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08월 1999-08-01   712

NGO 빠진 NGO대회?

세계NGO대회의 허와 실

전세계 2,000여 NGO가 참가하고, 수십억 원이 소요될 ‘1999 서울 NGO세계대회’. 정작 국내 시민단체들은 냉랭한 반응이다. 이유는 국내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NGO 대신 정부와 경희대가 앞장서는 기이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 개막 두달을 앞둔 서울 NGO국제대회, 그 허와 실을 밝힌다.

NGO(비정부기구)를 주제로 열리는 사상 최초의 국제회의라는 ‘1999 서울NGO세계대회’(이하 NGO대회)가 두 달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그러나 바삐 움직여야 할 국내 시민사회단체들은 ‘소극적 참여’에 머물고 있거나 일부는 참여 자체를 거부하며 부정적인 시각을 보내고 있다. 때문에 세계에서 참가자들이 몰려들 대회가 내실없는 행사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깊다. NGO를 주제로 모인다는 대회에 정작 국내 시민사회단체들이 시큰둥한 것은 왜일까?

국내 시민사회단체들은 우선 NGO대회의 기획·진행과정이 일방적이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뜻을 세우고 힘을 모아 함께 행동하자”는 구호를 내건 NGO대회는 유엔NGO협의회(이하 CONGO)·유엔공보국NGO집행위원회(이하 DPI)·경희대학교가 공동주최하는 것으로 오는 10월 7일부터 10일간 올림픽공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대회 주제는 ‘21세기 NGO의 역할’. 기존의 국제대회가 환경·여성·인권 등 특정 사안을 주제로 한 것이었던 반면, 이번 행사는 NGO 자체가 주제라는 게 특색이다.

시민사회는 NGO가 주제라는 이 행사를 왜 경희대학교가 주최하는가에 의문을 표시한다. 한국 시민운동계에서 활동한 단체들이 주체가 돼야 하지 않겠냐는 것. 더구나 이 행사가 경희대학교 50주년기념행사의 일환으로 기획됐다는 점에는 더더욱 반감을 표시한다. 실제로 세계 2,000여 NGO가 참가하고 수십억 원의 예산이 소용될 이 대규모 행사는 국내 시민단체들과 한마디 의논없이 기획·결정됐다. 경희학원장 조영식 씨가 개인적인 친분을 활용해 4∼5년 전부터 추진해온 것. “조 원장이 노벨평화상을 받으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수근거림도 나오는 판이다.

경희대측은 이후 진행과정에서도 시민사회와 교류를 갖지 않는 등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경희대측이 CONGO·DPI와 합의를 끝낸 것이 지난해 6월, ‘한국조직위원회’를 발족한 것은 지난해 8월이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국내 시민사회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같이 하려는 의지는 보이지 않았다. 지난해 9월 소규모 간담회를 열었으나 시민사회에 공론화될 정도는 아니었다.

경희대측은 게다가 “대회 성격상 NGO가 3분의 2이상 되는 태스크포스팀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일부 시민사회 인사들의 의견도 무시했다. 조직위원회는 “공동주최하는 CONGO·DPI와 논의가 덜 돼 국내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행사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속셈 아니냐”며 의구심을 감추지 않았다.

전시행사로 끝날 위험 도사려

조직위원회가 구체적으로 국내 시민사회와 함께 하는 움직임을 보여준 것은 4월 임원진 추대 및 설명회에서였다. 박영숙 ‘사랑의 친구들’ 총재가 대회 공동조직위원장직을 맡고, 유재현 세민재단 이사장이 공동사무총장직을 맡는 등 시민사회 지도급 인사들이 대거 임원진으로 추대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인 승낙을 받지 않고 이름을 넣어 항의를 받는 등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같은 혼란에는 조직위원회측의 무지도 한몫했다. 조직위원회 관계자는 “시민사회를 너무 몰랐다. 시민단체랑 일을 같이 한다는 게 어떤 건지, 누구랑 얘기해야 할지 가닥을 잡을 수 없었다”고 당시 심경을 밝혔다.

이후로도 구체적인 진척은 없었다. 지도급 인사들이 이름을 거는 정도였을 뿐 실무차원의 교류가 없었기 때문이다. 7월초까지도 한국에서 담당해야 할 분과토의 주재 단체를 찾지 못한 상태였다(CONGO와 DPI가 맡은 해외쪽은 이미 1년전에 확정됐다). 국내 시민단체 실무책임자들을 초청, 프로그램 참가를 독려한 7월 2일 ’99서울NGO세계대회 준비를 위한 한국시민사회단체 회의’등을 거치며 7월 중순에 대체로 인선이 끝난 상태.

절차상의 문제뿐 아니라 대회의 내용에 대해서도 시민사회는 불만을 나타낸다. 시민단체 참여없이 만들어진 대회의 목표가 지나치게 막연하고 추상적이라는 것. 유종성 경실련 사무총장은 “구체성의 결여로 전시행사로 끝날 위험도 있다”고 지적한다. 유명인 위주의 강사초청, 이희호 여사가 명예 대회장이 된 것 등도 시민사회가 납득하기 힘든 처사.

이처럼 국내 단체의 참여가 늦고 미약한데다 재원마련도 불투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조직위원회는 총 예산을 300∼400만 달러로 잡았다. 경희대가 100만 달러, CONGO·DPI가 20만 달러(미정)를 부담하고, 나머지는 기업 후원을 받기로 했다. 그러나 기업후원이 계획 같지 않아 아직까지 예산안을 짜지 못하고 있다. 이미 재정문제 때문에 기획했던 문화행사를 취소하는 등 졸속 우려를 낳고 있다.

국내 NGO, 소극적 참여와 무관심 대응

그러나 문제는 국내 시민사회가 마냥 비판만 하고 있을 수 없다는 데 있다. 국제사회의 시선과 기대 때문이다. 이미 이 행사는 한국 시민사회가 준비하는 세계적인 축제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한국 시민단체 전체를 걸고 하는 것이므로 잘못되면 싸잡아 욕을 먹을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참여해 도와줘야 한다.”(장원 녹색연합 사무총장) 많은 단체들이 절차상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소극적 참여’라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특히 유재현 세민재단 이사장을 비롯한 시민단체 일부 지도급 인사들이 분주히 뛰는 데는 이런 위기의식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국제회의에 여러 번 참석해봤다는 한 활동가는 “개최국이 얼마나 준비하느냐에 따라 같은 회의라도 내용이 달라진다”며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참여를 강조했다. 지난 여름 코스타리카에서 열렸던 람사협약 당사국 총회는 코스타리카 NGO의 미성숙과 준비미흡으로 세계의 관심을 끌지 못한 채 끝났다는 것. 그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열렸던 전 회의는 정부보다 민간단체의 알찬 준비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많은 성과를 냈음을 강조했다.

김혜경 지구촌나눔운동 사무국장은 “특히 CONGO와 DPI가 준비하는 프로그램에 국내 시민단체들에게 유용한 정보가 많다”며 “이왕 열리는 대회이니 만큼 국내 시민사회단체들이 활용할 수 있는 한 활용하는 기회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민영 참여연대 사무국장은 “처음부터 우리가 주도하지 않았으므로 상대적으로 관심은 떨어지지만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진다면 얻을 수 있는 게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반대의견도 있다. 인권쪽에 참여요청을 받았으나 거절한 인권운동사랑방 박래군 사무국장은 “너무 늦었다”고 말한다. 시민단체들이 참여해 바꿀 수 있는 여지가 너무 없다는 것. 그는 “제대로 대회를 치르기 위해선 적어도 1년 전부터는 준비했어야 한다”며 “이처럼 급조된 대회가 시민운동 발전에 기여할 지도 미지수”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대다수 시민단체 활동가들에게 NGO대회는 여전히 ‘생뚱맞고 관심없는’ 주제다. “잘 모르지만 왠지 지금 우리 분위기나 상황과 맞지 않고 ‘붕 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유수훈 환경운동연합 조직국장). 세계대회·국제회의 등의 화려함에 집착해 또 하나의 쓸데없는 회의를 만든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대회 시작까지는 불과 두 달 여가 남았을 뿐이다. 시민사회 일부가 가세한 주최측이 무관심한 ‘주인공’들을 어떻게 끌어내고 함께 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강혜정 『시민의 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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