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7년 11월 2017-11-02   1171

[통인] 용서와 관용의 법정 – 천종호 판사

용서와
관용의 법정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글. 이한나 미디어홍보팀 간사

사진. 이선희 미디어홍보팀 팀장

 

지난 9월 초, SNS에 한 장의 사진이 올라왔다. 일상에서 쉬이 접하기 어려운, 잔혹하고 끔찍한 사진은 순식간에 SNS를 도배했고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사진 속 주인공도, 그걸 최초로 퍼뜨린 사람도, 그렇게 만든 사람도 모두 청소년이라는 데 충격은 더했다. 

 

뒤이어 공개된 아이들의 언행은 경악을 분노로 바꾸었다. “피 냄새 좋다.” “어차피 살인미수인데 더 때리자.” 사건은 SNS에 생중계되었고 사람들은 각각 자신의 머릿 속에서 그들을 법정에 세웠다. 많은 이들이 가해자 엄벌을 주장했고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소년법 폐지 청원이 넘쳤다. 

 

하지만 그사이 누구보다 많이 호명된 사람은 대통령도, 정치인도 아닌 바로 이 사람, 8년 동안 ‘진짜’ 법정에서 소년 사건을 판결해온 부산가정법원의 천종호 판사다. 그는 현재 이 사건을 담당할 가장 유력한 판사로 꼽힌다. 사람들은 믿고 싶지 않은 이 현실에 그가 뾰족한 답을 주기를 바랐다. 참여사회도 그에게 묻고 싶었다. “판사님 요즘 청소년들이 정말 그런가요?” 

 

그런데 인터뷰가 시작되자 그가 먼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부산여중생폭행 사건을 학교폭력이라고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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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 사이에 일어난 폭력이니까 ‘학교폭력’ 아닙니까? 

보통 ‘학교폭력’ 하면, 학교 내의 폭력을 떠올리게 되죠. 근데 이번 사건의 경우 가해자 아이들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서 제도권 밖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었고, 피해자도 60일 간 학교를 결석한 상태였어요. 결국 이 아이들은 주류 아이들이 아니었던 거죠. 이번 사건이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 따른 ‘학교폭력’ 개념은 맞습니다만, 국민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학교폭력이 아닙니다. 

 

근데 이걸 기존의 학교폭력 프레임 속에 넣고 보니까 어떻게 청소년들이 저렇게 잔인할 수 있냐, 이렇게 접근을 하면서 문제가 굉장히 커진 거죠. 학교 밖의 고위험군 아이들이 고위험 지역에서 무리를 이뤄 지내다가 이렇게 심한 폭력이 발생했다는 것을 부각시켜줘야 하는데, 단순히 피해자-가해자라는 지위를 설정해놓고 바라보면 학교폭력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피해자에 감정이입을 하게 되고 가해자를 엄벌하자는 쪽으로 국민정서가 폭발하면서 소년법 폐지까지 나오게 된 것이죠. 

 

소년법에 대해서는 폐지보다는 개정하자는 입장이신데요. 

네. 다시 검토할 필요는 있지만 폐지는 조금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소년법 폐지 논쟁이 불거지기 전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 책에서 ‘소년법은 용서와 관용을 전제로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현재 논의의 핵심이 거기에 있습니다. 형법상 만 14세 이상이면 범죄연령에 해당하는데, 소년법이 18세 미만에 대해서는 사형이나 무기징역 선고를 못 하게 막아놓았거든요. 유기징역형의 상한도 15년이고요. 그러니까 국민들이 ‘어, 이게 뭐야’ 이렇게 된 거죠. 형법대로 하면 만 14세 이상 청소년도 법적 성인과 동등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데 소년법이 감경 조항을 둠으로서 성인에 비해서 낮은 형을 선고하는 것, 여기에 관용의 정신이 들어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14세 미만은 형법상 비범죄연령이기 때문에 소년법이 폐지되면 아무 처벌도 할 수 없습니다. 이번 부산여중생폭행사건의 경우 가해자 중에 13세 여학생도 있는데 그 아이도 처벌할 수 없어요. 소년법은 이렇게 만 14세 이상 청소년에 대해 관용을 두면서 만 14세 미만에게는 소년보호처분이라도 할 수 있도록 해둔 겁니다. 형법과 비교했을 때 이런 부분에 용서와 관용이 깔려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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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법 폐지 논쟁 한편에는, 선거연령을 낮추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데요. 

앞서도 말했듯이 형법상 사형 또는 무기징역형의 선고가 만 18세도 가능한데, 현재 18세의 청소년들에게는 선거권이 부여되지 않고 있고, 민법상으로도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권리에 맞는 책임 원칙에 비추어보면 위헌소지가 있는 거죠. 따라서 선거 연령을 18세로 낮추든 사형 또는 무기징역형의 선고 연령을 민법 또는 공직선거법 상의 연령에 맞추든지 양자 간 택일을 하여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사형 선고 연령을 낮춰야 한다는 현재의 여론에 따른다면 결국 선거연령을 낮춰야 하지 않을까요? 

 

UN에서 형법상 미성년 연령을 높이라고 자꾸 권고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고요. 우리는 그나마 소년법이 있기 때문에 방지장치가 되지만 그렇지 않은 나라도 있기 때문에 자꾸 높이라고 권고하는 겁니다. 정치에 참여할 권리는 주지 않으면서 형법상 어른과 동등하게 취급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거죠. 

 

소년법과 형법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인가요? 

소년법정은 일반 형사법정과 목적부터 다릅니다. 소년법 1조를 보면 ‘이 법은 반사회성이 있는 소년의 환경 조정과 품행 교정을 위한 보호처분 등의 조치를 하고, 형사처분에 관한 특별조치를 함으로써 소년이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렇게 되어 있거든요. 

 

그런 맥락에서 소년원도 지금 ‘학교’로 명칭이 다 바뀌었어요. 교육적인 측면에서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법정에서도 일반 형법처럼 죄의 유무를 따지고 처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비행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갖게 하고, 또 부모와 자식 간의 문제가 있으면 해결해주고 피해자에 대한 피해 회복도 해주는 종합적인 서비스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정에서 호통을 치는 것도 그런 목적인가요?

제가 창원에 있을 때 매년 12만 건씩 소년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럼 하루에 100여 명 가까이 재판합니다. 한 아이 당 할애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3분 정도입니다. 이름 부르고 “니, 이게 맞나? 그럼 하지 마라.” 이러면 3분 금방 가요. 어떤 분이 ‘컵라면 재판’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상황에서 아이들한테 적어도 법정의 엄정함과 무서움을 보여줘야겠다 싶어서 호통을 치기 시작한 거죠. 

 

진짜 심하게 호통을 칩니다. 호통 치는 애들은 대부분 집으로 다시 돌려보내는 애들입니다. 소년원 보낼 애들은 호통 안칩니다. 왜냐면 그 아이들은 2년간 거기서 생활해야 하는데 맘 상하게 그럴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통인-사진추가(호통)

2013년 방영된 <SBS스페셜-학교의 눈물>의 한 장면.

 

호통 치는 것 말고도 법정에서 다양한 ‘퍼포먼스’가 일어나던데요. 

호통을 치기도 하고 좋은 시구나 글귀를 읽히기도 합니다. 아이들한테 부모를 향해서 큰 소리로 잘못했습니다, 사랑합니다 외치게 하죠. 때로는 부모한테 시키기도 하고요. 그게 가능한 것은 일종의 심리치료 효과가 있다고 본 거거든요. 보호관찰소 직원들이 이런 재판과정을 쭉 지켜보시더니 ‘호통치료’라고 이름 붙여주셨어요. 제가 호통 치는 게 그냥 악을 쓰는 게 아니고 진짜 아이들의 인생을 걱정해서 하는 호통이니까 진정성 있게 와 닿는다는 거죠. 

 

그만큼 사전 준비도 많이 필요합니다. 아이들 가정 사정, 특이사항을 일일이 다 메모해놓고 강약을 조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일반 사건에서 그랬으면 막말판사로 잘려도 벌써 잘렸을 겁니다. (웃음)

 

그렇지만 소년법 처벌이 너무 가볍지 않냐는 시각도 있는데요. 

많은 분들이 결론만 보고 소년법이 너무 가볍게 처분한다고 여기시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벼운 피해도 다 배상하지 않으면 절대 사회로 안 돌려보냅니다. 피해 회복은 기본 원칙이거든요. 그런 과정을 다 거쳐야만 피해자도 만족할 수 있고, 잘못을 저지른 아이도 자기가 어떤 피해를 끼쳤는지 깨닫고 뉘우치는 겁니다.

 

소년재판은 즉시선고가 원칙인데, 오판에 대한 우려는 없으신가요? 

오판은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소년 사건에서는 99.9%가 자백을 하니까요. 근데 만약 소년법이 폐지되면 다 형사재판으로 가야 하잖아요. 그럼 전과가 남고 신분상 문제가 생기니까 애들이 자백을 잘 안 하게 됩니다. 그러면 예를 들어 초등학교 6학년이 형사 법정에 서게 되고 자백을 안 하면 또래 친구들이 대거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야 해요. 그게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그래서 사실관계 판단의 어려움은 없고요, 다만 얘들한테 어떤 처분이 적합한지 판단하는 게 가장 힘들죠. 

 

10호처분을 가장 많이 하기로 유명하시던데요. 

제 별명이 ‘천10호’인데요.(웃음) 현재 소년보호처분 최장기간이 2년이거든요. 그 다음이 6개월짜리 9호처분, 그 밑에 8호처분이 1개월이고, 7호처분이 아동보호치료시설에 6개월 보내는 것, 그리고 6호가 회복센터에 6개월 보내고 나머지는 집으로 보내야 되거든요. 현재 소년보호처분 상한이 너무 낮기 때문에 오히려 법을 개정해서 3년, 5년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셔야 하는 거죠. 

 

국민들이 걱정하는 게 그거지 않습니까. ‘살인해도 2년밖에 안 돼?’ 이건 도대체 납득이 안 되거든요. 이런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소년보호처분 조정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려면 지금보다 소년원이나 교정시설도 더 필요하겠네요. 

맞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소년원이 전국에 몇 개인줄 아세요? 10개입니다. 일본은 52개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소년원이 120% 차있어요. 전부 다 과밀수용상태거든요. 교정학에 따르면 70% 정도가 가장 적정한 수용인원입니다. 100% 넘어가면 교정 효과가 없습니다. 얼마나 열악한 지 아시겠죠? 근데 소년원 인권 문제를 누구도 신경 안 씁니다. 왜 선거권이 없다고, 부모가 없다고 얘들 인권을 이렇게 방치합니까. 10평짜리 방에 15명씩 몰아넣으면 나중에 다 패거리가 돼서 나옵니다. 이 애들에 대해서 뭔가 조치를 취해줘야 할 거 아닙니까. 부모가 있다는 전제를 깔아놓고 국가가 방치해놓고 있는 거죠.

 

애들을 방치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제가 8년을 해보니까 비행청소년들, 투명인간입니다. 첫째로, 선거권이 없기 때문에 국회의원들이 이들을 대변해주지 않습니다. 관심도 없어요. 둘째, 이 아이들의 부모들은 대부분 가족해체나, 결손 가정, 저소득빈곤층입니다. 이들을 위해 정치적인 영향을 행사해줄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도 공부 잘하는 아이의 부모님들은 교육정책이라든지 뭉쳐서 입김을 발휘하실 수 있지만 이 아이들은 대변해줄 수 있는 사람이 일체 없습니다. 셋째, 비행청소년들을 도와주자고 하면 가난하고 결손가정인 애들 중에 비행 안 저지르는 애들도 많은 데 왜 나쁜 짓 하는 애들을 도와주느냐고 손가락질 합니다. 

이번 부산여중생폭행사건도 그런 거 아닙니까. 애들이 옆에서 뭔가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데 어른들은 보면서도 다 그냥 지나쳤잖아요. 투명인간 취급한 거죠.

 

독일의 경우 한 아이 당 연간 7,800만 원에서 9,600만 원 지원해 줍니다. 일본은 7,600만 원이고 뉴질랜드는 2억 준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아이들 보살필 시설조차 안 만들어 놨잖아요. 그래서 제가 ‘청소년회복센터’라고 사법형그룹홈을 2010년 11월에 시작했는데요.  아무도 모르다가 <학교의 눈물> 때문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아, 이건 하늘이 주신 기회다’ 생각했죠. 그리고 소년재판을 자원해서 8년째 하면서 청소년회복센터를 확대해나가기 시작한 거죠. 많은 분들이 알려주고 도와준 덕분에 지금은 전국에 19곳이 있습니다. 

 

청소년회복센터(사법형그룹홉)은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나요? 

법원에서 한 아이 당 한 달에 50만 원, 1년이면 600만 이 나옵니다. 그게 기본적인 센터 운영비가 되고, 나머지는 제가 법원에서 여러 활동을 하면서 받은 수당과 후원금으로 충당하고 있죠. 센터를 맡아서 운영하시는 분들의 인건비는 기본적으로 전혀 없습니다. 운영비야 어떻게든 마련한다고 하지만, 이분들이 아이들 10명씩 먹이고 재우고 입히고 학교 보내고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만드는 데 엄청난 역할을 하니까 적어도 인건비는 줘야 하는데 비용이 턱없이 모자라요. 

 

수도권의 경우 주거비용이 높아서 인건비가 없으면 아예 시도를 못해요. 그동안 여러 사람이 이걸 해보겠다고 저를 찾아왔다가 예산이 안 된다고 하니까 돌아갔거든요. 그래서 인건비가 확보되면 하려는 분들도 늘어날 거고, 특히 초기 비행 아이들, 쇠도 뜨거울 때 두드리라고 우리가 빨리 개입을 해서 더 이상 비행성이 심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활동입니다. 

 

판사직을 은퇴한 후 계획이나 목표가 있으시다면요.

제 친구들이 청소년회복센터를 위한 비영리 사단법인을 만들었습니다. 퇴직하면 그걸 좀 더 확대시키고 피해청소년들 구제를 위한 뭔가를 만들고 싶어요. 하여튼 저는 아이들을 너무 좋아하거든요. 성격 자체가 애들 괴롭히는 사람을 제일 싫어해요. 퇴직 후에도 아동청소년 쪽에 일을 계속 할 거라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참여사회 독자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이번 사건을 보면 드러난 사실은 굉장히 잔혹하고 충격적이죠. 근데 그 이면을 한번 보세요. 보통 사람이라면 범죄 사실을 공개 안하는 게 상식이거든요. 그런 상식을 무너뜨렸다는 것은 이 아이들이 얼마나 미숙한가를 보여주는 거예요. 말투나 행동은 어른스럽지만 실제로는 아직 어린 아이들이거든요. 

 

물론 드러난 비행에 대해서는 엄벌해야 합니다. 그리고 합당한 처벌이 끝나면, 그 뒤에는 대책을 마련해줘야 그게 어른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우리는 비행청소년 꼬리표를 달아놓고 이 아이들을 이중, 삼중 처벌하고 있어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처벌이 끝나면 그때부터는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자랄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좀 더 배려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서울로 돌아오는 KTX 열차 안에서 그의 책을 꺼내들었다. 책에는 인터뷰에서 다 언급하지 못한 수많은 재판과 아이들이 있었다. 누군가의 지지가 간절히 필요했던 나의 청소년 시절과 그의 법정을 거쳐 간 1만 2천명의 말간 소년들의 얼굴이 겹쳤다. 책을 읽으며 몇 번이고 울컥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서야 왜 사람들이 그토록 그의 법정을 찾는지 알게 됐다. 그는 법정 안에서 누구보다 냉정하고 엄격한 판사지만, 법정 밖에서 그들의 삶을 지탱해줄 유일한 변호인이자 후견인이었다. 그의 법정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재판에 중독될 것이다. 용서와 관용의 법정은 오늘도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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