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7년 11월 2017-11-02   942

[만남] 스무 살, 우리 이야기 – 장남일 회원

스무 살, 우리 이야기 

장남일 회원 

 

글. 호모아줌마데스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애 엄마. 2007년 참여연대 회원 가입과 동시에 자원활동 시작.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백인보’라는 코너에 비정규적으로 인터뷰 글을 쓰고 있음. 특기사항 : 합기도 빨간띠.

사진. 이영미 미디어홍보팀 간사 

 

장남일

 

우린 보통 상대와 대화를 나누며 성격을 파악한다. 

 

나: 요즘 관심 있는 게 뭐예요? 

그: 관심이 없다는 것 자체가 관심이에요. 난 왜 관심이 없을까….

나: 참좋다 활동을 통해서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요?

그: 계속 이뤄 왔는데, 굳이 뭐 더 이룰게 있나요.

나: 딸아이들에게 노래를 불러주시기도 하나요?

그: 그런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1시간짜리 대화를 이렇게 옮기고(악마적 편집?) 그의 전공이 ‘전산유체공학’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그’란 사람을 어떻게 상상할까? 

 

‘참좋다’는 줄임말입니다

참여연대에는 ‘참좋다’라는 노래패가 있다. 1997년에 시작되었으니 올해로 꼭 20년이 되었다. 원년멤버이자 현재 회장인 그에게서 20년 역사를 간략히 들었다. 

“제가 참좋다를 시작한 게 28살 때였거든요. 올해가 20주년이니까 저도 마흔여덟이 되었네요. 당시 친구가 참여연대에 간사로 있었는데 그 친구의 권유로 참여연대에 가입도 하고 노래를 좋아해서 참좋다 활동도 시작하고 그랬어요. 간사 일을 그만둔 그 친구도 여전히 참좋다 활동을 함께 하고 있죠.”

 

참좋다의 의미를 묻다가 처음으로 이 단어가 줄임말이라는 걸 알았다. 원래 이름은 ‘참여연대에서 좋은 노래 부를 사람 다 모이는 중’이란다. 

“처음 시작할 때는 20년이나 지속될 줄 몰랐죠. 예전에 우리를 가르쳤던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거든요, 49%는 노래고 51%는 마음이다. 마음을 나누는 것이 노래에 대한 열정보다 중요하다는 얘기죠. 저희 모임이 이렇게 길게 갈 수 있는 것도 마음을 우선하는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인 것 같아요.”

 

민중가요의 쇠락과 함께 민중가요를 부르는 노래패들도 함께 사라져가고 있다. 그런 현실을 반영하듯 민중가요도 부르는 참좋다 또한 신입회원이 잘 늘지 않는다.  

“대학 노래패들도 많이 없어졌고, 지금 참좋다에서 가장 젊은 친구가 31살인가 그래요. 젊은 친구들이 취업도 어렵고 삶이 팍팍하니까 이런 활동을 할 여유가 없는 거죠. 매년 새로운 멤버를 모집하긴 하는데 사람들이 많이는 안 와요.”

 

참좋다는 일개(?) 노래패임에도 홈페이지가 있다. 들어가 보니 전체적인 분위기가 유행에 뒤처져 보였다. 이 홈페이지도 그가 만들었다고 했다.

 

아니, IT쪽에 근무하시는 프로그래머라던데 홈페이지가 좀, 그런데요.

“당연히 올드하죠. 예전에 만들어 놓고 새로 꾸미질 않았으니까요. 요즘은 사람들이 주로 카톡이나 텔레그램을 쓰고 홈페이지에는 안 들어오거든요. 그러니 관리할 필요가 없어진 거죠. ‘포인트 랭킹’이라고 홈페이지에 글을 쓰거나 댓글을 달면 포인트를 주는 건데 이런 방법들을 써 봐도 활성화가 잘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거의 방치하고 있죠.”

 

스무 살이 되었습니다 

방치된 홈페이지의 운명과 달리 회원모임으로 시작한 ‘참좋다’는 20년 넘게 이어져 오는 중이다. 분명 비결이 있을 것이다. 

“일단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들어왔고요. 다른 모임 하고 다르게 우린 어쨌든 활동을 할 어떤 거리가 있다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무대라는 게 주로 집회나 농성장 같은 곳이지만 어쨌든 공연할 기회가 계속 생기니까 모임이 유지될 수 있는 거죠.” 

 

참좋다는 지난겨울 촛불집회 때도 무대에 올랐다. 아무래도 집회의 규모가 클수록 기억에 더 남는다고 그가 말했다. 그러면서 노무현대통령 탄핵반대 집회 때의 기억을 더듬었다. 몇십만 명을 앞에 두고 노래를 불렀던 날. 광화문 사거리부터 종로까지, 정말 끝도 없이 일렁이던 촛불들 그리고 시간이 흘러도 바래지 않는 그날의 감동. 

 

그렇게 큰 무대에 서면 무척 긴장이 될 것 같아요. 제보에 의하면 무대에 서기 전 청심환을 드신다던데?

“지금은 더 센 걸 먹습니다. 제가 ‘사회공포증’이 있거든요. 무대공포증과 비슷한 건데, 사람들 앞에서 얘길 하거나 노래할 때 몸이 심하게 떨리고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고 그래요. 이런 인터뷰 같은 자리에서도 그렇고요.”

 

이 글 첫 부분에 인용한 대화만 보면 ‘그’란 사람은 무척 쿨하고 시니컬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실제의 ‘그’는 전혀 다르다. 말주변이 없고 부끄러움이 많은 그는 인터뷰 내내 수줍게 웃었다. 그 웃음을 기억하는 나는 녹취록을 읽다가 무척 당황했다. 글과 말이 이렇게 다르다면, 한 사람의 분위기를 오롯이 문자언어에만 의지해 전달해야 하는 인터뷰 작업이란 한계가 명확한 것 아닌가. 그의 짧은 대답 때문에 간만에 신세타령도 한다. 

“집회에선 민중가요를 많이 부르지만, 1년에 한 번 있는 정기공연 때는 대중가요도 부르고 자작곡을 부르기도 해요. 올해는 20주년이라 자작곡을 많이 넣었어요. 각자 조금씩 곡을 쓰려고 노력 중이에요. 완성도가 높진 않지만, 서툴러도 우리가 한 거니까 공연에 한번 올려보려고요.”

 

20주년 공연에 대해 물으니 그가 방음실(참여연대 지하에 있는 연습 공간) 한쪽에 놓여 있는 커다란 화이트보드를 가리킨다. 그곳엔 20주년 공연 때 부를 노래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총 3부 구성인데요, 1부는 예전 멤버들이 주로 할 거고요. 그 다음 2부는 현 멤버들이, 3부는 주로 자작곡이나 아니면 다른 데서 발표되지 않았던 곡들 중심이에요. 따져보면 과거, 현재, 미래 이런 형식이죠.”

 

공연 제목은 ‘스무 살, 우리 이야기.’ 12월 2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20년을 함께 해온 ‘참좋다’의 이야기가 노래로 불린다. 

“참좋다에 들어오시면, 연습 공간도 따로 있고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도 많아요. 노래뿐 아니라 서로 사는 얘기도 하면서 즐겁게 지낼 수 있죠. 또 재주꾼들이 많아서 어디 놀러 가도 재밌어요. 악보작업에 채보까지 가능한 친구도 있고요, 유머가 뛰어난 사람도 있고 노량진에서 일하는 덕에 회를 떠서 갖고 오는 친구도 있고….”

입 무거운 회장님의 긴 홍보멘트가 이어졌다. 회라, 이 점이 가장 끌리네요. 

 

들어는 봤나, 전산유체공학이라고

참좋다 이야기를 한참 하다 ‘장남일’ 개인의 이야기로 질문의 방향을 바꾸었다. 한때 ‘귀농운동본부’란 곳에서 활동가로 일한 전력이 있는 그는 그 경험 때문에 오랫동안 품고 있던 귀농의 꿈을 접었다. 귀농희망자들을 교육하며 실제로 겪어보니 도시의 삶에 최적화된 사람의 한계가 너무 명확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시골로 가고 싶다는 그에게, 나이 들수록 큰 병원 가까이에서 살아야 한다며 딴지를 걸다가 지금 하는 일에 대한 질문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아까 저보고 프로그래머라고 하셨는데, 사실 그건 아니고요. 참,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입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당혹스러워하는 그를 보니, 더욱 알고 싶어졌다. 뭔데요, 저도 말하면 알아들어요.

“CFD라고 전산유체역학이란 건데, 공기나 물의 움직임을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해서 예측하는 거예요. 디자인에 따라 자동차가 받는 바람의 저항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건물 안에서 불이 나면 연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해서 디자인이나 설계에 대해 조언하는 거죠. 전공은 혈액이었어요, 피도 유체니까. 혈관이 막혔을 때 혈액의 흐름이 어떻게 될 것인지 예측하는 건데, 예를 들어 혈관이 막혀 수술을 할 때 먼저 우회로를 만들어 피를 돌린 다음 막힌 데를 뚫어야 되거든요. 그때 어떤 각도로 어떻게 우회로를 만들어야 혈액의 흐름이 원활할지 이런 걸 연구하는 거죠.”

 

옆에서 듣고 있던, 20년을 함께 해온 참좋다 멤버들도 처음 듣는 얘기라고 했다. 이게 뭐 비밀이라고 그동안 말씀 안 하셨어요?

“설명하기 힘들어서요.”

 

일곱 줄이면 끝날 설명, 그게 힘들어서 20년 동안 IT쪽에서 일한다고 둘러댄 남자. 변명조차 짧은 그에게 나는 보란 듯이 긴 리액션을 선사했다. 

 

나 : 전산유체역학, 되게 있어 보인다! 

그 : (수줍게 웃는다) …….

나 : 이게 굳이 분류하자면 물리학 쪽인가요? 

그 : 기계학이죠. 

나 : 우리나라에 한 명밖에 없는 직업 아니에요? 

그 : 아닙니다. 

나 : 이런 직업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아이들이 아빠 직업 신기해하지 않아요?

그 : 자세히 설명을 해 준 적이 없어서….

 

호들갑 떠는 나를 보며 그는 그저 빙긋이 웃을 뿐이었다. 

 

이제 마지막 질문, 앞으로 꿈이 있다면요?

“뭐, 지금처럼 사는 게 좋으니까, 이렇게 계속 이어져 나갔으면 좋겠어요.”

너무 무욕한 사람과 인터뷰를 하면, 늘 내가 더 떠들다 끝난다. 

 

참좋다

1997년 결성된 회원모임 ‘참좋다’는 올해로 20주년을 맞는다.  

 

장작불처럼 살다

인터뷰 도중 참좋다가 민중가요를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남아 언젠가 무형문화재가 되는 것 아니냐는 씁쓸한 농담을 그에게 건넸다. 세월은 멈추지 않는 강물처럼 흐르고, 그 도도한 흐름 속에서 많은 것들이 모래 속에 파묻힌다. 민중가요도, 민중가요를 부르는 노래패도, 참좋다의 홈피도. 그러나 민중가요가 사라져 가는 속도만큼 과연 세상은 나아졌는가.  

 

내일 참좋다는 바빠요. 국회 앞에서 정리해고 투쟁을 하는 ‘하이디스’ 수요집중문화제와 참여연대가 있는 서촌의 ‘궁중족발’ 지킴문화제에 함께합니다. 정말 노래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요? 매번 집회에서 노래할 때마다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마음이 모이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그래서 부탁드려요. 함께하지 못해도 마음을 모아주세요. 힘든 싸움을 하는 사람들이 혼자 있다고 느끼지 않도록….

 

최근 참좋다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이다. 세월의 흐름도 쓸어가지 못하는 나쁜 놈들과 그들이 벌이는 나쁜 짓들 때문에, 참좋다는 여전히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고, 사람들은 노래 하나에 의지해 서로의 마음을 모은다.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 <장작불>이에요. 시를 노래로 만든 곡인데 노랫말도 좋고 가락도 좋고. 사는 게 그 노래가사와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산다는 건 장작불 같은 거야 / 여러 놈이 엉켜 붙지 않으면 / 절대 불꽃을 피우지 못해 / 몸을 맞대어야 세게 타오르지 / 마침내 활활 타올라 쇳덩이를 녹이지 / 먼저 불탄 토막은 불씨가 되고 / 빨리 불붙은 장작은 밑불이 되고 / 늦게 붙은 놈은 마른 놈 곁에 / 젖은 놈은 나중에 던져져 / 마침내 활활 타는 장작불 같은 거야 – <장작불> 중에서  

 

노래를 부르는 그도, 그 노래를 듣기만 하는 나도 문득문득 마음에 같은 질문을 품는다. 정말 노래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나 하나 이런다고 세상이 꿈적이나 할까. 말수가 적은 그는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대신,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줄 노래 한 곡을 부르기 위해, 언젠가는 옮겨붙을 작은 불씨 하나를 지키기 위해, 오늘도 떨리는 손으로 센 약 하나를 꺼내 먹을 뿐이다.  

쇳덩이는 1538℃에 녹는다. 이제 여러 놈이 엉겨 붙을 일만 남았다. 

 

 

참좋다의 라이브를 감상하고 싶다면?

유투브에서 참좋다 하이라이트를 검색하세요. 

https://youtu.be/xk4K9DK59t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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