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0년 01월 2010-01-01   1397

참여사회가 눈여겨본 일_끝나지 않은 한국전쟁

남북공동경비구역 (JSA : Joint Security Area)

끝나지 않은 한국전쟁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지난 100년 동안 우리의 머릿속에서 사라질 수 없는 수많은 사건들이 있었다. 정확히 100년 전에 있었던 경술국치가 그 하나요, 60년 전에 발발했던 한국전쟁, 50년 전에 일어났던 4·19 혁명, 40년 전의 전태일 분신 사건, 30년 전에 있었던 광주민주항쟁, 그리고 10년 전에 있었던 6·15 공동성명.

이 모든 사건들이 한국현대사에서 지워질 수 없는 굵직굵직한 의미를 갖는 사건들이지만, 그 중에서도 한국전쟁은 우리 역사에서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는 비단 한국전쟁이 한국사뿐만 아니라 세계사에서도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60년이 지난 지금에도 전쟁이 완전히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뿌리깊은 적대의식, 마음속의 전쟁

대체로 전쟁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으로 끝난 것으로 기억되고 있다. 전쟁의 당사국이었던 유엔군과 공산군이 서명하였고, 이로 인해 양측 간의 전면전이 끝났기 때문이다. 이후 군사분계선이 그어졌고,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과 북으로 2km를 비무장지대로 하여 더 이상 전면전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전쟁은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2006년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할 경우 전쟁을 완전히 끝낼 수 있다고 말했던 것처럼 지금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정전협정 이전과 같은 전면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왜 전쟁은 계속되고 있는 것일까?
정전협정은 그 전문에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국제연합군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인민군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사령원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하기의 서명자들은 쌍방에 막대한 고통과 유혈을 초래한 한국충돌을 정지시키기 위하여, 최후적인 평화적 해결이 달성될 때까지 한국에서의 적대행위와 일체 무력행위의 완전한 정지를 보장하는 정전을 확립할 목적으로 하기 조항에 기재된 정전조건과 규정을 접수하며 또 그 제약과 통제를 받는 데 개별적으로나 공동으로나 또는 상호간에 동의한다. 이 조건과 규정의 의도는 순전히 군사적 성질에 속하는 것이며 이는 오직 한국에서의 교전쌍방에만 적용한다.”

여기에서 두 가지 중요한 문구가 있다. 하나는 ‘최후적인 평화적 해결이 달성될 때까지’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순전히 군사적인 성질에 속하는 것’이라는 규정이다. 이 두 문구는 정전협정이 ‘최후적인 평화’가 아니며 단지 ‘군사적인’ 성격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즉 ‘적대행위와 일체 무력행위의 완전한 정지’를 목적으로 하지만, 이것만으로 평화가 달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정전협정의 전문에 나타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조항이 있는데도 전후 60년 동안 또 다른 전쟁이 발발하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러나 지난 60년 동안 한반도에서 ‘평화’가 유지되었다는 것은 정전협정으로 전쟁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과 동일하게 또 다른 ‘신화’에 불과하다. 정전협정이 발효되었지만, 지난 60년 동안 남북 간의 전쟁은 끊이지 않았다.

하나의 예를 들기 위해 1967년으로 돌아가 보자. 1967년 1년간 비무장지대에서 발생한 남북한 간의 충돌 사건은 117회에 달했다. 3일에 한 건씩 비무장지대에서 충돌이 발생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비무장지대는 ‘비무장’이 절대 아닌 지역이다. 한국군을 포함한 유엔군 희생자는 122명에 달했으며, 군사분계선 남쪽에서 사살당한 북한군의 수는 200명이 넘었다. 1967년이 다른 해에 비하여 남북 간의 교전 수가 많은 해였다는 것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거의 전쟁 직전의 상황을 방불케 하는 것이었다.

남과 북이 기본합의서에 동의한 1991년 이후에는 상황이 좀 더 좋아졌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횟수는 줄었을지 모르지만, 1999년과 2002년의 서해교전은 전 국민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또한 북한은 1999년 유엔군이 일방적으로 선포하였지만, 묵시적으로 양측이 지키고 있었던 북방한계선을 거부하고 또 다른 북방한계선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2009년에 들어서는 더 이상 정전협정을 지키지 않겠다는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는 모두 정전협정의 불완전성 때문이었다. 정전협정 내에서 북방한계선을 규정하지 않았으며, 한반도 내에서 더 이상의 무기 증강을 막기 위한 조항들의 일부가 1950년대 중반 이후 무효화되었다. 이로 인해 남한에 있는 주한미군에 핵무기가 배치되었고, 1990년대 초 이후 소련의 핵우산으로부터 이탈하게 된 북한은 본격적으로 핵 개발에 나서게 되면서 한반도에서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게다가 정전협정에서 규정하고 있는 ‘정치회담’을 통한 완전한 전쟁 종결은 1954년의 제네바 회의 이후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군사적인 행동보다 더 중요하고 위협적인 것은 한반도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의 마음속에서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쟁이 끝났다고 믿고 있으면서도 실상 마음속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즉 남북한 상호 간의 적대의식이 아직까지도 남과 북의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정전협정서

남북갈등보다 더 심각한 남남갈등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반도가 둘로 나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었다. 백범 김구가 1948년 남북 지도자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38선을 넘으면서 만약 남과 북에서 분단 정부가 수립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닥칠 수도 있다고 경고했건만, 누구도 이 경고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 38선은 곧 사라질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전쟁은 남과 북 사이에 깊은 장벽을 쌓았다. 이제 서로가 함께 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내가 살기 위해서는 상대가 사라져야 하는 제로 섬 게임이 되었다. 지난 60년 동안 북한은 남한과 미국에 대한 비난과 내부의 위기의식 고조를 통해 정권을 유지해왔다. 밖으로부터의 위기만이 아니라 스스로 위기를 고조시킴으로서 사회적 통합을 억지로 유지했다.

남한 역시 마찬가지였다. 멸공에서 승공으로, 그리고 다시 반공으로 이어진 반북의식은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강고하게 계속되고 있다. 특히 남한의 극우세력들은 반북의식을 통해 사회의 변화를 시도하는 세력들에게 공격을 가하고 있다. 남북한 간의 평화적 공존이나 통일을 주장하는 세력들을 북한을 도와주는 세력으로 규정하고, 이들에 대한 무차별 공격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남북 갈등보다 남남 갈등이 더 심각하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객관적으로 인식되지 못한 한국전쟁

의식 속에서 전쟁이 계속되면서 지난 60년 동안 우리 사회가 한국전쟁에 대해 정상적으로 인식하고 기억할 수 있는 통로가 꽉 막혔다. 전쟁의 개전에 대해 역사적으로 접근하고자 했던 커밍스의 저작을 붉은색으로 칠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의 『한국전쟁의 기원』이 세계적으로 기념비적인 저작이 되는 동안 커밍스는 한국에서 ‘반한(反韓) 인사’로 낙인찍혔다. 전쟁을 객관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니 전쟁을 어떻게 완전히 끝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가능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이 문제는 한국전쟁을 포함한 한국현대사에 대한 인식과 분석을 정부가 독점하였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기도 했다. 1980년대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커밍스의 한국전쟁에 대한 기념비적 연구를 객관적으로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으며, 정부에 의해 왜곡된 인식들을 바꾸려는 학계의 노력도 적지 않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소위 극우세력들은 전쟁으로 인한 적대의식을 다시 한 번 강조함으로써 또 다른 왜곡을 만들어내려 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전쟁을 끝내기 위해 2년간 계속되었던 정전협상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지금까지도 대부분의 교과서들은 한국전쟁은 전쟁이 발발하고 나서 약 8개월 동안 진행되었던 남북한 간의 공방만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긴 기간 동안 전쟁을 끝내기 위한 협상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포로 문제를 비롯한 중요한 사안들이 모두 기억뿐만 아니라 분석의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그나마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배달의 기수’ 시간을 통해 고지전투에 대한 내용이 극화되었는데, 이제는 그나마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다. 아마도 ‘태극기 휘날리며’가 정전협상이 진행된 2년간 벌어진 전투를 가장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 같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지난 11월 미대사관 부근에서 '아프가니스탄 재파병 반대 시민단체 연석회의' 소속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아프가니스탄 점령 중단과 한국군의 재파병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잃어버린 ‘평화’에 대한 교훈

전쟁 기간에 있었던 남과 북에서의 정치적, 사회적 사건들은 교과서 속에서는 전혀 나타나지도 않는다. 전쟁이라는 행위가 인간들을 얼마나 비인간적으로 만드는가에 대해서는 감추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과거사 규명을 통해 이 문제의 아픈 상처를 치료하려고 했던 노력마저도 ‘정치적’으로 매도되면서 더 이상 진행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이를 통해 결국 전쟁을 통한 교훈은 ‘평화’를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무찌르는’ 것이 되어버렸다. 전쟁으로 인한 아픈 상처를 치료해주고 평화를 위한 방법을 찾기보다는 상대방을 적대시하는 것으로 모든 해법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평화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의 결여는 또 다른 부작용을 일으켰다. 즉 다른 나라의 전쟁에 한국군을 파병하는 데 대해 사회가 무감각한 상황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베트남에 파병할 때에도, 이라크에 파병할 때에도, 그리고 최근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재 파병이 논의될 때에도 ‘평화’의 문제보다도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에 더 많은 관심이 쏠렸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일본의 전쟁특수에 대해서는 배 아파하면서 다른 나라의 전쟁터에 파병을 함으로써 우리는 무엇을 얻을 것인가를 머릿속에서 계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는 지난 100년간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화두가 ‘평화’보다는 ‘성장’과 ‘근대화’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한국전쟁과 함께 그 전쟁이 완전히 끝나지 않음으로 인해서 ‘평화’에 대한 교훈이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담론이 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평화의 중요성에 대해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일본의 전쟁세대들이 우리보다도 한 발 더 앞서 있는지도 모른다. 남을 보고 손가락질을 하면서 정작 스스로는 남들로부터 손가락질 받을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 60년, 어떤 세상을 물려줄 것인가

한국현대사에서 세계사적인 평가와 한국사 내부에서의 평가가 판이하게 다른 두 가지 사건이 있다. 바로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이는 바로 전쟁과 평화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류가 추구하고 있고, 추구해야만 하는 가치와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가치 사이에서 괴리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6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세계사적 가치와 우리의 가치 사이에서 더 이상 괴리를 지속시켜서는 안 된다. 그리고 더 이상 전쟁이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끝나지 않은 전쟁은 세계사와 한국사 사이에서의 괴리를 지속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인한 피해도 컸지만, 전쟁이 완전히 끝나지 않음으로 인해서 입는 피해 역시 그에 못지않다. 통일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통일비용’만을 외치고 있지만, 그에 못지않은, 어쩌면 ‘통일비용’보다도 더 많은 ‘분단비용’을 생각해야 한다. 진정 성장과 안정을 동시에 원한다면 통일비용 이전에 분단비용을 먼저 계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한국전쟁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이 필요하다. 과연 이 전쟁은 왜 일어났는가? 이 전쟁은 왜 3년 동안이나 계속되었어야 했는가? 전쟁은 왜 끝나지 않았는가? 전쟁을 통해 우리는 무슨 교훈을 얻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객관적으로 답을 내놓아야 하며, 그 해답을 사회적으로 확산시켜야 한다. 즉 전쟁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 없이 미래의 평화를 위한 해답을 제시할 수 없으며, 사회적인 동의 없이 전쟁을 완전히 종식시키기 위한 기반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특정 사건으로부터 몇 년이 지났다고 아무리 기념한들 무엇 하겠는가? 그 사건으로부터 진정 얻어야 할 것들을 얻어내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지 않은가? 38선을 가운데 놓고 남과 북 사이에 심각한 교전이 벌어진 1949년 이듬해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해상의 군사분계선을 놓고 남과 북이 대치했던 2009년이 저물고 2010년이 왔다. 2010년에는 어떠한 일들이 일어날 것인가? 잃을 것이 없는 쪽과 너무도 잃을 것이 많은 쪽이 싸움을 하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까?

전쟁이 발발한 지 60년이 된 올해 우리의 다음 세대들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줄 것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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