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07월 1999-07-01   1619

탤런트 김미숙의 참세상 만들기를 위한 제안

극단주의 넘어 서로 믿는 사회 만들어요

학생운동시절 학원자주화투쟁을 하면서 총장실 점거농성을 한 적이 있다. 언제 경찰이 학교를 기습할 지 모르는 불안하고도 깜깜한 밤. 남자 동기 한 명이 선배에게 이런 말을 했다.

“형, 나는 이럴 때 꼭 조용한 팝송이 듣고 싶더라.”

그날 밤, 그 친구는 밤새도록 교양학습을 철저히 받아야 했다. 민중가요를 들으며 투쟁의 열기를 확산시켜도 모자랄 판에, 활동가라는 자가 한가하게 팝송을 듣고 싶어하다니….

불안한 심경을 잔잔한 음악으로 달래고 싶었던 친구의 마음을 선배는 몰랐을까? 그렇게 경직되게 살았던 적이 있다, 내 나이 스무살 시절에는.

돌이켜보면, 사람은 항상 ‘투쟁’적일 수 없는 것같다. 가끔은 시를 읽는 낭만을 그리워하고, 미술관이나 음악다방을 찾게 된다. 내가 <김미숙의 아름다운 이 아침>을 즐겨 듣는 이유도 거기 숨어 있다. 조용하고 차분한 그녀의 목소리는 시끄럽고 번잡한 내 생활에 고요하고 풍요로운 작은 안식을 주기 때문이다.

음악과 날씨, 그리고 생활의 활력소

경복궁 건너편에 있는 현대화랑 4층 커피숍은 탁 트인 유리벽면을 갖고 있다. 초록이 짙은 북한산자락이 넓게 서울을 감싸며 넉넉한 품으로 들어오라 손짓한다. 미풍이 느껴지는 초여름 북한산, 그 풍광에 반해 넋놓고 경복궁 주변을 바라봤다. ‘콩튀게 바쁜 마감중에도 이런 여유가 내게 올 줄이야. 가끔은 마감을 넘긴 인터뷰도 괜찮군.’

또각또각, 멀리서 구둣발소리가 들린다. 검정 원피스에 베이지 바바리, 뒤트임 샌들. 불혹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아름다움을 간직한 탤런트 김미숙 씨(41세)였다.

날씨예찬론자 김미숙. 하루의 아침을 음악으로 열면서 그녀가 처음 꺼내는 얘기는 늘 날씨에 관한 것이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맑으면 맑은 대로, 항상 그녀는 날씨와 사람 얘기를 빼지 않는다. 어떤 때는 몇번씩 반복해서 바깥 세상을 읽어내린다. 그래서 전파로 김미숙 씨를 만날 때면 그녀는 참 인간에 대한 애정이 많은 사람일 거라 추측하곤 했다.

“저는 축복받은 사람이에요. 매일 아침 두 시간 동안 음악 듣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제가 날씨, 한강풍경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는 이유는 청취자들 때문이에요. 저야 밖이 훤히 내다보이는 스튜디오 창을 바라보며 일하지만 저희 방송은 지하에서, 공장에서, 병원에서, 사무실에서… 주로 닫힌 공간에서 많이 듣게 돼잖아요. 그런 분들에게 음악과 날씨로 생활의 활력소를 전달하고 싶어서 그래요.”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방송하고파

배려, 관용. 탤런트 김미숙 씨는 참으로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재주가 있다. 겉으로만 보면, 서글서글한 눈매가 사람의 마음을 잡아끄는 매력인가? 그녀와 ‘수다’를 떨다보면 사회전반 구석구석을 다 뒤지고 여행하게 된다. 그만큼 대화내용의 폭이 넓다. 그러나 사실 그녀의 방송에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언제나 빠져 있다. 듣기 편한 음악과 두루뭉실한 생활이야기, 여행정보, 영화이야기… 주로 문화적 이야기들이 그녀 방송의 화젯거리다. 그러나 이건 왠지 세상에서 조금 빗겨나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물었다. 방송의 사회적 기능도 중요한데 왜 그런 내용은 피하는가.

“난 극단주의가 싫어요. 흑과 백, 이것 아니면 저것. 난 우리 사회가 자꾸 그런 극단의 사회로 치닫는 게 부담스러워요. 편안하지 않고. 저는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고 싶어요.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의지가 되는 방송, 그런 것 하면서 살면 안될까? 후훗.”

그녀는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다. 많은 외국여행 끝에 저절로 생겨난 거라고. 그러면서 그녀는 본인처럼 평범한 사람도 외국엘 다녀오면 우리의 문화관광정책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데 높으신 ‘권력층’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왔다갔다 하는지, 외국의 국민들이 올바른 제도로 편하게 사는 걸 보면 한국국민을 위해 그런 정책을 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지, 궁금하다고 말한다.

“나는 가끔 권력층은 뭘 하나 싶어요. 외국 가면 항상 느끼는 게, ‘아휴, 우리도 이런 것 좀 하지…’ 제도부터 환경, 생활조건. 단편적 얘기 하나 할까요? 우리는 지역별로 고유한 문화상품도 없어요. 그런데 외국 가보세요. 샌프란시스코다, 그럼 그 지역 아주 작은 티끌이라도 찾아내 다 상품화 한다구요. 그 도시, 나라에 푹 빠져들게 해요. 그러나 우리는, 제주에서 김포공항까지 똑같은 물건이 진열대에 있죠. 제가 외국인이라면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 참 실망할 것 같아요. 너무 몰개성적이잖아요.”

그녀는 우리에게 걸맞는 문화적 이미지를 만들고, 그걸 세계에 알리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가끔은 정쟁에 휘말려 국민과 국익에는 전혀 안중이 없는 정치인들을 보면 화가 날 정도로 답답하단다.

“우리나라 재벌들은 눈에 보이는 사업에만 치중해 진짜로 귀중한 사업에는 투자할 줄 몰라요. 돈 많은 알부자들도 한국적 이미지를 만드는 문화사업엔 관심이 없죠. 그래서 전 이런 우리 사회를 보고 있으면 ‘썩은 생선가게’가 연상돼요. 그러니까, 더 이상 버티지 말고, 차라리 깨끗하게 폐업신고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좋겠다, 그게 차라리 국가발전에 도움이 될 것같다, 그런 생각 안드세요?”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그녀의 첫마디는 “나는 한국사회에 대해 너무 절망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좋은 말 안 나올텐데…”였다. 바로 이 대목을 두고 한 말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녀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밑바닥에서부터 우러나는 한국이란 나라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이리라. 그게 없다면 이런 말조차 쉽게 나오지 않을 테니까.

신용불량사회에 대한 해법은 없을까

그녀는 작년 참여연대사랑 그림전에 작은 데생을 기증했다. 시민운동과 참여연대에 대한 관심 때문이라기 보다 방송인 김종찬 씨와의 인연이 컸다. 그를 통해 알게 된 시민운동과 참여연대. 아직 속속들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신문과 방송을 통해 접하는 참여연대와 시민운동은 한국사회 발전에 꼭 필요한 부분인 것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앞으로 탤런트 김미숙의 이름과 이미지를 걸고 할 수 있는 일이 생긴다면 돕고 싶다고 전한다. 그녀가 던지는 시민운동에 대한 당부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상호불신의 사회가 돼버렸어요. 누가 무슨 얘기를 해도 믿지 않아요. 얼마전 서해안에서 남북이 교전했다는 기사가 났을 때, 제 친구가 그러더군요. 우리는 꼭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 터졌을때, 간첩도 내려오고, 전쟁도 일어날 것 같고 그렇잖니. 신경 쓰지마…. 지극히 평범한 직장인들이 이런 얘기를 해요. 늑대소년 이야기 아시죠? 우리 상태가 지금 그런 거라니까요? 이 신용불량사회. 시민단체가 제도와 정책을 바꾸고 국가행정을 감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은 우리 사회의 기본을 바꾸는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탤런트 김미숙, 그녀는 생활속에서 느껴지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두런두런 자연스럽게 얘기한다. 그런 그녀에게도 한가지 당부하고픈 게 있다. 깨끗하고 맑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김미숙의 언어’로도 세상의 온갖 부조리, 부정부패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방송현장이야말로 사람들에게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것을 함께 고치자고 말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니까.

장윤선(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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