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4년 11월 2014-11-03   1621

[통인] 시간이 걸릴지언정, 원칙과 상식대로 – 권은희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

시간이 걸릴지언정,원칙과 상식대로

권은희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

박유안 

사진 박영록

참여사회 2014년 11월호 (통권 216호)

지난 50여 년 간의 압축성장 과정에서 우리가 잃어버렸거나 혹은 일궈내지 못한 것들 중 지금 우리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것은 ‘원칙과 상식’ 아닐까. “빨리빨리”가 사회의 기본 조직원리가 되고, 돈으로 모든 게 평가받는 원색적 자본주의로의 급속한 도약, 그 속에서 원칙은 X나 줘버려야 할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렸고, 상식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에서 상식 아닌 것으로 전락해버렸다. 원칙과 상식을 지키려는 사람이 드문 세상이 되었기에 오히려 원칙과 상식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인간이 더욱 빛나는 세상인지도 모르겠다. 

이번 통인 인터뷰의 주인공 권은희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이야말로 그런 사람이 아닐까 싶다. 사법고시 합격 후 법조인으로 활약하다, 경찰에 몸담고 최초의 여성 수사 과장으로 9년 넘게 활약한 베테랑, 거기다 수서경찰서 수사 과장이던 2012년에 수사한 국정원 댓글 사건 당시 “법과 수사 절차의 준수”라는 자신의 원칙에 어긋나는 외압을 폭로해 공익제보자가 되었다가, 이제는 3개월 차 새내기 야당 국회의원이 된 인물이니까. 여느 마흔한 살 또래들과는 달리 사뭇 숨 가쁜 삶을 경험하고 있는 권 의원의 힘은 과연 무엇일까? 공익제보자 권은희가 아닌 국회의원 권은희에게 우리는 어떤 기대를 걸어야 하는 걸까?

국정감사로 한창 바쁜 와중에 짬을 내준 권 의원을 만나 공익제보자에서 국회의원이 되기까지의 과정과 앞으로의 포부에 대해 물었다.

지난 7.30 재보선으로 국회의원이 되셨다. 게다가 국방위 소속이라니, 낯선 일 하느라 힘들지 않은가?

정치하는 건 좀 낯설지만, 국방위 소속으로 문제 진단하고 해결책 찾고 하는 일은 그리 낯설지 않다. 군 자체도 경찰 조직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9년 동안 수사 과장으로 일한 데서 오는 사태 진단과 처방 능력도 도움이 된다. 

그럼, 처음에 경찰 조직에 들어갈 땐 낯설지 않았나?

사실은 그때가 낯설었다. 경찰조직이 규모가 워낙 크고 조직원이 많아, 의사소통 방식이 명령과 지시, 그에 따르고 결과를 통보하는 시스템이어서, 그 이전의 대화하고 알려주고 토론하던 내 소통 방식과 너무 달랐다. 그런 조직의 원칙이 처음엔 낯설었지만, 나 나름의 대화와 토론 방식을 접목해서 적응해가며 동료들과 아주 즐겁게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국정원 댓글 사건 와중에 김용판 당시 서울경찰청장의 압수수색을 하지 말라는 외압이나, 대선 직전 중간수사 결과 축소 발표 의혹을 제기하는 등, 본인의 기준에 어긋나는 부당한 일을 당하고 이에 맞서고자 했다.

맞서려고 작정한 것이 아니었다. 맞선다, 투쟁한다, 저항한다는 생각보다는, 수사는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내가 늘 해왔던,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는 나의 원칙의 연장선상에서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할 일이었다. 

수사지휘를 하고 보고를 받다 보면 아무리 대화하고 소통하면서 문제를 잘 풀려고 해도, 부당한 일을 겪거나 곤란한 경우가 생기는데, 그럴 때면 수사회의를 자주 해 수사 방향을 설정했고, 내가 명확하게 서면으로 업무지시를 해줘서 동료들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이후 사태가 진행되면서 나한테는 당연한 일인데 사회에서는 저항으로 보는구나, 그런 걸 느꼈다. “그건 저항이야, 저항은 용서하기 힘들어”라는 인식에 부딪히면서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나에게는 원칙일 뿐인데, 사회와 조직에게는 저항으로 비치는 현실. 특히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지닌 국가기관 안에서의 이런 비뚤어진 관료제의 자기방어는 우리 사회를 곪게 만드는 뿌리 깊은 병폐 중의 하나라는 게 다시 확인된다.

권 의원의 집무실 책상 바로 옆에는 공익제보 당시 마음고생이 심할 때 여고생들이 보내주었다는 알록달록한 격려 메시지가 커다란 액자 속에 걸려 있다. 권 의원은 그저 “제가 좋아하는 것이라서” 거기 걸어두었다고 했지만, 그때를 잊지 않겠다는 굳은 각오가 물신 느껴져서 마음이 더욱 뭉클했다. 그 여고생들은 이제 대학생이 되어 국회의원이 된 권은희를 열심히 지켜보고 있을 터이다. 

참여사회 2014년 11월호 (통권 216호)
참여사회 2014년 11월호 (통권 216호)
2013 공익제보자의 밤 의인상 수상과 시민들이 보낸 응원 메세지

그때, 참여연대와 오마이뉴스에서 1,700여 명의 응원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당연한 일을 했지만 힘든 시간이기도 했다. 참여연대를 비롯해 오마이뉴스, 경실련,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많은 시민단체와 청소년들, 시민 여러분들이 큰 응원을 해줬는데, 그 응원은 “혼자 싸우게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따뜻한 포옹이고 어깨동무이고 위로였다. 내가 지키려고 한 법의 논리가 시민들의 상식과도 일치한다는 걸 확인했다는 점에서 내게 큰 자신감을 주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 잊지 않으려 한다. 

올해 2월 김용판 서울지방경찰청장 무죄판결에 이어, 최근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해서도 선거법 위반 무죄 판결이 내려졌는데?

어느 법조인이 말한 ‘지록위마指鹿爲馬,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함의 판결’이라는 데 공감한다. 권력을 가진 국가기관은 더욱 엄격한 법의 잣대와 심판을 받아야 하지만 이번 판결은 그렇지 못했다. 사건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심정도 허탈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황우석 논문 조작과 관련해 공익제보를 한 류영준 씨는 제보한 지 10년 만에 대법원에서 황우석 박사의 최종 유죄 판결을 받았다. 국정원 대선개입도 끝내 진실을 밝힐 수 있을까?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의 재판 결과가 상급법원에서도 유지된다면, 앞으로 권력을 가진 국가기관의 범죄 은폐 시도가 잇따를 것이다. 또 부실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수사기관에 면죄부를 주는 결과가 빚어진다. 이는 국가기관과 국민 사이에 심각한 형사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상급법원에서 이러한 문제를 직시하고 반드시 진실을 밝혀야 할 것이다.

짧은 기간에 공익제보자에서 국회의원으로 변신했다. 출마 결심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

경찰 퇴직 후 중단된 학업을 이어가고, 시민사회활동을 하려고도 계획했다. 공익제보자로서 나에게 주어진 일, 내가 해야 할 일은 당시 분명했다. 출마 제안을 받은 뒤, 내가 그런 일들을 하는 데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까를 고민했다. 내 문제의식을 입법적으로 풀어갈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출마할 수 있었다. 당시 댓글 사건을 지휘하다 경질된 윤석열 팀장님과 특별수사팀들 소식을 가끔씩 지면을 통해 접하면 가슴이 따듯해지고 세상이 살 만한 것처럼, 좀 덜 힘든 것처럼 느끼곤 한다. 나에게 기대하는 모습도 그런 게 아니었을까를 생각하면 출마 선택이 송구스럽긴 하지만, 두 가지 선택지 중 출마가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두 가지라면, 나머지 선택지는 무엇이었나?

공익제보자다. 저와 비슷한 장진수 주무관이라든지 다른 분들의 삶이 장기적으로 얼마나 피폐해졌는지 잘 안다. 반면 공익제보자가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보여드림으로써, 공익의 가치가 더 존중받고 공익제보자의 삶을 더 소중히 바라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공익제보자 권은희를 아끼던 사람들은 국회의원 권은희가 현실정치판에서 과연 잘 견디고, 방금 말한 그런 모범사례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염려하기도 했다.

현실정치에 뛰어들어 상처 입을 거라는 우려들이 무슨 말인지 예전에는 잘 몰랐다. 그러다 국회에 들어온 뒤 ‘아, 이래서 그런 걱정들을 하셨구나’ 짐작하게 된다. 하지만 걱정 안 하셔도 된다. 나는 기본에 충실할 것이고, 내가 하고싶은 일, 해야 할 일이 뚜렷하다. 현실정치에 스물스물 묻어 들어가는 일은 잘할 자신도, 그럴 생각도 없다. 하지만 내가 해야 할 일들은 정말 잘할 자신이 있다. 

이미 시민들의 직접행동으로부터 큰 힘을 얻은 바 있다. 앞으로의 의정활동에서 그런 시민 행동과의 연대는 어떻게 더 확대할 작정인지?

공직자가 어떤 행동을 보일 때 시민들의 마음이 닫히는지를 충분히 봐와서 잘 안다. 지금은 시민들의 마음이 닫혀 있어도, 기대에 부합하는 모습들을 꾸준히 보여드리려고 한다. 지금 장진수 전 주무관과 함께 고민하는 부분도 바로 그런 내용이다. 공익제보자 모임에 참석하면서 양심의 호루라기를 분 대가로 길고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분들이 참 많다는 걸 알았다. 공익제보자와 국민들이 가까워지고, ‘공익제보’가 우리 생활과 멀게 느껴지지 않도록 하는 방안들을 마련하고 싶었다. 그래서 장진수 전 주무관과 함께 일하기로 결심했다. 일부 언론이 이를 정치적으로 왜곡하는 기사를 썼는데, 이로 인해 장 전 주무관이 오히려 미안해해서 안타까울 뿐이다. 제보자의 삶이 이렇게나 힘겹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국감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장 전 주무관과 함께 공익제보 활성화와 제보자 지원 방안을 마련해 나가는 등 소신대로 일하면서, 시민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방법을 찾겠다.

국방위원회 소속으로 첫 국감을 맞았다. 군대에 아들, 딸을 보내 놓은 국민들의 근심이 깊은 요즈음 아닌가. 본인의 포부가 남다를 듯한데?

국방위 배정 후 제일 먼저 지난 국방위 회의록부터 챙겨 읽었다.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하자는 판단이었다. 흐름을 읽고 나니 근본적인 문제들이 보였다. 주로 정책에 집중하며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던 탓에 상대적으로 언론노출이 적어, 당선 후 권은희가 사라졌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고 들었다. 실효적인 정책대안들을 내놓기 위해 차분히 준비해온 것으로 생각해주셨으면 한다. 

경찰에 있을 때 ‘시민’의 안전과 인권을 지키는 일을 했듯, 국방위에서는 ‘제복 입은 시민’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의정활동을 해나갈 작정이다. 국정감사를 치러보니, 군 조직이 경찰조직과 비슷한 부분도 꽤 있어 큰 어려움은 없는 편이다. 어떤 부분을 정책적으로 고치고 노력해나가야 할지도 보인다. 사법적으로 판단할 부분은 현재 진행 중이니까, 주로 군 내부의 제도 보완책들을 다각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이제까지는 국회에서 주로 군사법제도의 개혁 논의만 있었고, 헌병수사와 관련한 제도 개혁에는 크게 관심을 못 기울였다. 가령, 일련의 군대 내 인권 침해 사건과 관련하여 헌병 수사의 독립성과 공정성이 내부적으로 확보되어야 한다. 외부적으로는 헌병 활동에 대한 법령 근거 확보를 위해 법 개정이 필요하다. 국방부 차원에서도 인권에 대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 인권국이 신설되어, 기존 3개 과에서 땜질식으로 진행되는 인권 관련 교육, 감시, 사후 보호, 처벌의 적정성 등을 다루게 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군사법제도도 개혁되어야 한다. 군검찰도 지휘부로부터 독립되어야 하고, 군사법원에서도 일반법원 수준의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 공정한 재판이 이뤄지게 해야 한다. 여군하사관 인사고과 관련 지휘관 배점을 축소해 객관화하는 방안도 요구하는 중이다.

권은희의 변신을 유심히 지켜보는 시민들이 많을 줄로 안다. 일을 참 야무지게 잘 할 것 같기는 한데, 그런 반가운 소식에 갈증을 느끼고 있는 여러 시민들에게 이를 널리 알리는 일은 또 다르다. 어떤 포부와 어떤 방법으로 임하실지 마지막으로 들려 달라. 

그게 참 힘들다. 나처럼 업무중심적인 사람을 만나 함께 일하는 보좌진들이 그래서 힘들다. 옷도 갈아입히려 들고 머리도 바꾸라 그러고. (웃음) 무엇보다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처음 경찰조직에 들어가 힘들 때도 내 모습 그대로 동료들을 만나기까지 시간이 몇 해 걸렸다. 그때 깨달은 게 “동료들과 일을 하며 속일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내 눈빛 하나, 내 단어 하나, 내 손끝 하나를 통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흡수해가더라. 결국 중요한 건 내 마음속이었다. 설령 설명이 잘못되거나 약간의 오해가 빚어졌어도, 시간이 걸릴 뿐 내 마음은 반드시 전달된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러고 나니 편해졌다. 내 마음만 잘 세우면 되니까. 내 마음은 헌법과 형사소송법과 형법으로 채워놓으면 되니까. (웃음)

미국 최초 한인 법조인의 인터뷰가 기억난다. 공직자의 자세는 세탁소 주인의 자세와 같다는 것이다. 고객의 옷을 잘 씻고 손질해 되돌려주는 게 세탁소 주인의 일인데, 이 주인이 고객의 옷을 마치 제 것인 양 입고 행세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공직자로서 내게 주어진 권한은 국민의 것이지, 내가 그 권한의 주인이 아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끝까지 할 것이다. 

법은 원칙과 기본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1조가 대표적인 원칙이요 기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원칙은 온갖 핑계 아래 구부러지기 십상이고, 기본은 현실의 장벽을 뛰어넘지 못하기 일쑤다. 원칙과 기본을 강조하는 한 법조인이 경찰공무원이 되었다가, 공익제보자가 되었다가, 이제 국회의원으로 변신해 자신의 원칙과 기본을 입법 활동으로 연결시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주인인 국민들에게 봉사하려고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에 미래가 있느냐는 질문에 권 의원은 “묘수는 없다. 지금 필요한 건 기본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라 답했다. 야당뿐만이 아니다. 대한민국 전체가 기본 아닌 것들의 아수라장이 된 지경 아닌가. 기본은 얕은수가 아니다.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어떤 기본과 원칙, 상식들로 채울지는 깊은 고민과 철학을 요구하는 숙제다. 야무진 손끝의 국회의원 권은희가 지닌 기본의 철학이 그가 표방하는 생활정치 속에서 더욱 웅숭깊어지기를 기대해본다. 대한민국이 지금 딱 필요로 하는 인재는 바로 그런 사람이니까. 

참여사회 2014년 11월호 (통권 216호)

미국 최초 한인 법조인의 인터뷰가 기억난다. 공직자의 자세는 세탁소 주인의 자세와 같다는 것이다. 고객의 옷을 잘 씻고 손질해 되돌려주는 게 세탁소 주인의 일인데, 이 주인이 고객의 옷을 마치 제 것인 양 입고 행세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공직자로서 내게 주어진 권한은 국민의 것이지, 내가 그 권한의 주인이 아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끝까지 할 것이다.

박유안

기웃기웃 번역가. 알트 출판사에서 일하는 그는 “까칠해도 친절하게”가 삶의 모토이며, 쟌 모리스를 번역한 작가로 기억되길 바란다. 밤엔 주로 땅고 추며 논다. 맘 놓고 춤 출 좋은 세상을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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