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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년 11월
  • 2010.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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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파동은 단지 예고편일 수 있다


김성희
『참여사회』 편집위원, 계간 <살림이야기> 편집장

 

잠시 꿈이라도 꾼 것일까. 여름이 끝나갈 무렵 배추파동이 일어났다. 한 포기에 1만 8천 원까지 값이 치솟았다. 평소에는 배추김치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사람들도 식당에서 주는 한 접시 배추김치에 감격해 했다. 트위터에는 식탁에 오른 배추김치 사진을 자랑하듯 띄우는 사람이 적잖았다. 여덟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린 끝에 배추 한 망을 사들고 환호하는 주부들의 사진이 신문에 실렸다.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딸들에게 비참하게 무시당하던 배추김치를 떠올리면 잠시 동안의 배추결핍에 겁에 질린 듯 온 종일 줄 서 기다린 끝에 배추를 배급받는 주부들의 광경은 생경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김장배추 수확이 시작되면 다시 배춧값이 폭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어리둥절하다.

  가을에 일어난 그 야단스러운 ‘배추파동’을 보면서 예전에는 김장때나 담가 겨울 동안 먹던 그 ‘포기김치’를 단 한두 달이라도 먹지 않으면 못 견딜 만큼 우리가 배추를 사랑했던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어떤 이유인지 언론이 선동하고 부풀려진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물론 이상기후 때문에 고랭지 배추의 수급이 불안정 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런 일이 올해에만 일어난 특이한 현상인지,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하다보면 불안과 걱정이 더욱 커지기만 했다.

  일시적으로 배추 값이 폭등한 것이 비단 올해만의 일은 아니다. 배춧값은 폭등과 폭락을 되풀이 해왔다. 그러나 배춧값이 열 배 이상 올라도 농부들이 ‘떼돈’을 벌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지만 폭락의 대가는 농부들이 떠안게 된다. 실의에 찬 농부들이 분노로 배추밭을 갈아엎는 광경을 우리는 자주 보아왔다.

  올 가을 배춧값이 폭등한 데는  몇 가지 원인이 있었다. 우선 생산량이 줄고 수급에 차질이 빚어졌다. 기후변동 때문에 배추뿐만 아니라 곡물과 과채 농사는 큰 타격을 받았다. 지난 8월 한 달 동안 서울에는 무려 24일 동안 비가 내렸다. 비단 서울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1908년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자주 내린 것이라고 한다. 1973년 이래 기온도 가장 높았다고 한다. 무덥고 습한 기후가 찬 기후를 좋아하는 배추와 무에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유기농 농사를 하는 소농들은 대개 감자를 캐고 나서 배추 모종을 심는데 아는 사람들 가운데는 쉴 새 없이 쏟아진 비 때문에 모종이 녹아내려 세 번 네 번씩 다시 심었다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배춧값이 폭등한 정도로 지나갔지만 올해 다른 나라들이 겪은 기후재앙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파키스탄은 지난 7월 말, 유례없는 홍수로 전 국토의 1/5이 물에 잠기고 1800명이 사망했다. 수천만 명이 삶의 기반인 농토가 쓸려 이재민이 됐다. 이들은 지금도 난민촌에 발이 묶인 채 절박한 상황이라고 한다. 아시아 3위의 밀 생산 국가인 파키스탄의 농업기반을 휩쓴 대홍수는 그 나라가 어떤 잘못을 해 벌어진 일이 아니다. 또 그 재난의 여파가 파키스탄에만 국한되지도 않을 것이다. 반대로 러시아에서는 건조한 날씨 때문에 산불이 국토를 뒤덮어 국가비상사태까지 선포해야 했다. 가뭄과 산불로 농업생산이 차질을 빚자 러시아는 내년 6월까지 곡물수출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국제 곡물시장이 요동 칠 게 뻔하다. 2008년 국제곡물가격이 폭등하자 쌀 수출국인 태국과 베트남이 수출을 통제했다. 수입해다 먹던 필리핀에서는 쌀값이 치솟아 폭동이 일어났다. 무장한 군인들이 쌀을 배급하는 광경이 텔레비전 뉴스에 나왔다. 불안했다. 저 먼 나라의 일로만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후재난은 에너지를 지나치게 많이 쓰는 우리세대의 생활습성에서 비롯됐다.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을 인정해야만 그나마 파국을 막을 기회가 아직 남아 있다. 지난 100년 동안 지표면 온도가 불과 0.74℃ 높아졌는데도 기후가 교란되고 생태계가 혼란에 빠졌다. 여름 내내 쏟아진 비와 위력이 세진 태풍도 그 때문일 것이다. 국립기상연구소는 21세기 말까지 기온이 4℃정도 올라가게 될 것이라 예측했다. 지금처럼 마음껏 먹고 쓰다 버리는 생활이 지속되는 한 말이다. 

  이반 일리치는 설령 무공해 에너지일지라도, 에너지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일을 마약중독에 비유하면서 기계의존이 인간의 신진대사 에너지에 비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사회는 반드시 관료체계가 강화되고 정신과 문화가 타락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달콤하고 기름진 음식에 길들여진 소비생활을 지탱하기 위해 우리가 감당하고 있는 스트레스를 떠올리면 되새겨볼 이야기이다. 또 당장에 벌어지고 있는 이 음산하고 불길한 기후변화와 세계 도처에서 진행되고 있는 기후재앙을 보면 배추파동은 단지 우리에게 다가올 암울한 미래의 예고편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한 해 우리나라 곡물 소비량의 45% 이상이 가축사료로 쓰인다고 한다. 수입 육류만이 아니라 사료를 먹여 키운 한우와 돼지고기도 식량자급률을 떨어뜨리고 기후변화를 부채질 하고 있는 것이다. 배추도 마찬가지다. 올해 배추 파동이 공급량 감소로부터 촉발된 것은 맞지만 9월 10월은 원래 김장김치가 나오기 전까지 배추 없이 지내는 게 자연스러운 시기였다. 김장김치가 떨어지고 다음 해 김장을 담글 때까지 여름과 가을 동안은 총각김치, 열무김치, 갓김치를 먹었고 고구마줄기로도 김치를 담가 먹었다. 그런데 언제인가부터 집집마다 대용량 김치냉장고가 필수품처럼 자리 잡았다. 한 여름에도 신선한 김장김치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중국에서 김치와 배추를 사다대게 하고 한겨울에 비닐하우스에서 석유를 때 해 모종을 길러내는 식의 석유농사를 짓게 만든다. 더욱 급속하게 진행될 지구온난화를 생각하면 우리가 겪은 배추파동은 우리의 무절제한 욕망이 불러올 본격적인 기후, 식량재앙의 예고편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배추김치를 당분간 참는 일쯤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겠지만 돈이 아무리 많아도 외국에서 사올 식량이 없다면 어떤 참혹한 일이 벌어질까. 쌀을 제외하면 식량자급률이 5%에도 못 미치는 우리나라에 말이다. 

농업포기 정책은 바뀌어야 한다

배추 가격이 폭등하고 여론이 들끓자 대통령은 배추 대신 양배추를 먹으라고 속없는 소리를 했다가 호된 여론의 질책을 받았다. 정부는 관세를 철폐하고 검역도 소홀히 하면서 중국산 배추를 들여왔다. 속수무책으로 배추 품귀를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겠지만, 정부의 대응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근시안적이고 무책임했다. 예상대로 중국에서 수입한 배추는 도매시장에서 낙찰도 되지 않아 금세 천덕꾸러기가 됐다. 중국산 김치는 2003년부터 수입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맛도 없고 기생충 알이 검출 되는 등 위생 문제  때문에 인기가 없었다. 그러나 2004년에 배추파동이 나 ‘금치’라는 말이 유행할 지경이 되자 주로 외식 식당을 통해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집 밥’ 먹는 사람들이 날로 줄어가는 형편에서 중국김치는 식당에서부터 우리 밥상을 점령했다. 밖에서 사먹는 밥반찬으로 나오는 김치의 거개가 이런 중국산일 것이라는데 생각이 미치면 기분도 입맛도 영 개운치가 않다. 이번 배추파동을 계기로 시장에는 중국산뿐 아니라 캘리포니아산 배추까지 나돌게 되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중국산 배추를 전격 수입한 것처럼 식량을 외국에서 사다 조달하겠다는 것은 정부의 일관된 농업 식량정책의 핵심이었다. 선거 때마다 농업 농촌에 대한 대책을 들고 나왔지만 본질적으로는 농사 포기를 일관되게 종용해왔다. 지난 참여정부나 국민의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정부만 그런 게 아니었다. 농민들과 일부 농민, 농업 관련 단체를 제외하고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많은 이들이 ‘핸드폰, 자동차 팔아서 식량을 사다 먹으면 된다’는 식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농촌은 급격히 해체되었다. 농가인구는 1990년 약 660만 명에서 2010년 약 230만 명으로 줄었다. 전국의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이 10% 넘었다며 고령화를 걱정하는데 농촌지역은 이미 20%를 넘어서고 있고 농어업 종사자들은 40% 이상이 해외에서 이주한 여성들과 결혼을 하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들과 해외에서 이주해온 여성들이 허물어져 가는 농촌을 가까스로 지탱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번 배추 파동의 진앙지인 고랭지채소 재배지는 노동력이 많이 필요한 산간 지대에 있다. 그러나 대부분 노령화된 그곳 농부들은 이제 충분한 보상도 받지 못하는 거친 노동을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다다랐다. 이 때문인지 배추경작 면적은 2003년 8,796ha에서부터 올해 5,003ha까지 꾸준히 줄었다고 한다. 생산지 사정뿐만 아니라 쌀 소비와 함께 배추 같은 채소류의 소비가 같이 줄어든 이유도 있을 것이다. 고랭지 채소 재배지역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생태 순환적으로 소규모 영농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가뜩이나 배추는 병해충에 약한데 환금성을 목적으로 대규모로 단일 작물을 재배하고, 같은 작물을 되풀이해 심는 까닭에 농약과 화학 비료 살포는 더욱 많아질 수밖에 없다. 농촌에 일손이 없으니 파종 때나 수확기에는 외지 인력을 동원해야 하는데 농부들에게는 그럴 여력도 없다. 이 때문에 중간상들에게 ‘밭떼기’를 할 수밖에 없다. 전체 채소시장의 75~90% 정도가 밭떼기 형태로 거래되며, 중간상인들은 일용직 노동력을 동원할 수 있는 시스템과 자본을 갖추고 있다. 이들은 시장 가격이 폭락하면 계약금을 포기하고 인수를 거절하기도 하고 값이 좋으면 인부들을 동원해 시장에 높은 가격에 내다 팔아 이윤을 획득하는 일이 잦다고 한다. 생산자 조합인 농협이 농민소득 보장과 수급조절에 별다른 기능을 못한 새 재벌들의 대형유통업체들은 발 빠르게 움직여 배추 사재기에 나섰다는 보도도 나왔다. 

  가뜩이나 채소 재배면적이 줄고 있는데 4대강 사업으로 근교 채소 재배지를 뒤엎고 있다. 그나마 농사를 지어 볼만했던 도시 근교 강변 옥토를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자전거도로와 산책로를 조성하겠다며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 붓고 있다. 정부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더라도 농업을 포기하고 4대강을 통해 경기를 진작시켜 전체 국민의 복리가 증진되기 위해서는 언제까지나 외국에서 값싼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계속 사다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벌어지는 일들은 더 이상 그러기 어려울 것이라는 암시를 주고 있다. 

정부와 시장만 바라보고 있을 수 없다 

영화 촬영감독으로 일하다 괴산으로 귀농한 후배가 있다. 고랭지배추가 몸살을 앓을 때 전화를 해보니 그는 새벽 4시에 밭에 나가 배추벌레를 잡다가 10시경 돌아와 늦은 아침을 먹고 있다고 했다. 살충제를 칠 수는 없기에 그런 수고를 감내하는 것이다. 그는 지난 여름 600평 옥수수 밭에 유기농 농사를 지어 300만 원쯤 벌었고, 고구마와 올해 김장 배추까지  수확하고 나면 농사로 1000만원 남짓의 소득을 올리게 된다고 한다. 농사에 익숙해지고 규모도 더 늘리면 소득은 조금 더 늘겠지만 그는 도시에 살 때보다 소득이 줄더라도 덜 쓰고 더 행복한 길을 찾아 귀농한 것이다.

  시중 배추가 한 포기에 1만5천 원이 넘었다는 보도로 시끄러울 때 한살림과 같은 생협들에서는 여전히 한 포기 1,700원 정도에 배추가 공급됐다. 시장에서는 수급상황에 따라 가격이 널뛰지만 생협들은 대개 매년 생산자와 소비자가 모여서 가격과 생산량을 약정하고 일 년 내내 비슷한 가격을 유지한다. 물품 가격은 물가인상 등을 감안해 책정하지만 가장 중요한 원칙은 농민 생산자들이 생태적인 친환경농업을 지속할 수 있게 ‘적정 가격’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시장 가격이 폭락하면 생협의 배춧값이 조금 더 비싼 경우도 있지만 올해처럼 비교할 수 없이 싼 경우도 많다. 수입농산물가격이 계속 오르는 탓에 시장가격이 이제는 생협에서 직거래로 오가는 유기농 식품과 가격차이도 거의 없다. 이윤추구만을 목적으로 상품과 돈만 오가는 ‘싸늘한 관계’가 지구환경 망치고 우리 식탁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한살림과 같은 생협들의 직거래운동이 시작되었다.

  비가 오면 괴산이나 해남에 있는 아는 농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그곳의 농부는 자기가 기른 배추가 단오잔치 때 만난 어느 소비자의 밥상에 올라갈 것인지 알기에 새벽에 밭에 나가 손으로 벌레를 잡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들은 진심으로 서로의 생명과 생활이 안전하게 유지되기를 원한다. 한살림을 비롯한 생협들의 기본 가치는 여기에 있다. 배추파동 때문에 생협들은 잠깐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값 싼 유기농 배추를 생협에 가면 구할 수 있다.”는 식의 언론의 보도태도들은 우려스러웠다. 가격만 부각시키면 생협이 시장을 넘어 농업과 농촌, 도시 소비자의 건강을 추구하는 대안적 관계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무심코 지나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협 방식의 대안적인 직거래 운동에 대해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것은 의미가 있었다. 아직 유기농업과 생협 방식의 대안적 직거래방식이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아주 미미한 수준이다. 우리보다 20년 정도 앞서 시작한 일본의 생협 가입세대가 2200만에 달하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아직 40만 세대 남짓한 수준이다. 갈수록 식량수입 의존이 커지고 대책 없이 붕괴되는 우리 농업과 농촌과 불안한 우리 밥상, 기후변화로 몸살 앓는 지구 생태계를 생각해도 생협의 직거래는 더욱 늘어야 한다. 

  좀 더 냉정하게, 솔직한 이야기를 해보자. 배추 한 포기면 김치를 담가도 한동안 먹을 수 있지만 국을 끓이거나 배춧속에 쌈을 싸 먹어도 온 가족의 식탁이 푸짐하다. 김치 한 가지만 놓고 밥을 먹어야 하는 이들에게는 배추 한 포기가 1만5천 원으로 치솟은 일은 가혹한 일이었지만 3, 4만 원짜리 피자나 2만 원 가까이 하는 튀김닭은 하루가 멀다하게 사먹는 사람들에게 과연 열배 치솟았다 해도 그 배춧값이 그토록 기함할 만한 일이었을까. 밭에서 흙과 뒤섞여 노동하는 농부들에게 그 대가가 고스란히 돌아가기만 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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