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0년 10월 2010-10-01   1250

서평-성(性) 선택, 마음의 기원

성性선택, 마음의 기원

달콤하고 쌉싸래한 “연애” 이야기?

테레사 자유기고가

쇤베르크의 <달에 홀린 피에로(1912년)>는 솔직히 좀 당혹스럽다. 피아노와 바이올린과 같은 악기가 등장하긴 하지만 그것이 말 그대로 ‘협연’할 것이란 기대는 아예 안하는 게 좋다. 소프라노 여성의 노래(인지 낭독인지)와 악기들은 다만 한자리에 있을 뿐 각자 저마다의 소리를 낼 뿐이다. 어쩌다 귀에 익은 화음이라도 발견할 수 있을까 기대를 해 보지만, 끝내 배반감만 맛 볼 따름이다.

  “인간이 눈으로 마실 수 있는 술을,/ 넘치는 바닷물결 위에서 달은 폭음한다/ 그리고 봄날의 조류가 지평선 위에 넘쳐 흐른다/ 무섭고 달콤한 욕망은/ 수없이 물결을 가른다/ 인간이 눈으로 마실 수 있는 술을,/ 넘치는 바닷물결 위에서 달은 폭음한다/(제 1곡, 알베르  지로의 <달에 취하여> 중)

  그래도 굳이 비교하자면 곡을 붙인 시는 좀 나은 편인가. 언어에 관계하는 뇌의 부분과 음악을 들을 때 활성화되는 부분이 중첩된다고 하지만 이 곡은 시와 선율이 서로 다르게 마음의 어떤 부분을 건드리는 듯하다.

  같은 경험을, 외젠느 이오네스크의 『대머리 여가수』(민음사)에서도 한 기억이 있다. 도무지 서사라고 할 만 한 것을 잡아내기가 어려웠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워지지 않는 인상을 남겼다면 그것은, 작가의 힘일까, 우리 마음의 능력으로 돌려야 하나? 아니면, 둘 다인가?

생존에 도움 안 되는 수컷 공작새의 날개

수많은 음악과 미술, 문학작품은 모두 감각을 거쳐 우리 마음의 어떤 것과 연결된다. 이 지구상에 이들을 이해하는 존재는 우리밖에 없는가, 아닌가? 아니라면, 도대체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자각의 역사에서 1859년 이전과 이후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르다. 다윈이 좬종의 기원좭을 출간하고 나서야 인간은 공공연하게 스스로를 신과 분리할 수 있게 되었고 자신의 정체성을 신이라는 보이지 않는 존재에 의탁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자신의 두 다리로 걷고 나서도 무려 10만 년이라는 시간이 더 지나서야 이러한 자각이 시작되었을 뿐 아니라 그 자각의 역사라는 것이 고작 150년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 종이 겸손해야 할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제프리 밀러의 좬연애- 생존기계가 아닌 연애기계로서의 인간좭은 인간의 기원에 대해 좬종의 기원좭에서 제시하는 적응방식으로서 진화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인간의 마음에 대해 새로운 주장을 제시한다. 역시 천재적인 다윈에서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 종의 기원을 쓴 후 몇 년이 지난 1871년에 다윈은 좬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좭이라는 놀라운 책을 발표했다. 이 900쪽에 이르는 책의 골자는, 생존이익을 주지 않으면서도 엄청난 유지비용과 에너지를 요하는 형질들은 성 선택에 의해 진화했을 것이란 주장이다. 요컨대 수컷공작새의 깃털, 수컷정자새의 둥지, 수컷나이팅게일의 노래 그리고 인간의 뇌-미술, 음악, 문학, 도덕 등등-는 생존에 하등 보탬이 되지 않으면서 건사하기에 부담되고 그 이익에 비해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든다. 진화는 무자비하며, 가차 없다. 곧바로 생존 이익을 남기지 않으면 도태시켜 버리니까. 그럼에도 이런 능력들이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이전보다 더욱 정교해진 까닭은 무엇인가에 대해 다윈은, 성 선택이라고 ‘감히’ 주장했던 것이다.

  “성 선택은 여러 가지 면에서 혁명적인 아이디어”였지만(67쪽) 암컷 또는 여성의 짝 고르기가 진화의 추동력이라는 주장이 다윈이 살았던 시대(사회를 주도하는 세력이 대부분 남성들이었기도 하지만)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적어도 생물학에서 성 선택론이 가장 유망하고 흥미로운 분야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한 1990년 이전까지도 받아들여지기가 어려웠던 성 싶다(물론 1960년대의 성 혁명과 페미니즘의 물결은 많은 여성들로 하여금 생물학을 공부하거나 거기에 기여하게 만들었고, 인간의 사회적·성적·정치적 삶에서 여성선택의 중요성을 재검토하게 했다(89쪽)). “욕정에 사로잡혀 서로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는 하등동물들의 고작 자갈만한 크기의 뇌가 전능한 창조주의 자리를 대신하다니”(68쪽).

미술, 음악, 언어가 짝고르기의 결과?

다윈에 따르면, 왜 자연에는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 형질들이 두루 존재하는가, 왜 종 내에 암수 간의 차이가 존재하는가, 종 간의 급속한 진화상의 분화가 어떻게 일어나는가에 대해 성 선택이야말로 명쾌한 답이다. 밀러는 다윈의 성 선택론을 기반으로 그간에 무시되어 왔거나 애써 외면당해왔던 성 선택이 기왕에 자연선택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생물들의 형질이나 인간 마음의 능력을 이해하는 충분히 설득력 있는 이론이라는 데 500쪽(한글 번역본이 이 정도이니 영어 원본은 700여 쪽이 더 될 것으로 짐작)이 훨씬 넘는 분량을 할애했다.

  거칠게 요약하면 원래 암수 차이가 전혀 없었던 초기 생명체가 영양분까지 갖춘 난자와 활동성은 있지만 영양분이라곤 없는 정자로 나뉘어져 유성생식이란 것을 하게 된 후, 출산을 할 수 없는 수컷은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 가능한 많은 암컷과 섹스를 하려고 하고, 출산과 양육을 해야 하는 암컷은 수컷의 질을 따지며 신중하게 짝짓기를 결정한다는 것이 성 선택론이다. 이 짝 고르기 과정에서 암컷의 성적 선호와 이런 선호를 충족시켜 암컷을 유혹하기 위한 수컷의 수많은 장식들이 진화를 이끈 원동력이었다. 암컷의 성적 선호도 자식에게 유전되면서 수컷의 성적인 장식들은 강화된다.

  밀러에 따르면 성 선택이야말로 우리 직관에 더 잘 들어맞는 이론이기도 하다. 수컷들은 항상 암컷들을 수정시키기 위해 경쟁한다. 무기로 경쟁자들을 위협하기도 하고 장식으로 암컷을 유혹한다. 여기서 암컷은 짝을 고르는 쪽이다. 수컷은 장식을 한없이 진화시킬 것이며 암컷 역시 짝을 고르기 위한 분별력을 진화시킬 것이다. 이런 짝 고르기 메커니즘을 통해 종들은 진화를 거듭해 왔다는 주장은 별 무리없이 받아들일 만하다.

  그렇다면 고도로 정교하게 발달한 뇌를 가진 인간에 대해서도 “수컷은 과시하고 암컷은 고른다.”는 성 선택론이 유효할까? 제프리 밀러의 대답은 “그렇다” 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 인간의 언어, 미술, 정치적 이상, 위트나 자원봉사에 이르는 인간다운 특징들이 이 짝 고르기의 직접적인 결과일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가 단도직입적으로 이것들이 “공작새의 꼬리”와 같은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음경, 유방, 엉덩이, 수염, 머리카락, 두툼한 입술 등 우리 몸의 많은 형질들”이 실제 “짝 고르기를 통한 성 선택의 인증서”라는 주장에서 나아가 미술, 음악, 언어, 창의성 등 역시 짝 고르기가 작용한 것이라는 주장은, 우리와 같은 호미니드 영장류 동물들과의 해부학적 비교, 생존이익을 주는 지 여부, 그간의 연구결과 등을 토대로 매우 치밀하고 설득력있게 제시되지 않는다면 곧바로 반발에 직면하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만약 언어가 성 선택의 산물이라면 왜 여성의 언어능력이 더 뛰어난가하는 반박을 보자. 평균적으로 여성들은 더 많은 단어를 알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언어가 성적장식으로 진화했다면, 남성의 평균 어휘력이 더 뛰어나야 한다. 보통 성 선택은 수컷을 과시 행위자로, 암컷을 과시 판별자로 만들기 때문이다. 밀러는 우선 인간의 언어능력에 대한 테스트들은 대부분 언어생산력에 대한 테스트가 아니라 언어이해력에 대한 테스트라고 전제한다. 그리고 인간의 진화는 쌍방 고르기가 중요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인간의 말은 사적이고 쌍방향적이다. 남성은 구애 과정에서 적응도를 과시하기 위해 온갖 언어를 동원하여 여성을 사로잡으려 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이 적응도가 실제인지 가짜인지를 판별하는 능력 역시 덩달아 진화해야 한다. 실제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더 많은 책을 집필하고 더 많은 강의를 하며, 인터넷 토론 사이트에 더 많은 이메일을 보내는 등 여성들을 압도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이를 단지 가부장제의 영향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며 여기에는 성 선택의 진화 역사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밀러의 설명이다. 이어 남성의 불꽃튀는 구애 언어의 예로 에드몽 로스탕의 희곡 <시라노 드 벨주락>을 등장시킨다. 결론적으로 남성의 과시언어는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 이를 판별하는 여성의 언어능력을 감안한다면 인간의 언어능력은 여성과 남성의 상호 선택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자기가 누군지 알고자 하는 유일한 존재, 인간

한 세기에 걸친 성 선택의 유배로 인해 여러 학문 분야에서 엄청난 손실이 있었음은 가슴아픈 일이다. 진화심리학, 생물학 등 직접적인 관련 분야뿐 아니라 경제학, 고고학, 정치학, 인류학, 언어학, 미술 등 다른 인간학 분야에서도 성 선택을 도입한다면 한층 이해가 깊어질 것이란 저자의 주장은 자기 분야에 몰입한 한 진화심리학자의 자기과시에서 비롯된 과감한 주장이라고만 하고 넘어가기엔 꽤 진지하고 논리가 탄탄하다. 제법 긴 책인데도 손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점도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저자의 지적 부지런함과 능력에 힘입은 바 크지만 무엇보다 재기발랄한 입담과 필력 덕일 것이다.

  진실은 의외로 간단한지도 모른다. 밀러의 말대로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5억 년 전, 눈과 뇌를 지닌 동물이 처음 진화한 이래 우리 유전자가 매 세대마다 불패의 성관계를 이어온 덕분.”(49쪽)임을 인정하기만 하면 되니까. 물론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조금씩 더 많이 알면 알수록, 우리 존재가 더없이 초라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신을 닮은 형상에서, 원숭이와 동급인 존재로 급전직하한 데 이어 이제 우리가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는 거의 모든 문화-문학, 미술, 음악 심지어 도덕까지-가 성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솔직히 썩 유쾌한 일이 못될 수도 있다. 게다가 우리는 제프리 밀러의 고백대로 아직도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또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정확히 모른다. 어쩌면 영원히 모를 수도 있다. 그렇다고 꼭 낙담할 필요는 없다.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가 누구인지 알고자 하는 유일한 존재이기도 하니 말이다.

 

필자가 말하는 테레사는…
“제 이름은 테레사, 아녜스, 사라… 어쩌면 스밀라입니다. 이들은 모두 저를 매혹시킨 책 속 여주인공들입니다. 흔히 누구에게나 인생을 변화시킨 책 한 권쯤은 있다고 하는데 저는 부끄럽게도, 없습니다. 다만, 지금 현재 제 손에 들려 있는 책이 늘 최고의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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