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0년 10월 2010-10-01   1540

아주 특별한 만남-정현주 회원

인생 2막,

병마의 시련이 길어 낸

더불어 사는 삶

 


이경휴 수필가, 참여연대 자원활동가

 

바다에 빨대 꽂아/ 석유를 뽑아낸다
곰에게 빨대 꽂아/ 쓸개즙을 빨아낸다
고로쇠에 빨대 꽂아/ 수액을 훔쳐낸다.(최종진 ‘미안합니다’ 전문)

현주 회원

 

성큼 하늘이 높아졌다. 극성스럽게 울어대던 매미소리도 뚝 끊어지고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 끝에는 가을 내음이 묻어온다. 끝도 모르게 몰아붙였던 지난여름의 폭염도 위풍당당하게 불어왔던 태풍 곤파스의 위력도 순환하는 자연계의 한 과정이었나. 태풍을 용케 견뎌낸 거리의 은행나무는 따가운 햇살에 열매를 탱탱하게 불리고 있다. 모든 게 투명하다. 그러기에 옛사람들은 가을 물은 소 발굽에 고인 물도 먹는다고 했던가. 천지간에 투명하지 않는 게 없다. 유감스럽게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만 제외하고는.

  ‘공정’이라는 말이 갑자기 화두가 되어버렸다. ‘현대판 음서제’라는 ‘특채’가 공직사회 곳곳에 기생하다 난데없이 한 사람에게로 쏠리는 바람에 요란법석을 뜬다. 마치 공정사회로 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며 바람을 잡는다. 또 깃털들이나 뽑히지 몸통은 절대로 건드리지 못한다는 걸 삼척동자도 안다. 시작부터 도덕성은 무시하고 출범한 정권이 한 사람만을 탓할 수 있으랴. 당·정·청黨政靑 수장 모두가 병역기피자로 구성된 정부가 어떻게 공정사회를 거론할 수 있는지 낯이 뜨겁다. 그들도 낯 뜨거울까? 그 뻔뻔함에 분노한다. 불의에 분노하지 않는 시민은 노예라고 누가 말했던가. 

  시스템의 뻔뻔함에 분노하는 한 사람을 만났다. 소녀의 이미지를 그대로 지닌 안내데스크 자원활동가 – 정현주(32세) 회원. 귀염성 있는 둥근 얼굴에 긴 머리, 감색 반바지와 흰 블라우스 차림은 영락없이 대학 캠퍼스에서 금방 나온 모습이다. 10월인데도 불구하고 5월을 연상케 하는 분위기다.

소수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유난히 볕살 따가웠던 날, 숲속 ‘푸른 기와집’이 훤히 바라보이는 참여연대 옥상으로 올라갔다. 북악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햇살과 한통속이 되어 쾌청한 가을 한 자락을 펼쳐냈다. 사방을 둘러보며 연신 감탄사를 쏟아내는 그를 누가 희귀난치성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로 보겠는가. 그늘 하나 없이 밝고 목소리도 활기차다. 그래도 첫 질문은 어려웠다. 정확한 병명과 발병 시기, 증세 등에 대한 이야기를 어렵게 운을 뗐다.

  “병명은 강직성 척추염입니다. 발병은 아마 2004년부터였고, 확진 판정을 받은 건 다음 해였어요. 병명조차 몰라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닐 때는 한없이 우울해서 삶의 의욕이 없었어요. 가족 중에 저처럼 아픈 사람도 없었고 저 스스로도 건강체질이라고 자부했었거든요. 아프면서 직장도 휴직하고 병 치료에만 매달리니까 우울증까지 오는 것 같아 힘들었어요. 처음 증세는 아침에 일어나면 허리가 뻣뻣하고 팔 다리 관절이 아팠는데 나중엔 무릎과 발목도 부어올랐어요. 물리치료 받고 움직이면 괜찮으니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요.”

  누구나 그렇지 싶다. 아무리 중병이라도 시작은 그렇게 소소하기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 강직성 척추염은 희귀난치성질환으로 천 명에 한 명 꼴로 발병한다. 척추나 말초관절을 침범하는 염증성 관절염으로 척추에 강직을 일으킨다. 뼈의 여러 마디가 하나로 뭉쳐서 움직일 수 없게 만든다. 뚜렷한 원인은 알 수 없고 주로 남자에게 발병하며 가족력 영향이 있다고 한다.

  그간의 마음고생이 오죽했으랴 싶어 위로의 말을 건네자,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마음고생보다는 아프면서 환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죠. 대학 다닐 때 ‘8·15 대학생자전거순례대회’를 완주한 나였기에 건강에는 자신만만했죠. 그런데 내가 소수자가 되고 보니 의료시스템의 문제점이 너무 많이 보였어요. 화가 나서 흥분하고 분노했지요. 이건 정책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싶어서 참여연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회원 가입도 했죠. 지난 6월, 천안함 사태 때 참여연대가 보여준 진정성에 감탄했으니까요.”

  회원 가입 동기와 시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현명한 인터뷰이를 만난 셈이다. 그럼 좋은 점은 무엇이 있었냐고 묻자 서슴없는 대답이 나왔다.

  “사랑을 얻었고 결혼도 했죠.”

  선善과 악惡 모두를 친구 삼은 지혜로 평화로운 삶을 보장받은 듯하다. 인터뷰에 드물게 러브 스토리도 듣게 되었다 싶어 달콤한 기대를 했다. 하지만 얼굴에는 희색이 돌 뿐 감정의 휘둘림 없이 짧게 말했다.

  “직장 동료였어요.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학교 졸업하자마자 입사했으니 오죽 의욕이 흘러 넘쳤겠어요. 그러다가 병으로 꺾어지니 곁에서 보던 그 사람이 안타까웠나봐요. 많이 이해해주고, 옆에서 많이 도닥여줬어요.”

  은밀히 즐기는 사랑의 기쁨을 공유하고자 했던 게 잘못이었던가, 아니면 아직도 사랑은 현재진행형이기에 말을 아끼는 것일까. 이해, 관심, 연민이란 말들이 사랑의 다른 이름으로 그에게 찾아왔음이 틀림없었다. 

정현주 회원

공정사회, 소수자·약자에게도 합리적인 의료정책을

그의 경력은 화려하다. 대학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하며, 통상무역에 관한 공부를 했다. 대학 3학년 때는 멕시코에 있는 한국 기업의 인턴사원으로도 근무했다. 때문에 그 실력을 인정받아 졸업 후에는 탄탄한 중견기업의 미주와 남부유럽 영업사원으로 날개를 달았다. 훨훨 날아오르다 병마에 날갯죽지가 꺾였고, 그런 그를 보듬어 준 사람을 만나 가정도 꾸렸다. 하지만 그는 안주하지 않고 결혼 후에는 사회복지사 자격증까지 취득하여 봉사하는 삶으로 다시 날기 시작 했다. 그의 삶에 있어서 병이라는 ‘역경’은 거꾸로 ‘경력’이 되어버렸고, 그로 인해 삶도 시쳇말로 Before/ After로 나눠졌다. 나 중심이었던 일상이 남과 함께 하는 생활로 자리매김하면서 참여와 연대라는 열쇠말이 삶의 길라잡이가 되었다.

  그가 관심을 가진 분야는 단연 건강보험 관련 의료비와 의료정책이다. 희귀난치성질환을 앓는 환자들에게 건강보험 혜택은 제한되어 있다. 면역억제제를 처방받아야 하는데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약제의 개수가 정해져 있어서 보험혜택을 받을 수 있는 투약개수가 넘어가면 한 달에 120만 원이 넘는 의료비를 본인이 부담해야 된다. 현재는 총 의료비의 10%만 환자부담이지만 투여기간은 최대 4년을 넘을 수가 없다는 고백을 하면서도 얼핏 밝은 표정이 스쳐갔다. 의아해 하자,

  “며칠 전 좋은 소식이 있었어요. 10월부터 희귀난치성 치료제의 보험인정 기준을 대폭 확대한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가 있었죠. 급여 인정 기간이었던 1~4년을 폐지해 투약 기간과 상관없이 급여를 계속 인정한다는 내용이었어요. 척추 및 관절질환으로 고생하는 44만 가까운 사람들이 약값 걱정을 덜게 되었으니 참 반가운 소식이죠.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어요. 희귀난치 병력을 가진 사람들은 개개인으로는 몇 안 되지만 그들 모두 소수자로서 받는 어려움이 큽니다. 국가 차원에서 풀어야 할 정책이 계속 나와야 하지만 신약이 수입되는 과정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환자들에게 기회가 없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질병으로 생명이 오가는 사람들에겐 정말 형벌과 같죠. 그 뿐인가요, 얼마 안 되는 건강보험료마저 체납하는 공직자들을 보면…. 그런데도 뻔뻔하게 공정사회라는 말을 하고 있으니 기가 막히죠.”

  또다시 공정이라는 말이 회자되어 함께 흥분했다. 이어 의료민영화를 우려하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MB정권이 들어서고 끊임없이 제기되는 의료민영화는 국민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의료서비스를 특권층들이 권력과 손을 잡으면서 기업의 상품으로 변질시킬 기미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그 ‘상품’은 병원의 주주에게 더 많은 이익을 주게 되고 대부분의 국민들은 높게 책정되는 병원비 때문에 등허리가 휠게 불 보듯 뻔하다.  

  정기 국회를 노리는 의료민영화 법안 7가지 중 하나라도 국회통과가 되면 국민 건강은 벼랑에서 떨어지는 수밖에 없다.

  그도 한 목소리를 내며 경험했던 중남미 의료서비스 사례를 말했다.

  “온두라스 같은 나라는 GNP가 한국의 절반 정도지만 의료서비스는 훌륭해요.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간호사가 완벽하게 간병인 노릇을 해주는 서비스였어요. 침대 옆에 부착된 벨만 누르면 환자를 목욕시키는 일에서부터 언제나 친절한 간호사가 간병을 해줬어요. 우리나라처럼 병실에 간병을 위한 보호자 침대가 필요 없는 거죠. 지금 우리는 병원치료비보다 간병비 등 부대비용을 더 걱정해야 하니 기가 막히죠. 이런 상황에 민영화가 되면 서민들은 오죽하겠어요?”

  또 같이 흥분했다. 참으로 국민을 흥분케 하여 저절로 참여의식을 높이게 하는 정권이다. 광우병 파동부터 시작한 촛불집회는 지금도 지역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귀를 막고 있는 청와대와 ‘골라’ 보도하는 신문들, 거리 치장에만 올인하는 정책으로 시민들은 눈이 멀어간다. 때문에 시민단체의 할 일은 더 많아졌고 ‘눈 뜬 시민’들의 활약은 두드러지게 드러낸다.

나를 필요로 하는 세상, 내가 만들어가는 세상

자연스럽게 화제는 지난 9월 11일에 있었던 ‘4대강 반대 집회’로 이어졌다. 참석 후의 느낌과 그날에 있었던 일을 재미있게 풀어냈다. 목소리보다 웃음소리가 더 많아 덩달아 그날로 되돌아갔다.

  “난생 처음 참여하는 집회였어요. 주말이니 신랑과 같이 나갔는데 많은 사람들이 우리처럼 가족과 함께 나와서 놀랐어요. 즐겁게 나들이 나온 분위기라 우리도 데이트 하는 기분이 었죠. 풍선 불어주고, 함께 이동하고, 같이 노래하고, 팔 벌려 인간띠 만들고…. 여태껏 왜 이런 세상을 몰랐던지 내 자신이 답답하더라고요.”

  마치 10대 소녀가 콘서트를 다녀온 듯 열기가 아직도 식지 않았다. 상기된 얼굴로 그날 있었던 ‘민간외교’의 한 사례를 말했다.

  “지방 대학 교수라는 인도사람 두 분을 만났어요. 길을 잘못 들은 데다 경찰도 많이 보이고 하니 당황해서 우리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기에,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시민의 소리라고 했죠. 그들은 깜짝 놀라며 시위가 이렇게 평화적일 수가 있느냐며 감탄하더라고요. 그날 흔들었던 풍선이 아주 인상적이었던가 봐요. 풍선과 홍보물을 연신 찍고 우리와 함께 사진 찍고, 정책에 대해 질문하고…. 결국 우리 부부가 그 분들이 찾으시는 숙소로 연락해서 호텔 사람들이 나오고,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씩 하면서 자리를 떠났어요. 아마 그들은 평화적인 시위 문화로 한국을 기억할 것 같아요.”  

  첫 경험치고 대단한 성과였다고 북돋웠고 그 자신도 인정했다.

  “병으로 고통이 심할 때는 별의별 생각을 다 하며 삶을 끝내고 싶었어요. 그러나 생각을 돌리고 보니 세상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다는 걸 깨달았어요. 우리 동네에서 할 수 있는 봉사만 하더라도 일주일이 부족해요. 그래도 컨디션을 조절해가며 몸에 무리가 되지 않도록 적당히 하고 있어요.”

  어떤 활동을 하고 있으며 그것을 통해 배우고 느끼는 점을 여쭸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으니 할 일이 많아요. 청소년자원봉사교육, 지역아동센터 공부방 선생님도 했어요. 지금은 금요일 하루 시각장애인 낭독봉사를 하고 있어요. 시각장애인들은 의외로 질병 때문에 후천적 장애가 많아서 놀랐어요. 그리고 장애의 정도에도 차이가 있다는 알았고요. 공부방에 오는 아이들은 가정환경은 어려워도 그늘이 없었어요. 오히려 어른들이 생각 없이 말을 함부로 해서 상처를 주더군요. 복지사업을 마치 개인이 하는 자선사업처럼 생각하여 생색내고 떠벌리고, 지원금 더 받으려고 하고…. 신뢰감이 사라졌어요.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실망한 부분도 많아요. 이래저래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더라고요.”

  경험이 삶의 자양분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돌부리일 것이다. 낭독봉사인 ‘책 읽어주는 여자’에서 안내데스크의 ‘전화 받는 여자’로 활동 영역을 넓혀가는 그는 분명 ‘After’의 삶을 살고 있다. 마무리는 참여연대 이야기로 돌아갔다. 자원활동가로서 느낌이나 참여연대에 대한 기대, 비판을 부탁했다.

  “전화를 받다 보면 딱한 사정을 많이 듣게 됩니다. 억울한 일을 겪은 뒤 여러 곳에 하소연을 하다 지친 사람, 참여연대에서 무언가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사람, 다짜고짜 비난하는 사람…. 안내데스크는 사회를 바라보는 거울 같아요. 결론은 시민들이 참여연대에 기대하는 게 많다는 겁니다. 때론 그 사람들의 하소연을 들어만 주어도 힘이 된다고 생각해요. 한참 얘기를 들어드리면 그분들도 답답한 마음이 좀 풀리시는 것 같더라구요.”

  안타까운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나 어쩌랴, 이 모두가 참여연대를 미는 힘이요, 짐인 것을.

  “아직 비판보다는 배우는 중이죠. 진정성을 갖고 잘 하잖아요. 작은 힘이나마 저도 열심히 힘을 보탤게요. 여러 곳에서 자원활동을 해보니 세상이 달라지는 걸 느껴요. 활동할 수 있게 건강을 되찾아 더욱 고맙고요.”

  말끝이 흐릿해지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맑은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질 듯하다. 삽상한 바람 한 줌이 그의 머릿결을 어루만지며 스쳐간다.

  사방 천지가 투명한 가을날, ‘빨대’ 꽂아 빼어먹기만 하는 우리의 이기심이 미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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