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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년 11월
  • 2010.11.01
  • 1138


사추기(思秋期), 남자 나이 마흔을 말하다



김희은
한국여성사회교육원장 


“저에게도 꿈이 있었는데 가물가물 기억은 나지 않고, 누군가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이제 자조섞인 목소리로 짤리지 않는 게 꿈이라고 합니다.”

 

  “애 둘 딸린 가장이 무슨 꿈이 있냐고…. 에베레스트에 한번 오르고 싶다고 했더니, 마누라가 갔다 오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동안 우리는 거리에서 굶고 있을 테니’ 라며 말이죠.”

 

  “노후에 시골에 내려가서 농사지었으면 하는 소박한 꿈을 말하면 당신 혼자 가라고 합니다. 세상은 그런거지요.”

 

  한국사회 40대 남자들의 이야기다. 왜 남자 40대인가? 남자의 40대는 아직은 삶에 자신 있는 것 같으면서도 불안한 시기이다. 무작정 앞을 보며 열심히 달려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과연 잘 달려온 것인지, 앞으로도 이렇게 달리는 것이 가능한지, 이런 삶이 과연 내가 바라는 삶이었는지, 나대로 살지 못하고 돈 버는 기계로만 살아온 것 아닌가라는 실존적 불안과 질문들이 간간히 그러다가 시도 때도 없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여자에게만 있는 줄 알았던 갱년기가 남자인 나에게도 손을 내민다.

“나는 문제없어” 정말?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던가? 나는 내 삶의 주인공인가? 훗날 이 세상을 떠날 때 잘 살았다고 기쁜 마음으로 말할 수 있을까? 한국사회 남자들은 이런 질문들에 ‘나는 문제없다’고 외치며 산다. 나에게도 문제없고, 부부관계도, 자녀관계에도 문제가 없다. ‘문제없음 이상 끝!’이라는 구호가 남성들 사이에 대를 이어 내려온다. 그러나 문제가 없지는 않다고 저 마음 한 구석에는 꿈틀거리는 소리가 난다. 더구나 억지로 살아온 나의 삶을 자녀 세대에게 넘겨주고 싶지는 않은데 무의식적으로 넘겨주려한다.

  한때 그렇게 열정적으로 혹은 친구처럼 사랑하며, 평생을 함께 하기로 한 동반자는 이제 나를 무능하고 한심한 인간 취급을 하는 것 같아 비애를 느낀다. 나도 그녀가 원하는 것을 다 주고 싶고 그래서 대접받고 싶다. 그러나 이 사회와 세상은 나에게 그런 몫을 주지 않는다.

  어느 광고에서처럼 남자는 그렌저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은 그렇게 남자는 소유한 물건으로 평가받는 거라고 외친다. 이리저리 치받쳐도 한 끼 밥술에 견뎌야하는 삶은 동료들과 함께 하는 퇴근 후 술 한 잔 없이는 참 힘들다. 그래서 남자들은 퇴근 후에도 어울린다. 같이 밥 먹고 술 마시고 비틀비틀 집으로 간다. 어떤 외국인이 물었다던가? 한국 남자들은 다 동성애자들이냐고? 왜 집에 안가고 남자들끼리 밤거리를 헤매 다니느냐고. 힘들다고 표현하지도 못하고 그렇게 세월을 삭이다보면 서운함과 분노가 가슴에 쌓이고 골이 잔뜩 난 불퉁거리는 노인으로 변해간다.

40대, 인생 2막 위해 고고싱~

스스로가 문제없다고 이야기하는 40대 남자들을 위한 강좌나 교육들이 최근 시민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강좌는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바라보고 치유해가는 자기성찰, 즉 내면으로의 여행과 관계회복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한 사회에서 시민으로 건강하게 산다는 것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문제들과 흐름들을 파악하고 그에 대처하고 변화를 주도하는 것을 우선한다. 그러나 그러한 능력조차도 자기성찰로부터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자기성찰적인 교육은 남성들에게 있어서는 아직은 낯설고 초보적인 단계이다. 

  40대 남성 교육은 무엇보다도 보살핌과 돌봄의 방향제시를 할 수 있어야 한다. 40대 남성 교육은 우선 그들에게 ‘나’를 만나고 되짚고 사귈 기회를 주는 교육, 두 번째는 작은 나를 찾고 동시에 큰 나를 찾아 참된 우리로 만들어가는 인간관계 훈련, 세 번째로는 가족관계, 부부관계, 자녀관계 등을 개선하는 교육, 마지막으로 서로 함께 보살핌과 돌봄을 맛볼 수 있는 봉사활동 교육들로 구성된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브르디외는 우리 삶은 ‘필요’가 아니라 ‘여유와 사치’때문에 풍요로워지고 창의적이 된다’고 말한다. 이 교육은 그런 의미에서 당장 사는데 필요한 교육은 아닐 수 있다.

  남자들은 주로 직무연수나 기술훈련 등 ‘필요’에 의한 교육을 받는다. 딱딱한 의자에 앉아 앞사람 뒤통수를 쳐다보며 이 어려운 시대에 낭떠러지로 추락하지 않기 위해 생존에 필요한 기술을 공부한다. 이러한 필요 교육만이 아니라, 생존 교육을 넘어서서 다시 한 번 날개를 활짝 펼치기 위한 교육 참여가 필요하다.

  필자가 강사로 참여했던 40대 남성 교육에 참가한 40대 남자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한다.

  다음 시간이 너무 기다려진다고. 나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보고 일깨우는 시간이라 더욱 더 기다려진다고. 거대담론 중심의 교육에서 잠깐 벗어나 우리의 생활 세계, 감각 세계, 감정 세계, 감정이 교류하는 정서적 친밀감의 세계를 그들은 다시 발견하고 있다.

  물질만능 사회에서, 많이 사랑하고 소중하지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할 것 같은 무능력감과 비참함 속에서가 아니라 지금 이미 내 안에 가지고 있는 것들을 다시 발견하고 서로 나눌 수 있다면 사회에서나 가정에서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게 40대는 미래를 위한, 인생 2막을 위한 멋진 출발의 나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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