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2년 11월 2012-11-05   1368

[경제] 대선 단상③

대선 단상 ③

대선, 녹색이 빠졌다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장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온갖 색깔이 어지럽게 춤추는 대선 경쟁에 녹색만 빠졌다. 내 보기에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후보가 녹색을 전면에 내세우면 ‘대박’일 이유를 각각 지니고 있는데도 말이다. 어쩌면 ‘녹색’이 이명박 대통령의 전유물처럼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현 정부의  ‘녹색성장’은 국내보다 세계에서 더 평가를 받고 있다. 유엔환경계획 뿐 아니라 버클리의 브리(BRIE, 버클리 국제경제라운드테이블)가 작년에 펴낸 <녹색성장, 신앙에서 현실로>도 한국을 주요 사례로 꼽았다. 

 

 

녹색성장의 패러다임 속의 “녹색反혁명”

 

국내 비판자들의 주장처럼 이명박의 ‘녹색성장’은 사실상 4대강 사업과 핵발전 확대에 덧씌운 ‘녹색 분칠’임에 틀림없으며 브리 역시 이런 사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들이 한국에 주목하는 것은 한국 정부가 녹색성장을 “사회경제적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명시하고 사회 전반의 녹색 혁신을 위해 필요한 정책을 망라했기 때문이다. 즉 단순히 생태적 목표와 경제적 목표를 양립시키는 것을 넘어서 생태적 목표의 달성을 통해 사회 변혁을 이루겠다는 야심찬 계획인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에 따르면 이제 한국에서 생태를 위한 지출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가 되었다. 이 정부가 “패러다임의 변화”로 무엇을 의미하려고 했건 이제 한국 사회에서 탄소 배기량 감축은 ‘에너지 시스템의 전환’을 의미하게 되었다. 

 

  에너지 생산의 전환은 분산형 에너지 생산과 ‘스마트그리드(똘똘한 전력망, 재생에너지의 특징인 불규칙성과 분산성을 연결하기 위해 필수적이다)’에 의한 분배, 에너지 이용의 효율화를 의미한다. 과거에 석탄과 전기, 그리고 네트워크로서의 철도와 IT 망이 그랬듯이 에너지 체제 전환은 사회경제를 송두리째 뒤바꿀 수 있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계획에는 이런 인식과 정책, 그리고 이를 위해 필요한 통계 작성부터 각종 인증 제도까지 망라되어 있다. 이런 계획이 얼마나 착착 진행되고 있는지 의심스럽지만 생태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회 전체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사고를 보수 쪽에서 제시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이런 대대적 혁신을 위해서는 기득권과의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이지 않을 수 없다. 기존 화석-핵 집중형 에너지 시스템은 우리 사회에 강력한 이익집단을 형성했다. 핵 마피아, 거대 기업이 소유하고 있는 에너지집약형 사업(철강,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집중 에너지 시스템에 필요한 대규모 건설을 수행하는 토건 마피아, 수익을 위해 ‘투자자국가제소권’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는 공기업(한전)까지, 이들은 가히 한국의 지배동맹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들과 싸우기는커녕 거꾸로 이들의 이익을 키워주기 위해서 핵발전을 확대하고 대규모의 투자보조금을 대기업에게 주었고 이들에게 직접 부담을 주는 탄소세를 보류했다. 녹색과 전혀 무관한 4대강은 더 말해 무엇하랴? 한마디로 목표는 혁신적이되 수단은 수구적이었다. 특히 재정이 4대강과 핵발전, 그리고 대기업 보조금에 집중됐으니 오히려 기존 에너지 체제를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녹색 분칠을 넘어 가히 ‘녹색반혁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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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유효한 녹색 성장 패러다임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내건 “패러다임의 전환”은 지금도 유효하다. 당장 에너지가 필요한 중국도 ‘녹색 혁신’을 내세워 대대적 투자를 하고 있으니 이 전환은 더욱 시급해졌다. 시장은 기존의 에너지 체제에 잠겨 있으므로(lock-in) 기업들의 자유로운 선택에 맡긴다면 생태나 경제 모두 악화될 뿐이다. 정부는 아주 강력하고 단호한 신호를 보내서 시장 안팎의 모든 행위자가 새로운 경로에 적응하여 스스로 수많은 보완 혁신을 이뤄내도록 해야 한다. 기존 체제의 시장실패를 정부가 땜질하는 수준, 즉 환경경제학의 처방으론 턱도 없다. 반대로 ‘탈성장degrowth’이나 ‘균제상태성장steady state growth’ 등 생태경제학의 ‘강한 지속가능성’에서 도출된 명제도 에너지 체제 전환이라는 이행 경로가 필요하다.  

 

  수명이 다한 핵발전소의 폐기, 신규 원전 건설 중단은 첫걸음일 뿐이다. 은근슬쩍 폐지한 발전차액지원제도를 부활시키는 등 분산형 재생에너지 생산을 확대해야 한다. 정부보조금은 대기업이 아니라 재생에너지 기초 연구개발과 중소기업네트워크, 그리고 스마트그리드에 지원되어야 한다. 장기 침체를 타개하려면 민간의 대규모 투자 확대가 필요한데 현금이 넘쳐나는 대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것은 총수요 확대를 상쇄시킬 뿐이다. 특히 지역공동체의 협동조합형 재생에너지 생산을 적극적으로 장려해야 한다. 

  기존 에너지 체제의 수익성을 떨어뜨려 새로운 체제로 갈아타도록 하는 데 가장 단순하고 확실한 방법은 탄소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제본스 패러독스(기술혁신이 가격을  떨어뜨려 오히려 소비가 늘어나는 것)나 녹색 패러독스(미래의 규제와 세금을 우려하여 현재의 탄소 생산을 늘리는 것)를 극복할 만큼 단번에 높은 세율을 매겨야 한다. 스마트 그리드의 표준 설정에 전 산업과 시민이 참여해야 하고 나아가서 중국이나 일본 등과 협력해야 할 것이다. 대규모의 국내외 ‘녹색 동맹’ 없이는 이런 기초적인 정책도 실천할 수 없다. 

 

 

 

대선 경쟁, 녹색을 칠하자

 

박근혜 후보가 이런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정부여당의 ‘녹색성장’은 비로소 ‘창조경제’로 부활할 수 있을 것이다. 보편 복지를 하려면 ‘혁신경제’가 필수적이라고 한 안철수 후보야 말로 녹색 혁신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인터넷이 그랬듯이 새로운 기술 체제가 사회 안에 자리 잡으려면 크고 작은 혁신 아이디어가 끝없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후보의 ‘공정경제’도 녹색을 빼 놓으면 장기 비전이 되지 못할 것이다. 현재와 같은 에너지 체제에서 에너지 위기가 닥치면 힘없는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끔찍한 불공정이 나타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녹색혁신은 새로운 시민 동맹을 만들어 지배층을 일거에 뒤흔들어야 하는 일이다. 특히 야당 후보들이 이런 핵심적인 주제를 외면하고 기존 에너지 체제의 언저리만 건드리며 미적거리는 이유를 도대체 알 수가 없다. 누가 혁신적인 녹색경제의 비전을 보여 줄 것인가, 이번 대선의 가장 중요한 선택 기준이다. 

 

 

 

정태인

한미FTA 등 통상정책과 동아시아 공동체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경제학자. 요즘은 행동경제학과 진화심리학 등 인간이 협동할 조건과 협동을 촉진하는 정책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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