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자] 일이 나를 부를 때,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일이 나를 부를 때,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일을 하고 있는 이가 일을 한다는 걸 자각하는 일은 의외로 쉽지 않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습관처럼 일터에 나가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에는 어제가 오늘인지 오늘이 내일인지 모르는 채로 같은 날을 반복하기 십상이다. 아주 기쁘거나 아주 슬플 때, 희망이 차오르거나 절망에 휩싸일 때에야 비로소 일이 무엇인지 느끼고 되새기게 된다. 그래서 일에 대한 감상과 생각은 대체로 편향되며, 현실에서 마주하는 일의 장면과 광경은 따라서 극단적이다.

 

얼마 전 10년 넘게 다니던 일터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다루는 대상은 책이지만 파는 일에서 만드는 일로 상황이 바뀌었고 함께 일하는 이들은 당연히 모두 달라졌다. 그럼에도 내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묻는다면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일지, 나를 바꾸려 하지 않기 때문일지,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다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일지, 아니면 이전에도 일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지. 만나는 이들마다 달라진 일을 묻고, 일터를 옮긴다니 얼굴 보며 인사 나누자는 말을 건네는 걸 보면, 커다란 변화이자 중요한 시기라는 생각은 든다. 일에 대한 책이 눈에 들어온 까닭이다. 역시 편향과 극단의 상황에서 마주한 일과 책이겠다.

 

자신을 지키는 최소한의 방법

 

하나의 문제를 다양한 시선으로 풀어내는 인문잡지 「한편」 5호의 주제는 ‘일’이다. 펴낸이의 말처럼 일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많고 너무 적다. 그래서 궁금했다. 우리가 정의하고 상상하는 일의 범위와 내용은 무엇이고, 지금 한국 사회에서 더욱 집중해서 살펴봐야 할 일의 상황과 장면은 무엇인지, 일로부터 소외되지 않으면서 매몰되지도 않을 적정 거리와 태도는 무엇일지 말이다. 이 책에는 앞서 나열한 궁금증이 차례로 담겨 있었고, 지금 당장 일에 대해 한 권의 책을 권해보라고 한다면 주저 않고 이 책을 건네고 싶다.

 

그 가운데 한 편의 글을 다시 고르라면 최하란의 ‘직장에서의 셀프 디펜스’를 꼽겠다. 물론 일터에서의 안전과 건강은 구조와 제도, 다시 말해 사회와 회사가 보장하고 제공해야 하지만,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폭력 상황을 우선 대처하고 벗어나는 기술은 ‘자신을 지키는 최소한의 방법’이겠다. 위기의 순간 나도 모르게 반응하는 몸과 그에 따라 이어지는 생각의 패턴은 자신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작동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응하려면 “망치, 드라이버, 펜치의 사용법을” 배우듯 “손을 들어 방어 자세를 취하고, 단순하게 짧게 말하고,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는 셀프 디펜스의 기술”을 배워야 한다. 더불어 이는 “반드시 정당하고 최대한 적법하게” 이루어져야만 한다. 그래서 학습과 연습이 필요한데, 이 글이 최소한의 가이드가 되어줄 것이다.

 

월간참여사회 2021년 7-8월호 (통권 287호)한편 5호 : 일 | 민음사 편집부 | 민음사

한국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성인의 평균적 하루는 대략 이렇다. 수면, 식사 등 생리 현상을 위한 생활시간이 11시간, 일 관련 시간 8시간, 가사시간 2시간, 자유시간 3시간. 한 사람의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은 자유시간의 양과 질에 좌우된다. 이러한 자유시간의 확보 여부는 생존을 위해 더 이상 줄일 수 없는 생활시간을 빼면, 24시간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점유한 일 관련 시간에 따라 결정된다. 이 시간을 줄이지 못할 뿐더러, 오히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나는데도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라이프스타일이 바로 ‘과로’다.

 

 

 

 

 

모두를 지키는 최대한의 방법

 

노동은 위험하고 고통스럽다. 삶도 그러하다. 그럼에도 해내고 살아내는 까닭은 노동과 삶에 대한 존중이다. 위험하고 고통스러우니 참고 견디라는 게 아니라, 위험과 고통을 키우지 않으면서 공감하고 위로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찾아보자는 제안이다. 이 책은 그 시작 가운데 하나로 고통에 이름을 붙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름이 없다는 건 고통의 상황과 원인을 알지 못한다는 의미일 터, 고통이 어디에서 시작되어 누구에게 이르는지 알아내고 드러내는 것은 노동의 위험과 고통을 줄이는 마땅한 출발점이다.

 

그렇다면 도착점은 무엇이고 어떻게 이를 수 있을까? 핵심은 노동자에 대한 존중이다. 이 존중은 기업으로부터, 국가로부터, 시민으로부터 입체적이고 근원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책에는 존중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을 때 벌어지는 노동의 위험과 고통이 순서대로 소개돼 있다. 구체적인 장면을 언급하지 않는 이유는 책에 들어서기 전 각자가 상상해보길 바라서다. 이어지는 질문을 차례대로 떠올려보면 되겠다. “저 노동자는 저 작업장에서 평생토록 일해도 좋겠는가? 나는 저 작업장에서 평생토록 일해도 좋겠는가? 내 아들 딸이 저 작업장에서 평생토록 일해도 좋겠는가?”

 

월간참여사회 2021년 7-8월호 (통권 287호)고통에 이름을 붙이는 사람들 – 일터에서의 사고와 죽음, 그에 맞선 싸움의 기록 | 노동환경건강연구소 | 포도밭출판사

노동자가 아프다고 말하려면 용기를 내야 한다. 노동자가 아프다고 말할 때 왜 아픈지 묻고 치료해주면 좋겠지만, 일 때문에 아픈 게 맞느냐고 의심부터 하고 결국 외면하는 것이 이른바 세상의 ‘상식’이 됐다. 아픔을 나눌 수 없는 노동자는 눈치 보며 견디다가 다치고 병들고 죽는다. 물론 법은 있다. 고용하는 자의 책임과 고용된 자의 권리를 법에 두었으나 책임은 너무 가볍고 권리는 너무 멀다.

 

 

 

 

 

나의 일을 지키는 나만의 방법

 

어떤 상상이든 이야기는 결국 나의 노동에서 출발하는 게 아닐까 싶다. 마지막 책은 편집, 디자인, 인쇄, 제본, 영업, 서점, 비평 등 책을 만들고 팔고 알리는 사람들이 읽는 사람에게 전하는 자기 일의 정체와 지향을 담고 있다. 

 

출판사에서 책을 만들다가 책을 파는 온라인 서점으로 그리고 다시 출판사로 자리를 옮긴 나에게는 이 책이 편안하고 안전한 출발점이 되어줄 듯하다. 꼭 책이 아니더라도 각자에게 어울리는 출발점을 찾아보기를, 만나기를, 그리하여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더불어 각자의 출발점이 어디든지 일하는 모두가 만나는 곳을 즐겁게 상상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 여정이 ‘모두를 지키는 최대한의 방법’에 이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월간참여사회 2021년 7-8월호 (통권 287호)책이라는 선물 – 책을 만들고 팔고 알리는 사람들이 읽는 사람에게 | 가사이 루미코 외 | 유유

여러분이 사는 책, 서점에서 집어드는 책은 1000권이 아니라 1권입니다. 인쇄된 책이 100권이냐 1000권이냐 혹은 1만 권이냐 하는 것은 독자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독자에게는 손에 든 1권이 전부입니다. 저자도 편집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가능하면 대량생산이 아니라 한 권 한 권 정성을 쏟아 만들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생산자는 이런 의식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1000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1권을 1000번 만드는 일.

 

 

 

 

 


글. 박태근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온라인서점에서 인문MD로 일했습니다.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 연구원으로 출판계에 필요한 이야기를 나누며, 여러 매체에서 책을 소개하는 목소리를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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