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1년 05월 2021-05-01   480

[여는글] 차별‘하지’ 않을 권리

여는글

차별’하지’ 않을 권리

 

내게 연민과 사랑이라는 자비를 가르쳐 주신 스승이 두 분 계신다. 한 분은 붓다와 예수님이다. 공동 스승인 셈이다. 그분들의 말씀에서 사랑의 철학과 종교성을 읽고 공감했다. 또 한 분은, 오래전에 세상을 떠나신 나의 할머니와 어머니다. 세속의 공동 스승이라 할 수 있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내게 인정이 무엇이고 사람의 도리는 어때야 하는지 몸으로 깨닫게 해주신 분이다. 

 

어머니는 동네에서 ‘퍼주기 좋아하는 분’으로 불렸다. 동네 사람은 물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홍시나 식혜를 주었으며, 줄 게 없으면 물에 설탕을 타서 목마를 터인데 마시라고 주었다. 어린 시절, 동네마다 이런저런 물건을 팔러 오는 행상이 많았다. 그때마다 장사하는 이들은 우리 집에 묵었다. 물론 숙식은 공짜였다. 심지어 어머니는 물건도 사주었다. 그런 어머니가 아버지의 눈에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아버지는 “뱁새가 황새 따라간다”고 화를 내곤 했다. 그 시절 모두가 그랬듯 우리 집 살림 또한 빈곤하기 짝이 없었다. 할머니도 가리지 않고 인정이 넘치는 분이었다. 한센병 환자, 걸인을 마다하지 않고 정성스레 밥을 차려 주었다. 어린 소년은 그게 당연한 인간의 도리인 줄 알고 자랐다.

 

가끔 할머니와 어머니를 생각한다. 사람마다 나름의 연민과 사랑의 마음을 품고 있다. 어느 누가 힘들고 아픈 사람에게 눈길이 가지 않겠는가. 맹자는 불인지심不忍之心이라고 말했다. 다른 이의 아픔과 슬픔을 차마 견디지 못하는 마음이다. ‘차마 견디지 못하는 마음’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감정이다. 그런데 『맹자』의 불인지심과 나의 어머니의 사랑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도움을 주는 대상이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점이다. 

 

맹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보면 사람들이 달려가 구하는 것은 그의 부모와 친분을 맺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동네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고자 함도 아니다.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듣기 싫어서 구하려는 것도 아니다.” 위험한 상황을 차마 볼 수 없는 인간의 선한 마음이라는 것이다. 나의 어머니를 넘어 우리들의 어머니들도 그랬다. 친분이나 이득, 타인의 이목을 생각하지 않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보면 자연스레 도왔다. 맹자가 왜 사단四端에서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앞에 두었는지 깊이 숙고해 볼 일이다.

 

불인지심의 사례를 또 하나 소개한다. 6.25전쟁 중에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입양된 브라운 박사의 실제 이야기다. 

 

때는 아주 추운 겨울이었고, 한국전쟁에서 유엔군 쪽 전세가 불리해져서 후퇴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텅 빈 시골 들판을 아기 낳을 달이 다 되어 배가 이만큼 부른 한 어머니가 아기를 낳기 위해 어떤 집을 찾아가던 중이었습니다. (…)

 

얼마 후 역시 후퇴 중이던 미군 장교 한 사람이 차를 타고 그 근처를 지나가다가 휘발유가 떨어졌습니다. 그는 부대로 연락을 취해 놓고 차에서 내려 그 부근을 거닐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이상한 아기 울음소리 같은 게 들렸습니다. 깜짝 놀란 그 군인은 그 소리를 따라 다리 밑까지 내려오게 되었고, 거기서 그는 기가 막힌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어머니는 벌거벗은 채 얼어 죽어 있었고, 어머니 옷에 몇 겹으로 둘둘 말린 갓난아기가 몹시 울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기름이 떨어진 것이 어쩌면 하느님께서 이 아기를 살리시기 위해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그 군인은 아기를 군 담요와 그의 파카로 더욱 포근히 감싸 차에 태워 놓습니다. 그리고 기름을 보급해 주러 나타난 사병들과 함께 그 어머니에게 옷을 입혀 인근 야산 양지 바른 곳에 묻어 주고 나서 후퇴를 합니다. 그 후 그 장교는 휴전이 될 때까지 고아원에 맡겨 두었던 아이를 데리고 귀국해서 자기 자식들과 함께 잘 키웁니다.  

 

사랑의 위대함이 이러하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은 사랑의 실천이다. 진정한 사랑은 조건을 걸지 않을 때 진정한 사랑이다. 사랑은 ‘함께 살겠다’는 자연 감정이고 도덕이다.

 

이주민 인구가 240만 명이라고 한다. 대한민국 5%의 사람들,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옷깃 한번 스쳐도 삼천 생의 인연’이라고 한다. 함께 살아가는 인연이라면 사랑하고 돕고 웃으며 사는 게 사람다운 도리이고, 지혜로운 처신 아닌가. 누구든지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에 의해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한다. 내가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한다면 차별하지 않을 의무가 있다. 아니, 차별‘하지’ 않을 권리라고 말하는 게 좋겠다. 

 

➊ 박완서,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 어린이작가정신, 2009, 147~150쪽 발췌 

 


글. 법인 스님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16세에 광주 향림사에서 천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대흥사 수련원장을 맡아 ‘새벽숲길’ 주말 수련회를 시작하면서 오늘날 템플스테이의 기반을 마련했다. 실상사 화엄학림 학장, 〈불교신문〉 주필, 조계종 교육부장,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지냈으며 현재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지리산 실상사에서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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