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11월 1999-11-01   1578

MS의 제국건설음모와 노예들의 반란

『세계를 터는 강도』조성애 옮김, 영림카디널 펴냄, 1999

“인류를 상대로 벌이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전투…인류는 이미 패배한 싸움을 하고 있다.” 빌 게이츠와 견원지간인 래리 엘리슨 오라클 사장의 말이다. 비관적 정조가 짙게 밴 이 말에는 인류의 미래와 관련해 두 가지 중대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우선 정보화 시대의 성공신화로 알려진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는 이제 단순히 성공한 기업수준을 넘어서 제국을 꿈꾸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제국이 현실화하는 날 인류는 ‘철의 감옥’에 갇힌 노예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프랑스 고등학교 수학·정보과학과 로베르토 디 코스모 교수와 프랑스의 진보적 주간지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의 도미니크 노라 특파원의 대담으로 구성된 『세계를 터는 강도』(조성애 옮김, 영림카디널 펴냄, 1999)는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의 ‘제국건설 음모’를 실증적으로 파헤친 뒤, 대안적 움직임을 소개한 책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어떤 회사인가? 이 회사는 혼자서 세계10대 소프트웨어 업체가 벌어들이는 이익의 41%를 독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전세계 컴퓨터의 85% 이상에 MS 운영체제가 탑재되어 있다. MS 윈도와 인텔의 합작품인 ‘윈텔’이라는 표준이 마이크로컴퓨터시장의 90%를 점유하고 있다. 가히 MS 아성이다. 덕분에 MS의 창업자 빌 게이츠는 주식 보유가액만 1,000억 달러에 이르는 세계 제일의 갑부가 되었다.

아성은 어떻게 형성된 것인가. MS의 제품은 기술적으로 우수하고 창조적인가, 보안면에서 안전한가, 민주적 가치를 침해하지는 않는가. 로베르토 디 코스모 교수의

첫번째 답변. “MS 제품은 기술적으로 열성이다.”

윈도가 탑재된 컴퓨터를 써본 사람들은 자신의 컴퓨터가 이유없이 다운되는 일을 경험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소한 실수에도 쉽게 다운되는 컴퓨터, 사용자의 잘못인가. 우리는 윈도의 ‘디스크조각모음’을 통해 답을 얻을 수 있다. 사용자들은 이를 오랫동안 정돈하지 않았던, 그래서어지러운 책상을 정리해주는 ‘고마운’(?) 프로그램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윈도는 애초 디스크에 메모리 할당코드가 잘못 쓰여졌기 때문에 새로운 정보를 아무 곳에나 밀어넣는 바람에 조각이 흩어지고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이를 모아줘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 상에서 거저 내려받아 사용할 수 있는 리눅스같은 프리 소프트웨어 운영체제에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수납장에 순서대로 차곡차곡 쌓아놓기 때문이다.

두번째 답변. “MS는 새로운 제품을 창조해본 일이 없다.”

아는 사람은 아는 일이지만, 빌 게이츠와 그의 동업자인 폴 앨런은 베이직 프로그래밍 언어를 발명한 일이 없다. 그 유명한 MS-DOS는 시애틀컴퓨터라는 작은 업체의 Q-DOS를 5만 달러에 사들여 ‘약간’ 개조한 것이다. 정보세계로 열린 창이라는 이미지를 주는, ‘윈도’는 맥킨토시의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조악하게 복제한 것이다. 인터넷 익스플로러 또한 MS의 개발품이 아니라 스파이글라스의 모자이크를 사들여 변용한 것일 뿐이다. 매사가 이런 식이다. 아마도 인류의 비극은 그리 성능이 뛰어나지 않은 MS-DOS가 IBM의 컴퓨터에 탑재되면서 시작됐을지도 모른다.

코스모 교수는 “빌 게이츠는 기술에 대한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라기보다 실용적인 사업가”라고 평가한다. 시장에서 완벽하고 기민하게 움직이는 재능은 인정해야 하지만, 이는 제품의 품질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세번째 답변. “MS의 시장지배전략은 경쟁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고 독점체제를 유지하는 데에 있다.”

오늘날 윈도의 가장 큰 힘은 호환성 있는 응용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1만여 개의 컴퓨터 제작사에서 나온다. MS는 가공할 시장지배력을 무기삼아 정보경제학에서 말하는 ‘네트워크효과’와 ‘도미노효과’를 절묘하게 악용해 불공정 계약을 일삼는다. 오죽하면 PC의 제왕 IBM조차 자사의 운영체제인 OS/2가 아닌 윈도를 탑재해 판매하겠는가. MS는 지난 93년부터 윈도에 인터넷 익스플로러 등 자사 소프트웨어를 끼워판다는 이유로 미국 반독점국에 의해 제소된 상태다.

보안성에서도 문제가 많다. 독일 정보과학자들의 모임인 ‘함부르크 카오스 컴퓨터 클럽’은 액티브 액스를 이용해,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설치된 PC 윈도로 온라인 금융관리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돈을 쉽게 빼낼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또 악명 높은 ‘쿠키’는 컴퓨터 사용자가 작업중에 한 모든 일을 기록해 전달하는 기능을 한다. ‘빅 브라더’는 소설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리눅스, 정보공유운동의 상징

대안은 없는가. 물론 있다.

인터넷을 보자. 웹 사이트용 언어인 HTML, 전송을 위한 TCP/IP 규약, 버클리 인터넷 네임 디몬(사용자가 기억하기 편리한 dmi.ens.fr과 같은 주소를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129.199.11로 바꿔주는) 등 인터넷을 지지하는 핵심 기술들은 프리 소프트웨어로 모두에게 개방된 것이다. 이를 없앤다면 인터넷은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 소스 코드가 공개되고 모두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프리 소프트웨어, 바로 이 지점에서 대안이 형성되고 있다.

프리 소프트웨어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리처드 스톨먼과 리눅스이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의 유능한 연구원이었던 리처드 스톨먼은 80년대초 ‘프리 소프트웨어재단’(www.fsf.org)을 설립해 ‘그누(GNU) 프로젝트’(www.gnu.org)를 추진했다. 그 결과 핀란드의 젊은 개발자 리누스 토발즈의 결정적 기여에 힘입어 ‘리눅스’(www.linux.org)라는 대안의 운영체제가 91년 탄생했다.

‘해커주의’로 불리는 정보공유운동은 애초 공유재였고, 공유재일 수밖에 없는 정보의 자유, 즉 일종의 선물경제(gift economy)를 추구한다. 이는 ‘게이츠주의’로 불리는 지적재산권을 앞세운 사유재산권 강화 기도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그것은 결국 현실 정보사회가 기반을 두고 있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자체에 대한 도전을 함축한다.

리눅스 사용자는 현재 세계적으로 800만 명에 이르고, 매년 100%씩 늘어나고 있다. 정보공유운동과 정보사유론자간의 전투도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넷스케이프가 주력상품인 네비게이터의 소스코드를 공개하며 프리 소프트웨어로 바꿔놓은 뒤 IBM 오라클 선마이크로시스템즈 등이 ‘반MS 전투’를 위해 정보공유론자들과 결합하고 있다. 이 흐름의 중앙에는 에릭 레이몬드가 97년 ‘성당과 장터’라는 논문을 발표한 뒤 불붙기 시작한 ‘열린소스운동’이 자리잡고 있다. 코스모 교수는 에릭 레이몬드를 지지하는 듯하다.

그러나 애초 정보공유운동을 주창했던 리처드 스톨만은 “중요한 것은 반MS가 아니다. 정보의 자유에 기초를 둔 공유를 위한 투쟁이다”라며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복잡한 전쟁, 그끝에서 인류의 미래가 새롭게 시작될 것이다. 당신은 어느 길을 걸어갈 것인가.

이제훈 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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