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1999년 05월
  • 1999.05.01
  • 294
안토니아스 라인
우리는 살아가는 의미와 가치를 과연 어디에 두고 있는 것일까? 사람마다 다른 곳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 의미를 새기며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각자의 삶에 공통적으로 들이대는 잣대가 있다. 그것은 얼마나 자기 자신의 뜻을 자유롭게 펴고, 이루면서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오늘 나는 얼마나 나의 의지대로 살았나? 그 의지는 또 얼마나 떳떳하고 자유로웠나?영화 <안토니아스 라인>은 바로 그런 잣대로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는 영화다.

안토니아는 딸 다니엘과 함께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이 모인 장례식은 그냥 그렇게 하나의 기념식처럼 치러지고, 다니엘은 자신의 죽음을 기뻐하듯 노래하는 할머니의 환영을 본다. 모녀는 물려받은 농장에 정착해서 가톨릭의 권위가 지배하는 고향마을의 구성원으로 새롭게 삶을 시작한다.

귀향한 안토니오에게 유일한 친구인 굽은 손가락. 전쟁 직후 염세철학자가 되어 우울한 현대성을 대변하고 있는 그는 영화 전체를 통해 존재와 죽음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려주며 인간들이 스스로 만든 고리 속에서 얼마나 힘들게 살아가는지를 토로한다. 다니엘은 여자를 가축처럼 취급하는 농부 단의 저능아 딸 디디가 오빠 피트에게 강간당하는 광경을 목격하고 피트를 쇠스랑으로 찌르고 디디를 구해 농장으로 데려온다.

한편 미혼모 레타의 도움으로 다니엘은 멋진 청년과 관계를 맺어 딸 테레사를 낳고, 레타는 남자에게서 버림받은 채 안토니아의 농장으로 들어오게 된다. 테레사는 어려서부터 굽은 손가락과 철학을 논할 정도로 영특하여, 학교에 들어가면서 영재교육을 받는다. 테레사의 영재교육을 위해 방문한 여선생과 다니엘은 동성의 사랑을 나누게 된다. 디디를 강간하다 다니엘에게 찔리고 마을을 떠났던 피트가 돌아오고, 테레사가 피트에게 강간을 당한다. 안토니오는 피트에게 복수를 하려 총을 들이대지만 경멸의 독설만을 뱉을뿐…. 학문에만 전념하는 테레사는 레타의 아들 시몬과 사랑을 나누게 되고, 결혼을 하지 않은 채 딸 사라를 낳는다. 굽은 손가락이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유언을 남기고 자살한 뒤, 마을 사람들도 나름대로의 사연을 가지고 세상을 떠난다. 안토니오도 죽음을 궁금해하는 증손녀 사라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을 맞이한다.

그러나, 이 영화 속의 죽음들은 결코 무겁게 우리를 억누르지 않는다. 이 영화 속에서는 모든 것이 자유롭고 자연스럽다. 아이만 낳아 기르는 것도, 동성의 사랑도, 더불어 죽음도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안토니오 어머니의 장례식이 하나의 행사처럼 지나가듯이 관 속의 고인이 죽음을 기뻐하며 노래부르는 환영을 보이듯이, 모든 죽음은 살아온 날들의 흔적을 남기며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것이고, 곧 다른 시작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만든 마린 고리스는 여성 감독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흔히 페미니즘 영화라 불린다. 그러나 나는 결코 이 영화를 그렇게 부르고 싶지 않다. 안토니오라는 여인과 그녀의 딸, 손녀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분명 여성성을 중심으로 풀이해볼 수 있지만, 그녀들이 만들어가는 삶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으로 제기되는 삶인 것이다. 안토니오의 농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그들은 모두 권위주의적 전통에 순응하지 못한 아웃사이더들이거나, 그 권위에 상처받고 소외당한 사람들이다. 농장에서 그들은 위안받고 행복해 한다.

영화 <안토니아스 라인>은 스스로 삶을 만들어가는 방법을 알려준다. 스스로 행복을 찾는 법도 알려준다. 그래서 우리는 굽은 손가락이 말하는 쇼펜하우어의 염세를 딛고 안토니아스의 농장에서 삶에 대한 의욕을 채워 돌아올 수 있게 된다.
장문경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연구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참여와 행동에 동참해주세요
참여연대 회원가입·후원하기
목록
닫기
닫기
  • 누수만 막아도 동강댐 필요없다
    • 1999년 05월
    • May 01, 1999
    • 1303 Read
  • 간사이야기
    • 1999년 05월
    • May 01, 1999
    • 939 Read
  • 언론모니터운동의 현주소
    • 1999년 05월
    • May 01, 1999
    • 1194 Read
  • 남북노동자축구대회로 통일의 물꼬를
    • 1999년 05월
    • May 01, 1999
    • 539 Read
  • 약값판매자가격표시제 제대로 실시되고 있나
    • 1999년 05월
    • May 01, 1999
    • 1099 Read
  • 학력인정 사회시설학교는 비리온상
    • 1999년 05월
    • May 01, 1999
    • 1405 Read
  • 양심은 쇠사슬로 묶을 수 없으리
    • 1999년 05월
    • May 01, 1999
    • 558 Read
  •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교육』
    • 1999년 05월
    • May 01, 1999
    • 633 Read
  • 대표와의 술자리, 그 아찔한 기억
    • 1999년 05월
    • May 01, 1999
    • 617 Read
  • 수자원개발 없으면 2005년 물부족사태
    • 1999년 05월
    • May 01, 1999
    • 831 Read
© k2s0o1d4e0s2i1g5n. Some Rights Reserved