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06월 1999-06-01   1339

동강살리기에 왜 쉬리 주인공 안부르죠?

동강살리기에 왜 ‘쉬리’ 주인공 안부르죠?

영화 <쉬리>가 개봉되던 첫날 서울극장옆 커피숍. 영화배우 최민식(38세)은 2층에서 내려와 혼잡한 거리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긴장한 눈빛, 시커먼 살갗, 숯검정의 긴 머리칼. <조용한 가족> <넘버. 3>에서 봤던 코믹한 그가 아니다. 북한 제8군단 특수요원 박무영. 그는 외모에서부터 박무영의 빛깔을 드러내고 있었다.

최근 그가 열연중인 연극 <햄릿>의 공연장, 유시어터. 시원한 캔커피를 앞에 두고 그와 마주하게 됐다. 이번 대종상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그에게 첫번째로 묻고 싶은 것은 ‘인기에 대한 실감’이었다.

“인기요? 인기운운할 나이가 아니죠. 연기력 부족한 배우가 어느날 벼락스타 돼서 고가의 개런티를 받으며 ‘스탑네…’, 그런 얘들한테 말하죠.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저는 인기의 속성을 잘 알아요. 어느날 썰물처럼 쑥 빠져나가는 파도…. 인기는 그런 거예요. 그래서 저는 꾸준히 관심갖고 진지하게 봐주며 칭찬과 비판을 동시에 하는 매니아들, 팬들, 그런 분들이 소중하다고 생각해요.”최민식과의 인터뷰를 위해 영화잡지 『키노』의 정성일 편집장을 만났을 때, 그는 최민식에 대한 인물평을 이렇게 늘어놓았다. “그는 인기라는 천당과 무관심이라는 지옥을 오간 사람이다. 기본적으로 인기를 통해 대중스타가 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가 그를 스타로 추켜세워도 그는 배우로 남고 싶어할 거다.

그래서일까? 최민식 씨는 기본적으로 배우에 대한 철학이 없는 배우는 길게 가지 못한다고 단정한다.

“부모 잘 만나 얼굴 예쁘게 태어나서 탤런트나 한번 할까 종종 그런 후배들에게 물어요. 넌 왜 배우 하려고 그러냐고. 우리는 작가가 쓴 가공의 영혼을 몸으로 풀어내는 일을 하는 거예요. 내가 살아온 삶은 다 지워버리고 그 인물의 모든 형태가 돼야 한다구요. 그런데 개념없이 일하는 얘들 많죠. 그런 애들 보면 참 안타까워요.”최민식은 스스로 배우라는 직업을 ‘딴따라’에서 ‘문화인’으로 끌어올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다. 오락적 뉘앙스가 강한 유흥가의 엔터테이너가 아니라 사람을 연구하는 직업인으로서의 의미. 그래서 그는 TV프로에서 배우를 가볍게 취급하는 것을 보면 분노한다.

“배우라는 직업이 우월하다, 대단하다는 생각은 안해요. 그런데 가끔 TV 토크쇼에서 다른 유명인에게는 안그러면서 우리에게는 웃기는 연기, 우는 연기 막 시켜요. 얼마나 수없이 많은 날들을, 소주 까고, 머리 쥐어뜯으며 만든 표정인데…. 너무 가볍게 여겨요. 물론 우리가 너무 값싸게 놀아서 그럴 수도 있겠죠. 가끔 친구들과 술 마시면 사람들이 알아봐요. 처음엔 사인 해달라 그러다 나중엔 뒤통수를 쳐요. 술 따라봐! 아직도 ‘딴따라’다, 그런 생각이 있는 거예요.” 자조섞인 투로 씁쓸하게 웃고는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인다. 8센티의 담배가 빠알간 불꽃을 내며 조금씩 타들어가자 그는 긴 한숨을 내뱉고, 라이터를 테이블 위로 툭 던졌다.

“세익스피어가 그랬잖아요. 배우의 말, 행동, 제스추어가 그 시대를 반영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마인드가 없는 것같아요. 문화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런 점이 안타깝죠. 그런 사회인식을 바꾸기 위한 노력도 해야 하는데….” 언젠가 지하철에서 조간을 펴다 배시시 웃음이 난 적이 있다. ?99 대종상 남우주연상 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 그가 뱉어낸 언어의 유희때문이다. 시상식에서 그는 남우주연상의 공을 <쉬리> 조단역 배우들에게 돌렸다. “그들이 없었다면 <쉬리>는 ‘빠가사리’가 됐을 것”이라면서. 어쩌다 이런 멘트가 나왔을까.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무심결 뱉어낼 수 있는 말은 아니다. 유추 가능한 조단역과의 일화 한토막.

“영화 중 식당에서 유중원(한석규 분)과 한판 붙는 장면이 있어요. 거기가 수원 삼성전자 식당인데 막 싸우다보니 식당에 있던 배추며, 무, 마요네즈가 다 터졌어요. 난리도 아니었죠. 제작팀 다섯이 청소하려면, 정말 쌍코피 터질 일이에요. 그런데, 촬영이 끝나니까 그들이 빗자루를 들어요. 야, 이거, 오랜만에 진짜 괜찮은 놈들 만났다, 정말 뿌듯했어요. 그래서 저도 같이 물청소했어요. 매니저 끌고 다니면서 지 권리나 주장할 줄 알고, 지 것만 챙기는 얘들 하고는 비교가 안되더군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평생 그런 친구들과 연기하면서 살고 싶다고 너스레를 떤다.

영화배우 최민식, 그는 가슴 한켠에 새록새록 피어나는 사랑의 꽃씨를 주변에 뿌리며 살 사람, 어울렁 더울렁 사람들과 살부비며 솔직하고 담백하게 살아갈 영락없는 배우였다. 그런 만큼 그는 인간에 대한 이해도 폭넓게 하고 있었다. “저는 요. 아무리 천인공노할 잘못을 저지른 죄인이라도 그 사람이 왜 그랬을까, 그렇게 된 배경은 뭘까, 그런 걸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배우니까. 역지사지.” 그의 이런 생각이 <쉬리>의 박무영, <조용한 가족>의 강창구, <넘버. 3>의 마동팔, <야망의 세월>의 꾸숑을 만들어낸 게 아닐까? 하나의 표정, 몸짓, 언어를 만들기 위해 피를 토하는 배우, 최민식. 그는 <쉬리>에서 북한 제8군단 특수요원 박무영을 연기하기 위해 국정원 소개로 특수요원 출신 귀순자를 만날 정도의 적극성을 보였다.

“북한 특수요원들의 실제 훈련을 알아야 제대로 박무영을 소화할 것 같았어요. 한 3시간쯤? 그와 얘기했어요. 참 많이 배웠죠. 연기에 많은 도움이 됐어요. <쉬리> 이후 다시 한번 그를 만나 소주라도 한잔 하고 싶었는데 더는 만날 수 없대요. 완전한 대한민국 사람이 되기 전까지 그는 국정원의 보호아래 있어야 한다더군요.”최민식은 <쉬리>를 찍은 1년간 진짜로 ‘뺑이쳤다’고 고백했다. 정말 제대로 된 연기 한번 하기 위해 몸바쳤다고 술회했다. 그리고 1년 후. 그는 극장 화장실에서 빙긋이 웃을 수 있었다.

“진짜 잠이 안왔어요. 반응이 아니면 어쩌나, 조마조마했죠. 그런데 화장실에서 관객들이 오줌누면서 이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한국영화, 볼만한데? 야 거, 장난 아니다, 괜찮은데…. 안도가 되더라구요. 화장실에서 하는 얘기가 진짜 아닙니까? 그때, 됐다, 이런 소리 나오면 된 거다, 적어도 욕은 안 먹겠다, 그렇게 생각했지요.”그는 솔직한 배우였다. 숨기는 게 별로 없다. <쉬리> 전에는 솔직히 통일에 별 관심이 없었지만, 촬영 후 북한주민에 대한 애정이 많이 생겼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시민운동은 어떠냐고 물었다. 혹시 참여연대를 아느냐고…. 그의 답변이다.

“아, 잘 알죠. 최근의 소액주주활동, 그 누구죠? 교수님, 와, 그 양반 진짜 깡다구 좋대요? 그런 분들이 많이 나와야 해요. 솔직히 한편으로는 그렇게 실천하는 게 부러워요. 책상머리에 대가리 디밀고 앉아 떠드는 사람은 정말 싫어요. 실천하는 사람, 얼마나 멋있어요. 저도 순수한 뜻을 가지고 동참할 기회를 주세요. 수잔 서랜든같은 외국배우처럼 열심히 할게요.” 그는 개인적으로 동강살리기운동에 관심있다고 귀띔했다. 환경운동단체에서 참여를 권고한다면 기꺼이 열심히 하고 싶다고. 특히 그는 그린피스 활동에 찬사를 보내고 있었다.

“학교 다닐 때 체육시간 끝나면 수돗물 막 먹었어요. 지금은 못먹잖아요. 환경호르몬 문제는 또 얼마나 심각해요. 배우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 연극이나 드라마를 통해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반대중이 피켓 들고 거리에 나가는 것처럼 우리 배우들은 극장에서 이런 사회문제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그는 과격(?)하리만치 사회에 대한 적극적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그동안 직접 찾아나설 수 없었고, 또 배우로 산다는 게 그리 여유있는 삶은 아니기에 먼 발치에서 그저 지지 후원할 뿐이었다는 것이다. 그의 솔직한 발언이 마음 한 구석의 훈풍을 만들었다. 치장없이 고추장 국물이 튄 구겨진 남방에 청바지를 입고 수수하게 웃는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조급해 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열심히 좋은 배우로 살겠습니다. 돈이요? 먹고만 살면 되는 거 아니에요? 벌면 얼마나 벌고, 또 못벌면 얼마나 못벌겠어요. 복잡하게 TV드라마에 출연하면서 헉헉대지 않고, 여유있게 한 작품 한작품 최선을 다하며, 이렇게 『참여사회』같은 잡지에 인터뷰도 하면서 그렇게 살 거예요. 허영부리지 않고, 얄팍한 상술에 놀아나지 않으며 의식있는 배우, 감독들과 함께 제대로 된 한국영화 만들겠습니다.”

장윤선(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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