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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년 11월
  • 2010.11.01
  • 980


비웠지만 가득 찬 집, 빈집


이지현
『참여사회』 객원기자

 

일주일 전 드디어 이사를 했다. 서울의 집값은 정말이지 ‘서울스럽다’. 볕도 잘 들지 않는 쪽방 주제에 한달에 삼십만 원을 부른다. 해마다 집값은 오르고 올라, 최근 2년간 3번이나 이사를 하게 되니 집 없는 게 죄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집주인에게는 수개월 후에 가격이 가능한 빨리 올라야, 가능한 사람을 많이 우겨넣을 수 있어야 좋은 집이다. 적어도 이런 집을 일컬어 잘 살기 위한 집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잘 사기 위한 집이라고 하면 적절하려나.

  ‘빈집/빈마을’은 그런 의미에서 여타 집과는 다르다. 이른바 ‘잘 사기’ 위한 집은 아니다. 다만 그곳에서는 어떻게 하면 공간을 소유하지 않고도 생활을 영유하며 재미있게 ‘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실험하고 있다.

  해방 후 해외에서 귀국해 정착한 사람들과 38선을 넘어 월남한 사람들이 정착했기 때문에 해방촌이란 이름을 가진 동네에는 4채의 빈집이 모여있다.

  첫 빈집은 2008년 2월 경 만들어졌다. 자신들이 살 집을 구하던 지음과 아규는 방을 구한 후 이 집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기로 하고, ‘빈집’이라 이름 붙였다. 비어있으며 가난하다는 의미의 빈貧집, 손님들의 집이라는 의미의 빈賓집에서 음을 가져와 집 이름을 정했다. 빈집은 일반적으로 손님이 투숙하는 곳을 의미하는 ‘게스트 하우스Guest house’가 아니라 ‘손님들의 집’이라는 의미의 ‘게스츠 하우스Guests' house’를 표방한다. 빈집에서 ‘모든’ 사람들은 손님이자 주인이다. 때문에 생활 및 가사노동 역할을 고정시키거나 강제하지 않는다. 다만 일주일에 한번씩 각 빈집에서 하는 집회의에서 서로 바라는 바를 소통하고, 조율한다. 빈집의 투숙인들은 자신들의 공간을, 소유물을 공유하며 함께 생활하는 법과 관계 맺는 법을 배운다. 첫 빈집을 만들고 2년 8개월여, 점차 다른 빈집들이 늘면서 현재 해방촌에는 아랫집, 옆집, 앞집, 가파른집건넛집이 빈마을을 이루고 있다.

함께 뭔가를 하는 곳

공사중인 빈가게를 찾아갔을 때 빈집 손님들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잘 왔다며 살갑게 음식과 공정무역 커피를 내놓았다. 커피를 마시며 지음, 말랴, 달군, 디온, 살구, 라브에게 기자는 이것저것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왜 하필이면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실험을 하게 된 걸까 궁금해 하는 기자에게 이들은 의외의 대답을 했다. 반자본주의나 현재 한국의 부동산 열풍에 반대해, 어떤 특정한 정치적 지향을 가지고 모인 것은 아니다. 대부분 경제적 문제(방세)를 해결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라는 것.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알아서 모인 것이다 보니 생태주의, 반자본주의, 페미니즘 등 정치적 성향을 가진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단다.

  워낙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함께 살다보니 갈등도 자주 일어난다. 같이 자취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어봤을 가사노동 분배 문제부터 다른 사람과 빨래를 섞어야 할지 말지 고민하는 ‘빨래트기’, 애완동물은 어찌할지 등등 빈집에는 항상 소란이 끊이지 않는다. 심지어 가출청소년이 찾아온 때도 있었고, 공동생활에 책임질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이 저렴한 방세 때문에 찾아오기도 한단다. 그럴 때마다 빈집은 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왔다고 한다. 단 한 가지 절대적인 원칙이라면 ‘나가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는 것. 아무도 주인이 아니며 모두 손님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빈집은 계속 열려있을 거예요. 그건 빈집만이 가진 장점이고 모두 그 점을 사랑해요. 빈집에서, 어떻게 놀고 생활을 누리고 어떤 식으로 자신을 표현하느냐는 각자의 몫이고 자신의 요구에 따라야 할 뿐이죠. 규칙은 없어요. 유토피아를 만들자는 게 아니라 하나의 실험이니까요.”

“해방촌을 해방하라”

빈집은 지금 새로운 실험을 준비 중이다. 경제적 기반을 만들기 위한 우주宇宙생활협동조합 빈고Bin-go와 지역사회와의 접점을 도모할 수 있는 빈가게가 바로 그것이다. 빈집의 범위가 확대되는 거냐는 기자의 질문에 장기투숙자 디온은 ‘빈고’에 대해서 아냐고 되물어왔다.

  “빈고Bin-go는 내부적으로 만든, 우리끼리 쓸 수 있는 금융시스템이에요. 풀네임이 ‘우주宇宙생활협동조합 빈고’에요. 집 우宇, 집 주宙. 기본적으로 집이 배경이죠. 셰어 하우스, 하우스 메이트, 룸메이트처럼 낸 돈만큼 공간을 소유하는 자본주의적 방식과는 달라요. 빈집은 생활을 함께하는 생활협동조합이죠. 단순히 잠자고 밥먹는 주거공간이라기 보다는 생활을 협동해서 구성하는 공간으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주거공간으로써 빈집도 중요하지만 빈집에서의 생활을 분리하지도 않는다는 의미에요. 빈가게를 만들면서 조심하는 점은 일과 놀이의 구분, 기존의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을 구분 같은, ‘밖에서 일한 사람 집에서 쉬라’고 말하는 가부장적 질서를 해소해보고 싶어요. 사회적 기업과도, 워커스 콜렉티브 같은 기존의 실험과도 다를 거라고 봐요. 지금 빈가게는 실험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미지의 세계로 가는 것이라고 봐요.”

  앞으로 빈집의 변화가 기대된다. 11월에 여는 빈가게를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이냐는 말에 디온이 답했다.

  “일단 빈집과 마찬가지로 ‘적은 돈으로 풍요롭게’가 빈가게 실험의 목표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빈가게를 통해 해방촌을 재밌게 살고 싶어요. 지역에서 가게를 한다는 것은 그 지역과 떼려야 뗄 수 없어요. 해방촌은 정말 잡종스러운 지역이거든요. 토박이 할아버지 할머니, 미군, 이주노동자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그들만의 그룹이 형성되어 있죠. 빈가게를 통해서 그들과 접점을 찾고 싶어요.”


  문득 잠시 전 빈가게 공사장에서 본 그림이 생각났다. 각자 빈집 구성원이 바라는 빈가게를 그린 종이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 있었다. ‘해방촌을 해방하라!’ 새로운 공간에 대한 빈집의 실험이 계속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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