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자] 노매드의 기쁨과 슬픔

노매드의 기쁨과 슬픔 

 

 

홈리스와 하우스리스

홈리스와 마주칠 때 곤란해지는 까닭은 냄새였다. 시큼하면서 기름져서 역하게 만드는, 코를 찌르는 냄새. 하지만 이들을 타자화할 수 없다. 청소년 시절부터 서울의 가파른 집값 그래프를 흘겨보며 근심했던 나다. 불운이 겹쳐 미래가 선택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른다면 나 역시 노후에 홈리스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만 ‘홈리스가 된다면 잘 씻고 다녀야지’ 정도의 다짐은 있었다.

 

홈리스의 삶을 구체적으로 알게 된 건 비교적 최근이다. 냄새가 이들을 지켜주는 벽임을 이제는 안다. 시비, 강간, 폭력 등을 방지하고 타인의 접근을 차단하며 스스로를 지키는 벽을 냄새로써 세우는 것이다. 즉 악취는 생존을 위한 수단 중 하나라는 것. 홈리스와 하우스리스는 다르다. 하우스리스는 악취 아닌 다른 벽을 가질 수 있다. 하우스house는 주로 주택 건물 자체를 의미하며, 홈home은 기억이 축적되어 애정이 깃든 ‘사는 곳’을 폭넓게 뜻한다. 심지어 추상적이고 일시적인 공간도 홈으로 이름 붙여질 때가 있다.

 

영화 〈노매드랜드〉에 나오는 이들은 하우스리스이되, ‘홈’이 있다. 영화의 흐름을 이끄는 중심인물 ‘펀’(프란시스 맥도맨드 분)의 홈은 밴van➊이다. 비록 온전치 않지만 비와 눈, 추위, 낯선 이의 침입으로부터 그를 (어느 정도) 지켜준다. 또한 추리고 추린 소중한 물품들을 곁에 두고 함께 이동하게끔 한다. 이 때문에, 밴이 고장 나자 정비소는 수리 대신 중고 밴을 구입하는 편이 더 경제적이라고 말하지만 펀은 거절한다. “저 차를 채우고 꾸미는 데 인생의 많은 시간과 돈을 썼어요. 다른 사람들이 그 가치를 이해 못 하지만 이 밴은 달라요. 난 여기 살아요. 이게 내 집입니다.”

 

월간참여사회 2021년 7-8월호 (통권 287호)

 

노매드랜드 Nomadland

2021 | 미국 | 드라마 | 108분 

감독 클로이 자오 출연 프란시스 맥도맨드, 데이빗 스트라탄

 

노마드를 선택한 하우스리스

하지만 하우스리스라고 꼭 노마드일 필요는 없다. 이들이 정착하지 않고 광활한 미대륙을 횡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는 펀에게 본디 노마드의 기질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도시의 쇠락과 배우자의 사망은 계기가 됐을 뿐이다.

 

영화의 초입, 지역경제의 중심인 공장이 문 닫으며 우편번호마저 사라진 황량한 도시를 밴을 타고 떠나는 펀, 머지않아 길가에 차를 세우고, 불안한 얼굴로 황량한 들판에서 용변을 처리한다. 공중화장실에서 씻고 서툴게 머리를 다듬는 그에게 아직 노마드의 삶은 어색해 보인다. 그러나 영화 중반, 그는 햇살 비추는 인적 드문 강물 속에 모든 옷을 벗어 던지고 몸을 담그며 편한 표정을 짓는다. 

 

안정을 찾기까지 여러 경험이 있었다. 여러 임시직을 전전했다. 돈을 벌고, 일터에서 다른 노마드와 교류했다. 동료를 통해 알게 된 캠프 ‘러버 트램프 랑데뷰(RTR)’에서 생활의 지혜를 배우고 우정을 쌓기도 했다. 물론 이 우정은 느슨하다. 각자의 업무가 종료되거나 사정이 생기면 언제든 헤어질 수 있다. 그러나 언젠가 길 위에서 다시 만날 것이다. 이름을 불러 반길 것이고, 직접 만든 소품과 필요한 물품을, 샌드위치와 맥주를 교환할 것이다. 곁에 있는 누군가가 아플 때 돌볼 것이며, 세상을 뜬 이가 있으면 모닥불에 둘러앉아 함께 추모할 것이다. ‘노마드’라는 정체성은 이들을 쉽게 결속하게끔 하므로.

 

이들을 둘러싼 대자연은 자주 매섭지만 때때로 경이롭고 아름답다. 어느 별빛 쏟아지는 밤, 펀은 여행객에 섞여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다. “별들은 폭발하며 플라즈마와 원자를 우주로 쏘아 올리고, 가끔은 지구에 도착해 흙에 영양을 공급하며, 그중 일부는 여러분을 이루죠. 이제 오른손을 펴고 별을 보세요. 아주 오래전 폭발한 별에서 떨어져 이 행성에 착륙한 원자들이 지금 여러분 손에 있습니다.” 노마드의 삶… 꽤나 낭만적일지도?

 

마냥 낭만화할 수 없는 노마드의 삶

 

그러나 삶은 녹록지 않다. 우선 숨 쉬듯 사용하는 인프라의 편의성을 포기해야 한다. 펀이 RTR에서 배운 용변 처리법은 차량 크기에 따라 2~5갤런, “무릎이 안 좋으면 7갤런”의 양동이를 두는 것이다. 양동이의 분뇨 냄새가 차 안에 퍼지지 않을 리 없다. 개미 같은 벌레가 들끓기도 한다. 야간 주차를 해결하는 것도 일이다. 밴 안에서 식사를 하다가 이곳에 주차하면 안 된다는, 한밤중 노크에 화들짝 놀라는 장면은 밴이 콘크리트 벽에 비해 타인의 침입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또한 노마드로 ‘몰리는’ 배경에 사회구조적 문제가 있음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취약한 노인복지, 아마존으로 대표되는 긱 이코노미Gig Economy➌, 금융 자본주의의 폐단과 중산층을 무너뜨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 일각에서는 이런 문제를 축소했다며 영화를 비판한다.

 

나는 영화가 나름의 노력을 했다고 본다. 영화는 펀이 만난 다른 노마드(본인이 직접 본인을 연기하는 실재 노마드들이다)의 이야기를 전하는 데 적잖은 비중을 둔다. 이들의 사연은 미국 사회의 문제를 단편적으로나마 구석구석 드러낸다. 다만 감독이 좀 더 강조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던 것이다. 노마드의 삶을 위해서는 결단이 필요하고 이를 수행하는 삶은 존엄하다는 것. 이 또한 삶의 여러 선택지 중 하나이며, 각자 자기 기질에 맞는 선택을 하여 끝내 삶을 사랑하라는 것.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허나 몰락한 ‘미국 백인 중산층’이 아니면 선택지가 줄어드는 현실을 떠올리자 꿈에서 깨어나는 기분이다. 그곳에 흑인 노마드는 없었다. 일자리 구하기의 어려움과 경찰의 과잉 대응 등의 배경이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어떨까? 차 타고 좋은 날씨를 찾아 떠나기엔 국토가 작고, 인구밀도가 적은 광활한 풍경을 만나기 어려우며, 무엇보다 한국 노인에게는 아마존의 캠퍼포스CamperForce➍ 같은 일자리마저 부족하다.

 

어느 정도 불편을 감수할지라도 존엄할 수 있는 삶, 온기 있는 관계망과 꺼내볼 수 있는 아름다운 기억들이 자리한 ‘홈’이 있는 노후를 희망한다. 한국에서도 가능한, 더 많은 선택지를 목격하고 싶다. 나는 삶의 향기를 가진 노인이 될 수 있을까? 

 

 승합차의 일종

 휘발유 등 액체량을 가리키는 단위

 기업이 필요에 따라 계약직 혹은 임시직으로 고용하는 경향이 커지는 경제 상황을 일컫는 용어

 크리스마스 성수기에 폭증하는 물량을 감당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노마드 노동자들을 모집하는 프로그램 

 


글. 최서윤 작가

〈월간잉여〉 편집장으로 많이들 기억해주시는데 휴간한 지 오래됐습니다. 가장 최근 활동은 단편영화 〈망치〉를 연출한 것입니다. 화가 나서 만든 영화입니다. 저는 화가 나면 창작물로 표출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인가 봅니다. 종종 칼럼이나 리뷰로 생각과 감정을 나누기도 합니다. 저서로 『불만의 품격』이 있습니다.

 

※ 바로 잡습니다

지난 호(2021년 6월호) 〈보자〉에서 “특히 진아가 부친에게 사과하는 장면에서”를 “특히 진아가 희진에게 사과하는 장면에서”로 바로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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