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8년 10월 1998-10-01   970

국회의 이상한 풍속도

민의의 전장에서 국민은 뒷문 출입?

국회에서 6개월만 ‘배지’ 달고 다니면 사람이 변한다." 선거 직후 건강하던 초선 의원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중진들의 권위주의적 구태를 답습하면 국회 보좌진은 냉소적으로 이런 말을 내뱉는다. 아마도 국회에서 보이는 의원들의 허구적 특권의식이 꼴사납게 보이기 때문인가 보다. 초선, 재선, 삼선…. 선수를 거듭할수록 의원 스스로가 특권의식에 젖는 이유는 뭘까? 서늘한 바람이 불던 초가을, 국회의사당을 찾았다. 국회 본회의장에는 충남 논산군 양촌면에서 올라온 가락 김씨 종친회 회원들이 한 보좌관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여기는 국회의원 배지 안 단 사람은 들어올 수 없는 곳입니다. 특히 회기중에는 누구도 못 들어오죠. 국회 사무처에 등록된 직원 외에는 절대 출입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 여기가 높으신 분들이 있는 곳이죠. 의석은 중진일수록 뒷자리, 초선일수록 앞자리에 앉도록 돼 있어요. 이른바 밥그릇 숫자별로 높은 순서가 매겨진다 그겁니다."

손가락 마디가 굵은 한 농민이 “그렇게 높으신 분들이 멱살잡이하는 데가 여기유?" 하자 장내는 웃음판이 됐고, 보좌관은 애써 “여기는 민의의 전당이며 과거 군사독재와는 다른 성숙한 민주정치를 보일 것"이라고 설명한다. 의사당 1층 로텐더홀을 설명하면서도 그는 “국회의원 배지를 달지 않거나 장차관급이 아니면 정문출입이 불가능하고 전부 뒤로 들어와야 한다"며 위엄을 떨었다.

그의 말대로 국회는 국회의원들만 드나드는 출입문이 따로 있다. ‘정현관’이라 불리는 국회 본관 정문이 그것. 붉은 카펫이 깔려 지나는 사람의 ‘기를 죽이는’ 그 문은 유리로 된 자동문이다. 만일 의원 외에 다른 보좌진이나 국회 사무처 직원들이 실수로라도 그 문으로 출입을 하게 된다면 방호원이나 전경으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한다. 그들의 눈초리에는 “의원도 아니면서…" 하는 무시가 깔려 있다. 방호원으로부터 이런 취급을 받지 않으려면 아예 옆에 달린 출입구를 이용해야 한다. 오고 갈 때 형식적 검문을 거치면서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고쳐야 할 국회의 이상한 풍속도다.

국회에는 ‘의원전용’이란 게 많다. ‘전용식당’ ‘전용주차장’ ‘전용사우나’ ‘전용휴게실’ ‘전용열람실’ ‘전용복사기’ 등등등. 그중 국회에 들어서면 민초들의 눈에 가장 먼저 거슬리는 게 ‘전용엘리베이터’다. 붉은 카펫이 깔린 전용 엘리베이터 역시 의원 아닌 방문객이 이용했다가는 방호원들로부터 질책을 받는다. “당신이 의원님이야?" 물론 아닌 방문객들은 바쁜 걸음을 재촉하려다 변을 당하고 민망해져 건너편 붉은 카펫이 없는 일반용 버튼을 눌러야 한다.

지난 7월 2일 국무총리 지시사항으로 「공공기관 에너지 소비절약지침」이 하달됐다. 공공기관 3층부터 격층으로 엘리베이터를 운행해 에너지 소비절약의 모범을 보이자는 취지인 듯하다. 그런데 가급 공공기관인 국회는 이 지침을 시행하고 있지 않다. ‘보여주기식 행정’에 다름아니다. 지키지 않을 약속이라면 아예 꺼내지나 말 것을…. 또 이 지침에는 ‘환자용, 장애자용, 화물용’은 격층제에서 제외한다고 명시한다. 의원 전용 엘리베이터에 장애인 점자표시가 있는 것은 아무래도 의원에게 베푼 또 하나의 은전인 듯. 그러나 사실 이런 것으로 ‘국회 권위주의’를 문제삼기에는 다소 지협적이다. 이유는 그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선 건축학적으로 국회의사당의 권위주의를 지적해보자. 여의도 국회의사당은 1975년 9월 1일 준공된 지하 2층 지상 6층의 석조건물이다. 35m의 8각 화강암 열주 24개가 주랑을 형성하고 그 위에 밑지름 63.4m의 웅대한 돔을 이고 있는 이 건물은 길이 122m, 폭 81m로 단일 의사당 건물로는 동양에서 제일 크다.

돔은 ‘토론과 설득과정을 거쳐 하나의 결론을 내린다’는 의회정치의 본질을 상징한다고 하나 일각에서는 그저 ‘상여모양’일 뿐이라는 얘기가 있다. 여기서 국회의사당 건축과 관련한 이야기 한 토막.

1968년 여의도 국회의사당 건축은 국회 사무처 주관으로 ‘국회의사당 건축기술자문위원회’를 구성해 계획설계안을 일반공개와 6인의 지명설계로 모집하면서 시작됐다. 김정수·김중엽·안영배·이광노, 당시 내로라 하는 건축가 4인의 공동설계자에 의해 제출된 국회의사당 건축은 5층 높이에 돔이 없는 형식. 이에 대해 당시 국회의원들과 사무처 직원들이 딴지를 걸고 나섰다. “외국의 의사당을 보라, 돔이 없는 게 어디 있냐, 돔을 올려라!" 그래서 설계안에는 없던 돔이 올라섰고, 청와대 보고 후 5층 건물이 6층 건물로 수정된다. 이유는? “5층인 중앙청(현 광화문 국립중앙박물관)보다 높아야지 무슨 소리야!"

이렇게 건축에 대해서 문외한인 정치인들의 입김에 따라 설계가 마구 변경됐고, 건축을 최종 결정하는 자리에는 전문가 한 명 끼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건축가들은 당시 국회의원들과 사무처 직원들의 권위주의에 혀를 내두른다. 30여 년이 흐른 지금, 국회의사당 건축에 대한 전문가 의견은 “아름답지 못하고, 건축철학이 부재한 건물이며 관료적 권위주의적 외관"이다.

이처럼 국회는 건축부터 말로만 민의를 모으는 민주주의의 집합체일 뿐, 민주주의의 철학과 사상을 전혀 담지 않은 독재와 권위주의의 산물이다.

국회의원은 국민에 의해 선출된 헌법기관이다. 따라서 국민은 이들에게 막대한 권력을 위임한 것이다. 그런 만큼 국민이 준 권력을 조심스럽게 행사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국회의원은 임기 동안 그 권력을 남용해 잦은 문제를 만든다. 좀더 구체적으로 접근해보자. 의원과 맞대고 일하는 보좌진은 의원의 정책 파트너여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보좌관 임용방법에 대한 특별규정이 없기 때문에 의원 맘대로 전횡을 휘두를 수 있다. 의원 맘에 안 들면 그날로 잘릴 수 있는 게 보좌관의 운명. 그러니 의원들에게 좋은 말만 해주는 ‘Yes man’ 양성소가 될 수밖에(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또한 의원과 보좌진이 정책에 대해 토론하고 의원의 노선과 정견에 대해 상호작용해서 발전할 수 없다. 이렇다 보니 보좌관은 그저 의원의 ‘심부름꾼’ ‘대리집행자’ 정도로 전락하고 만다. 여당 국회의원의 한 보좌관은 “워낙 우리 사회가 합리적이지 않은 데다 행정부 등 관료와 일을 푸는 과정에서 윽박지르고 어거지쓰고 호령하는 게 훨씬 잘 먹히니 대다수의 의원들이 그런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며 쓴웃음을 짓는다.

“의원이 뭘 부탁했는데 안 했다, 그러면 갑자기 막 자료요 청하고, 담당자보다 윗사람을 동원해서 그 사람 손 좀 봐줘라 하는 식이에요. 권력뿐 아니라 다양한 인맥을 통해서 해당 관료를 끝까지 괴롭히죠. 그러니까 알아서 ‘기는’ 사람들이 많죠."

국회 상임위장에서는 더 심각한 일이 벌어진단다. 비공개 회의를 이용해 멋대로 말하고, 형식도 제각각이다. 최근에는 시민단체와 언론 등에서 의원의 점수매기기가 한창이니까 발언 횟수와 시간을 늘리려고 일괄질문 일괄답변을 요구하지 않나, 속기록에 남기기 좋게 서면질의서를 던지고 가는 예도 많다. 국사를 논하는 자리에서 이런 형식적 권위주의가 판치니 뭔들 제대로 될까?

이런 점에 착안해 최근 시민단체들은 의원의 탈권위주의적 바른 의정활동을 위한 대책의 일환으로 국민소환제의 도입과 국회 상임위·소위원회의 회의 공개를 요구하고 나섰다. 의원의 자질을 검증하고 질 높은 의정활동을 펼 수 있도록 의정감시운동을 본격화하자는 제안도 있다. 무엇보다 외국처럼 국회 방청이 어려우면 국회상임위 활동과 소위원회 회의를 TV 등 공인된 매체에 공개하라는 것이다. 그래야 일도 잘하고 권위주의적 행태도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국회의원은 면책특권을 포함해 국민이 잘 모르는 특혜를 누리고 산다. 새마을호 기차를 임기 동안 공짜로 이용하는 것이나 공항 귀빈실을 이용하는 것, 비행기 이코노미석을 업그레이드해 이용하는 것 등.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바쁜 의정활동을 위해서라면 눈감을 수 있다. 그런데 그런 혜택을 누리면서도 바른 의정활동을 하지 못하는 건 용서할 수 없다. 국민이 의원에게 특혜를 주는 만큼 의원은 성실히 의정활동을 해야 할 것이다. 권위주의에 빠져 권력을 남용하고 본분을 망각하는 일이 없기를 정말 바란다.

장윤선(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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