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08월 1999-08-01   1001

진보정당, 시민적 정책대안 개발해야

진보정당 창당과 시민운동

오는 8월 29일 국민승리21과 민주노총 중심의 진보정당 추진위원회가 8월 29일 창당발기인대회를 가질 예정이다. 계획보다 시기도 늦어졌고 세 모으기도 예상보다 저조하지만 최근 12년 동안 잇달아 실패해왔던 진보정당의 등장은 한국정치사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 파괴력은 미지수이지만 ‘합법 정당을 통한 민중의 정치세력화’가 일단은 이뤄지기 때문이다.

과연 진보정당이 21세기를 끌어가는 주요한 정치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는가? 그동안의 진보정당운동은 추진 주체들이 정치적 영향력도 약하고 기본 계급에 뿌리도 없었기 때문에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일부이기는 하나 노동운동진영이 진보정당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정치환경도 변해 진보정당 건설 여건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그러나 진보정당 건설의 걸림돌은 아직도 여기저기 깔려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진보정당의 잠재적 지지기반인 노동자, 농민, 빈민, 소생산자, 소상인 등에 대해 시민운동이 진보정당운동이나 노동운동과 맞먹는 영향력을 갖고 있는 현실이다.

진보운동의 위기는 문민정부 출범 이후 심화되었다. 개혁의 부분적인 성과에 국민들이 호의적인 평가를 내리면서 진보운동의 명분과 설 땅은 더욱 약화되었다. 사회가 변화하면서 이데올로기보다 삶의 질을 높여줄 경제정의, 환경, 복지, 주택, 의료, 교통 등 일상적 생활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런 변화에 발빠르게 대처하지 못한 진보운동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그 틈새로 환경운동, 소비자운동 등 시민사회운동이 나타났다.

시민단체들은 그동안 정치적인 성향을 보여왔다. 이것이 크게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국가에 대한 시민사회의 자율성이 상대적으로 약한 우리 나라에서 시민운동이 정책 지향성을 강하게 띨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정치적 영향력 확보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또한 김영삼정부 때 경실련에 참여했던 전문가들이 스카웃되면서부터 ‘참여 속의 개혁’이라는 명분 아래 시민운동의 성과를 등에 업고 개별적으로 정치에 진출했다. 그 뒤 96년 4?1 총선 때 시민운동이 공식적으로 ‘새로운 대안’을 자임하며 정계 진출을 꾀했으나 결과적으로 시민운동이 정치권 진입의 발판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비판에서 나타나듯 이미지와 역량이 손상된 채 실패했다. 이후 시민운동의 정치진출은 더욱 조심스러워졌고 이는 진보정당운동에 시민운동 진영이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어려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다.

그러나 진보정당운동, 노동운동진영은 물론 시민운동진영과도 강한 연대를 추진해야 한다. 시민운동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할 즈음 노동운동은 시민운동에 대해 개량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운동 역량을 희석시킨다는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시민단체 가운데 일부도 일정한 대중적 기반이 확보되자 노동운동과의 차별성을 강조하면서 일정한 선을 그으려 했다. 그러나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은 변혁운동의 주도권, 또는 시민사회의 지지기반 확보 다툼의 경쟁자가 아니라 소외되고 억압된 집단의 이해를 어떻게 조직하고 그들의 이해관계를 정치적으로 관철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연대할 대상이다. 운동 공간의 확대라는 차원에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적합한 연대방식을 찾아야 한다.

이것은 결코 운동 역량의 분산으로 인해 진보세력을 약화시키는 것도, 계급적·민중적·변혁적 지향을 포기하는 것도 아니다.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장기적인 전망을 갖고 우회하는 전략이다. 특히 노동운동은 저항과 투쟁 일변도의 운동방식에서 벗어나 정책과 대안 제시의 새로운 운동 양식을 개발해야 한다. 이것은 진보정당운동 진영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다시 말하면 진보정당은 정당이 해야할 일의 상당부분을 시민운동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

2000년 16대 총선은 진보정당이 유력한 정치세력으로 살아남느냐 아니면 제2의 시기상조론을 앞세워 다시 겨울잠에 빠지느냐를 결정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지난 1년 반 동안 김대중 정부는 위기 관리에는 성공했지만 개혁입법 작업 등 사회 체계를 민주화시키는 본질적 작업은 거의 손도 못 대고 있다. 최근 김대중 정부가 민심을 잃고 사면초가의 상황에 빠진 상황에서 진보정당은 시민적 정책대안을 개발해 적어도 시민단체와 같은 수준의 국민 신뢰를 얻어야 할 것이다.

손혁재 참여연대 협동처장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