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7년 09월 2007-09-01   1118

테마 기획 – 고향: 타향에서 꿈꾸는 내 나라의 민주화

고국 버마를 떠나 한국에 온지 13년 째 되던 지난 8월 24일, 한국생활 초기 시절이 생각났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밥하고 물만 말아 먹었던, 말이 안 통해 한동안 입 꾹 다물고 생활했던 때를 생각하니 그냥 웃음이 나온다. 지금은 웃음이 나지만 당시엔 혼자 눈물 흘리며 많이 후회했었다. 하지만, 계속 그렇게 지낼 수 없어 한국생활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했다. 한국어도 열심히 배우고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도 많이 먹었다. 이제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익숙해져 김치찌개, 비빔밥, 된장찌개, 삼겹살 등을 아주 좋아하게 됐고, 영화 보는 것도 즐겨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그때 그 사람들’, ‘화려한 휴가’ 등 한국역사를 알 수 있는 영화들을 보며 한국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게 됐다.

그동안 조명공장, 기계공장, 사출기공장, 양말공장, 믹서기, 운동기 조립 회사에서 주야로 일했다. 때론 욕하는 사람들, 월급 안 주는 사장도 있었지만 가족처럼 친하게 지내며 함께 일했던 아줌마, 아저씨들을 생각하며 기운 내면서 지냈다.

버마를 떠나 있는 동안 큰 아버지 두 분이 돌아가시고 어느덧 어머니 연세도 70세가 되셨다. 형 둘도 결혼하여 얼굴도 보지 못한 조카가 세 명이나 생겼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누구든지 고향에 가고 싶지 않은 사람 없고 부모님을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 없다.

올해도 난 전화 한 통으로 버마에 있는 가족을 보고 싶은 마음, 그리운 마음을 달랠 것이다. “어머니, 지금 한국은 추석이에요. 가족들이 함께 모여 재미있게 지내는 소리가 들려와요. 어머니, 보고 싶어요.” 라고 말하면 어머니는 “아들아, 언제 우리 집으로 들어오니? 엄마도 너 많이 보고 싶다. 빨리 집으로 돌아와라, 아들아.” 라고 하시겠지. 어머니의 물음에 대한 답은 마음속에서 한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버마가 민주화 됐을 때, 군부독재가 물러가고 민주주의가 찾아왔을 때 버마로 가겠습니다. 그 때 어머니 손잡고 어머니 곁에서 잠들게요. 그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이제는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버마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한국에 남아 있다. 4·19혁명, 5·18광주민주화항쟁, 6월 항쟁 등 한국의 역동적인 역사를 보고 배우며 버마의 민주화를 꿈꾸곤 한다.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 활동하시는 한국의 좋은 분들과 친구들 덕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잊기도 한다. 한국에서의 생활이 오래되니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한국이 제2의 고향 같겠어요.” 나의 대답은 이렇다. “아뇨. 내 고향은 버마뿐입니다.”

질문의 뜻을 모르는게 아니라, 고향을 떠나서야 고향의 소중함과 내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기에 고향은 하나라는 생각과 마음이 더 크게 와 닿을지도 모른다. 빨리 부모님 곁으로,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난 오늘도 버마의 민주화와 민중들의 인권을 위해 뛰어다닌다.

조모아 NLD사무책임장, <버마저널>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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