 야간노동에 시달리는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는 반복된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 사회적 합의? 하지만…

지난 6월 22일, 택배노동자들의 장시간 야간노동을 막기 위한 중요한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택배노동자, 택배사, 시민단체, 정부, 국회 등으로 구성된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 사회적 합의기구’가 과로사 방지 합의문을 도출한 것입니다. 합의문에는 택배노동자가 전체 업무량의 40%에 달하는 분류 업무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주당 평균 노동시간 60시간을 넘지 않게 제한하는 등 택배노동자의 노동 시간을 실질적으로 단축하는 방안이 담겼습니다. 이번 사회적 합의로 택배노동자는 장시간 노동의 핵심원인인 분류작업에서 벗어나게 됐고, 야간노동도 큰 폭으로 줄어들면서 택배노동자 과로사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사회적 합의의 한계도 명확합니다. 규제 대상에 사각지대가 있고, 택배산업 내 만연한 야간노동을 제대로 규율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택배노동자가 가장 많이 과로사한 사업장인 ‘쿠팡’은 사회적 합의기구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다 과로사한 장덕준 씨의 업무는 사회적 합의에 의한 규제 대상이 아닙니다. 자정 전에 주문하면 다음 날 도착하는 쿠팡의 ‘로켓배송’도, 밤 11시 전에 주문하면 이튿날 아침 7시까지 배송되는 마켓컬리의 ‘새벽배송’도 사회적 합의로 규제되지 않습니다. 로켓배송, 새벽배송, 당일배송이 확대될수록 야간노동에 시달리는 택배노동자들은 늘어나고 안타까운 과로사는 계속 반복될 것입니다.

 

야간노동, 어떻게 규제해야 할까

이번 사회적 합의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야간노동 현황을 점검하고 규제해야 합니다. 노동자의 건강을 악화시키고 과로사를 야기하는 주범이라는 점에서 야간노동은 택배산업 일부만이 아닌 전사회적 문제입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야간노동을 직접적으로 규제하는 법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현행법이 야간노동을 규제하는 수단은 가산임금 정도인데, 통상임금의 50% 이상을 가산하는 정도로는 야간노동을 근절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가산임금은 낮은 임금을 보전하기 위해 더 많은 야간노동을 유인하는 역효과도 있습니다. 야간노동을 근절하려면 가산임금 같은 간접 방식이 아닌 보다 직접적이고 강력한 규제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회적 규제가 가능할까요?

 

우선 야간노동 분야를 제한해야 합니다.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야간노동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병원, 소방, 경찰과 같이 사회 유지에 필수적인 공공서비스는 야간노동이 불가피한 영역입니다. 반면, 택배 업무나 환경미화 같은 분야에서의 야간노동은 필수가 아니라 단지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생겨난 노동입니다. 낮에 거리를 청소하고 쓰레기를 수거하면 시민들에게 불편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그동안 야간에 일하던 환경미화 노동자들을 최근 주간근무로 전환하고 있는 지방 정부가 늘고 있습니다. 노동자의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야간에 환경미화 업무를 할 필요가 없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되었기 때문입니다.

 

필수 분야는 ‘야간노동 가이드라인’ 적용해야 

택배 업무도 마찬가지입니다. 작년 11월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표한 〈택배종사자의 근로환경 개선에 대한 국민의견 조사결과〉에 따르면, 택배노동자의 처우개선을 위해 배송이 일정 기간 늦어지는 것에 동의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87.2%에 달했습니다. 대부분의 시민은 택배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하는 빠른 배송을 원하지 않습니다. 로켓배송, 총알배송과 같은 무분별한 당일배송 경쟁을 규제하는 법 제도를 조속히 마련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환경미화나 택배 업무에서의 야간노동과 같이 사람들의 편의로 생겨난 야간노동을 분류해서 적극 규제해야 합니다.

 

또한 사회적 필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야간노동을 해야 한다면, 노동자의 건강을 보호하는 야간노동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 월 야간노동을 14일 이내로 제한 ▲야간노동을 2일 이상 연속해서 한 경우 48시간 이상의 휴식을 보장 ▲ 연속적인 야간근무를 3일 이하로 제한 ▲ 8시간 이하 근무를 원칙으로 연장근로를 제한 ▲ 일정 시간 이상 야간 근무한 노동자에 대해 특수 건강검진을 시행 등 방안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방안은 새로운 얘기가 아닌 국제기준입니다. 한국이 아직 체결하지 않은 ILO ‘제171호 야간노동 협약’에 이미 관련된 내용이 담겼고, 많은 유럽 국가들이 ILO 야간노동 협약에 따라 야간노동을 적극적으로 규제하고 있습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활동해 왔듯이, 참여연대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야간노동을 근절하기 위한 활동을 이어나갈 것입니다. 모든 노동자가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하게 되는 그날까지! 회원들의 많은 응원과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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