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7년 11월 2017-11-02   768

[환경] 보이지 않는, 그럼에도 소중한

보이지 않는,
그럼에도 소중한 

 

글. 장성익 환경저술가

녹색 잡지 <환경과생명>, <녹색평론> 등의 편집주간을 지냈다. 지금은 독립적인 전업 저술가로 일한다. 환경 분야를 비롯해 다양한 주제로 책 집필, 출판 기획, 강연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나무는 아래로도 자란다

흰색과 검은색을 섞으면 어떻게 되는가? 누구나 알다시피 회색이 만들어진다. 흰색과 검은색을 동시에 품고 있는 게 회색이다. 서로 반대되는 색이 어우러져 한 몸을 이룸으로써 새로운 색을 빚어낸다. 여기서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은 회색이다. 하지만 그 속에는 흰색과 검은색이 동시에 들어 있다. 둘 다 겉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 흰색과 검은색을 어떤 비율로 섞느냐에 따라 수많은 종류의 회색이 다채롭게 만들어진다. 그러니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눈에 보이는 회색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회색 자신이 아니라 겉으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흰색과 검은색이라고.

 

산소는 어디서 올까? 나무와 숲? 맞다. 하지만 절반만 맞다. 우리가 들이마시는 산소의 절반은 바다에서 온다. 바다 표면 가까운 데에 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식물 플랑크톤이 그 주인공이다. 1988년 미국의 어느 과학자가 세계에서 광합성을 하는 가장 작은 생물인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수가 많은 생물인 ‘프로클로로코커스’라는 식물 플랑크톤의 존재를 발표했다. 이것의 지름은 사람 머리카락의 50분의 1도 안 된다. 

 

이 티끌보다 작은 생물이 지구 광합성 활동의 절반을 떠맡고 있다. 지구상의 모든 식물을 합친 것만큼이나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에서 많이 빨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없다면 지구 이산화탄소 농도가 세 배나 짙어질 거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들이야말로 바다의 진정한 주인이자 왕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나무는 어떻게 자라는가? 하늘을 향해 위로 자란다고? 맞다. 하지만 이 또한 절반만 맞다. 나무는 아래로도 자란다. 눈에 보이는 것은 위로 자라는 나무다. 땅 밑으로 자라는 나무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나무도 뿌리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대지에 튼실하게 뿌리내린 나무라야만 위로도 높이 자랄 수 있다. 나무의 뿌리가 넓고 깊게 자라는 것은 땅을 많이 차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아래로 자라지 않으면 위로도 자라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아래로도 자라는 나무의 속성을 명심해야만 우리는 나무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 

 

‘시민 주권 실험’의 의미 

신고리 5 · 6호기 공론화위원회 활동이 마무리됐다. 중단됐던 신고리 5 · 6호기 건설 공사를 재개하되 장기적으로는 원전을 축소해야 한다는 게 공론조사 결과의 골자다. 시민들은 ‘현재’는 원전을, ‘미래’는 탈핵을 선택했다. 짧은 시야로는 눈에 보이는 것을, 긴 전망으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선택한 셈이다. 

 

건설 재개는 당면 현안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 결정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일종의 ‘현금’이다. 이에 견주어 원전 축소나 탈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장기 과제다. 탈핵에 담긴 가치들, 이를테면 안전성, 지속가능성,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 산업주의와 현대 과학기술 문명에 대한 성찰, 삶과 사회의 생태적 전환 등을 떠올려보라.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성과를 쉽사리 낼 수 있는 성질의 것들이 아니다. 이것들은 일종의 어음이다. 그것도 결제 시점이 아주 길거나 불명확한. 

 

건설 재개가 이번 결론의 핵심이었던 만큼 원전 반대 입장에서는 실망스러운 결과이리라. 나 또한 무척이나 아쉽다. 하지만 분명히 확인할 일이 있다. 이번에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의 소중한 일보 전진을 경험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소수의 정치인, 전문가, 관료 등이 아니라 일반 시민이 사회 전체의 관심사와 관련된 중대한 정책 결정을 직접 했다는 것은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이 점은 원전에 대한 입장이 어떠하든 낮게 평가할 일이 아니다. 

 

물론 편파적인 언론 환경, 만족스럽지 못한 자료 검증, 숙의의 수준을 높이는 데 꼭 필요한 시간의 부족, 진행된 여러 프로그램의 적실성 여부, 공론회위원회의 기계적 중립성 등 이런저런 문제가 불거졌다. 이들 문제는 향후 엄밀한 사후 평가를 거쳐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이번의 ‘시민 주권 실험’에 담긴 의미 자체를 부정하거나 폄하하긴 어렵다. 게다가 이번 공론화 활동은 시민참여단 선발과 숙의, 공론조사를 통해 원전 건설 중단 여부를 결정한 세계 첫 사례다.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하여

어차피 탈핵의 길은 멀고 험난하다. 그 길을 가는 데 필요한 힘은 근본적으로 시민과 민주주의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탈핵이든 무엇이든 시민과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하지 않고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는가? 신고리 5 · 6호기 건설 공사를 재개한다고 해서 탈핵의 길이 가로막히는 건 아니다. 마찬가지로, 공사를 중단한다고 해서 탈핵의 탄탄대로가 자동적으로 보장되는 건 아니다. 온전한 탈핵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민주주의와 시민 참여는 더욱 강화돼야 한다.

 

이번 공론조사 활동 과정에서 숙의가 거듭될수록 탈핵에 동조하는 의견이 늘어났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또한 시민참여단은 위원회가 제시한 항목 가운데 안전성에 6.7점으로 가장 높은 가치를 부여한 반면 전기요금을 5.7점으로 가장 후순위로 꼽았다. 안전성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고, 전기요금은 눈에 보이는 것이다. 안전성은 공동체 전체를 위한 공적인 것이고, 전기요금은 개인이 내는 사적인 것이다. 민주적 학습과 토론의 경험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보다 많이 축적되고 공적인 소통과 숙의 문화가 더욱 무르익는다면 보이지 않는 것의 소중함을 분별할 줄 아는 민주주의의 지혜 또한 훌쩍 자라지 않을까?

 

회색, 프로클로로코커스, 나무 이야기는 모두 보이지 않는 것에 담긴 의미와 가치를 전해준다. 우리 사회는 위로만 웃자란 ‘가분수 사회’다. 눈에 보이는 성장의 논리, 손에 잡히는 물질의 가치를 오랜 세월 지나치게 중시해온 결과다. 이번 건설 재개 결론에서도 이런 측면을 엿볼 수 있다. 이제 눈에 보이지 않는 성장, 곧 아래로의 성장을 도모할 때다. 관건은 역시, 더 많은 민주주의다. 더 깊고 높은 민주주의다. 때로는 시행착오와 우여곡절, 부작용과 후유증을 겪어야 하리라. 이번처럼 짙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감내해야 할 때도 있으리라.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끈질기게, 흔들림 없이 민주주의를 밀고나가야 한다. 이것이 보이지 않는, 그럼에도 너무나 소중한, 아래로 자라는 나무다. 언젠가 탈핵이라는 꽃이 아름답게 피어날 장소도 바로 이 민주주의의 나무일 것이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