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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참여사회  l  since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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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년 11월
  • 2010.11.01
  • 934


“잊힌 것들은
아름답기보다는 쓸쓸하다”


테레사
자유기고가

 

좀 오래 된 이야기다.
오래 전,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할일 없이 빈둥거리던 그 시절, 막연한 자신감과 세상과 운명에 대한 무지로 시간을 그렇게 흘려보내버리던 그 시절, 내가 자주 찾아가던 나의 후배, K!

  어느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 집에서 한 정거장 반 정도 거리에 있는 연립주택 2층에 여동생과 같이 살고 있던 K, 그녀를 찾아갔다. 내 손에 귤봉지 비슷한 어떤 것이라도 들려있었으면 좋았을 걸. 나는 그야말로 늘상 웃으며 맞이해 주는 그녀들의 호의에 답할 만한 그 어떤 것도, 몸에 지니지 못한 채 그 집을 방문하였던 것 같다.

  그 날도 K 그는 낡아서 먼지가 폴폴나는 침대에서 뒹굴고 있었다. 으레 방문에 따르는 이런저런 인사말이 오갔을 법하고, 그 즈음 아프리카 민속음악에 빠져 있었던 그녀는 귀에 익지 않은 타악기소리로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무렵 그녀는 비트겐쉬타인 원서를 강독하고 있었다. 그 침대 밑에서 나는 『타르튀프』 문고판을 발견하기도 하였다(그 책은 지금도 내게 있다). 그 침대 밑에서라면 무언들 발견하지 못하였을까? 마치 고서점에라도 온 듯 특유의 냄새가 났던 책들이 아무렇게나 삐죽삐죽 나와 있었다. 그 넓고 낡은 침대며, 그 당시 우리들 나이만큼이나 거칠게 이어붙인 나무책장이며. 그 방을 어떻게 묘사할 수 있을까. 아무려면 어떠랴. 두 여자들만의 방이었다고만 해 두자.

  그날 그녀는 나에게 『위대한 유산』의 첫 문장들을 읽어 주었다. 오랫동안 나는 그 문장들이 미스 해비셤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9시 20분 전에 전 생애가 정지해 버린 한 여자의 이야기 말이다. 그즈음 그녀는 『위대한 유산』의 첫 문장을 자주 읽곤 한다고 하였다. 우리가 어떤 문장들을 반복하여 읽고 싶다는 것은, 그 문장들을 내 생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싶어한다는 뜻일까? 하지만, 그 뒤 알폰소 쿠아론이 만든 영화 <위대한 유산>을 보러 갔을 때도, 내가 그 책을 읽기로 마음먹은 바로 그날에도, 그 누구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K를 생각했다. 

  마침내 위대한 유산, 첫 페이지를 넘겼을 때, 그것이 이렇게 시작된다고 하여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을 하는 셈이다.

  “우리 아버지의 성은 피립이고 내 세레명은 필립이었는데 어린아이 적 내 짧은 혀는 이 이름과 성을 핍 이상으로 길게도 분명하게도 발음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늘 내 이름이 핍이라고 말했고 그 결과 나는 핍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우리 아버지의 성씨가 피립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아버지의 묘비와 우리 누나인 조 가저리 부인―누나는 대장장이의 아내였다―의 말에 근거를 둔 것이다.”

  이렇듯 미스 해비셤의 이야기로 시작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9시 20분 전에 전 생애가 멈춰버린 한 여자 이야기가 아니어도, 나의 기억이 따라서 올바르지 못하다는 사실에도 내가 전혀 놀라지 않았다고 한다면 말이다.

  어쩌면 진정 놀라워해야 할 일은, 이토록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한 지점에 우뚝 멈춰 서 있는 그 두 자매에 대해, 내가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이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여행 중 기차에서 만난 독일 남자의 아내가 되어 멀리 떠나버린 K. 늘 싫은 내색 없이 우리에게 자신의 집이 기꺼이 아지트가 되도록 조용히 자리를 비켜주거나, 침묵하였던 그 여동생은, 이제 어떻게 되었을까?

  잊힌 것들은 아름답기보다는 쓸쓸하다. 그 두고 온 것들, 만지작거리며 들춰보던 책들의 표지며, 같이 웃었던 기억들조차, 마음에 미세한 떨림을 준다. 왜 어린시절을 회상하거나, 지금보다 몇 년 더 나이를 거슬러 올라가기만 하면, 늘 감정의 균형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일까. 우리가 잊힌 사물들에서 받는 어떤 인상이 쓸쓸함이라면, 꿈이나 사상, 어떤 가치있는 정신의 한 상태를 잊어버린 대가는, 무엇일까?

일상에 숨어있던 미세한 균열

여기 젊은 부부가 있다. 남자와 여자의 나이는 둘 다 스물 아홉. 남자는 귀엽고 사랑스런 두 아이의 아버지로, 안정적인 직업까지 갖춘 부족할 것 없어 뵈는 중산층의 가장이다. 그는 “검은색 머리카락은 짧게 깎았고 눈에 띌 정도는 아니지만 준수한 외모의 소유자였다. 눈길을 끌 만큼 개성적인 면이 없는 몸매인데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에는 평범하지 않은 변덕이나 들뜬 마음 같은 게 어렸다.”(26쪽) 그는 한 때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확실히 알 때까지 직장없이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지냈지만, 결혼을 하고 이제 어느덧 중산층 부부들이 대개 그렇게 하듯 교외의 아늑한 집을 구해 이사하여 안정된 생활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여자는, 뉴욕의 일류 드라마 학교를 나왔으나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엄마로 여기 코넷티컷 교외의 레볼루셔너리 힐 에스테이트에 정착하였다. “스물아홉살의 그녀는 귀족적인 아름다움을 풍기며, 큰 키에 은빛이 도는 금발의 미인이었다.”(19쪽)

  이들 부부에게 삶의 미세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여자가 동네 사람들과 만든, 자신의 어린 시절 배우의 꿈을 상기시켜준 연극 공연이 실패한 바로 그날부터 였을 것이다.

  그렇다. 살면서 우리는 매순간 뾰족하게 날이 서 있지는 않다. 비록 불만이 있을지라도, ‘이게 아닌데’라고 거듭 깨우쳐주는 찰나의 순간은 존재하더라도, 더 큰 혹은 더 중요한 계기가 필요하다. 그 계기를 이유삼아 항상 익숙하던 것에 감히 반기를 들 수 있을 터이다. 하지만 어쩌면 이런 논리야말로 우리가 한없이 나약하고 한없이 무르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계기 없는 반역이 어떻게도 가능하지 못할 것이란 이 비관적 전망 말이다. 여자는 남자에게 파리로 가자고 한다. 이미 계획은 확고부동했다. 여자는 남자에게 원래 원하던 것을 찾아보라고 한다. 일자리가 없어도 자신이 먹여 살리겠다고. 6개월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드디어 9월이 오면, 파리로 네 식구가 “영원히” 떠나는 것이다.

  “이 염병할 교외 주택가 타입의 좀스러운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살아가는’ 일이 지독하게 힘들다는 거지… 한통속으로 좀스럽고 무능하고 얼간이 같은 인간들 틈에서 다치지 않고 살아가는 거 말이지….”(44쪽)라고 말할지언정 진정 여기를 벗어날 용기가 없었던 남자보다 여자는 더 과감했다.

  여자는 남자에게 “당신은 ‘시간’을 갖게 되는 거란 말이죠. 당신 인생에 처음으로 스스로 하고 싶은 게 무언지 찾아내기 위한 시간을 갖게 될 거에요….”(163쪽)라고 말한다. 그러나 남자는 어땠을까? “그 계획을 듣는 순간 겁에 질린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는 중이었다.”(162쪽)

  여자가 어떻게 서로를 설복시켰든 간에 마침내 두 사람은 유쾌한 혼돈, 도취된 방종의 시간을 시작한다. 프랑스어를 배우고, 여권을 신청하고, 사표를 쓰고, 밤마다 떠날 도시와 맞을 도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말이다. 무언가를 갈망한다는 것은 그리고 그 갈망이 곧 몇 달 안의 성취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사람을 얼마나 매혹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인가? “그녀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차분해서 커튼콜을 받으며 섰을 때 딱딱하게 경직되고 굴욕감으로 참담하던 여배우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에게서는 고전적인 미인의 자태가 풍겨 나왔다. 그 누구라도 유럽을 정복한 그녀의 모습을 그려볼 만했다.”(187쪽)

  남자 역시 “평소보다 말의 속도가 느리고 더 신중하며 더 깊은 어조로 더 유창하게 말한다는 것을, 그는 이제 말을 더듬거나 얘기를 매끄럽게 이어가기 위해 사과하듯 던졌던 말들에 기대는 일이 별로 없었다. … 그러나 때때로 밤이 이슥한 시각, 말을 아느라 목이 아프고 눈자위가 화끈거릴 때, 어깨를 웅크리고 턱은 쑥 내밀고 넥타이를 느슨하게 당겨 무슨 밧줄처럼 걸고 있을 때 창을 유심히 노려보면 자기에게도 어느덧 담대한 풍채가 배어 나오고 있음을 느꼈다.”(188쪽)

  그러다가 그만 일이 터졌다. 뜻하지 않은 일. 생각지도 못했던 일. 여자가 세 번째 아이를 임신한 것이다. “자기 앞으로는 사실상 돈 한 푼도 없는 사람들이, 그것도 이제 막 학교에 들어갈 나이의 아이들을 데리고” 무작정 파리로 떠나고자 했던 이들에게, 어쩌면 결정적인 짐이 더해진 것이다. 유일하게 위선이나 안락함과 거리가 먼 기빙스 부인의 미친 아들 존이 한 말처럼 “이 나라의 모든 것에 담긴 절망적인 공허”에 대해 이야기했던, 밤이 새도록 죽치고 앉아 공허에 대해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절망을 보려면 훨씬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하였던 바로 그 순간에 용기를 꺾을 가장 강력하고 그럴듯한 구실이 생긴 것이다.

  “가족이 생기면 진짜 삶에서 물러나 ‘안주해야’ 마땅하다는 생각… 그건 교외 주택가에 사는 사람들이 빚어낸 지극히 감상적인 거짓말이에요”.(167쪽)라고 웅변했던 여자도 이 세 번째 임신이 갖는 의미를 알고 있었다. 하필 때맞춰 남자에게는 승진의 기회도 왔다. 남자에게 그것은 성공을 보장할 수 없는 모험을 접을 좋은 구실이 되었다.

“자신을 그런 식으로 가도록 내버려 두었다니 얼마나 교묘하고 불성실한 짓인가! 일단 그렇게 시작되면 그만두기가 너무나 어려워지는 것을….”(436쪽)

  여자는 자신을 몰아세운다. 그리고 “절대적으로 정직하고 절대적으로 진실한 무언가를 하고 싶다면 그것은 반드시 홀로 처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우친 자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기로 마음먹는다. 책 앞머리의 “아아, 슬프도다! 미약하면서도 격렬한 정열이여!”라는 존 키츠의 인용구에서 이미 이 이야기의 결말이 내정되어 있었던 것인가.

  바람이라도 불었으면 좋겠다. 그 바람에 서글픔의 기미가 묻어있으면 안심이 좀 될 것 같다. 때로 우리가 위안을 얻을 수 있는 대상은 동조하는 듯한 일말의 자연의 기미인지도 모른다. 그 자매들이 있던 방은 이제 모르는 낯선 사람들이 살고 있다. 마치 에이프릴과 프랭크가 떠나 버린 레볼루셔너리 힐 에스테이트에 새로운 젊은 부부가 이사왔듯이. 삶은 계속되고 생활은 이어진다. 내 나이 스물 아홉이었던 때, 그 좁은 자매들의 방에서 그들과 내가 좇고자 했던 것이 정신의 고양이었는지, 그보다 더한 무엇이었는지는 사실 불분명하다. 인생이 더 깊어가더라도 모르기는 매한가지 같다. 다만,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던 그 때, 쉽게 동요하고 쉽게 꿈꾸고, 그리고 쉽게 떠날 수도 있었을 그 때, 적어도 에이프릴 그녀만큼은 용감했던 것 같다. 또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 지는 적어도 더 명료했던 것 같다. 잊혀진 사물들은 쓸쓸하다. 그러나 잊혀진 꿈, 잊혀진 용기는, 그래서 슬픈 모양이다.


필자가 말하는 테레사는…
“제 이름은 테레사, 아녜스, 사라… 어쩌면 스밀라입니다. 이들은 모두 저를 매혹시킨 책 속 여주인공들입니다. 흔히 누구에게나 인생을 변화시킨 책 한 권쯤은 있다고 하는데 저는 부끄럽게도, 없습니다. 다만, 지금 현재 제 손에 들려 있는 책이 늘 최고의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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