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7년 11월 2017-11-02   681

[특집] 모두의 참정권

특집3_소년이 온다

모두의
참정권

 

글. 트리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 

 

 

‘모든 시민’에게 보장되는 참정권?

내가 아직 고등학교를 다니던 작년, ‘법과정치’ 수업 시간이었다. 나는 교실에 앉아서 어떻게 세계의 정치체제가 바뀌어왔는지 배우고 있었다. 교사는 ‘군주제가 몰락하고 공화정이 세워진 후에도 일정 소득 이상의 성인 남성만 투표를 할 수 있었지만 현대에 와서는 모든 시민이 투표권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을 했다. 물론 ‘만 19세 이상의 성인인 시민’이라는 조건을 달면서. 교사는 계속 진도를 나갔지만, 나는 교과서의 ‘만 19세 이상’ 이라는 문구에 볼펜으로 밑줄을 여러 번 그으면서 생각했다. ‘청소년은 시민인가? 참정권이 없는 청소년은 이름만 시민이 아닐까?’

 

정치에서 배제당하고 있는 청소년

참정권이 없는 청소년은 ‘아직 시민이 되지 못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청소년들이 집회에 나가면 ‘어린데 기특하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학교에서는 집회에 나간 학생들에게 불이익을 준다. 선거철에 유세하는 정치인들은 교복을 입었거나, 청소년 같아 보이는 사람들을 외면하기 일쑤다. 집에 걸려온 여론조사 전화에서 나이를 묻는 질문에 ‘10대’라고 답하면 전화는 뚝 끊어진다. 기표소는 당연히 만 19세 이상만 출입 가능한 ‘노키즈존’ 이다. 심지어 공직선거법에는 미성년자의 선거운동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만 19세 미만인 사람은 SNS에 “나는 ○○당의 ○○○을 지지한다.”라고만 쓰는 것조차 불법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일각에서는 청소년의 참정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최근 눈에 띄는 활동으로는 올해 9월 26일 출범한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의 3대 요구안 중 하나인 ‘만 18세 미만 청소년의 참정권 보장’이 있다. 여기서 참정권은 선거권, 피선거권뿐만 아니라 정치와 선거에 대해 말할 권리, 정당 활동의 자유를 포함한다.

 

 

 

촛불소녀

 

 

청소년의 정치 참여는 계속되어 왔다

촛불 시위가 한창이던 2016년 12월, 일부 언론에서는 ‘이번 촛불집회에서는 특히 중·고등학생 등 청소년들의 자발적인 참여도 눈에 띄었’다며, 마치 촛불집회에 참여한 청소년들이 지금까지 정치에 아무 관심 없었다가 탄핵 정국이 되면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처럼 보도했다. 여기에는 ‘대부분의 청소년은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편견이 깔려있다. 

 

청소년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순간들에 함께해온 이 사회의 시민이다. 역사적으로 학생들이 많은 활약을 했던 3.1운동과 고등학생이 주도하고 수많은 어린이, 청소년이 함께했던 4.19혁명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2008년 촛불의 대표적인 상징은 ‘촛불소녀’였다. 그리고 모두가 기억하다시피, 2016년 촛불에서도 청소년 시민들이 함께 했었다. 하지만 촛불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치러진 대선에서 청소년들은 ‘청소년 참정권 보장하라’ 라고 외치며 계속 싸워야만 했다. 

 

모두가 참정권을 가지는 사회 

잠시 해외로 눈을 돌려보면, 전 세계 232개국 중 200개가 넘는 나라가 적어도 만 18세부터 선거권을 보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만 16세로 낮췄거나, 낮추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는 추세다. 다행히 우리나라도 만 18세까지 참정권을 보장하자는 쪽으로 목소리가 모아지고 있는 거 같다. 선거연령을 18세로 낮추자는 법안도 꾸준히 발의되고 있다. 청소년들에게도 참정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각기각층에서 나오고 있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지만, 선거 연령을 만 18세까지 하향한다고 해도 생일이 지나야만 해당하기 때문에 약 1,000만 명 정도의 인원으로는 청소년 대중의 대표성을 띄기 어렵다.

 

선거 연령을 더 인하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면 ‘그럼 몇 살까지 낮춰야 하느냐’ 하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선거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연령을 만 19세에서 만 18세, 나아가 만 16세로 점차 낮춰야 하겠지만, 나는 선거권/피선거권을 포함해서 정당 가입, 선거 운동에서도 참여 제한 연령 자체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에는 이 사회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참정권을 가진 시민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물론 유아의 경우에는 선거 자체에 참여하기 힘들 수도 있지만, 권리를 물리적으로 행사하지 못한다고 해서 권리를 부여하지 않아도 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거 같다. 실제로 이런 논의가 벌어지고 있는 곳도 있다. 김효연은 『시민의 확장』에서 ‘선거권이 없는 아동·청소년이 피선거권자의 관점에서 소외당하는 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독일에서는 연령 제한 없는 선거권(생래적 선거권)을 제시’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현재 세계 각국의 선거권 연령은 16~21세로 다양하다. 나라마다 선거권을 부여하는 기준점이 되는 나이가 다르다는 건, 결국 이 기준이 해당 국가의 사회적 합의에 따라 자의적으로 정해진다는 걸 보여준다. ‘선거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거다. 

 

자기 삶에 영향을 끼치는 결정들에 참여할 권리

청소년은 마치 정치와 무관한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그려지지만, 청소년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정치적인 결정은 무수히 많다. 친권자, 주로 부모에게 부여되는 자녀에 대한 막대한 권한과 학생 청소년의 삶을 옥죄는 학교, 말도 안 되는 학습시간을 강요하는 입시제도, 가정 내 아동폭력, 청소년 알바노동자 착취 등이 청소년의 인권을 억압하는 대표적인 문제이지만 정치적으로 중요하지 않다고 취급 받아왔기에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 문제의 당사자인 청소년에게 참정권이 주어진다면, 청소년들이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결정들에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다면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미성숙’해서 안 된다고?

역사적으로 약자의 참정권은 계속해서 무시되어 왔다. 지금은 성별과 인종을 이유로 참정권을 보장하지 않는 나라가 거의 없지만, 1900년대만 해도 미국에서 여성과 흑인은 제도권 정치에 참여 할 수 없었다. 당시의 여성 · 흑인 참정권 운동 때도 반대파에서는 지금 한국에서 청소년 참정권을 반대하는 세력과 똑같은 논리를 내세웠다. 바로 그들의 ‘미성숙함’이다. 

 

“청소년은 아직 정치에 대해 제대로 된 판단하기에는 판단력이 부족하고, 그래서 언론이나 주변 어른들의 말에 휩쓸리기 쉽다.” “세금을 내지도 않으면서 무슨 권리냐.” 청소년의 참정권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청소년이 미성숙하고, 성인과 동일한 의무를 지지 않으니 아직 참정권을 가질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참정권은 모두가 가질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다. ‘나중에’ 보장되어도 되는 권리는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청소년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한지’ 물을 게 아니라, 이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이라면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참정권을 자격을 따져가며 부여하자는 논리가 과연 정당한지를 물어야 할 것이다. 

 

 

특집. 소년이 온다 2017_11월호 월간 참여사회 

1. ‘요즘 것들’에 관한 오해와 진실

2. 소년법 개정 필요도 가능성도 없다

3. 모두의 참정권

4. 청소년, 그들은 누구인가?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