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07월 1999-07-01   562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저자 홍세화와의 대화

1999, 서울과 파리 사이

사회: 오늘 정말 많은 분들이 오셨습니다. 작은 규모로 진행할 계획이었는데 어떻게 알고 이렇게들 찾아오셨습니까? 지금 제 옆에 계신 분은 남민전 전사이시며, 파리에서 20년 넘게 망명생활하시고 지난 6월 14일 귀국하신 홍세화 선생님이십니다. 뜨거운 박수 부탁드립니다. 저는 지금 심훈의 『상록수』 가 생각납니다. 선생님 말씀 한마디라도 더 들으려고 나뭇가지에 매달려 학생들이 목을 길게 빼고 있던 모습. 앞에 앉으신 분들이 바로 오늘 선생님과 대화할 파트너들입니다. 떨리세요?

홍세화: 안떨립니다. 저는 사실 토론을 하고 싶은데, 사람이 많아 토론하기 어려워지는 상황이고, 사흘 전까지 한번도 이런 강연을 해보지 않았던 터라 강단에 올라설 때부터 후들후들…. 지금은 좀 덜해요. 주최하시는 측의 생각대로 토론방식으로 진행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회: 간단하게 한국에 오신 소감을 말씀해주십시오.

홍: 김포공항에 내리기 전 비행기에서 내려다 보니까 막 산이 보였습니다. 참 아름다웠어요. 유럽에 있을 때는 그냥 막연하게 강산이 보고싶다 그런 생각을 가졌는데 참 아름답다, 그리고 도착한 날 또 남산타워에 올라갔었습니다. 거기서 본 산자락들이 역시 아름다웠어요. 그리고 한강도 아주 웅장하게 흐른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막연하게 생각해왔던 것을 직접 보면서 우리가 참 좋은 아름다운 자연을 가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서울을 둘러싼 산자락들과 한강이 참 똘레랑스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 받아들여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사회: 한강과 대학로를 방문하시고 한국사회 철학의 부재를 느끼셨다고 하셨는데, 그 구체적 내용이 궁금합니다.

홍: 이중성을 본 거예요. 동숭동에 가니까 20년전과 달리 먹고 마시고 놀자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리고 한편 명동에서 제가 4,000원짜리 우거지국밥을 먹었는데 그 옆 호텔에서 커피 한잔, 그것도 맛도 없는 커피를 마시는데 1만 원을 내요. 이게 확실히 이중적이다, 4,000원 주고 밥 먹는 사람하고 1만 원 주고 커피 먹는 사람…. 이중적인 사회구조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또, 저희가 학교다닐 때 비해 지금의 동숭동은 내면적인 성찰의 모습이 안보이더군요. 그러니까 예컨대 편하게 살기 위해 노력들을 했는데 그 편하게 사는 게 올바르게 편하게 사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회: 한국사회 철학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면 그것의 구체적 내용은 무엇이 돼야 할까요?

홍: 굉장히 어려운 질문인데 구체적인 사회, 문화, 전반적인 것을 통해 얘기했으면 해요.

청중1: 분단과 민족주의에 대해 질문하고 싶습니다. 홍세화 씨께서는 우리나라에 진정한 민족주의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분단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를 갖고 계신가요? 한국은 극우반동주의로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지 않습니까.

홍: 밖에서(외국에서는) 한반도 분단은 이념의 분단이라기 보다 세력간의 분단이라고 봅니다. 이 정부는 햇볕정책, 포용정책을 얘기하는데 이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죠. 정부의 정책대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문제는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이런 제국주의 세력들이 한 나라에 영향력을 미치면서 제일 먼저 시도하는 것이 그 지역의 분열공작입니다. 영국 식민지도 그랬고, 프랑스 식민지도 그랬어요. 분열시키는 것이 바깥으로 향하는 힘을 약화시키는 거니까. 지금까지 우리가 거기에 놀아난 셈이죠. 극우 반동주의 말씀하셨는데, 실제로 분단되면서 한국의 민족주의는 없어졌습니다. 한국의 민족주의에 대해 김종필 씨는 한국적 민족주의 이런 얘기를 했었고, 박정희도 민족 이런 얘기를 많이 했었지만 내용이 없습니다. 한국은 말은 민족주의라고 하지만 속이 비어버렸습니다. 북한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일본 교포에 대해서도 완전히 버린 식이고, 중국 교포 차별하려 하고 있고, 그게 무슨 민족주의에요. 투표권도 안줘요. 재일교포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일본 사람들이 볼 때, 자기나라 사람에게도 투표권을 안주는데 어떻게 지역 투표권을 주겠어요. 한국의 민족주의는 없습니다. 죽어버렸어요. 민족주의, 민족의 이데올로기가 없으면 대신 거기에 들어앉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남한의 경우에는 극우 반동주의, 지역주의였습니다. 두 가지밖에 없어요. 한국의 정치사회를 생각해 보십시다. 지역주의와 극우 반공주의 자유민주주의니 보수니 하고 얘기합니다. 자유민주주의를 50년동안 줄기차게 외쳐온 모습이 오늘의 모습인양. 헛소리지요. 그러나 김대중정부의 집권이후 제가 여기 서 있는 것 자체가 극우 반공주의가 헤게모니를 잃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극우 반공주의는 언론, 검찰, 공안세력에 아직 강력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거냐, 그런 데 관심을 가져야지요.

사회: 분단상황 때문에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그분들, 홍세화 선생님은 귀국하셨지만 아직도 귀국하지 못한 분들의 영구귀국을 위해 한국에서는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해외운동가들의 삶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십시오.

홍: 그렇습니다. 어느 신문사가 저한테 붙여준 이름이 마지막 망명객,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망명 카드를 받았던 사람 중에 최후의 사람일 수는 있어요. 일본 같은 경우에도 못오고 있는 사람들은 수두룩하게 많습니다. 유럽에도 있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통일문제와 연계되어 있다고 보는데 한 사람 한 사람을 문제제기하기보다는 좀더 포괄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일본교포들의 경우 1년에 1만 명 가까이 귀화하고 있는데 한 세대 이전에 다 없어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거든요. 이산가족문제를 포함해 이런 것을 해결할 운동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여러분과 제가 함께 가야할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 오늘 이 모임의 제목이 “1999, 서울과 파리사이”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지난 시기 한국사회의 진보와 개혁에 관한 글을 많이 쓰셨는데, 파리에서 느꼈던 한국사회 시민운동단체의 활동에 대한 평가랄까, 듣고 싶습니다.

홍: 일단 두 나라의 시민운동 방식을 비교하면 한국의 시민운동단체들은 정말 위대하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돈벌이도 안되고, 생존도 어려운데 그 일을 추진해온 데 대해 존경의 뜻을 우선 표하고 싶습니다. 제가 시민사회, 시민의식을 강조하는 이유는 시민들이 연대의식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가에 대해 우리는 정말로 걸음마 단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돈 얘기를 해야겠어요. 시민운동단체가 많이 있지만 안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가 자금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정부나 기업의 눈밖에 난 단체인데 그들이 돈을 줄 리 없습니다. 그럼 누가 줘야 하는가, 시민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국경없는 의사회. 여기는 세계 70여 개국에 나가 긴급의료활동을 벌이는데 그들에게 달린 상시 자원활동 근로자가 200명 가량 됩니다. 그 다음에 그 단체에 돈을 내는 사람이 70만 명입니다. 어떤 사람은 100파운드, 어떤 사람은 1년에 1,000파운드, 티끌모아 태산입니다. 참여연대 1년 예산이 얼마나 됩니까. 국경없는 의사회 1년 예산이 400억 원입니다. 70만 명, 이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이름없는 시민들입니다.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도보다도 시민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 한국 신문들이 아주 나쁜 게 있습니다. 수재의연금 걷으면서 꼭 이름을 붙여요. 누가 100만 원 냈다. 어떤 사람이 1,000만 원 냈다. 대우 김우중이 1억을 냈다. 그런데 그것은 대우 회사가 냈는지 김우중이 냈는지 아무도 모르죠. 물론 안내는 것보다는 나은데, 그것이 어떤 인식을 주는가 하면, 연대하는 것이 아니라 적선하는 것이다라는 거죠. 연대는 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데 적선은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보입니다. 한푼한푼 주는 것이 바로 연대이고 시민의식의 기초이고 터전이고 그것이 바로 시민의 철학입니다.

사회: 시민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 정말 어려운 것 같습니다. 프랑스와 차이가 많이 나는군요. 선생님께서는 참여연대가 프랑스의 ATTAC운동을 펼쳤으면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운동의 의미와 왜 참여연대같은 시민단체가 그 운동을 펼쳐야 하는지 말씀해주세요.

홍: ATTAC은 토빈세를 징수하는 시민연대세라는 겁니다. 미국의 경제학자 토빈이 제시한 것이죠. 나라를 넘나드는 투자 내지 펀드에 세금을 메기자. 그래서 거기에 0.05% 정도 낮은 세율로 메겨도 몇백 억이 나온다고 합니다. 달러로 계산하면 1조 5,000억 달러라고 하더군요. 거기에 세금을 물게 해서 시민연대세라고 명명하자는 운동이 프랑스에서는 아주 강력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