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0년 10월 2010-10-01   1092

참여사회가 눈여겨본 일-‘쌀’ 남북관계 복원과 발전 향한 노둣돌

‘쌀’ 남북관계 복원과 발전 향한 노둣돌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쌀이 남북관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북한의 만성적인 식량난과 남한의 남아 도는 쌀 비축량으로 이는 새삼스러운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최근 이명박 정부가 출범 이후 최초로 대북 쌀 지원에 나서고 북한이 이를 수용하면서 조심스럽게 남북관계 개선을 점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또한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 대표가 “북한이 전쟁 비축미로 무려 100만 톤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이에 대해 민주당의 박지원 비상대책위 대표가 “북한도 일정량의 군량미를 갖고 있겠지만, 그것이 한국에서 보낸 쌀은 아닐 것”이라고 반박하면서 쌀 지원 문제는 정치권 논란으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인색한 쌀 지원, 옹색한 정치논리

MB 정부가 수해 피해를 입은 북한에 쌀을 비롯한 대북 수해물자를 지원하기로 한 것은 분명 환영할 만한 조치이다. 그러나 크게 두 가지가 아쉽다. 첫째는 100만 톤에 달하는 북한의 식량 부족분과 150만 톤에 이르는 남한의 쌀 재고량을 고려할 때, 5천 톤의 지원량은 너무나도 작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이처럼 소량의 쌀 지원 결정에 머문 이유는 ‘5·24 조치’를 유지하겠다는 판단이 결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즉, 대북 수해지원은 대한적십자사(한적) 차원의 인도적 구호 활동으로 한정해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확대 해석을 차단하는 한편, 천안함 침몰에 대한 북한의 책임 있는 행동 변화가 있기 전까지는 ‘5·24 조치’를 비롯한 현 대북정책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MB 정부의 대외정책의 실세로 평가받는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은 북한이 천안함 공격에 대해 사과를 해야 대규모 쌀 지원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그러나 북한이 천안함 공격과 무관하다고 주장해온 것에 비춰볼 때, 이는 대규모의 쌀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과 마찬가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한 가지 문제점은 정부가 한적(대한적십자사) 뒤에 숨어 최근 남북관계 해빙 기회를 또 다시 놓치려고 한다는 것이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지난 9월 8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 전체회의에 출석, “한적은 정부가 아니며 한적 차원의 긴급구호 성격이다”며, “한적이 수해지원을 최종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100억 원 규모의 구호물자 가운데 90억 원 정부의 남북협력기금에서 충당되고, 정부 차원의 결정 없이 한적의 수해지원 결정이 이뤄질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현 장관의 발언은 궁색하기 이를 데 없다. 특히 정부는 북한이 “쌀, 시멘트, 중장비를 지원해 달라”는 9월 4일 요청 사항을 7일 언론 보도 때까지 한적에 알리지 않았다. 북한이 10일 제안한 이산가족 상봉도 북한 방송이 이를 공개할 때까지 쉬쉬하고 있었다. MB 정부가 대북 강경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정보 통제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는 대목들이다.

정치논리보다 인도주의 동포애 발현을

이처럼 MB 정권이 대북 식량 지원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이유는 정치 논리가 인도주의 논리를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치 논리의 핵심에는 흡수통일을 염두에 둔 ‘북한급변사태론’이 똬리를 틀고 있다. 2008년 8월에 불거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 2009년 북한의 로켓 발사와 핵실험을 거치면서 강화된 대북 제재, 북한 후계체제 구축의 불확실성, 화폐개혁 후유증, 그리고 최근 천안함 사태 이후 북한 고립화 및 대북 제재 가속화 등을 바라보면서 북한의 불안정을 ‘통일의 호기’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에 따라 MB 정부는 굶주리는 북한 주민을 도와줘야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북한 내부의 불안을 가중시켜줄 요인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역력하다. 그러나 북한 내 급변사태 발생은 ‘통일의 호기’가 아니라 ‘제2의 민족상잔의 비극’이 될 것이라는 점은 명약관화하다. 오판과 오인으로 발생한 끔찍한 전쟁, 6·25를 성대히 기념하면서도 한국전쟁이 남긴 가장 큰 교훈을 망각하고 있는 셈이다.

  김무성 원내 대표가 북한의 100만 톤의 군량미를 비축하고 있다는 주장 역시 무책임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우선 김 대표는 100만 톤이라는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하면서도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또한 북한 군부에서조차 아사자가 발생할 정도로 극심한 식량난을 겪어온 현실에 비춰볼 때, 북한이 과연 연간 식량 부족분에 해당하는 100만 톤의 식량을 군량미로 비축하고 있는 지도 의문이다. 결국 김 대표의 발언은 ‘퍼주기’ 논란을 재연시켜 대규모의 대북 쌀 지원을 촉구하는 대다수 국민들의 목소리를 잠재우고 MB 정부의 대북강경책을 정당화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현재의 남북한, 미래의 한민족 위한 전략적 지원

MB 정부가 마음을 바꿔 쌀 수십만 톤을 조속히 북한 주민에게 보내야 할 이유는 자명하다. 우선 쌀 지원의 1차적인 목표, 즉 북한 주민의 기아 사태를 완화하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만성적인 식량난에 시달려온 북한 주민들의 참상은 재론을 요하지 않을 정도이다. 영아 사망률은 1000명당 55명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고, 5살 이하 어린이의 19%가 저체중이고 32%는 나이에 비해 키가 작다. 북한을 방문해본 사람들은 남한의 초중등생 수준의 북한 군인들 체격에 혀를 내두르곤 한다. 또한 대북 쌀 지원은 남한에서 쌀 보관료로 매년 낭비되고 있는 수천억 원에 달하는 혈세도 절약할 수 있다. 쌀값 폭락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농민들의 시름도 달랠 수 있다.

  MB 정권 하에서 거의 ‘종교화’되고 있는 북한급변사태론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휴전선을 맞대고 있는 현실에서 대한민국의 국익은 북한급변사태 ‘유도’나 ‘방치’가 아니라 ‘예방’에 있다. 국지전은 물론이고 전면전이 발발할 가능성, 한국경제에 미칠 재앙적인 결과, 대규모 난민 처리 문제,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들의 개입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기본적인 안목만 있더라도, 우리가 왜 북한급변사태 ‘예방’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남한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러한 우려는 대북 지원을 마다해야 할 이유가 아니라 오히려 조속히 지원에 나서야 할 사유가 된다. 조속한 대북 지원은 북한급변사태 발생 시 한국에게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라고 써진 식량 포대가 북한 전역에 퍼지면 북한 주민의 대남 적개심은 완화되고 이는 북한 주민의 민심을 얻는데 소중한 자양분이 된다. 유사시 해당 지역 주민의 민심을 얻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사례가 입증해주고도 남는다.

  그런데 거꾸로 생각하면 아찔해진다. 남한 정부가 남아도는 쌀 지원에 대단히 인색한 모습을 보이면, 기아에 허덕인 북한 주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겠는가? 과연 이들이 북한급변사태 발생 시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한미연합군을 환영하겠는가? 아니면 총을 들고 산과 지하터널로 숨어들어 저항세력이 되겠는가?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대북 지원은 북한 주민을 이롭게 하는 ‘인도주의’ 정신의 발현이자 남한 농민들에 대한 ‘민심 수습책’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사활적인 이익을 지킬 수 있는 ‘전략적 지원’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관계 둘러싼 외교적 지위 방향타 될 터

북한이 9월 4일 수해지원 요청과 7일 대승호 송환에 이어, 10일에는 대단히 이례적으로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하고 나선 것은 남북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는 가능한 기회가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한반도 안팎의 흐름은 MB 정부의 선택에 따라 대전환으로 갈 수도 있고, 정면충돌의 위험을 잉태한 지루하고 답답한 상황이 지속될 수도 있다. 북한의 최근 행보는 분명 대외 관계의 복원과 발전을 겨냥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남북관계도 포함되어 있다. 미국 역시 한미 공조에 방점을 찍으면서도 새로운 출발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은 MB 정부가 ‘OK’ 해준다면 북미대화와 6자회담 재개에 시동을 걸려고 할 것이다. 6자회담 참가국 순방을 마친 중국 역시 조속히 6자회담을 재개하자는 입장이다. 러시아와 일본도 마다할 이유는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MB 정부는 인도적 문제와 정치군사적 문제의 선순환적 해결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물론 이는 연계가 아니라 병행 발전을 의미한다. 우선 남북 접촉에서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와 대규모 쌀 지원에 합의할 필요가 있다. 이미 대다수 국민뿐만 아니라 보수 언론 및 한나라당 내에서도 쌀 지원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체면을 중시한다던 북한도 손을 내민 상황이다. 5천 톤의 쌀 지원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하는 것이다.

  서울-도쿄-베이징-워싱턴-모스크바 순방을 마친 미국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동아시아 순방길에 부응해 6자회담도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 필요가 있다. 천안함과의 연계전략에 집착하지 말고 한반도 비핵화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이다.

  보즈워스의 동아시아 순방에 이어서는 유엔 총회가 예정되어 있다. 뉴욕 유엔 본부에서 6자회담 참가국들 대표들의 직간접적인 접촉을 충분히 예상해볼 수 있다. 특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원자바오 중국 총리와 만나 6자회담 재개를 비롯한 여러 현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유엔 총회에 앞서 MB 정부가 6자회담 재개에 긍정적 신호를 보낸다면, 6자회담 재개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될 것임을 예고해주는 외교 일정들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한민족의 정과 한이 서린 쌀 지원읕 통해 북한 주민과 남한 농민을 살리고, 꽉 막힌 정치군사 문제도 풀어야 할 역사적 책무가 이명박 정부에게 주어진 셈이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