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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9년 05월
  • 1999.05.01
  • 1237
에스컬레이터 사고후 안전불감증에 더 놀랐다
가양동 1단지 내 한강타운상가에서 자그마한 화랑을 운영하는 신수영 씨(48세). 이 즈음의 그의 눈엔 여느 봄날과 달리 눈부신 햇살도, 흐드러진 봄꽃도, 그것을 즐기는 상춘인파도 들어오지 않는다. 그의 마음은 여전히 스산한 겨울을 건너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두 가지. 사고 후 두 달이 가까워지는데도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시는 아버님에 대한 걱정과 아무리 곱씹어도 도시철도공사 관계자의 무성의한 태도과 안전불감증이 도대체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신수영 씨의 부친 신기현 옹(93세)이 사고를 당한 것은 지난 3월 6일. 오전 8시경, 여느 때와 같이 화곡역에서 지하철을 이용해 까치산역 인근에 있는 화곡동교회로 향하던 중이었다.

지난 3년동안 교회 측에서 제공하는 노인정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감해 온 신옹은 10여 년간 화곡동교회를 다닌 신실한 크리스챤이었다. 워낙 연로하셔서 아들 신씨도 만류를 해 왔지만 지난 3년 동안, 심지어 눈비가 올 때에도 거르지 않고 다니던 길이었고, 평소 건강을 자신하던 분이라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는 것. 그런 열성 때문에 높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교회측이 노인정의 열쇠를 신옹께 맡겨 왔다고 한다.

그날 오전 9시경, 아들 신씨는 까치산역 부근의 동산병원 응급실로부터 부친의 사고소식을 전해 들었다. 부친이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넘어지면서 크게 다쳤다는 연락이었다. 급히 달려가보니 부친은 머리부분에 살점이 떨어져나갈 정도로 중상을 입었고, 얼굴에는 에스컬레이터에 실린 자국이 선연했다. 그 외에도 온 몸이 찰과상, 타박상 투성이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심한 것은 부친의 정신적 충격이었다. 너무 놀라 쇼크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외상 치료에 3주, 그외 정신적 안정을 위해서는 상당기간 요양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고 신옹은 입원실로 옮겨졌다. 부친이 입원실로 옮겨진 후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던 아들 신 씨는 사고 경위를 자세히 알기 위해 까치산역으로 향했다.

우선 까치산역 내부를 돌아본 신씨는 두번째로 놀라면서 이번 사고가 예견된 ‘인사 사고’였음을 직감했다. 신씨에게 가파른 지하철 에스컬레이터가 눈에 들어온 직후였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가 그렇게 가파른 줄 처음 알았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찔했으니까요. 순간 여기서 사고가 나면 중상이겠구나, 오히려 아버님은 적게 다치신 거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습니다. 사고 이후 소식을 접한 이웃들 중에 그곳이 사고 소지가 많은 곳이라는 말씀을 의외로 많이 하더군요. 한편으로 미리 이용을 말리지 못한 제가 원망스럽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 어떻게 이렇게 위험하게 만들었을까, 이런 급경사 시설이 어떻게 허가가 났을까, 안전요원이라도 배치시켰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더군요. 예전에 지하철을 이용할 때는 그렇게 가파르지 않았는데, 새로 만들어진 지하철은 더 안전하고 편리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그러나 신씨를 정말 놀라게(‘화나게 했다’는 표현이 사실 더 정확하다) 한 세번째 내용은 지하철 관계자들의 태도였다. 쓰러져 있는 부친을 발견하고 병원으로 옮긴 직원으로부터는 ‘노인이 쓰러져 있어 급히 옮겼다’ ‘목격자도 없다’는 얘기밖에 듣지 못했다. 지하철 내부 모습을 찍는 CC-TV를 확인해 보자는 신씨의 요구에도 당시 에스컬레이터쪽은 찍지 않았다고 했다. 직원들은 책임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지하철 안에서 일어난 사고인데 책임이 없다니 말이 됩니까? 누가 봐도 사고위험이 있는데 예방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관리 소홀에 해당되는 것 아닌가요. 이렇게 항의했더니 인력이 부족해 어쩔 수 없다는 태도였어요. 본인들도 위험하다는 것을 일면 인정하는 것이죠. 그러면서 하는 말이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기 힘들다고 호소하는 이는 옆에 있는 엘리베이터로 안내를 한다더군요. 그런데 지하철 어디에도 엘리베이터 안내문은 없었어요. 아니 지하철 개통 이후 줄곧 이용한 사람도 모르는데 엘리베이터가 있으면 무슨 소용입니까. 목격자가 없다는 말도 납득이 안되요. 토요일 오전 8시경이면 출근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을텐데 말입니다.”역장을 찾았지만 당시 역장은 자리에 없었다. 며칠후 다시 역장을 찾았다. 한데 역장의 태도는 직원들보다 더 어이가 없게 했다.

“안전관리 소홀에 대해 항의했더니 역장이 그러더군요. 역장 생활 30년 동안 그런 일에 다 보상했다면 집도 다 날렸을 거라고. 아니 한 역의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역장이 할 소리입니까. 다른 것은 다 차치하고라도 사고 당사자가 찾아왔으면 위로 정도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어이가 없어하니까 규정집이라는 것을 들이대며 이용자 책임이라는 거예요. 그 후 우연히 사고처리 보고서를 보았는데 사고정도도 가벼운 경상으로 처리되어 있었어요. 항의하니까 나중에 조정해서 보고하면 된다고 하더군요.”보름 후 신옹은 퇴원했다. 어느 정도 외상을 회복한 상태였고, 간병하느라 업무를 소홀히 한 지 오래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퇴원 수속을 밟으면서 신씨는 다시 한번 놀라야 했다. 병원비를 처리하던 신씨에게 병원 직원이 응급처치 비용은 지하철 측에서 부담하는데 모르느냐는 듯이 알려주는 것이었다.

“아버님이 병원에 계실 동안 어느 누구도 병문안 한번 오지 않더군요. 병원이 멀리 있는 것도 아닌데 무심하다고 할 밖에요. 그런 중에 병원 직원이 하는 얘기를 들으니 화를 누를 수가 없었죠. 인지상정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전화를 했더니 진료확인서를 가져오면 10만 원 이하의 응급 처치 비용은 처리해 준다고 하더군요. 기가 막힙디다. 1주일 후 수령해 가라고 전화가 왔어요.” 10만 원이 아쉬워서라기보다 행태가 괘씸해서였다. 신씨는 요즘 고민이 적지 않다. 사고 충격으로 거동을 하지 못하는 부친에 대한 안타까움과 지하철 측에 대한 법적 대응 여부를 결정내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고 이틀 후 참여연대를 두드린 신씨는 며칠후 참여연대로부터 ‘공공기관 설치 및 관리상의 하자’를 따져 사고증명원과 진료기록부 등을 첨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답을 들었다. 그러나 가장으로서 빠듯하게 생활하는 신씨에게 소송의 길이 멀고도 험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어떻게 호소할 방법이 없는지 답답해 연락을 했습니다. 한데 생활인으로 바쁘다보니 경황이 없는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분명하게 단언하건데 사고 지역을 보면 반드시 재발할 여지가 있습니다. 제 경우를 참고해 참여연대와 같은 시민단체가 나서 최소한 다시는 이같은 사고가 나지 않게 예방조치를 취하도록 촉구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손정미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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