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0년 01월 2010-01-01   1335

김용민이 만난 사람_”성장? 한가한 소리일 뿐 … 인류에겐 시간이 없다”

<참여사회> 1월호 ‘김용민이 만난 사람>’


“성장? 한가한 소리일뿐…
인류에겐 시간이 없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김용민 시사평론가 
사진 김영광 사진가


17대 대통령 선거를 한 달여 앞둔 2007년 11월 어느 날. 류우익 현 주중대사가 모 대학 교수에게 ‘MB의 국정운영 철학 프로듀싱’을 요청한다. 전문경영인(CEO) 출신 후보의 ‘철학 부재’를 메워달라는 ‘특명’과 함께” (<주간동아> 2008. 4. 1. 629호)

개업식에 필요하다며 내레이터 모델을 부르는 것이나, ‘남편의 뒤를 쫓아 달라’며 아내가 심부름센터에 의뢰하는 것도, 특정 법안 및 정책의 효율성을 사전 검증해달라며 연구기관에 시뮬레이션을 요청하는 것도 다 같은 ‘용역발주’이다. 그러나 현대 민주주의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는 나라 중에, ‘본인에게는 없으니, 국정 운영철학 하나 만들어 달라’는 요구를 한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철학의 부재는 필연적으로 사회 윤리적 가치에 대한 빈곤한 관념을 낳고, 이로 인해 사술邪術에 의존하는 정치를 부르게 된다. 이명박 대통령을 두고 하는 이야기이다.

멀쩡한 강을 죽은 강이라며 살리기라는 이름으로 죽이고, ‘양심’의 이름으로 15번이나 한 세종시 원안고수 약속을 깨끗하게 부도내는 거짓말을 일삼고, ‘장악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던 언론을 신문, 방송 그리고 인터넷까지 남김없이 장악하고, 본인에게 드리워진 온갖 범법 의혹을 권력 공학적 위계와 재치문답으로 돌파하면서 ‘법질서 확립’을 목청 높이는 기막힌 시대. 국민은 거듭 거짓된 권력집단에 저항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서슬은 매우 푸르다. 박물관에 들어간 줄 알았던 공안이라는 이름의 창과 방패는 다시 광장으로 기어 나와 비판적 시민을 겁박하고 있다. 다행히 망나니도 한철, 사악한 권력에게 헌법은 기한 없는 권력을 주지는 않았다. 유혈이 낭자한 이 나라 민주주의의 유일한 희망은 바로 선거인데 올 6월에 예정돼 있다.

그러나 관심은 이명박의 시대가 끝난 이후이다. 잔여 임기 3년이 소진돼 운 좋게 개혁 진영이 집권한다면 MB가 난마처럼 얽은 매듭이 저절로 풀릴까. 그때 되면 ‘사람 사는 세상’이 의도하지 않아도 실현될까. 요 근래 ‘진보의 좌표’를 놓고 고민의 논제들이 개혁진영에서 쏟아지고 있다. 과연 개혁진영은 진보적 가치를 실현할 이념과 능력이 있는가. 두 번 다시 수구세력에게 이 나라의 운명이 넘어가지 않도록 막아낼 ‘실력’이 있는가.

페인트 빛깔이 찬연한 이명박식 녹색의 허구를 누구보다도 날카롭게 지탄하며, 진보적 가치의 발현과 공동체적 미래의 개척에 내실 있는 의제를 제시하는 ‘참 녹색 논사論士’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그로부터 21세기의 10년을 보낸 이 시점에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들어봤다. 인터뷰는 2009년 12월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필운동 녹색평론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자원과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소비해야 가능한 ‘성장’


현 정부는 지속적으로 ‘녹색성장’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김종철 발행인은 ‘녹색’은 ‘성장’과 공존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심지어 ‘성장’을 ‘민주주의의 적’ ‘국민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으로 규정했다. 정확한 뜻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성장은 자원과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소비해야만 가능하다. 소비하는 양이 커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녹색과 어울릴 수 없다. 녹색적 가치는 자원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시스템을 근원적으로 변화시켜서 (환경선순환적인) 경제시스템으로 가야 한다고 믿는 신념체계이다. 그런데 어떻게 성장과 녹색이 공존한다는 것인가. 따라서 ‘녹색성장’은 말장난에 그치는 것이다. 성장은 민주주의와도 배치된다.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은 공생의 논리를 기반으로 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는 사회사상이다. 역사적으로 경험해봤지만, 성장은 부익부 빈익빈 즉 사회 양극화를 점점 심화시킨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서 ‘성장’의 논리를 배척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고들 말한다. 이 문제는 새 좌표를 놓고 어떻게 설정할까 하는 진보세력의 고민이기도 하다. 현실 정치에서는 어떤 적용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

아주 한가로운 소리이다. 지금 인류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고도 판단하는 이들이 많다. 말하자면 낡은 국가논리 및 경제성장 논리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대중의 정서가 그러하니’, ‘유권자의 표를 얻을 가능성 적으니’ 그냥 닫아버리자고 하면 우리 모두 또 우리 자손 모두가 직면할 현실은 지옥이라고 본다.



혹시 북유럽식 모델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가 가능할까.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마지막까지 주시했고, 진보계열에 있는 이들 상당수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유러피언 드림’이다. ‘유러피언 드림’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흔히들 ‘북유럽 국가들이 세금을 많이 거둬서 복지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쓴다’고들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북유럽 모델을 지향하는 정당이 집권하더라도 중앙정부 중심의 정치를 개혁하지 않고 세금에 의존하는 상황으로 복지서비스를 강화해 무상으로 의료와 교육을 서비스한다면 어떨까.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잘 안 될 것이다. 북유럽에서는 의료나 교육 같은 것을 지방자치단체에서 관장하고 있다. 이게 핵심이다. 북유럽은 역사가 오래된 지방자치전통이 있다. 이걸 ‘코뮌commune’이라고 하는데.

인터뷰는 서울 종로구 필운동에 있는 녹색평론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사진은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오른쪽)과 필자 김용민 씨(왼쪽)




성장 논리 뛰어넘을 대안 마련돼야


이 정부가 북유럽은 고사하고 두바이를 본보기로 삼으려 하니 답답하다. 한편 4대강 예산을 놓고 각축을 벌이고 있다. 민주당은 4대강은 반대하면서도 영산강 개발에는 동조하는 모순을 나타내고 있다.

이 정부는 직전 정부보다 훨씬 더 머리가 좋아 교활하다. 사실 영산강은 낙동강, 금강과는 개념이 다르다. 그런데 이 정부는 4대강으로 뭉뚱그렸다. 영산강은 그동안 방치해왔기 때문에 사실 손봐야 한다. 반면 낙동강 사정은 나쁘지 않다. 금강도 그렇고. 이러다보니 이 정부는 영산강 개발하면서 영산강 정화에 찬성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4대강을 전폭적으로 반대할 수 없게끔 만들었다.


세종시 논란이 크다. 세종시와 4대강은 이명박 정부의 운명을 좌우할 뜨거운 감자가 됐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둘 다 토건 논리라는 의미의 색다른 공통점도 있다. 세종시의 토건은 괜찮다고 봐야 하나?

청와대나 핵심부문은 꼼짝 못하게 하면서, 다른 부처는 갈 수 있게끔 한다? 반쪽 도시의 출현이다. 혹자는 행정도시가 그쪽에 세워져도 발달한 정보통신 때문에 공무 효율성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억지이다.



수정론 찬성처럼 들린다.

녹색적 가치로 보자는 이야기이다. 중앙정부 부서를 대폭 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지방분권을 해야 한다. 지방분권 또 균형발전을 위해서는 또한 농업이 살아 있어야 한다. 어느 나라든지 지역경제의 핵심은 농업이다. 이는 기후변화시대에 맞는 방식이기도 하다. 결국 지금보다 훨씬 더 간소하게 생활을 할 각오를 하면서 우리 생존의 기초인 농업을 살리어 온 나라가 고르게 균형발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산업화, 정보화의 시대를 지나고 있는데 농경사회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는 생경하다.

얼마 전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시민들과 만난 자리에서 일문일답을 했다. 청중 한 사람이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할 무렵에 500만이던 농민이 퇴임할 무렵 350만으로 줄었다. 농업에 대한 홀대 탓이다. 당시 총리직을 수행했던 분으로서 답해 달라.” 이때 한명숙 전 총리의 이야기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죄송하다. 막상 국정을 운영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농업을 중시할 수 있는 여유가 전혀 없더라. 경제 성장 수치를 조금이라도 올리지 않으면 당장 권력이 붕괴될 상황이었다. 우리는 여기에 예민해 있었다.” 차기에 정권이 바뀌어 사회개혁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 지지하는 정당이 청와대를 통할한다고 치자. 한명숙 전 총리 논리라면 사회개혁의 가능성은 없다. 이를 극복할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



거짓말하는 자들의 성공시대

이명박 대통령의 사술이 극에 달한다. 눈치도 안 본다. 마치 괴벨스(독일 히틀러시대 나치 선전장관)가 ‘민중은 거짓을 계속 반복할 때 결국 믿는다’고 한 원리에 충실한 것 같다.


그런 측면이 있다. 수두룩한 반대 논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녹색성장’이란 구호를 뚝심 있게 반복하니까 이젠 사람들이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있다. 외국도 그리 믿고 있다. 외국으로 흘러가는 홍보자료는 정부가 돈 내고 만들어 나가는 게 압도적으로 다수이다. 양식 있는 진보적 국제 신문인 영국 <가디언>에 기고한 앤터니 기든스Anthony Giddens, 영국 사회이론가가 몇 달 전에 ‘새로운 녹색뉴딜 시대가 와야 한다’며 대표적 모범사례로 사우스코리아를 들었다. 우리는 이명박 정부의 환경정책의 허와 실을 알지만, 자료만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는 국외에서는 강을 정비하고 살린다니 당연히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생산해낸 국외 전문가들의 ‘찬사’를 정부는 다시 끌어와 국민을 설득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런 양식이 반복되면 뻔한 거짓말도 믿게 돼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격國格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거짓말하는 지도자의 국격 운운은 국민의 마음을 서글프게 한다.

거짓말이 몸에 밴 사람이다. 우리같이 문학했던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이 정부가 저지른 죄 중에 언어를 타락케 한 죄가 매우 크다. 언어가 타락하면 아무것도 안 된다. 교육을 왜 하는가. 올바른 말을 하기 위한 것 아닌가. 그런데 이 정권 대에는 올바른 말을 하면 할수록 속 터지게 돼 있다. 반면 권력에 아첨하기 위해 불사하는 거짓말은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서민 경제를 도탄에 빠뜨리고 국가재정을 악화시키고 자연을 황폐하게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흉악한 범죄이다. 교육 및 문화 등 온갖 가치를 타락하게 만들고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필연적 공동운명체, 노동자와 농민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가 빈사상태에 빠졌다. 여러 단체들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기업 후원이 끊기거나 추진하려던 일이 취소되는 상황들이 생기고 있다.

시민운동에게 호의적인 정부라는 게 반드시 시민운동의 장래를 위해 좋은 게 아니다. 긴장된 관계가 필요하다. 물론 정부가 시민단체를 상대로 비열하게 뒤를 캐고 핍박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말하기 조심스런 부분이 있지만,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이런 위기상황을 맞은 데에는 그동안 시민운동단체의 책임이 크다. 풀뿌리 민중들과 긴밀히 결합해서 사회 저변에서 활발히 엮어 나가는 노력을 해야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토대가 강해진다. 시민운동이 바르게 자기 길을 걸어오고 시민 속으로 들어가는 노력을 10년 동안 지속했다면 이명박 정권이 출범할 수 있었겠나. 시민운동가들의 시민운동이었던 과거를 돌아봐야 한다. 너무 단순화시켜 얘기했는지 모르겠다. 시민 없는 시민운동은 안 된다.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지역화폐, 로컬 푸드, 협동조합, 소액금융, 사회적 기업 같은 자주적 협동운동이 신자유주의 시대의 병폐를 해소할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어떻게 보나.

노동운동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노동운동의 문제점은 농민과 제휴를 못한 점이다. 근대에는 노동운동이 농촌과 같은 기반이 있었다. 그때 노동운동은 활기를 띠었고 급진적이었다. 그러나 농촌과 유대가 완전히 끊어지고 난 뒤에는 체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자본가와 일심동체가 돼 이익을 공유했다. 그러다가 경제가 매끄럽게 돌아가지 않을 때에 노동자들이 투쟁을 해봐야 한계가 있다. 자본가는 노동자들이 돌아갈 데가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까 목을 마음대로 치며 비정규직으로 돌리기도 한다. 노와 농은 시대적 필연적으로 공동 운명체가 돼야 한다고 본다.




자기를 버려야 우리의 살길이 열린다

자발적 인류 멸종 운동The Voluntary Human Extinction Movement : VHEMT이 화제가 되고 있다. 저 출산 고민 말고 자연스럽게 인류가 멸종하도록(?) 내버려두자는 운동인데. 저 출산 대책의 대안은 다산多産이라는 단선적인 해법을 뛰어넘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출산율 높이기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아기를 안 가지려고 하는 상황은 극복해야 한다. 지금은 도무지 애를 낳을 수도, 기를 수도 없다. 그만큼 비인간적인 사회가 됐다. 그러나 인구 줄어들면 큰일이고 재앙이라는 식의 발상은 잘못이다. 우리 강토에는 생태적으로 적합한 인구 수준이 있을 것이다. 한반도에 사는 사람이 1억 넘어서야 되겠나. 생태학적 발자국(ecological footprints, 한 사람이 밟고 선 땅의 넓이)이라는 말이 있다. 생태학적 관점으로 볼 때, 사람의 발자국이 너무 많으면 사람의 가치가 떨어진다.



마지막으로 2010년 한국 사회 전망을 부탁한다.

관건은 사회정의와 평화, 녹색의 가치를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버려야 한다는 점이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오만과 권력욕은 지금 우리를 짓누르는 (MB의) 지배논리와 같은 것이다. 자기를 끊임없이 비우지 않으면 국가의 인간화, 자본의 인간화라는 숙제를 풀 수 없다. 사회개혁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이론, 자기주장, 개성이 강하다. 개인적으로는 다 우수한데 왜 이리 잘 안 될까. 결집 그리고 연대를 안 하니까 그렇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이 가르침이 우리의 살길이다. “밑으로 들어가서 엮어라.”









2010년 1월호부터 시사평론가 김용민 씨가 ‘김용민이 만난 사람’으로 독자여러분을 찾아갑니다. 2008년부터 2년간 인터뷰를 맡아 수고하신 이제훈 <한겨레>통일외교팀장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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