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5년 11월 2015-11-02   1255

[경제] 기회주의와 전체주의

기회주의와
전체주의

 

글. 정태인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소장
한미FTA 등 통상정책과 동아시아 공동체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경제학자. 요즘은 행동경제학과 진화심리학 등 인간이 협동할 조건과 협동을 촉진하는 정책에 관심이 많다.

 

팔색조 박정희를 어떻게 기술할 것인가

박근혜정부가 난데없이 국정 국사교과서를 만들겠다고 선언하는 바람에 세상이 시끄럽다. 그런데 난, 연이어 집필 거부를 선언한 역사학자들이 아니라 정부여당 편에 줄을 선 ‘지식인’들이 더 걱정이다.
도대체 이들은 현직 대통령의 아버지의 파란만장한 삶을 어떻게 기술할 것인가? 모두가 알다시피 1939년 23세의 문경서부소학교 교사 박정희는 ‘한목숨 다 바쳐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혈서를 보내 만주군관학교 담당자를 감격시켰다(<만주신문>). 그의 충성은 지극하여 조선인으로서 일본 육사에 전입하는 데 이르렀으나 불행하게도 일제는 패망하고 말았다.

고 박현채 선생에 따르면 박정희는 1948년 여순반란 사건이 일어났을 때, 남로당 육사 조직책이었다. 독립군을 토벌하던 관동군 소속이었지만 미美 군정이 조직한 국방경비대는 오히려 이들을 우대했다. 하지만 여순반란 사건에 뒤따른 대대적인 ‘숙군肅軍’으로 박정희는 체포되었다. 그는 남로당 조직도와 명단을 넘겨주고 목숨을 구걸했다.
6.25 전쟁은 그를 또 한 번 살려 냈고 그는 혼란을 틈타 쿠데타를 일으켰다. 5.16 직후인 1961년 9월 북한은, 박정희의 형 박상희의 동지였던 황태성(당시 무역부 차관)을 밀사로 내려 보냈다. 하지만 과거의 이력 때문에 미국의 의심을 받고 있던 박정희는 황태성을 체포하여 결국 사형시켰다. 이번엔 반공이 그의 생명줄이기 때문이다.

그는 적극적 친일부역자에서 남로당 조직책으로, 그리고 반공의 화신으로 팔색조처럼 변신했다. 이것이 한 치도 숨길 수 없는 역사다. 박정희의 삶에 일관된 것이 있다면 도저한 기회주의 하나뿐이다.

 

참여사회 2015년 11월호 (통권 228호)

경제위기와 전체주의

지금 경제는 매우 나쁘다. 대학원 시절부터 30년 동안 현실경제를 추적해온 내가 보기에 박정희의 죽음을 몰고 온 1979년 과잉투자위기, 최초의 정권교체를 초래한 1997년 외환위기 직전 상황만큼 심각하다. 어쩌면 앞의 두 위기보다 상황이 더 나쁘다. 원화절하(외부 평가절하)와 임금삭감 등(내부 평가절하)에 의해 수출을 늘려서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독야청청, 나홀로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던 미국경제도 2%대 성장으로 다시 주저앉았고, EU는 그리스 사태가 진정된 이후로도 여전히 진흙탕 속에서 헤매고 있으며, 2008년 이후 세계경제를 이끌어 왔던 신흥경제권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중국의 두 자릿수 성장률이 7% 이하로 떨어지면서 원자재 수출 국가들이 곧바로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이들 경제의 수입이 급격히 줄어든다면 한국의 수출이 극적으로 늘어날 수 있는 곳은 이제 세계 어디에도 없다.
최근 정부는 한편으로 노동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일반해고의 자유’를 도입했고, 다른 한편으로 부실기업의 ‘선제적 구조조정’에 나섰다. 하지만 어쩌랴. 현재의 상황에서 내부평가절하는 수출은 별로 늘리지 못한 채, 소비와 투자만 확실히 축소함으로써 경제를 더 깊숙한 위기로 몰아넣을 것이다.
박근혜정부의 유일한 정책은 빚내서 집사고, 빚내서 전세값을 올려주라는 것이었다. 가계부채에 의해 건설경기를 살리려는 이 정책은 이제 파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수출, 소비, 투자가 동시에 줄어드는 가운데 집값만 올라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발생한 쇼크가 내부의 금융위기로 이어지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박근혜 정부 탓이다.
이제 기회주의자들은 위기의 책임을 떠넘길 희생양을 찾고 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이제 새로운 희생양으로 등장할 것이다. 선거 시기의 NLL북방한계선 조작, 통합진보당 해산에 이어서 국정교과서 사태에 이르기까지 이 정권은 계속 ‘종북 좌빨’의 멍에를 쓴 희생양을 만들어냈다.
만일 우리가 ‘헬hell, 지옥 조선’ 아우성처럼 힘들다고 해서 누군가를 희생시킴으로서 자신의 책임을 벗어나려고 한다면 바로 전체주의(파시즘)는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 딸의 기회주의 역시 그 애비에 못지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대선 때의 약속 중 손바닥처럼 뒤집지 않은 것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기회주의는 언제나 경제위기를 매개로 전체주의로 연결된다. 우리가 스스로의 책임을 성찰하지 않고 남 탓을 한다면 우리는 또 한 번 경제위기와 전체주의의 늪에 빠질 것이다. 전체주의를 막는 것은 또한 경제를 살리는 길이기도 한다. ‘사회적 합의에 의한 구조조정’, ‘서민의 소득 증대에 의한 위기 극복’이 우리의 살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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