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7년 09월 2007-09-01   1169

21세기의 고향 만들기

도시의 뿌리 농촌이 살아야

“고향이 어디십니까?” 객지 나가 살다보면 흔히 받는 질문이다. 그래서 모두들 나름대로 익숙한 답이 잘 준비되어 있다. 대개는 태어난 곳이나 자란 행정구역을 중심으로 답을 한다. 그렇지만 스스로도 의문이 전혀 남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정말 내 고향은 어디인가?’, ‘나에게 돌아가고픈 고향은 있는가?’ 도시 나가 오래 산 사람의 서러움이 묻어나는 지점이다.

돌아갈 고향을 송두리째 빼앗긴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한국전쟁 때 월남한 가족도 아닌데 고향 자체가 없어진 사람도 적지 않다니 생뚱맞게 들릴 것이다.

“우리들은 ‘나라를 위해서’라고는 했지만 어쩔 수 없이 고향 마을을 떠났습니다. (중략) 도시에 나와서보니 온통 돈, 돈, 돈타령뿐이고 먹는 물까지 돈으로 사는 곳이더군요. 고향에 있을 때는 80, 90이 되어도 치매 걸리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도시로 나오고부터는 모두가 바빠지고, 웃음이 사라지고, 심지어 자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고향과 대자연이 얼마나 소중한지 잃어버리고 나서야 고마움이 느껴집니다.”

이 글은 일본 어느 산촌 마을에 큰 댐이 건설돼 도시로 이주하였던 평범한 할머니의 경험담이다. 61살 때 댐 이야기가 나오면서 사진을 처음으로 배운 할머니였다. 80살이 되던 해에 세 번째 사진집을 발간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찍은 사진만도 7만 장이 넘었다고 하니 하루에 10장 씩은 찍은 셈이다.

무엇이 할머니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고향이란 그런 것인가 보다. 돈 주고도 살 수 없고, 도시에서는 더욱 찾기 힘든 것이다. 선조의 피와 땀이, 자신의 살아온 추억이 담겨 있는 곳이다. 자연조차도 인간의 냄새가 배어 있고, 힘든 노동도 견디게 할 따뜻한 정과 문화가 살아 있는 곳이다.

원치 않는데도 고향을 떠나야 하는 사람이 많은 시대다. 개발이라는 이유로, 나라에서 하는 일이라고 떠나기를 강요받는 경우가 너무 많은 것이 우리 현대사다. 다목적댐이 그러하고 골프장, 매립지, 핵 폐기장, 간척, 미군기지가 그렇다. 따지고 보면 모두 농촌과 농민을 희생시켜 도시의 높은 소비생활과 취미생활을 지탱하기 위한 것이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잘 모른다. 농촌이 어렵고 힘들다는 것은 알아도 그것이 자신들의 잘못된 생활, 의식 때문인 줄 잘 모른다. 현재의 도시문명이 농촌의 희생 위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도시가 꽃이라면 농촌은 뿌리다. 모든 국민의 고향인 농촌을 지키고 살리는 것이 도시민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스러져가는 농촌을 되살리려는 작은 노력들

농촌이 힘들어도 고향에 남아 나름대로 노력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굽은 나무가 고향 선산을 지킨다.”는 옛말이 있다. 고향을 떠날 기회를 놓친 사람, 도시에 나갔다 돌아온 사람, 이런 이들이 어렵고 힘들지만 고향 살리자는 가슴 벅찬 노력을 하고 있다. ‘마을 만들기’라는 이름의 활동이 그 한 예다. 마을 만들기의 목표는 잘 먹고 잘 살자는 것이라고 속되게 표현할 수도 있고, 공동체 복원이란 거창한 가치 형태로도 말할 수 있다.

현재의 농촌은 지난 역사에서 식민지, 한국전쟁, 경제개발, 독재 등을 겪는 동안 풀뿌리 마을의 건강성이나 자생력이 거의 해체된 상태다. 그런 역사적 배경 위에서 새롭게 마을을 만드는 일이므로 결코 쉽지 않은 길이다. 이런 노력이 더욱 아름답고 대견하게 여겨지는 것은 추진하는 이들의 헌신적인 자세 때문이다. 월급은커녕 활동비를 받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좋아서 하는 활동이다. 생계에 지장이 있어도, 배우자가 말려도 물러섬이 없이 열심히 하는 지도자가 적지 않다.

농촌에 일을 할 만한 젊은 사람들이 적다보니 도시에서 귀농하는 사람들도 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도시생활에서 배운 비판의식이 잘못 발동되어 갈등을 만드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도 농촌에 뿌리를 내리고 고향을 만들고 싶어 귀농한 소중한 사람들이다. 자연과 더불어, 이웃과 더불어 사는 고향 마을을 가지고픈 처절한 몸부림이다. 앞으로는 귀농자들과 토박이 주민들이 어울려 사는 농촌사회가 될 것이다. 소위 ‘선택적 거주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때마침 정부사업이 ‘선택과 경쟁’을 강조하는 공모사업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그래서 열심히 하려는 자치단체나 마을일수록 기회는 더 많이 주어지고 있다. 하지만 욕심이 넘쳐, 잘못된 판단으로 농촌을 파괴하고 분열시키는 경우도 적지 않다. 또 변화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날림이 남발되고 있는 것도 큰 문제다. 조립식 샌드위치 패널 건물이 늘어나고 옛날 좋은 모습조차 사라져 농촌다움이 갈수록 없어지는 결과가 되기도 한다.

농촌에는 농촌 나름의 리듬과 시간 감각이 있다. 너무 빠르고, 계속 빠른 것은 부작용이 크다. 변화에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농촌 생활은 시간이란 변수를 잘 고려해야 한다.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는 인재 만들기고, 인재는 교육과 훈련의 소산이다.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문화적 풍토가 정착되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고향 지키려면 지금 이 자리에서 할 일 모색해야

물론 도시에서도 새로 고향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언제쯤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을지 답이 없다.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길이 보이지 않는 것이 현재 모습이다. 지금 사는 동네에서 이사 가지 않고 10년 이상 버틸 도시민이 있을지 의문이다. 부동산투자니 교육 열풍이니 경제대통령 등등 국민들에게 지지받는 것들은 하나같이 ‘고향 파괴 전략’과 일치한다.

최근 들어 살기 좋고, 살고 싶은 지역을 만들자는 정책이 유행하고 있다. 정부의 이러한 정책적 전환은 백번 찬성 받아 마땅하다. 여러 문제점들이 있고 그래서 수정해야 할 것도 적지 않다. 하지만 농촌에 애정을 가진 책임 있는 비판을 기대한다. 작지만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무엇을 실천해야 할지 소박한 고민이라도 필요하다. 이런 애정과 고민이 없으면 ‘고향’이란 것도 박물관에 영원히 전시될 수밖에 없는 역사속의 유물이 되어버릴 것이다.

구자인 전북 진안군청 마을만들기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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